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롭다함[칭의]에 관하여
의롭다함[칭의]에 관하여
292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우리의 불결함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자들이 죄를 범했을지라도 죄를 자백하고 슬픈 마음으로 통회하면 그들 안에 거하시며, 죄가 그리스도와 믿는 자들을 갈라놓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인간의 본성과 능력만으로 이러한 참된 기독교 신앙을 지닐 수 없습니다.
293 작심하고 죄를 지은게 아니라 연약해서 죄에 빠졌다면, 그 현실이 성화를 가로막지는 못한다. 가끔 넘어져 죄를 범하더라도 다시 털고 일어서서 주님을 붙들면 주께서 용서해주신다.
294 믿음의 문제에서 자연적 지혜는 거듭나기 전에는 어둠과 무지이지만, 거듭난 이후, 성령께서 마음의 눈을 열어준 신자에게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요긴한 도구이다. 믿음의 통해 얻는 이해는 믿고 생명을 얻게하고, 혀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데 쓰인다. 그렇지만, 현세에서 갖고있는 것에 붙어있는 허영과 어리석음을 씻어내야 한다.
295 정직하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정작 자신이 신실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마땅히 장성해야 할 분량만큼 장성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서투른 직공은 부족을 느끼지 않고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여긴다. 마치 유대인들이 십계명을 지니고있으면서도 존중하지 않았듯이.
296 사도 바울은 율법을 가리켜 죽음의 사역, 죄의 사역, 정죄의 사역으로 일컬으며, 심할정도로 폄하한다. 그는 믿음을 순수하고 바르게 가르쳤으며, 행위로 말미암는 의를 배격하였다.
297 믿음과 소망은 몇 가지 점에서 구분된다. 첫째, 출처. 믿음은 이해에서, 소망은 의지에서, 둘째, 직무. 믿음은 지식과 승인의 행위, 소망은 훈계하고, 일깨우고, 듣고 기대하고 고난을 감수한다. 셋째, 대상. 믿음은 말씀과 약속을 바라보지만, 소망은 말씀이 약속하는 것, 즉 선하고 유익한 것을 바라봅니다.
넷째, 순서. 믿음은 모든 역경과 고통에 앞서 오며, 생명의 시작입니다. 소망은 뒤에 따르오며, 고통 가운데 솟아난다. 다섯째, 대적. 믿음은 오류와 이단에 맞서 싸우며, 영과 교리를 검증하고 판단한다. 소망은 고난과 좌절에 맞서 싸우며, 악한 가운데 선한 것을 기대한다. 믿음은 지혜와 선견지명, 교리에 속하지만 소망은 용기와 기쁨, 훈계에 속한다. 믿음은 변증학이고 소망은 수사학이다. 소망없는 믿음은 무가치하며, 소망은 불행과 악을 견디고 극복한다. 믿음 없는 소망은 영적 자만이다.
298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소망에 의해 이루어진다. 추수와 자녀, 이윤이 바로 그렇다.
299 믿음의 실체는 우리의 의지이다. 믿음의 방법은 하나님께서 일으켜 주시는 각성으로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이다.
300 아담은 어떤 행위나 희생을 내놓기 전에 여인의 후손에 관한 약속을 받았다. 그것은 행위와 무관하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고 순전히 은혜로 죄사함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301 믿음은 의롭다함과 구원받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데 필요하며, 모든 점에 있어서 필요하다.
302 아리마대 요셉 역시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지상에서의 권력자가 되실 줄 알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 영원한 왕이 되실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303 아브라함이 우리의 불신앙을 본다면 뭐라 말할까요. “나는 여러분이 소유하고 있는 약속의 백분의 일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었다.”
304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안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영적 출생과 본질을 파악한다면 선행으로 쌓은 공로를 단번에 버릴 것이다. 유아들은 어떠한 선행없이 구원을 얻는다. 오직 믿음으로만 말이다. 만약 인간의 행위를 내세워 하나님 앞에 고개를 쳐든다면, 하나님은 용납지 않으신다.
305 칭의교리에 대한 바른 이해는 삼위일체 교리의 이해에도 도움을 준다.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에 힘입어 구원을 얻는다. 이것은 다른 교리를 능가하는 것이다.
306 카푸친회는 잿빛 코트와 두건, 밧줄로 허리띠, 샌들을 신을 것을 강조하고, 프란체스코회는 검은 두건, 교황주의자는 미사참석, 기도, 금식, 구제에 힘쓰라고 강조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선행이나 공로 없이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의롭다함과 구원을 얻는다. 어느 것이 진정한 의인가.
307 우리는 자연적 이성과 이해와 육신이 온전히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오래 참으시지 않으면 우리는 소망이 없다. 하나님은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신자는 성령의 첫 열매를 얻었을 뿐, 여전히 다 이루지 못했고 다만 십분의 일밖에 얻지 못했다.
308 사도바울은 믿음이 약한 때, 자신이 사도임을 자랑했고, 바다에서 천사가 위로했으며, 로마에 도착했을 때 형제들이 맞으러 나옴으로 위로를 얻었다. 다시 말해, 성도의 사귐이 하나님을 경외하는데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309 그리스도인은 바른 교리들로 무장되어야만 마귀의 세력이 다른 교리로 협박할 때 견고히 설 수 있는 것이다.
310 마지막 날 동료 신자들과 함께 다시 살아날 때, 얼굴이 화끈거릴 것이다. “부끄럽지 않느냐 세상에서 살 때 너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심히 큰 것을 생각하여 용감하고 담대하고 강력하게 그리스도를 믿고, 모든 역경과 고난을 뚫고 나갔어야 하는데, 비굴하고 연약한 인생을 살았구나. 다시한번 기회가 있다면, 천배나 어렵고 가혹한 시련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을텐데.”
311 박식하고 천사들의 일을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알고 믿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다.
312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함 함을 받는 것은 나면서부터 그런 자격을 갖는 것과 같다. 공로나 선행이 아닌 순전히 은혜와 자비로 영생을 주시고, 우리에게 현세와 내세의 복을 약속하신다. 그렇다면 누구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구원을 얻는다는 겁니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짓밟으면서 믿는다고 하면 그 믿음은 가짜이거나 위선이며, 진심일지라도 심하게 어두워진 것이다. 믿는자에게 주신 성령께서 죄를 범하는 사람을 떠나시는 일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313 의식과 규례는 사랑이 주도해야 하며, 강제가 주도해서는 안된다. 또한 이웃의 선과 유익을 지향하며, 권한을 많이 받은 사람은 섬기려는 자세가 더욱 절실하다.
314 이웃사랑은 신부와 신랑의 정숙한 사랑처럼,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장점만 높이고, 존중하는 것이어야 한다.
315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복음을 담대하게 말할 것이다. 복음을 담대하게 말하는가. 그렇다면 반드시 고난을 받게 되어 있다. 고난을 받고있는가? 그렇다면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믿음과 십자가는 함께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316 베푸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나는 일년 유지비가 2000플로린이 넘지만, 300플로린으로 넉넉하게 지냅니다. 여러분, 무엇을 얻고자 하면 베풀어야 합니다. 후히 베풀고서 빈손으로 전락하는 일은 없습니다.
317 의롭다 함을 얻는 일에는 공로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가 선제후에게 선물을 받는 것은 궁정에 찾아간 내 노력때문이 아니라, 선제후의 약속 때문입니다.
318 베첼이라는 작자는 농부나 일꾼이 믿음으로 자기 일을 착실하게 수행하는 그리스도인이 수사와 탁발수사, 수녀보다 훨씬 더 귀하다는 말을 비판한다. 그들은 그저 과시의 효과를 얻고자 고안된 미신적 관행들만 중시할 뿐이다. 사도는 그리스도인이 각자의 직업과 소명을 경건하게 수행해 가는 삶을 매우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319 나는 분노가 치밀 때, 잔뜩 화가 나 있을 때 글쓰기, 기도, 설교가 더 잘된다. 그 때는 정서가 예민하고 이해력이 첨예해지고 온갖 시름과 유혹이 깨끗이 사라지기에.
320 예레미야가 자신의 생일을 저주한 것이 신자다운 행위입니까? 에 대한 답변으로, 그리스도 역시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하고 말씀하셨고, 모세 역시 하나님께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어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하고 하소연했다.
321 교황과 싸움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종들이 경멸을 당하는 모습을 보니 세상을 떠나고픈 마음이 듭니다. 우리의 본성은 본래 취약, 낙심합니다.
322 원수를 무찌르고 싶고, 그와 대치하지만 이길 수 없다면, 가장 이로운 양약이 있으니, 그것은 인내이다. 어떻게 하면 인내를 얻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사랑이 흘러 넘쳐야 합니다. 넉넉한 사랑은 원수들을 쳐서 굴복시킬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갑옷과 무기입니다. 사랑은 고난을 받고 모든 것을 인내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323 만일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먹으십시오. 금식하라면 기꺼이 굶으십시오. 명예를 주신다면 달게 받으십시오. 상처와 수치를 주신다면 견디십시오. 감옥에 넣으신다면 원망하지 마십시오. 왕으로 세우신다면 순종하십시오. 다시 끌어내리신다면 개의치 마십시오.
324 인내는 덕목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것입니다.
325 교회내의 모든 법규와 의식은 의롭다 선언하거나 정죄하는 자리에 두지 말고, 교회 질서를 위하는 정도의 의미만 부여하는 것이 정당합니다.
326 우리의 고질병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논쟁하고 대꾸하며 자의적인 능력과 방법으로 하나님 앞에 죄값을 지불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선하게 만들어 주시는 순간이 있기를 위해서 기도할 뿐이다.
327 선행은 정직한 그리스도인이 내놓은 것일지라도 온전한 선이 아닙니다. 조금 회복된 미약한 순종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인됨과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말할 수 있는 사람, 예수님께 자신의 영혼을 의탁하는 사람은 자신이 주께로부터 참된 의를 받았음과 자신의 행위와 의를 의지하여 하나님을 모욕하는 자들의 수에 들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