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이야기

출애굽기10장

Bliss Yeo 2009. 12. 18. 15:23

성 경: [출10:1]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메뚜기 재앙의 예고]

? 완강케 함 - 바로를 비롯한 애굽의 권력자들이 7가지 재앙을 당하고도 계속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던 사실을 꼬집는 말이다. 그런데 이처럼 미련할 정도로 바로 일당들이 자신들의 아집을 꺾지 않은 근본 동기에는 하나님('내가')의 의지가 개입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즉 하나님은 교만하여 돌이킬 줄 모르는 그들을 유기(遺棄)하시고(롬 1 : 28). 자신들에게 생래적으로 주어진 자유 의지(2 : 16, 17)를 악용하여 자신의 오만한 거부 행사를 거듭하는 그들에게 영영히 회복할 수 없는 멸망의 길로 치닫도록 하셨던 것이다(9 : 12).

? 표징(*, 오트). '신호', '깃발', '횃불', '증거', '표시' 등의 뜻을 지닌 이 말은 애굽에서 행한 하나님의 이적들을 뜻한다. 역사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은 그분의 능력과 권위를 나타내는 표시요 증거이다.

성 경: [출10:2]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메뚜기 재앙의 예고]

?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게 하려 함이라 - 하나님께서 교만한 바로에게 여러번 참회의 기회를 주시면서 그가 항복할 때까지 애굽에 여러 재앙을 내리시는 이유가 9 : 16에 나타난 2가지 이유 외에 한가기 더 본절에 나타나 있다. 즉 그것은 애굽에서 행한 일들이 자손들의 뇌리 속에 깊은 흔적으로 남아 오고오는 세대에 두려운 증거로 기억되게 하며 그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또한 믿게 하기 위해서였다(롬 10 : 17). 이런 점에서 모세의 찬송(신 32 : 1-47)과 여호수아의 고별 설교(수 24 : 1-15) 및 시편의 여러 시들(78, 105, 114편)은 바로 이적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후대에 전하라는 본절의 명령을 실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성 경: [출10:3]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메뚜기 재앙의 예고]

?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 - 본서에 자주 나오는 표현인데(9 : 1, 13), 이는 재앙을 내리시며 출애굽의 주체가 되신 분이 그의 택한 백성인 히브리 민족의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언약을 변치 않으시는 여호와이심을 애굽 사람들에게 강조하기 위함이다<9 : 1>.

? 겸비치 아니하겠느냐 - 바로의 완강함을 보다 엄하게 책망하고 있다. 실로 참된 겸손은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과 피조물 된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바로 인식하는 데서 우러나온다(렘 43 : 2).

? 내 백성을 보내라 -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바로에게서 반드시 찾으시겠다는 일곱번째 경고이다(5 : 1 ; 7 : 16 ; 8 : 1, 20 ; 9 : 1, 13). 이처럼 한번 하나님의 백성된 자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지속적인 사랑으로 인하여 결국 그의 품속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성 경: [출10:4]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메뚜기 재앙의 예고]

? 메뚜기 (*, 아르베) - '많음', '증식자', '무리', '떼'라는 뜻을 가진 '라바'에서 유래하였다. 메뚜기는 초식 동물로서 이름의 뜻과 같이 대량으로 몰려다니면서 대량 생식을 하며, 또한 바람의 변화에 의하여 천문학적인 숫자로 떼를 지어 집단적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모든 초목을 닥치는대로 먹어치우는 메뚜기 떼의 습격을 받으면 그 피해가 엄청나서 그 지역 사람들은 이를 천벌로 생각했다. 요엘서에는 바로 메뚜기 떼의 무서움과 메뚜기 떼에 의한 폐허 모습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욜 1: 4-7 ; 2 : 1-11). 한편 기록에 근거하고 있는 자연 발생적인 메뚜기 떼의 피해가 이 정도라면, 하나님의 의지로 인해 초자연적으로 임한 애굽의 메뚜기 떼의 재앙은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성 경: [출10:5]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메뚜기 재앙의 예고]

? 지면을 덮어서(*, 카사 에트-아인 하아레츠) - 직역하면 '땅의 눈을 덮어서'(cover the eye of the land)이다. 즉 이 표현은 땅이 나무들로 덮여진 채 사람들을 바라본다는 고대의 시적(詩的) 사상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성경에서는 본장 15절과 민 22 : 5, 11에서만 나타나는 모세의 독특한 표현이다. 한편 땅의 지면을 덮을 정도였다는 말은 메뚜기 떼가 얼마나 숫자적으로 많았는지를 말해준다. 메뚜기 떼의 폐해를 직접 목격한 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메뚜기 떼가 몰아닥치면 태양이 밝은 대낮에도 온 천지가 흑암으로 변한다고 한다. 그리고 메뚜기 떼는 약 2600km 거리를 가득 메우는 때도 있다고 전한다(Ollivier, Barrow).

? 우박을 면하고 남은 것 - 메뚜기 떼가 지나간 곳에는 푸른 식물이라곤 찾을 수 없는 것이 보편적이다. 즉 메뚜기 떼는 처음 푸른 잎사귀로부터 시작해서 점차 줄기와 나무 껍질까지 모조리 갉아 먹으므로 그 땅들을 폐허로 만들어 버린다(욜 1 : 7). 9 : 32을 보면 우박 재앙시 밀과 나맥은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우박 재앙의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라난 후 결국 메뚜기 재앙에 의해 피해를 입게 됨으로 애굽의 주요 농작물 재배는 모두 망치게 되었다.

성 경: [출10:6]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메뚜기 재앙의 예고]

? 집들에 가득하리니 - 하늘과 땅을 가득 메운 메뚜기 떼의 극성을 짐작케 해준다. 메뚜기는 초식 동물로서 동물에게는 직접 피해를 가하지 않지만 간혹 먹을 것이 부족한 경우나, 성질이 고약한 놈의 경우 주거지에 침입하여 가죽이나 의복을 갉아 먹거나 심지어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전혀 할 수 없게 만드는 때도 있다고 한다(Burckhardt, Beauplan).

? 오늘까지 보지 못하였던 것 - 메뚜기 떼의 공격이 근동 및 아프리카 지방보다 상대적으로 흔치 않았던 애굽 지역에 유사 이래 보지 못한 무수한 메뚜기 떼가 예고된 날에 정확히 내습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한 초자연적인 재앙의 결과임을 분명히 밝혀 준다.

성 경: [출10:7]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얄팍한 타협안을 제시하는 바로]

? 어느 때까지 - '얼마나 오랫동안'(KJV, How long)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박 재앙때까지만해도 바로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완강 하였던 바로의 신하들이(9 : 34)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줄 것을 바로에게 간청한 것은 그들 역시 자신들에게 임하는 재앙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분명히 인식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그들의 외침은 곧 그들이 여호와를 신앙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베푸신 두려운 역사로 인해 애굽에 몰아닥친 심각한 위기 의식을 절실히 느꼈다는 의미이다(Lange).

? 함정 - 동물들을 잡기 위해 파거나, 설치해 놓은 '구덩이' 또는 '덫'을 뜻한다. 여기서는 모세를 통한 재앙으로 애굽이 그 구덩이에 빠져 멸망하게 되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성 경: [출10:8]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얄팍한 타협안을 제시하는 바로]

? 갈 자는 누구 누구뇨 - 폭군 바로가 처음으로 재앙 전에 관심을 가지고 타협안을 제시하는 말이다. 그런데 바로의 이 질문은 바로가 그때까지 모세의 요구가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다는 사실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몇번에 걸친 모세와의 면담에서 출애굽 대상이 이스라엘 민족 전부라는 사실이 명확히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짐짓 이런 기만적인 질문을 하는 것은 바로가 아예 처음부터 모세의 요구를 허락할 의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 경: [출10:9]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얄팍한 타협안을 제시하는 바로]

?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 당시 민족적 절기에는 남녀노소를 포함하는 전 국민의 참석은 물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 위한 짐승의 희생도 반드시 수반되었다(Lange, Keil).

? 남녀 노소와 우양 -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대상은 직접 신체적인 학대를 받고 있던 성인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스라엘 민족이면 누구나 할것 없이 여호와의 구원의 은총을 누릴 수 있었다. 여기서 특별히 '우양'이 언급된 것은 재산으로서의 가치와 더불어 희생 제물로서의 가치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성 경: [출10:10]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얄팍한 타협안을 제시하는 바로]

? 내가... 어린 것들을 보내면... 일반이니라 - 원문을 직역하면 '내가 너희와 너희 어린 것들을 보내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여호와께서 너희를 도우시기를 바란다'이다. 이 말은 조소 섞인 비아냥으로 다시 말해, 자기가 어린 것들을 보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는 것도 불가능 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모세와 아론에 대한 모욕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이적으로 자신을 증명하셨던 절대자 여호와께 대한 모욕이기도 했다.

? 너희 경영이 악하니라(*, 라아 네게드 파니켐) - 직역하면 '악이 너희 얼굴 앞에 있다'이다. 여기서 '네게드'는 '정면', '시각'을 뜻하는 말로서 앞날을 내다보며 계획을 꾸미는 것을 뜻한다. 한편 바로가 모세의 계획을 악하다고 한 것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에게서 빼앗아 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악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면서도 그는 오히려 모세를 악하다고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가치관이 전도된 사람은 자신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평가함으로 결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

성 경: [출10:11]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얄팍한 타협안을 제시하는 바로]

? 남정(男丁)만 가서 - 9절의 '남녀 노소와 우양'에 대한 바로의 답변이다. 여기서 '남정'(*, 게벨)이란 성인 남자를 가리키는 말로서 각 가정을 대표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이 말은 가족 대표만 참석하라는 뜻이라기 보다 여자와 어린아이들 그리고 모든 재산은 볼모로 남겨 두라는 계책으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절기 후 이스라엘 장정들은 처자식 때문에 다시 애굽으로 돌아올 것이고, 바로는 돌아온 그들을 다시 노예로 부릴 수 있겠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얄팍한 인간적인 계책으로 막으려는 바로의 행위는 결코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로운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철저히 멸망시키는 미련한 도모이다.

?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 문자적으로는 '한 사람이 그들을 바로의 면전에서 쫓아내니라'이다. 이런 행위는 이전에는 그들에게 가한 적이 없던 대단히 모욕적인 대우였다. 아마 이것은 모세와 아론의 출애굽 요구가 더욱 구체성을 띠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바로의 분노가 더욱 커지고 있음을 잘 보여 주는 것이었다.

성 경: [출10:12]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여덟번째 재앙-메뚜기]

첫째 재앙(나일 강이 피로 변한 재앙)의 시기가 아마 나일 강의 수위가 최고조에 이른 10월 경이고, 열번째 재앙이 끝난 때가 니산월(Nisan, 3-4월)이라면 재앙의 전기간은 10월부터 익년 3, 4월경으로 볼 수 있다(Leon J. Wood). 그 기간 중 여덟번째 재앙인 메뚜기 재앙은 밀과 나맥이 한창 싹이 나거나 익을 무렵인 3월 초순경이나 말경에 임한 것 같다. 애굽 땅에 죽음의 그림자가 점차적으로 드리워 짐을 알 수 있다.

성 경: [출10:13]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여덟번째 재앙-메뚜기]

? 동풍을 일으켜 - 메뚜기 떼들은 혼자 힘으로는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없으나 계절풍 등의 바람의 힘으로 먼곳까지 날아갈 수 있다. 한편 보통 애굽에 임하는 메뚜기 떼들은 남서지방(리비아, 에디오피아 등)으로부터 남풍 또는 서풍을 통해 날아왔다고 한다(Keil, Delitzsch). 그러나 이번의 경우 동풍의 영향이라고 하니 메뚜기 떼는 아라비아 사막 북부로부터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을 타고 애굽으로 날아왔던 것 같다. 이처럼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은 바람까지라도 조절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뤄가기도 하신다(신 10:14; 욥 41: 11; 시 24:1; 50:12).

성 경: [출10:14]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여덟번째 재앙-메뚜기]

? 메뚜기가 애굽 온 땅에 이르러 - 보통 메뚜기 떼는 어느 특정한 지역만을 강타하나 이 경우에는 애굽 전역을 휩쓸었다. 이 사실 역시 메뚜기 재앙이 하나님에 의한 초자연적 사건임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게 한다.

? 이런 메뚜기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러라 - 이것은 욜 2:2에서 메뚜기 재앙을 묘사하여 '이같은 것이 자고 이래로 없었고 이 후 세세에 없으리로다'라고 한 것과 전혀 모순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절 사건은 애굽에 임한 재앙이고, 요엘서에 기록된 사건은 이스라엘에 임할 심판이기 때문이다. 즉 요엘서의 기록은 애굽에 내렸던 무서운 심판이 유다와 이스라엘에도 임할 것이라는 경고이다. 한편 메뚜기 재앙은 그 무서운 성격으로 인해 마지막 심판을 예고해 주는 재앙으로 계 9:3-10에 나오는 사건에 대한 배경이 된다.

성 경: [출10:15]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여덟번째 재앙-메뚜기]

? 땅이 어둡게 되었고 - 이 말은 개역 성경의 번역과 같이 무수한 메뚜기 떼가 태양 빛을 가릴 정도로 하늘로 날아다니는 것을 표현하는 말인지(Living Bilble), 공동 번역과 같이 메뚜기 떼가 지면을 새까맣게 덮은 상태를 표현하는 말인지(KJV, RSV, Modern Language Bible)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5절과 연결시켜 볼때 두 견해를 모두 취할 수 있다.

? 다 먹었으므로 - 9:32을 보면 우박 재앙 당시 애굽의 주요 농작물인 밀과 나맥은 자라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그 재앙에서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이 메뚜기 재앙으로 인해 이제 그것마저 수확할 수 없게 되었다.

성 경: [출10:16]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여덟번째 재앙-메뚜기]

? 급히 불러서 - 비슷한 부름이 전에도 있었으나(8 : 25 ; 9 : 27), 이번 경우 처럼 다급하고 절박하지는 아니했다. 결국 메뚜기 재앙이 이전의 어떤 재앙보다 더 심각한 고통이었음 알 수 있다.

? 내가... 득죄하였으니 - 9:27에 이어 이번에도 역시 바로는 마음속 깊이 회개하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재앙이 지나가고 난 뒤에는 또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신의 약속을 헌신짝 처럼 저버린 것(20절)을 보면, 이역시 진정한 회개가 아니라 발등에 떨어진 위기만을 모면해 보려 한 임기 응변적 제스츄어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멸망받을 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성 경: [출10:17]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여덟번째 재앙-메뚜기]

? 이번만 용서하고 - '이번만'이라는 표현은 바로의 심정이 매우 절박함을 말해 준다. 그러나 참된 회개에는 자신의 허물에 대한 진지한 고백과 더불어 그에 합당한 삶의 열매가 있어야 한다(약 3 : 17, 18).

? 이 죽음 - 메뚜기 재앙을 가리킨다. 바로가 이 재앙을 '죽음'이라고 부른 것은 이 재앙이 땅의 황폐는 물론, 계속 지속된다면 인간과 모든 생물의 죽음과 파멸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성 경: [출10:19]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여덟번째 재앙-메뚜기]

? 여호와께서 돌이켜 강렬한 서풍이 불게 하사 - 여기서 '서풍'(*, 루아흐 얌)이란 원뜻대로 번역하면 '바다 바람' 곧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해풍(海風)을 가리킨다. 한편 본절에 대해 KJV는 '여호와께서 강렬한 서풍으로 방향을 바꾸셨다' (the Lord turned a mighty strong west wind)로 번역하였다. 이처럼 동풍이 일시에 강렬한 서풍으르 바꾸어지는 것은 실로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 뿐만 아니라, 자연계의 순환까지 그의 지배 아래 두심을 보여준다.

? 홍해 - 이 말의 히브리어 '얌 수프'(*)는 문자적으로 '갈대 바다'를 뜻한다<13:18>. 이 말이 한글 개역 성경, KJV, RSV, Living Bible등에서는 '홍해'로 번역되었다. 그런데 '얌 수프'의 위치를 현재의 수에즈 만 지역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므로 TEV의 번역은 적절하다<13:18>.

? 하나도 남지 아니하니라 - 메뚜기의 갑작스런 출현과 더불어 갑작스런 완전한 몰사(沒死)는 이 기적의 연출자가 자연계를 홀로 지배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강력히 시사한다.

성 경: [출10:20]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여덟번째 재앙-메뚜기]

강퍅케 하셨으므로 - <9:12>.

성 경: [출20:21]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아홉번째 재앙-흑암]

? 흑암이 있게 하라 - 아홉번째 재앙은 흑암 재앙이었다. 이 재앙 역시 지금까지의 모든 재앙들과 마찬가지로 자연 현상을 통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이었다. 즉 흑암 재앙은 그 지방의 계절풍으로서 캄신(Khamsin-일명 '사막의 바람'으로 몹시 뜨거운 남풍)이라고 불리우는 폭풍과 그리고 일식(日蝕)을 동반해 내려진 재앙인 듯하다. 이 폭풍은 보통 춘분을 전후해서 2-3일 동안 계속 부는 것이 관례인데 먼지와 가는 모래만이 온통 공중을 뒤덮고 있기 때문에 마치 검은 휘장을 하늘에 깔아 놓은 것과 같다(Lange), 따라서 태양빛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도무지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칠흑같은 어둠만이 온 지면을 덮을 뿐이었다. 따라서 이 바람이 지나고 나면 지면의 형태가 완전히 바뀜으로써 많은 혼란을 초래한다. 한편 거친 폭풍우와 칙칙한 습기로 인해 집안에 있는 불빛까지 꺼지게 되므로 사람들은 단지 깊은 골방에서 공포에 떨며 폭풍이 가라앉을 때까지 숨어 있어야 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곧 뒤따라 올 죽음의 밤을 예견케하는 전조적 재앙이었다. 동시에 이 흑암 재앙은 애굽이 자랑하는 모든 신과 사상과 철학을 송두리째 흑암 속에 묻어버림으로써, 여호와만이 홀로 온 세상의 주관자 되심을 명백히 선포한 계시적 측면을 지니기도 한다. 분명 이 흑암 재앙은 3가지 측면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초자연적인 이적 사건이다. 첫째, 일부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애굽에 미쳤다는 점. 둘째,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이 거주하는 곳에만 재앙이 미치지 않았다는 점. 세째, 유사이래 이만한 재앙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점 점 등이다.

? 더듬을 만한 흑암(*, 헤메쉬 호쉐크) - 직역하면 '충분히 느껴질만큼 두꺼운 흑암', '붙잡아 느낄만할 흑암'으로서 어두움의 상태가 극에 달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는 자연 현상적인 어두움을 뛰어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재앙으로 내리신 절대적인 어두움을 가리킨다. 동시에 이 표현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마치 눈먼 소경처럼 더듬거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연상시킨다. 그러므로 이는 영적인 어두움이 극에 달한 애굽인들의 심령 상태를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성 경: [출10:22]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아홉번째 재앙-흑암]

? 캄캄한 흑암(*, 호쉐크 아펠라) - '호쉐크'와 '아펠라'는 동의어로서 '어두움', '흑암'이란 뜻을 동시에 지닌다. 히브리어에서 동일한 두 단어 혹은 동의어를 결합시키면 그 의미를 아주 강하게 하는 효과를 준다. 따라서 이 구절은 극히 어두운 상태를 뜻한다. 이런 측면에서 KJV, RSV, 공동 번역은 모두 '짙은 어두움'(thick darkness)으로 번역하였다.

? 삼일 동안 - 애굽 궁중에서는 매일 아침 솟아오르는 태양을 향하여 북을 치고 노래부르며 경배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32:1-6강해, 애굽의 종교>. 이러한 행위는 곧 태양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전능한 신(神)임을 고백하는 것인 동시에 하루의 생활을 인도해 주실 것에 대한 기원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만일 제사를 소홀히 한다거나,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 날(구름으로 인해)이 발생할 경우 그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태양신(Sun- god)은 그들 운명의 열쇠였다. 그러나 칠흑 같은 흑암이 3일동안 애굽 전역에 계속 됨으로써, 그들이 최고의 주신(主神)으로 숭상했던 태양신 '라'(Ra)의 허구성이 여실히 파헤쳐졌으며, 반면에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 홀로 역사와 자연의 실질적인 주인이심이 확연히 드러났다.

성 경: [출10:23]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아홉번째 재앙-흑암]

? 사람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며 - 흑암이 극심했음을 말해 주는 시적 표현이다.

? 자기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 처소로 번역된 히브리어 '모샤브'(*)는 '앉다', '거하다'를 뜻하는 '야샤브'(*)에서 유래한 말로 곧 '자리', '거하는 곳'을 뜻한다. 그리고 '일어서다'로 번역된 '쿰'(*)은 '일어서다', '서다'를 뜻한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볼때 이 구절의 뜻은 누워있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기 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이거나 활동하지도 못하는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보는 편이 좋다. 따라서 공동 번역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했으나'로 번역하였다.

? 광명(*, 오르) - '조명', '발광체', '해' 등의 뜻으로 고센 지역에는 어두움의 흔적조차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애굽의 흑암을 조소하듯이 찬란한 해가 온누리에 비취고 있었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헹스텐베르그(Hengstenberg)가 지적했듯이, 여기서 애굽의 흑암은 하나님의 진노를(계 16 : 10), 이스라엘의 광명은 그의 은총을 각기 상징한다(엡 5:8).

성 경: [출10:24]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바로의 두번째 타협안]

? 머물러 두고(*, 야차그) - '두다', '공탁하다'는 뜻으로서, 돌아오겠다는 담보로 가축을 두고 갈 것을 의미한다. 양과 소를 귀중한 재산으로 여겼던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위의 말은 맨몸으로 떠나라는 의미와 같다. 결국 바로는 아무런 생계 대책없이 떠날테면 떠나 보라는 식의 얄팍한 계산에 따라 출애굽을 허락했던 것이다. 더욱이 그의 말은 여호와께 드릴 희생 제물마저 가져갈 수 없다는 의미로서 이스라엘의 출애굽 목적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발언이었다.

성 경: [출10:25]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바로의 두번째 다협안]

? 왕이라도... 주어야 하겠고 - 제물도 없이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라는 바로의 모순된 제안에, 모세는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 야훼께 드릴 제물과 번제물을 당신이 손수 마련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공동 번역)라고 반문함으로써, 바로의 간교한 술책을 일축해 버렸던 것이다.

성 경: [출10:26]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바로의 두번째 타협안]

?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 - 출애굽 운동의 궁극적 목적은 처음부터 여호와를 섬기는 데 있었다(3 : 12 ; 5 : 1 ; 7 : 16 ; 8 : 1 ; 9 : 1). 즉 하나님께 구속받은 백성이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의 제사를 드리는 것, 이것이 바로 출애굽 운동의 요점이었다. 가시적인 예배나 모든 삶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그를 영화롭게 하는데로 귀결된다. 오늘날 구원받은 성도들, 즉 영적 이스라엘의 최종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음을 늘 명심하자(고전 10:31).

? 거기 - 출애굽에 대해 첫 약속이 주어졌던 시내 산을 가리킨다(3:12).

? 알지 못함이니이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까지 하나님께로부터 제사 제도에 관한 지시(레 1-7장)를 받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시에 의존하여 하나님의 규례대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 다른 이방 종교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기독교의 특징이다. 한편 나아가 본절의 내면적인 의미는 가축 한 마리도 애굽에 남겨둠이 없이 다 가져가야 되겠다는 뜻을 다시한번 완곡한 어조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성 경: [출10:28]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바로의 두번째 타협안]

? 나를 떠나가고... 삼가... 보지 말라 - 이는 일말의 겸손이나 회개라곤 전혀 찾을 길 없는 바로의 마지막 항거이자 추악한 몸부림이다. 그는 3중 명령(떠나가라, 삼가라, 보지 말라)을 통해 자신의 어리석은 고집과 그에 따른 멸망을 자기 스스로 확증하고 말았다. 즉 바로는 자신의 강퍅함으로 말미암아 아홉번째 회개의 기회마저 상실하였던 것이다. 실로 보이는 현실적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비록 보이지는 않으나 인간에게 더욱 중요한 말씀에 대한 순종과 성실성이 없는 자는 마침내 자멸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성 경: [출10:29]

주제1: [메뚜기와 흑암 재앙]

주제2: [바로의 두번째 타협안]

? 왕의 말씀이 옳으니이다 - 이 말은 돌이킬 수 없는 바로의 완악함에 대해 하나님의 전권 대사 모세가 그 권위로 바로에게 단호히 선포하는 결별 선언이다. 따라서 이는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이제 끝났읍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 다시는 왕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바로의 면전에서 계속 머무르면서 마지막 재앙에 대한 무서운 경고를 하게 된다(11 : 4). 반면 이것은 바로에게 주어진 회개에의 마지막 처절한 기회이기도 하다. 이로 볼 때 악인이 멸망받는 것은 회개할 기회가 모자라기 때문이 아니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도 아니다. 오직 자기 죄에 대한 억척스런 고집 바로 그것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