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이야기

창세기 6장

Bliss Yeo 2009. 12. 18. 14:53

성 경: [창6:1]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인류의 타락]

? 번성하기 시작할 때 -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1:28)는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선 아담의 범죄 이후 모두가 죽을 운명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 기간 동안 인간에게 장수(長壽)를 허용하사 많은 자녀를 갖게 하셨다(5:6-27 강해).

? 딸들(*, 바트) - '벤'(*, 아들)의 여성형으로 문자 그대로 '딸'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람들에게서 딸들이 나다'란 말은 남자에 비해 여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는 뜻이 아니라 그녀들로 인해 인류에 어떤 위기가 도래케 되었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성 경: [창6:2]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인류의 타락]

? 하나님의 아들들 -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자들인지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1)지체 높은 집안의 아들들이라는 유대 랍비들(Onkelos, Symmachus, Aben Ezra)의 견해 (2)성경의 일반적 용례(욥1:6; 2:1; 38:7; 단3:25)에 따른 '천사'란 견해(Lxx, Josephus, Tertullian, Luther, Baumgarten, Kurtz, Alford) (3)셋 계통의 경건한 자녀들이란 견해(Augustin, Calvin, Lange, Keil, Wordsworth). 이 중 (1)은 히브리어의 일반적 용례로 볼 때 비성경적이며 (2)는 본문의 전후 문맥 관계상 상치된다. 그리고 구속사적으로 보더라도 이들을 천사들로 볼 경우, 향후 전개되는 타락사는 인간의 타락사가 아니라 천사의 타락사가 된다는 견지에서도 이 견해는 합당치 못하다. 따라서 세번째 견해가 가장 유력시되는데 이는 신학적 의미와도 부합되며 또한 이와 유사한 표현이 경건한 신앙인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 성경 관례(신 32:5; 시 73:15;80:17; 호1:10)에 의해서도 지지를 받는다.

? 사람의 딸들 -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에 대해서도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지체 낮은 천민 계층의 딸들 (2)인간의 딸들 (3)가인 계통의 불경건한 자녀들. 이 중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말과 자연스레 대응을 이루는 견해는 역시 세번째 것이다.

? 아름다움(*, 토브) - '좋은', '선한', '아름다운' 등의 뜻을 지닌 단어로 성격상에 있어서의 사랑스러운 면을 뜻할 수도 있으나 여기선 외견상의 '미모'를 의미한다(24:16; 단 1:15).

? 보고(*, 라아) - 단순히 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세히 주목하거나 인지하는 것을 의미한다(왕상 20:7; 시 31:7).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신앙과 선한 행실, 아름다운 마음씨 등과 같은 응당 주의를 기울여야 할 내면적 아름다움은 외면한 채 인간의 외모에만 관심을 집중하였다는 것은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곧 하나님을 아는 자든 모르는 자든 간에 당시의 모든 사람이 전도된 가치관을 갖고 있었음을 증거해 주는데 이처럼 온 사회가 타락 일변도로 흘러갈 때 그 결국은 필연적으로 패망일 수밖에 없다(7절).

? 좋아하는 - '선택하다', '지정하다'는 뜻.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들의 안목의 정욕을 좇아 고르는 것을 의미한다(고후 10:7).

? 아내(*, 나쉼) - '이솨'(2:24; 3:20; 4:17)와 교체하여 쓸 수 있는 단어로 '아내' '부인'(4:19; 삿 8:30)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여인'(신 20:14; 느 8:3)을 뜻하기도 한다.

? 삼는지라(*, 라카흐) - 4:19에서는 '취하였으니'로 번역되었다. 일반적으로 결혼하는 것을 뜻하는 관용적 표현이다(출 6:25; 민 12:1).

성 경: [창6:3]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인류의 타락]

? 나의 신이...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 신(*, 루아흐)은 문자적으로 '바람'(8:1), '호흡'(7:22), 상징적으로 '마음'(26:35), '정신'(삿 15:19), '영감'(왕하2:9)을 의미한다. 그런데 때로는 '신'(34:9), '영'(왕상22:21)을 뜻하기도 하므로 혹자는 '나의 신'을 1:2에 나오는 '하나님의 신'(성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다. 여기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생명'을 뜻하는 바 본절은 인간 타락이 절정에 달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홍수 심판으로 그 인간들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겠다는 의미이다(17절).

?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 그 시대의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 주고 있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여기서의 육체(*, 바사르)는 헬라어 '사륵스'와 같은 의미로 단순한 '몸'(15:4; 고전 6:15)이 아니라 죄의 영향으로 사악하게 된 '타락한 육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롬 8:6).

?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 당시 모든 사람들의 수명이 일백 이십년으로 한정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 기간이 지난 후 대홍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적 경고이다. 따라서 이 기한은 당시의 타락한 인간들에게 주어진 심판의 유보 기간이자 동시에 그들이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은혜의 기간이었던 것이다(벧후 3:9).

성 경: [창6:4]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인류의 타락]

? 네피림(*, 네피림) - '떨어지다'(fall)란 뜻을 지닌 기본 동사 '나팔'(*)에서 파생된 말이다. 따라서 어떤 학자들(Hoffman, Delitzsch)은 이러한 원어의 뜻에서 유추 해석하여 '네피림'을 하늘로부터 떨어진 타락한 천사들의 후손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튜크(Tuch)나 크노벧(Knobel) 같은 학자들은 이들을 '괴물'(monster) 또는 '신동'(神童)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70인역(LXX)은 네피림을 '장부'(丈夫)란 뜻의 '기간테스'(*)로 번역했고, 벌겟역(Vulgate)과 KJV도 70인역을 따라 '용사', '거인'이란 뜻의 'giant'로 번역하여 네피림을 타락한 천사나 혹은 천사와 인간 사이의 혼혈족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그 신체적 특성상 장부가 거인으로 불릴 수 있는 일단의 사람 혹은 족속을 가리키는말로 보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신체적 특징은 아울러 도덕적 특성까지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대체로 훼방꾼, 무법자, 난폭꾼, 가해자등의 속성을 가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종합하면 노아 당시의 '네피림'이란 거대한 신체를 지닌 '폭꾼들' 내지는 '침략자들' 정도의 뜻으로 이해함이 좋을 듯하다(Luther, Calvin, Keil, Murphy). 한편 이 용어는 출애굽이후 광야 여행 시대인 민 13:33에서 다시 나타나는데, 이때 이 용어가 사용된 것은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이 그 땅 족속들의 모습이 마치 홍수 전 노아 시대의 네피림같이 장대하고 난폭하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말하기 위한 것 뿐이었다.

? 그 후에도 -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을 예고하신 이후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이전의 타락한 행실을 담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 취하여(*, 야보우) - '보'(얻다, 침투하다, 달려가다)의 미완료형으로 '하

나님의 아들들'이 멸망의 경고를 들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맞아들인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보'(*)는 남녀간의 혼인을 뜻하는 완곡한 말이다(삼하 16:22; 대상2:21).

? 용사 - 문자적 뜻은 '강한 자', '힘센 자', '우두머리' 당시 이들은 세상을 지배하던 힘세고 강한 영웅이었거나 아니면 많은 하수인을 거느렸던 압제자였음을 뜻한다. 즉 이들은 전쟁과 약탈, 방종과 사치 등이 난무하던 홍수 이전 시대 그 타락의 주역들이었던 것이다.

? 고대에(*, 올람) - 헬라어 '아이온'(*)과 같이 '오래 전', '영원'(눅1: 70; 고전2:7)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3절: 17:7: 왕하 5:27). 이는 저자(모세)의 입장에서 볼 때 본절에 기술된 의미를 지닌다.

? 유명한(*, 쉠) - 좋은 의미에서는 명예나 명성을 얻는 것을 뜻하지만(신 26;19;단9:6) 나쁜 의미에서는 본절과 같이 악명(惡名)을 날리는 것을 뜻한다.

성 경: [창6:5]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작정된 인류 멸망]

? 죄악(*, 라) - '라아'(깨뜨리다, 상하게 하다, 쓸모없게 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 질서를 어기거나 그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인간의 모든 악한 행위를 의미한다(39:9; 사47:10).

? 관영함 - 원어 '라바'(*)는 '크다', '충분하다', '너무 많다'는 뜻(대상23:17; 시 130:7). 이는 당시 사람들의 죄악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깊이 뿌리를 박은 지속적인 것이었음을 나타낸다.

?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 타락한 이후 인류가 지니게 된 보편적 죄성(罪性)을 증거하고 있는 구절이다. 그러므로 칼빈(J. Calvin)은 이에 근거하여 '타락한 인간은 근본적으로 그 본성이 부패하고 죄에 오염되었으므로 스스로는 아무런 영적 선도 행할 수 없다'는 '인간의 전적 타락설'(Total Depravity)을 주장하였다(롬 3:9-18). 한편 여기서 마음(*, 레브)은 갖가지 감정이 자리잡고 있는 좌소(座所)를 의미한다(17:17). 그리고 생각(*, 마하솨바)은 어떠한 문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골똘히 연구하는 것을 의미한다(삼하 14:14; 잠16:3; 렘18:12). 또한 계획(*, 에체르)은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의도적으로 기획하는 것을 뜻하며(8:21; 신 31:21) 악하다는 것은 앞에 나온 죄악과 같은 의미를 지닌 동일 단어이다.

? 보시고(*, 야르) - '라아'(바라보다, 주목하다, 발견하다)의 미완료형으로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소위(所爲)와 그 생각하는 바가 어떠한 것인지를 오랜 기간에 걸쳐 계속적으로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셨음을 의미한다.

성 경: [창6:6]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작정된 인류 멸망]

? 지으셨음을(*, 아사) - 여기에 '바라'(창조하다) 대신(7절) '아사'가 쓰인

것은 자신이 최고의 애정을 기울여 만든 인간을 전멸시켜야 하는데 대한 하나님의 극한 아픔을 강조키 위함이다(5:1).

? 한탄하사(*, 나함) - '후회하다'는 뜻과 함께 '위로하다'는 뜻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5:29). 그런데 이는 문자 그대로 하나님께서도 당신이 하신 일에 대해 후회하실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선 인간이 아닌 전지 전능한 지존자(至尊者)로서 결코 변개치 않으시기 때문이다(삼상 15:29). 다만 이는 인간의 비극적 타락에 대해 갖으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인간의 측면에서 묘사한 말일 뿐이다(1-7절 강해).

? 마음에 근심하시고 - 직역하면 '그의 마음에 새기셨다'. 즉 인간의 비극적인 타락 상황을 보신 하나님께선 그것이 마음 깊숙이 새겨져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극심한 아픔으로 느끼셨다는 뜻이다(시 78:40). 이상에서 우리는 범죄한 인간에 대해서조차 사랑을 쉽게 단념치 않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임을 알 수 있는데(눅 15:11-24). 이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할 마땅한 태도는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것을 준행함으로 더 이상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 않는 것이다(롬12:2).

성 경: [창6:7]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작정된 인류 멸망]

? 나의 창조한 사람 - 2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가 아니었음을 반증해 주고 있는 구절이다. 만일 그들이 '사람의 딸들'과 함께 방종을 일삼는 타락한 천사였다면 하나님께선 본절에서 '내가 창조한 사람과 천사를 멸절시키리라'는 심판을 선고하셨을 것이다(3:14).

? 쓸어 버리되(*, 마하) - 문자적 뜻은 '씻다'(왕하 21:13). '지워버리다'(출32:32). '닦아내다'. 하나님께서 물로서 깨끗이 쓸어 세상을 심판하실 것임을 시사해 주며 또한 그 심판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파멸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출17:14).

?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 3:17에 이어 다시 한번 인간의 죄책(罪責)과 그 영향이 자연계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처럼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자연계에까지 확산된 점은 (1)자연계에 대한 인간의 주권성과 (2)인간에 대한 자연계의 예속성을 보여 준다(3:14-21 강해). 한편 여기서 육축(* 베헤마)은 본래 소나 말처럼 몸집이 큰 네 발 짐승을 가리키나 본절에서 모든 가축을 뜻하는 집합적 의미로 쓰였다(1:24; 7:14). 그리고 기는 것(*, 레메스)은 '라마스'(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다)에서 파생된 말로 곧 파충류(1:24; 왕상 4:33)와 곤충(합1:14)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새(*, 오프)는 날개가 있어 날아다닐 수 있는 모든 생물을 의미하나(레 11:21) 성경에선 대개 '새'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1:20; 호 4:3).

성 경: [창6:8]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당대의 의인 노아]

? 여호와께 - 직역하면 '여호와의 눈에', 이는 노아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게 된 까닭이 그분 보시기에 기뻐하실 만한 점이 있었기 때문임을 시사해 준다(9절).

? 은혜(*, 헨) - '하난'(불쌍히 여기다, 아랫사람에게 호의를 베풀다)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시 4:3)와 고생하는 자(시 6:2)를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사랑, 은총, 자비등을 의미한다(30:27; 출 33:12). 그렇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본성이 곧 사랑과 긍휼, 공의임을 뜻하는 '헤세드'(렘 9:24)와는 달리 먼저 은혜를 받는 자가 경건하며 의로운 자여야 한다는 조건을 필요로 하는 단어이다(9절). 여기서 우리는, 비록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이 없다면 구원 얻을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나(롬 3: 10-12) 그 같은 사랑에 대한 인간측의 적극적인 반응과 노력도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분명 확인할 수 있다(계 3:20).

성 경: [창6:9]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당대의 의인 노아]

?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 이 말은 이후 전개될 이야기는 인류 전체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노아를 중심하여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속사'에 초점을 맞춘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 의인(*, 이쉬 차디크) - 여기서 '차디크'(의로운, 공정한)는 '차닥'(곧다, 올바르게 행하다)에서 온 말로 전혀 무죄하거나 흠없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시대적 상황에서 그래도 경건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전 7:20). 그러므로 하나님께선 노아의 이 같은 노력을 높이 평가하사 '의'(義)로 인정해 주신 것이다.

? 당세에 - '그의 동시대 사람들 가운데'라는 뜻, 이는 노아가 의롭고 완전한 자라는 것이 절대적인 개념에서가 아니라 상대적 개념에서 그렇다는 뜻임을 드러내 준다. 이처럼 성도도 본시 불신자와 다름없는 죄된 성품을 지닌 자요 육적 죽음이 예정된 자이긴 하나 그래도 세상과는 구별된 존재로 경건한 삶을 살아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고후 2:15).

? 완전한 자(*, 이쉬 타밈) - '타밈'(온전한, 성실한)은 '타맘'(완성하다, 완수하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이 역시 '차디크'와 마찬가지로 모든 행위가 한 절 티도 없이 완전하다거나 전햐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과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는 자가 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잠 28:18).

?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 노아가 '의인', '완전한 자'로 불림 받을 수 있었던 이유이다. 그는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한 가운데서도(11절) 그분을 경외하며 그의 뜻을 따라 그의 말씀과 더불어 동행하는 곧고 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토록 분에 넘치는 호칭을 얻을 수 있었다(5:22). 그런데 하나님께선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내가 온전한 것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고 명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딤전 4:12)등.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우리의 삶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야 할 것이다(딤전 4:15).

성 경: [창6:10]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당대의 의인 노아]

5:32과 거의 동일 구절이긴 하나 그 진술 목적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즉 5:32은 구속사의 주역이 될 새로운 족속의 시조(始祖)출현을 암시하고 있으나 본절은 노아의 신앙과 경건성이 그의 아들에게도 영향 미쳤을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는 그의 아들 셈의 계보에서 위대한 신앙의 인물 아브라함이 출현한 것에 의해 뒷받침된다(11:27).

성 경: [창6:11]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당대의 의인 노아]

? 때에 - 원문에는 없는 말이다. 노아당대를 가리키는 말로 당시 노아와 같은 이가 있었긴 하나 전체 시대 풍조는 부패하기 짝이 없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개역 성경 편찬자가 부기(附記)한 듯하다.

? 온 땅(*, 하아레츠) - 직역하면 '그 땅', 당시 지상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뜻하는 은유적 표현(2:1).

? 강포 - 원어 '하마스'(*)는 '학대하다', '해치다', '탈취하다'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포악', '흉악'을 의미한다(삿 9:24; 겔 7:11). 즉 강도, 살인, 약탈, 강간 등과 같은 악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연 질서를 파괴하는 것을 뜻하는데 곧 그러한 온갖 무법 현상이 노아 시대에 횡행하고 있었음을 증거해 준다.

? 충만한지라(*, 티말레) - '말레'(가득하다, 채우다)의 완료형으로 더 이상 채울 자리가 없어 밖으로 흘러 넘칠 정도로 꽉 찬 것을 의미한다(수 3:15). 이는 공의의 하나님께서 한시도 심판을 지체하실 수 없을 만큼 시대의 타락상이 무르익었음을 보여 준다.

성 경: [창6:12]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당대의 의인 노아]

? 하나님이 보신즉 - 하나님은 인간과 같은 육체를 지니지 않은 영이시다(요 4:24). 그러나 성경은 우주와 인간을 섭리하며, 조금도 쉬지 않고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요5:17)을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이처럼 의인적 표현을 많이 쓴다(출 15:17; 신11:12; 왕상 8:42; 시 8:6). 그 가운데 본절과 같은 표현은 (1)하나님이 인간의 외면과 더불어 그 중심을 꿰뚫어 보시므로 인간은 그 앞에서 결코 변명하거나 거역할 수 없다는 점과 (2)그분의 판단은 정확하며 한 치의 오류가 없다는 점을 강조해준다.

? 행위(*, 데레크) - '다라크'(걷다, 밟다)에서 파생된 말로 습관적으로 굳어진 '행동 양식'을 의미한다(겔 20:30). 이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습속이 타락 일변도로 고정되어 있어 갱생시키기 매우 힘든 상태였음을 나타내 준다.

성 경: [창6:13]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노아의 방주]

? 노아에게 이르시되 - 후일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알려 주시는 것처럼(18:17) 하나님이 노아에게 장차 있을 대홍수 심판을 미리 일러 주시는 부분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계획과 비밀을 계시하여 주시는데(시 25:14) 이는 (1)환란 가운데서 그를 구원하시기 위함일 뿐 아니라(요 17:12) (2)그로 하여금 세상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게 하여 악인이라도 그 경고를 듣고서 돌이켜 회개하고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겔 33:11).

? 끝날 - 원어 '케츠'(*)는 원래 어떤 물건이나 장소의 '테두리', '가장자리'를 의미하나 여기서는 시간에 있어서의 끝, 즉 '멸망의 때'를 가리킨다(욥 6:11; 단11:40).

? 내 앞에 이르렀으니 - 어떤 사건이나 때가 임박했음을 뜻하는 히브리인들의 관용적 표현(삼하 22:6; 시 18:5; 요 7:6).

? 멸하리라(*, 솨핫) - 11, 12절에서는 '패괴하다'로 번역된 단어. 이는 하나님 앞에서 타락하거나 부패한 자의 결국은 멸망일 수 밖에 없음을 교훈해 준다.

성 경: [창6:14]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노아의 방주]

? 잣나무(*, 고페르) - 선박이나 성문, 관 등과 같이 강한 내구성이 요구되는 구조물을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되는 침엽수류의 수지성(樹脂性)나무, '고페르'란 단어는 성경에서는 이곳밖에 나오지 않는다.

? 방주 - 홍수 심판 가운데서도 노아와 그 가정을 구원하기 위해 예비된 방주는 그 기원과 기능에 있어 신약 시대 '교회'에 자주 비유된다. 즉, 둘다 그 기원에 있어 '신적'이며, 그 기능에 있어 '구원'이기 때문이다(11-22절 강해).

? 간들을 막고 - '여러 칸의 방들을 만들라'는 뜻. 둥우리 같은 작은 방들을 말하는데 이러한 방은 노아의 식구들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18절) 각종 짐승들을 그 종류대로 구분, 유치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였을 것이다(19, 20절).

성 경: [창6:15]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노아의 방주]

1규빗을 45.6cm로 계산할 때 방주의 규모는 길이 약 137cm, 배수량 약 20, 000t이 된다(11-22절 강해). 따라서 한때 세계 최고의 항공모함으로 그 위용을 자랑하던 '엔터프라이즈호'가 길이 317cm, 배수량 75, 700t이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즉 당시 선박 건조술이 발달치 못하였고 동원 인력수도 8명(18절)에 불과하였던 상황에서 그토록 큰 방주를 어떻게 건조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1)배의 구조가 극히 단순하였다는 점 (2)선박 건조 기간이 120년이었다는 점, (3절) (3)고대에는 인근에서 목재를 충분히 구할 수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보면 그 같은 의문은 해소될 수 있다.

성 경: [창6:16]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노아의 방주]

? 창(*, 초하르) - 원뜻은 '빛'이나 여기서는 채광과 통풍을 위한 '창문'을 의미한다. 방주에는 이러한 창이 꼭대기에서부터 45.6cm되는 지점에 빙둘러가면서 여러 개 설치되어 있었던 것 같다.

?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 이처럼 갑판을 삼층으로 한 까닭은 적재 면적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방주에는 노아의 가족 및 각종 짐승들 외에도 그들이 1년여간 사용해야 할(8:14) 식량과 생활용품을 적재하여야 했기 때문이다(21절). 한편 체적(體積)에 따른 용적량 산출법에 의거하면 방주의 최대 선적량은 약 14, 000t에 달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성 경: [창6:17]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노아의 방주]

? 홍수(*, 마불마임) - 직역하면 '물의 범람'. 여기서 '마불'(쇄도, 범람)은 앗시리아어 '나발루'(파괴하다, 멸절시키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홍수의 엄청난 위력을 강조해 준다.

? 무릇 생명의 기식있는 육체 - 인간뿐 아니라 땅 위에 사는 모든 생물을 가리킨다. 여기서 물고기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까닭은 분명치 않으나 죄로 오염된 땅(3:17)에 거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인 듯하다.

성 경: [창6:18]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노아의 방주]

? 언약(*, 베리트) - '바라'(자르다, 끊다, 새기다)에서 파생된 말로 위반시에는 죽음 및 관계 단절이 뒤따르는 하나님과 인간간의 엄정한 약속, 계약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선 일찍이 아담과도 이러한 언약을 맺으셨는데(2:16, 17; 3:15). 구체적으로 이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여기서부터이다. 이외에도 성경에는 아브라함(15:18;17:9-14;22:15). 이삭(26:24), 야곱(28:13, 14)등과 맺은 언약이 나오는데 이것들은 모두 구속사에 있어서 최고의 정점인 예수 그리스도 및 그의 구속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성 경: [창6:19,20]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노아의 방주]

하나님께서 노아 개인과 언약을 맺으셨으나 그로 인해 가족과 동물까지도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대표 원리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즉 아담의 타락으로 전인류와 피조계가 함께 저주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3:17) 노아의 의로움이 동물에게까지 그 영향력을 미쳤던 것이다. 이러한 대표 원리는 그리스도에게서 그 절정을 이루었는데 곧 그분 한분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가 그 공로를 힘입어 속죄함을 받은 것이다(롬 5:17-19).

성 경: [창6:21,22]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노아의 방주]

? 다 준행하였더라 - 120년에 걸친 노아의 인내와 믿음과 소망이 응축되어 있는 구절이다. 전력을 기울여 방주를 짓는 그 오랜기간 동안 노아는 당대 사람들에게 갖은 조롱과 희롱을 당하고 또한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하신 것을 다 준행하여(약 2:17), 그 결과 자신과 가족, 짐승들을 구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각종 불법과 불경건이 난무하는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역시 절실하게 요구되는 자세이다(눅 21:19; 약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