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같은 교회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을 통해서 본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거룩하시고 사랑과 자비가 크시고 그의 속성과 성품은 죄인들을 향한 인내와 기다림속에서 인격적인 분이시나 그를 따르는 교회의 무리들은 어찌나 다른지...그 모습들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것이 사실이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며 한계가 있는 피조물이기에, 더욱 변화되고 거룩하려고 부단히 노력할 뿐이며, 일생을 다 바쳐 그를 닮아가려고 한다고 해도 완전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부족하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인간일지라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끝까지 관심과 사랑을 베푸시고 긍휼로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버지로서의 부성애는 어느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열심이시다.
인간의 열심과 자의적인 노력이 결과를 낳은 것이 아니라, 하는 척 하는 인간의 진심의 노력을 보시고 100%의 기적과 보호와 인도하심으로 구원과 자유를 주시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이상한 족속들이라고 여기는 것이 합당하다. 그들의 하나님이 인간처럼 변덕과 불결함과 거짓과 배신을 하지 않는 완전 거룩한 존재이며 선택한 사람들을 끝까지 책임지시는 보통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21세기 젊은 세대들의 교회는 좀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 달라져야하고, 더욱 더 변화되고, 새로워 져야한다. 대충 취미로, 자기만족으로 그를 신앙하려는 태도를 돌이켜서 진심과 정직으로 그 앞에 알몸처럼 자신을 드러내어놓때, 그들의 수치를 가려주시고 진정한 보호자로 인도해가신다.
교회다닌다고 다 온전한 사람이 아니며, 여전히 그들은 회개할 줄 아는 죄인들이기에 가능성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자연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자신이 주체가 되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자신 아래에 두고 신적 권위같은 판단력과 지각으로 관리하여 가려는 태도가 얼마나 어리석으며, 그렇게 될 수도 없음에도 고집을 부리게 되는 것을 목도하게된다. 우주와 인간이 스스로 발생되었다고 믿는것은 미신이다. 누군가의 손에서 질서와 균형있게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상식선에서도 아는 일이지만, 그들의 자존심과 그들을 지배하고 압박하는 어떤 힘에의해 조정되어지는 것이기도하다.
21세기 젊은 세대교회는 이제 더 깊은 각성과 참회와 죽음보다 깊고 큰 사랑의 힘을 담아야만 신앙이 가능해지는 세대의 교회이다. 이미 한국의 기독교 교회들은 이 일을 위해 노력을 포기한 듯 하다. 숫자 늘리기에 바쁘고, 진정한 삶의 변화와 새로운 목적으로 향하는 영혼의 태도에는 별 관심이 없나보다. 예수님이 숫자놀음했는가? 한 영혼이 천하보다 더 가치가 있음을 역설하셨음에도, 이미 교회는 그 정신을 잃은지 오래이다. 영적 지도자들인 목사와 또한 교인들의 삶의 가치와 세계관이 새로워져야한다. 이 세상에 속한 것으로는 전혀 만족할 수 없음을 알아야 새로운 길이 보인다. 아직도 교회와 세상은 이 세상에 속한 돈과 명예와 섹스와 권력을 옷입으려고 한다. 철저하게 부인하고 버리지 않으면 진정한 구원과 생명이 없는 것임을 알때, 소돔 고모라의 롯의 부인과도 같은 소금기둥이 되는 일이 없도록 죄를 말씀의 송곳으로 파내고 그곳에 마음의 십자가를 크게 세우고, 십자가 그늘에서 목숨보다 귀한 사명과 본질을 추구해가는 새 공동체게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낮고 천하고 약한자들을 위해, 또한 창기와 죄인들을 위해 이땅위에 오셨다. 스스로 높이는 자들은
그와 친구가 될 수 없다. 낮은 곳에 머믈러 있으며,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있는 자들을 찾아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바리새인처럼 높아진 교회들때문에 그는 계속 십자가에 못박히고 고통을 절규하고 계신것이다. 예수가 없는 예수교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제 개신교회는 탕자처럼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야한다. 예수가 계신 예수교회를 회복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