[스크랩] [펌]한국 개신교, 패러다임을 다 바꾸라(양희송 청어람 실장)
<복음과 상황 원고 20080711>
‘포스트 2007 시대’: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포스트2007의 징후들, 랜드마크 붕괴, 교계 패러다임 폐기, 급진적 재고
두 달을 넘겨 지속된 촛불시위는 정부의 강경대응으로 꺼지는 듯하더니 종교계의 가세로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그러던 와중에 개신교계에서는 ‘아직 촛불에 무릎 꿇지 않은 9000명의 목사들이 있다’며 호소문을 발표하는 기염을 토했다. 나는 지난 2007년 여름부터 ‘우리는 지금 어느 시점에 서 있는가?’란 한가지 화두에 사로잡혀 있었다. 여러 기독교 공동체에서 그와 관련된 내용을 강의했었는데, 그 불길한 예상이 점점 현실화 되어 가는 듯하여 여간 마음이 착잡하지 않다. 이 글은 그 강의안을 2008년 7월 현재의 시점에 업데이트한 것이다. (원본이 궁금한 사람은 싸이월드 <복음주의> 클럽(http://evangelical.cyworld.com)에서 ‘결코 같지 않으리(Never be the same)’란 글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포스트2007 시대의 징후들
나는 우리가 떠나 보낸 2007년이 적어도 한국 개신교의 향후 20년을 규정하는 매우 특별한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시민사회가 1987년을 그 이후 20년의 세월을 정초하는 해로 꼽으며 ‘87년 체제’라고 부른 것과 유사한 이유에서 그렇다. 몇 가지 중요한 징후가 있었다.
1) 인구 센서스
매 10년마다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인구센서스의 종교인구 관련 통계가 2006년 발표되었다. 1995년과 2005년의 두드러진 차이는 첫째, 한국사회가 1995년에 비로소 종교인구가 50.7%로 절반을 넘어서더니 2005년에는 53.1%(237만 명 증가)로 증가세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사회에서 종교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둘째, 10년간 주요 종교간 증감추이가 흥미롭다. 불교의 경우 신자 수는 약간 증가했으나(40만 5천 명), 인구 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해 성장률은 -0.5%이다. 개신교는 성장률도 -1.6%이고, 신자 수도 14만 4천명이 줄었다. 가장 압권은 천주교의 성장이다. 총 219만 5천 명이 증가하면서 74.4%의 폭발적 성장세를 보였다. 개신교 신자의 천주교 개종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늘어난 종교인구 전체가 천주교를 선택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번 촛불집회에서 천주교 시국미사가 일으킨 위력을 보면서 나는 한가지 확신을 더 얻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2015년 인구센서스는 천주교가 개신교를 제치고 한국사회의 두번째 종교집단이 될 것이란 예상이다. 천주교가 현재 성장세를 유지하여서 200-300만 명 정도가 증가한다면, 그리고 개신교가 계속 비호감 상태에 머물러 확연한 감소세로 돌아선다면 순위가 바뀌는 것은 필연적이다. 통계학적으로 현재 추세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보수적인 전망 아래에서 이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다. 개신교는 이제 글자 그대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2) 2007년 개신교계 트라우마
작년은 한 해 내내 ‘Again 1907’이란 구호로 어수선 했다. 그러나, 평양대부흥 100주년은 단지 ‘기념’되고, ‘추억’되었을 뿐, 결코 ‘재현’되지 못했다. 오히려 월드컵 주경기장에 수만이 모여 진행한 기념대회는 우리가 얼마나 ‘대부흥’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지 웅변으로 보여준 대회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대회장 바깥의 이랜드 홈에버 ‘상암점’에서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비정규직 사태로 인한 파업이 시작되고 있었다. 경기장 바깥에서 벌어지는 사건에는 무심한 채 ‘회개’와 ‘부흥’을 구하였던 <Again 1907>은 이제 더 이상은 그리스도인들끼리의 ‘자페성 대형집회’는 불가능한 시대가 도래했음을 예증한다. 이제 개신교나 통일교나 주로 운동장에서 ‘자기들끼리만 의미 있는’ 종교행위를 한다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시대가 되고 있다.
지난 20년간 가장 반듯한 기독교 기업의 대명사였던, ‘세금 떼어먹지 않는 정직한 기업 이랜드’는 지금은 노사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를 잘 처리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기업이 되어있다. 그리고, 우리는 아프간 사태를 맞았다. 12,000명이 넘는 해외선교사 파송 2위의 선교대국으로 한국이 등극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두 명의 꽃다운 생명을 잃었지만, 놀랍게도 국내 여론은 샘물교회와 개신교계에 엄청난 비난을 쏟아 부었다. 아직도 우리는 희생자들을 순교자로 기념하는 것 말고 우리가 그 사건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고 있다.
3) 장로대통령 MB
작년 한 해 내내 개신교계는 노골적으로 ‘장로대통령 만들기’에 올인 했다. 그 정도로 부끄럼 없이 나섰는데도 연말의 대선에서 실패했더라면 개신교의 꼴이 말이 아니게 될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설마 개신교 신자가 정부 요직에 무더기로 진출한다든지 하는 촌스러운 정실인사가 벌어질 것이라고는 예상을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 안 가 인수위에서 청와대와 내각에 이르기까지 ‘
그래서였을까, 유독히 개신교계에서는 이 정권과 운명공동체를 자임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촛불정국에서 정권에 유난히 후덕한 덕담을 건넨 이들은 전부 개신교 목사들이었다. ‘사탄의 자식’, ‘빨갱이’에서 ‘무식한 대중’에 이르기까지 촛불을 든 사람들에 대한 인격말살적 발언을 강대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대가로 시민들은 더 이상 이 정부와 개신교에 선한 것을 ‘소망’하지도 ‘고대’하지도 않게 되었다.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집착이 딱 이 나라를 97년도 IMF상황으로 데려다 놓았다’는 우스개 소리는 10년 전 장로대통령의 비극적 종말까지도 이 정권이 충실히 재현할 것 같다는 우려를 현실화 시키고 있다. 5년짜리 정권에 100년 넘는 개신교의 운명을 온통 연동시키는 이 기이한 선택에 나는 아직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4) 학력 위조
2007년에 ‘신정아’란 사람이 있었다. 학벌 좋아하는 한국사회의 면상에 침을 뱉는 행위예술을 구사하면서 이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그녀의 사기행각이 드러나는 순간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는데, 문화예술계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눈물을 동반한 ‘고백’에 나선 것이다. ‘난 이대 출신이 아니었다. 난 박사가 아니었다 등등’ 심지어 그 고백은 조계종 전 총무원장까지 이어졌다. 요즘은 가짜 학위 논란에 더해 표절이나 논문중복게재 등까지 들춰지고 있다. 학자 출신들은 이제 어떤 식으로든 고위직을 수행하기 전에 자신의 책과 논문이 제대로 연구윤리를 지켰는가 검증 받게 되었고, 그러지 못하는 순간 그 직위를 유지하기 힘든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젠 ‘누가 감히 나에게 돌을 던지랴’는 경우는 사라지고 있다.
문제는 이 시한폭탄 돌리기 게임의 최종 정착지가 개신교계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는데 있다. 미국에서 가짜 박사 학위를 남발한 상위 10개 대학은 한 눈에 보아도 기독교 계통임이 선명한 이름들이 절대 다수이다. 목사인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도 통신과정을 주로 하는 학교에서 학위를 받아서 가짜 학위 논란이 일고 있다. 학술진흥재단의 내부 실사결과 약 1,000명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단다. 그리고, 아마도 그 1,000명중 상당수는 개신교 목회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생각해 보라. 개신교 목회자 수백명이 허위 학력 혐의로 조사받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전국의 주요 도시마다 중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줄줄이 이런 일에 연루된다면? 개신교는 다시 종교탄압이라고 반발하고, 한기총은 시청 앞 시위에 나선다면? 개신교의 신뢰성은 곤두박질 칠 것이다. 이런 내용은 이미 데이터는 다 공개되어 있는 것이다. 언론매체들도 시기를 저울질 하는 수준인 듯싶다. 예수님의 말마따나 ‘이런 일이 일어나면 종말이 가까이 온 줄 알라’고 동요를 다독거리는 것 말고 우리는 무얼 더 할 수 있을까?
‘개신교 87년 체제’ 랜드마크의 붕괴
외견상 지난 20년간 개신교는 최고의 시절을 구가한 듯하다. 87년의 민주화 운동 이후로 한국사회는 밝아졌고, 70년대를 내리 눌렀던 암울한 기운은 많이 가셨다. 진보적 개신교계는 싸울 주적이 사라진 듯이 보였고, 이어진 민주정부들에서 꽤 많이 권력을 운용해보는 특권도 누렸다. 보수 교계는 주눅들지 않고 교세확장과 새로운 목회적 시도들을 감행했다. 불과 20년 만에 개신교는 세계2위의 선교대국으로 올라섰고, 온갖 사회의 지도층에 개신교 신자들이 활약하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바라보았다. 물론 그들이 좀더 ‘신앙적 정체성’을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불만도 있었기에 선거 때마다 ‘기독당’을 만들자는 이들이 나오고, 이런 개신교의 위용에 흠집을 내려는 불만세력들이 몇몇 언론매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불편한 심기도 표출되었다.
나는 지난 시대 한국 개신교를 파악하는 데에 주요한 랜드마크(landmark)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군부 독재기’인 유신시대와 80년대 중반까지 한국 개신교는 한편으로는 KNCC, 크리스찬아카데미 같은 교회연합기구와 강원룡 목사(경동교회),
80년대 중반 이후로는 교단이나 대사회적 활동보다는 개교회의 성장을 통해 주목 받은 목회자군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옥한흠, 하용조,
나는 2007년에 지난 20년간 한국의 개신교를 형성해온 랜드마크가 우리의 눈앞에서 와해되는 것을 목격한 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9.11사태로 사망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쌍둥이 빌딩의 붕괴가 미국사람들의 뇌리에 잊혀지지 않고 각인시킨 것은 자신들의 삶의 일부이자 세상을 파악하는 주요한 랜드마크의 한 축이 사라질 때 어떤 충격이 엄습하며, 어떤 후폭풍이 다가오는지를 보게 한 것이었다. 미국 사람들에게 9.11 이후는 결코 그 이전과 같을 수 없다. 대통령 취임 후 남대문이 불에 탔을 때 한국사람들도 비슷한 정서적 충격을 경험했다. 그때 솟구친 왠지 모를 불안감과 분노와 서글픔은 평소에 없던 문화재보호 정신이 어디선가 갑자기 발동한 때문이 아니다. 자신들의 삶의 일부분이 붕괴되는 경험을 그때 한 것이다.
2007년에 우리가 겪은 여러 사건들은 제각각 단독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집합적이고, 인과적인 것이다. 이런 사건의 복합적인 발생과 혼합과 상호작용은 80년대 중반부터 2007년까지 한국 개신교를 형성해 온 랜드마크들과 깊은 연관이 있다. 지난 20년간 개신교는 숫적인 증가는 폭발적으로 경험하지 못했을 수 있지만, 완연히 사회 주류세력이 되는 경험을 했다. 전국 어디보다 서울 강남권의 개신교 인구는 압도적이다. 개신교인 국회의원들을 모으면 최대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도 있다. 힘과 영향력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이다. MBC건, KBS건, 심지어는 SBS조차도 마음에 안 드는 프로그램 내보내면 한 2000명 모아서 본때를 보여줄 수 있다. 사학법 같은 나쁜 법을 통과시키려고 하면 수 만명 모아서 시청광장에서 위력시위를 벌일 수 있다. 87년 이전의 개신교는 그런 사안에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법이 없었다. 그때 개신교의 힘은 머릿수에 있지 않았고, 도덕성에 있었다. 권력에게 말을 했지, 몸을 쓰지는 않았다.
지금 한국에 10,000명 이상 교회가 수십 개가 된다고 한다. 전체 개신교 성장세는 둔화가 되었어도 대형교회는 계속 생겨난다. 교회의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그런 대형교회들에서 종종 벌어지는 현상이 교회 세습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줄기차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교회성장의 일세대들은 교회세습으로 자신들의 목에 스스로 올가미를 매고 있다. 자신들이 일군 것을 자신들이 붕괴시키고 퇴장하려는 듯싶다. 고위층에 개신교인이 많다 보니, 그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꼭 ‘성경을 두고 맹세한다거나’, ‘내가 집사인데… 나는 장로인데…. 권사인데’하는 얘기들이 등장한다. 개신교인들의 말은 신뢰성을 잃었다. 그 20년 사이에 우리가 자랑하던 기독교 기업은 노동탄압 기업이 되어 있고, 아프간에서 선교를 열심히 한 대가로 우리는 인격말살적 욕을 얻어먹었다.
문제는 이런 사건과 사고들이 언젠가부터 개신교인들이 실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소신과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해서 성취한 결과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공 그 자체가 문제이다. 그러므로, 더 열심히, 더 세게 노력하자는 결의를 하면 할 수록 일을 더 망가뜨린다. 대안은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선교도 하지 말고, 전도도 하지 말고, 교회성장도 하지 말자고? 그렇다. 우리는 매우 난처하지만 그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패러다임을 다 바꾸라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나는 적어도 두 가지 점을 짚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교계중심의 패러다임은 신속히 폐기되어야 한다. 교계(church society) 패러다임은 빨리 기독교 사회(Christian society)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교계란 한국 개신교를 교회를 중심으로, 그래서 결국은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파악하는 패러다임이다. 온갖 언론매체들과 사회적 논의가 이 함정에 빠져있다. 예를 들어, 사학법이 문제이면 한기총과 KNCC에 입장을 물어보고 ‘한국 개신교는 이런 입장이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교단이나 교계연합기구에서 ‘우리 개신교계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성명 발표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목회자에 의한 과잉대표(over-representation)가 발생한다. 현재와 같은 개교회식 구조에서 성도들은 자신들이 임명한 바 없는 소위 ‘교계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자신들의 대표성을 빙자하여 자신들이 동의하지 않는 입장을 밝히는 일을 일상적으로 당하고 있다. 이 구조는 속히 폐기되어야 한다. 이들은 위임 받지 않은 권력을 과잉행사하고 있다.
사학법의 예를 들어보자. 교계연합기구는 한기총, NCC를 막론하고 사학법 반대였다. 주요 교단 지도자들은 희대의 삭발시위를 펼쳤다. 그러나, 이때 기독교사 모임이었던 ‘좋은교사운동’은 사학법 찬성입장을 조심스레 밝혔다. 교계 분위기는 부정적이었지만, 사학법은 (기독) 교사입장에서는 받을만하다고 본 것이다. 더 나아가 성도들의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을 학부모들은 어떤 의견이었을까? 그 당시 갓피플에서 했던 설문은 목회자들은 대체로 당시의 사회적 현안에 보수적 의견인데 반해 성도들은 일반인들과 큰 편차가 없는 것으로 나왔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소위 성도들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자칭 타칭 ‘교계 지도자’에 의해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게 하는 행위는 명의도용 혹은 편취에 가깝다. 대안은 ‘기독교 사회(Christian society)’ 패러다임이다. 사학법이 문제가 된다면, 개신교 내의 사학 운영자, 교사, 학부모 그룹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들어서 ‘한국 개신교인들은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이 이렇다’고 언론이 써야 옳다. 그것이 한 사안에 담긴 복합적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게 하고, 한국 개신교를 하나의 색깔로 칠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기독교 사회’ 패러다임은 목회자들을 무시하거나 권위를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 역시 과잉대표의 피해자이다. 자신이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분야도 개신교를 대표해서 발언하도록 종용받는 것은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목회자들은 목회전문가로서 발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과잉대표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기독교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영역과 그룹의 하나로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건강하다.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와 관심자 그룹으로 구성된 ‘기독교 사회’란 그림이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적 대안이라고 나는 믿는다. 최근 어떤 토론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는데, 이 참에 온라인으로 ‘기독교 사회’를 구성하면 어떠냐는 제안까지 나왔다. 명실상부한 ‘한국기독교총연합’을 온라인으로 구성하자는 것이다.
교계 패러다임이 강고하게 유지되다 보니 여론을 왜곡하려는 시도도 그쪽으로 집중되게 마련이다. 한기총의 시초가 보수 교계를 통한 친정부적 여론형성에 둔 것이었다는 박철언 전 의원의 주장이 몇 년 전 소개된 적이 있다. 지금은 정부의 노골적 개입은 없을 것으로 믿지만, 나는 최근 몇 년간 왜 개신교계가 극우파들의 선동에 가장 취약하였는지 궁금했다. 물론 개신교 주류가 근대 이후 ‘친미개화반공’ 노선에 뿌리를 두고 있었던 것은 굳이 부인할 필요도 없고, 그건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그 노선이 해야 하고, 할 수 있었던 역할이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은 좀 심했다. 한국 개신교를 ‘애국기독교’로 명명해 준 <월간 조선>같은 곳은 한국 개신교 주요 목회자에게 인심 좋게 지면을 허락해주고 특별 인터뷰를 하면서 수년간 집요하게 파고든 바 있다. 그 노력의 결실로 지금 목사님들의 주일설교에서 시국 관련 언급은 언제나 조갑제씨의 논리와 근거를 동어반복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최근 촛불시위에서 ‘좌파 배후론’이 우파진영에서 등장하자마자 여러 교회의 강단에서 같은 논리와 근거를 토대로 지나칠 정도의 강경한 설교들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런 데에서 연유한다.
나는 개신교가 우파의 동원전략에 전적으로 함몰되었다고 판단한다. 물론 이것은 일방적 선동은 아니다. 권력에 대한 개신교권 내부의 갈구가 있었고, 그 벌어진 틈에 극우파들의 논리와 선동이 파고들 여지가 생긴 것이다. 더욱이 미국에서 네오콘(neo-con) 세력과 손 잡은 기독교우파(Christian Right)들의 캠페인을 통해 조지 W 부시가 2번에 걸쳐 대통령직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서 우파와 (보수) 개신교 사이에는 손에 잡히는 벤치마킹 대상까지 생긴 셈이다. 2007년 대선은 바로 그런 우파-개신교 정치연합의 한국판 재현이었다.
둘째는 기독교를 정서중심 종교(feel good religion)에서 지성중심 신앙(intellectual faith)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나는 대학시절부터 예배, 찬양, 치유 등의 ‘정서 중심’적 신앙을 경험해 오면서 많은 유익을 누렸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그것이 복음의 전부는 아니며 하나님의 새로운 국면을 발견하고, 이를 설명하는 새로운 언어를 만나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누려왔다. 나는 진리는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부터 우리를 향해 달려온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보자. SBS ‘신의 길, 인간의 길’에 개신교계 반발이 거세다고 한다. 그런데, 반대 측에는 내용이 없다. 반감이 있을 뿐이다. 반대를 격하게 하는 사람일수록 논리는 없고, 감정만 부풀려져 있다. 이런 사안은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서로의 지식과 논리를 논박하는 작업이 필요한 일이지, ‘어떻게 이런 내용을 방송하다니?’하면서 울그락 불그락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한국 개신교는 언제나 정확하게 따지고, 상대방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토론을 해야 할 자리에 일방적 신앙간증이나 저주를 퍼붓고 마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그간의 신앙생활 양태와 긴밀하게 연관이 있다. 아침에 ‘경건의 시간(QT)’을 하면서는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찾았고, 일대일 제자양육을 하면서는 ‘양과 목자의 관계’로 절대신뢰와 절대순종을 익혔다. ‘찬양예배’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면서 순간 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내적 치유’를 경험한다. 이런 경험들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것이라 남에게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다. 단지 ‘너도 느껴봐’ 외에는 대안이 없다. 이것이 동질적 집단에서는 강력한 내부의 공감대를 구축하지만, 그 바깥으로 단 한발자국만 걸어나가면 ‘소통 불능’이 된다.
과거에는 ‘무신론자’라고 하면 ‘신에 대한 관념이 없는 사람’ 정도였으나, 요즘 한국에는 ‘무신론 신념을 가진 자’로 그 의미가 재규정되어야 한다. 전도의 경우에도, 예전에는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요구하면서 복음을 소개하는 식으로 했다면, 이제 그들이 던지는 까다로운 질문들을 통과하지 않으면 대화가 진전될 수 없는 상황, 즉 공격과 수비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질문하고, 우리가 대답해야 하는 상황인데, 우리가 할 말은 ‘그냥 느껴봐’뿐이라면 정상적인 대화는 진행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원래 복음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경험하고, 겪어봐야 아는 것이라고. 그러나,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이해하는 틀이 지나치게 제한적이기에 우리의 언어가 제한적인 것이지, 기독교가 지적인 논의나 설명력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지레 포기할 일이 아니란 것이다. 나는 지금이 기독교 이해를 전면적으로 재고(re-thinking)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해 온 모든 것들을 의문시하고, 그간의 토대를 다시 한번 재검토하면서 앞으로 20년을 갈 랜드마크를 구상해야 한다. 랜드마크가 붕괴되는데 인테리어에 신경 쓰는 것은 부질없는 짓에 불과하다.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기획자. 싸이월드에 <복음주의>(http://evangelical.cyworld.com)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