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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버나드 앤더슨 [ 구약성서이해 ] 서평

신앙 신학방

by Bliss Yeo 2014. 4. 2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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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앤더슨  [ 구약성서이해 ]  서평

 

 

I. 개 관

    버나드 앤더슨은 성서를 모세 시기의 고대 이스라엘의 출애굽 이야기부터 일명 마카베오라고 불리우는 후기 성서 유대교 시기에 피어난 문학까지 고대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따라 서로 연결되지 않은 역사적인 사건들을 성서신학, 문학비평, 고고학적 연구를 이용해 엮어낸 책으로 보고 있다. 이 책은 주로 고대 근동의 역사적 자료에 기초를 두고 성서를 해석하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역사적 증거 자료가 풍부한 곳에서는 성서 비평을 서슴지 않았고 역사적 자료가 부실한 곳에서는 주로 성서의 기록에 의존하기 보다는 지금까지 추측되어온 학설을 바탕으로 재해석하려는 의도를 보였다. 이 책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출애굽 사건을 성경을 이해함에 있어서 결정적인 사건으로 보고 이 곳에서 시작하고 있다. 출애굽 사건을 시발점으로 성서의 역사적 기록에 따라 출애굽기, 레위기,민수기, 여호수아, 열왕기, 이사야, 소선지서, 신명기, 예레미야, 에스겔, 느헤미야와 에스더, 마지막으로 성문서인 시편, 전도서, 욥기, 다니엘의 순서로 되어있다.


II. 한 백성의 창조


1. 전  승

                               [학설의 출처]

 

 

      구전시기

  주전 1200 - 1000

    고대 서사시

J: 유다자료로서 초기 왕정시대부터 유래, 하나님의 이름을 야훼라고 부른다.

E: 에브라임, 즉 북이스라엘 자료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엘로힘이라 부른다.

주전 950년경

주전 850년경

    신명기 전승

D: 신명기에 잘 나타나 있는 자료로 요시야 개혁시대의 신학과 문체를 반영한다.

주전 650년경과 그 이후

       제사장

P: 제사장들의 제의에 관한 관심과 문체가 특을 이루는 자료로서 기원전 587년 국가 멸망 이후에 생겼다.

주전 550년경과 그 이후


   ① 모세오경의 이야기는 오랜 세월을 거쳐 구전을 통해 전승되어 오다가  왕정시대에 이르러 편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전승의 줄거리는 조상들에게 준 큰 약속, 애굽에서의 노예상태에서 구원하심, 시내산에서의 하나님의 출현과 율법을 줌, 광야에서 인도하심이다.

   ② 야훼숭배의 기원에 대해 모세 이전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야훼로 불리워 졌는지에 대해 분명하지 않지만 모세 이전에도 그 이름이 아마 불리워졌으나 출애굽 시대에 와서 새롭게 인식되었다고 본다.

   ③ 출애굽 이야기는 전승의 긴 역사의 결과이고, 다양한 부류의 기자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가필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고대 이스라엘 시대부터 유월절을 거행하면서 바로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이 해방된 사건을 회상하고 다듬었던 종교적인 의식이었다. 그리고 여러 세기에 걸쳐 전승되어 오면서 제사장계 기자들은 이러한 전통적인 이야기를 최종적으로 편집하였다고 본다.

   ④ 여호수아의 정복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주어진 땅의 약속이라는 주제와 언약에 대한 의무들에 대한 모세의 전승들을 취하여다가 어떻게 그 모든 것이 여호수아 시대에 기적적으로 성취되었는지 보여준 신명기 사가의 견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신명기 사가와의 다른 진술들을 보아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은 오랜 기간을 두고 일어난 일이난 복잡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⑤ 이스라엘의 서사시 형성

      모세에서 다윗까지 내려왔던 구전전승들-시원사, 조상들의 역사, 백성들의 역사-은 야훼신앙으로 세례를 주어 자기 것으로 만들므로써 알맞게 변형시킨 후, 역사적 설화들이라는 정교한 형태를 띠게 된 다음 기록된 문서로 정착하게 되었다.

2. 언약 과 율법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공통된 염원으로 따라 나선 이들에게는 정체 의식이나 공동 생활에 대한 의무감이 결어되어 있었고 역사적 공동체로서 한 백성을 이룰수 있는 공통의 역사도 없었다. 그러므로 이들을 야훼와 맺은 계약과 법과 제도를 통하여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되었다. 모세오경에 나오는 두 가지 종류의 법률은 조건적인 법과 절대적인 법인데 절대적인 법은 이스라엘의 고유의 법 유형인 것 같으며, 조건적인 법 즉, 이스라엘의 율법은 언약법으로 이 언약 법전은 이스라엘이 지파동맹 시대에 채택한 농경생활방식을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문화로부터 법들(많은 법들이 함무라비 법전과 유사하다)을 빌려와서 그것들을 자신의 필요들과 종교적 관심에 맞게 변형시킨 것이다.

 

3. 신명기적  해석

  사사기 대부분의 구조는 신명기계 역사관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아훼께 순종하면 번영과 평화가 따르고, 순종하지 않으면 고난과 패배가 따른다는 것이다. 옷니엘, 에훗, 드보라, 기드온 등과 같은 고대 지파 전승에서 유래한 이야기들은 비교적 오래된 형태로서 짜임새가 없었으나 새로운 형태를 취해서 신명기계 구조로 통합되었다.


III. 나라를 형성하는 이스라엘


1. 국가로서의 이스라엘

   신명기계 사가들은 가나안의 문화가 범람하는 곳에서 모세의 전승에 충실하기가 어려웠

고 결국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신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빠져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예언자들이 나서서 이러한 백성들의 욕망을 비판하고 저지하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의 독특한 신앙은 사라졌을 것이다. 신명기계 사가들은 솔로몬의 통치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음으로 왕정 국가가 아닌 신정국가로 돌아가야 함을 아야기하고 있다. 또 다른 관점으로는 야훼문서기자의 견해로서 그는 모든 국가를 포함하는 의미 안에서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존재를 이해하였고 야훼가 전세계에 대하여 가진 목적에서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역할은 이 땅의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역할은 아브라함의 소명 이전의 창조 이야기에 이미 들어있던 것이었다.

 

2. 예언자

   하나님이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목적은 먼 장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곧 행하실 일에 대한 현재의 절박성을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예언의 기원은 가나안 주변환경으로 부터 빌어온 ‘탈혼상태’의 예언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예언자는 언약의 약속들과 요구들을 해석한 야훼의 대변자였다는 점에서 가나안의 것과 다르다. 초기 예언자들의 상당수는 “예언자의 아들들”로 알려져 있던 동업조합이나 학파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들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고, “채주”라 알려져 있었음이 분명한 우두머리가 그 공동체를 지도하였다.

 

3. 사가의 시대관

   열왕기 상하는 신명기를 서문으로 하여 여호수아서로부터 시작되는 신명기 역사의 결론 부분을 이루고 있다. 신명기 역사서가 다루고 있는 다른 시기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왕정시대의 역사도 모세 전승에 대한 근본적인 신학적 확신이라는 관점에서 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사관은 왕정의 수립으로부터 북왕국 멸망때까지의 사건들을 개관하고 있는 열왕기하 17:7-41 의 요약문에 분명히 표명되고 있다. 북왕국의 왕들과 남왕국의 왕들은 언약의 순종이라는 이러한 신명기 사가의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판단되고 있다.

 

4. 이사야에서의 내용 단절

   이사야서 40-66장은 주전 8세기에 예루살렘에서 예언사역을 하였던 이사야의 것이 아니다. 이 장들은 이사야시대보다 2세기 뒤에 있었던 역사적 정황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이를 제2이사야의 저작으로 돌리는 것이 보통이다.

   이사야의 진정한 저작은 1-39장까지이다. 그러나 이 장들 중에서도 36-39장은 이사야의 후기 사역중에 일어난 사건들을 말하고 있는 왕하의 내용을 약간 수정해 옮겨 놓은 것이고, 34-35장은 제2이사야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24-27장은 이사야 전승에서 후기 단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예루살렘의 이사야의 예언은 세 단원 즉, 1-11장, 13-23장, 28-32장이다.

5. 신명기적 개혁

   요시야 시대에 발견된 율법은 아마도 신명기 12-26장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일단의 율법이었다. 요시야의 개혁은 어떤 형태의 신명기 법전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요시야의 개혁은 신명기적 개혁이라 부를 수 있다.


IV. 새로워진 계약 공동체


1.전통의 보존

   포로생활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전승을 연구하고 전승이 가지는 의미를 찾으려고 했으며, 그들의 거룩하고 독특한 지식을 장차 올 세대에 물려주기 위하여 조심스럽게 보존했다. 이 작업은 모세가 속했던 레위지파의 후손인 레위인들로 알려진 제사장 계급에 의지했다. 이스라엘 역사의 제사장적 견해는 창세기와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자료들 가운데서 시작된다. 이 자료의 초점을 돌려본다면, 가장 주목할 점은 책 전체에 흐르고 있는 예배의 분위기이다. 제사장계 자료는 창조부터 시작된 역사 전체를 꿰뚫는 역사의 목적이 예배를 위한 이스라엘의 선택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2. 역대기 사가

   역대기 사가라는 말은 포로기 이후 시기에 활동한 일군의 역사 해석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사무엘서나 열왕기에 나오는 구절들을 발췌해 오기도 하였으며, 어떤 때에는 자신들의 관점에 따라서 전승을 무시하거나 바꾸기도 하였다. 또한 신명기 역사서에 포함되지 않은 자료나 그 당시에는 이용될 수 없었던 자료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역대기 사가의 저작은 근본적으로 이스라엘 역사의 수정 또는 재해석이다. 이 기자들은 하나의 중심적인 확신, 즉 이스라엘이 예배 공동체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확신에 의해 지배되어 있었다. 넓은 의미에서 이스라엘은 ‘제사장들의 왕국이며 거룩한 민족, 자기들의 삶 전체가 하나니의 전례 또는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되어야 하는 백성이어야 했다. 이러한 전례에 대한 관심은 역대기 사가의 저작에서 주요한 모티브중의 하나이다.

3. 시편

   시편은 다윗 시대로부터 구약성서의 후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과 함께 한 이스라엘의 역사의 전체 드라마에 관한 집약적 기사이다. 현재 형태의 시편은 주전 5세기경부터 2세기경까지 여러 단계들을 거쳐 완성된 이스라엘 공동체 산물이다. 시편의 종교는 ‘제의적’이라는 것, 즉 이 공동체가 성전 축제들때에 드리는 예배의 신앙이었다.

4.이스라엘의 지혜문학

   오래 전에 지혜에 대한 추구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 특히 이집트와 바벨론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혜에 관한 저작들은 그 저작들이 생겨난 나라의 경계를 훨씬 넘어 널리 유포되었기 때문에 동방의 지혜는 일찍이 이스라엘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

   구약의 지혜문학은 구약의 나머지 책들과 구별되는 듯이 보인다. 지혜문학의 상당수가 이스라엘이 예베공동체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있을 때인 포로기 이후 시대에 나온 것이지만 예배 행위들에 관한 언급은 놀라울 정도로 적고 예배의 중앙 집중에 관하여 약간 다루고 있는 것이 고작이다. 또한 야훼라는 인격적인 이름은 전도서나 욥기의 시에서 사용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지혜문학은 홀로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나름대로 지혜운동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운동은 이스라엘 문학의 모든 영역들에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이스라엘의 지혜문학은 이스라엘의 역사 신앙에 완전히 젖어들게 되는데 이는 토라와 지혜를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동일시는 신명기적 전승, 지혜 시편에서 발견되어 진다. 또한 다니엘의 지혜는 토라에 대한 충실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러나 지혜문학과 이스라엘의 거룩한 유산과의 완전한 동화에서 절정을 이룬 고유한 지혜운동은 왕정 초기, 특히 솔로몬 시대에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은 지혜의 자료들을 주변 문화로부터 빌려왔지만, 빌려온 자료들을 이스라엘의 독특한 신앙과 체험으로 각인하였다.

 

5. 다니엘의 묵시록

   다니엘서는 마카베오 전쟁이 발발한 직후 익명의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다. 이 책을 쓴 목적은 셀류코스왕조의 호전적이고 위압적인 정책으로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던 이스라엘의 신앙에 다시 불을 붙이고 박해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신앙에 대한 충성을 포기하지 말라고 유대인들에게 촉구하는 것이었다. 다니엘서의 저자는 현재로부터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 것처럼 옛날 페르시아 시대의 저술로 가장하여 당시의 사람들에게 말을 하였다. 예언이 그쳤다고 믿어졌던 포로기 이후 시대 후기에는 옛 유대인 전승의 몇몇 인물들의 이름으로 글을 써내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이 경우에 저자는 다니엘의 이름을 선택하여 빌려썼는데, 다니엘은 에스겔서에 의하면 전통적인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라스 샤므라 문서에서는 전설적인 영웅이었다.



구약성서이해(B. W. 앤더슨)와 구약개론(정규남)을 읽고


  구약성경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은 읽는 자의 신앙과 생각에 따라서 다양하다. 여러 가지 형태의 성경개관서가 나와 있고 그 내용도 다양하다고 알고 있으나 여러개의 교재를 모두 섭렵할 만한 실력도 없을뿐더러 아직 그렇게 할 기회도 아닌 것 같다. 이에 이번 기회에는 성경을 개론적으로 이해하기에 도움이 될만하고 서로 상반되는 관점의 두 권의 책을 선택하여 서로 비교해 보기로 하였다. 앤더슨이 쓴 구약성서이해는 성서를 성서 본문 비평과 고고학적 연구결과에 의존하며 성서를 이해하고 정규남의 구약개론은 성서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흠이 없는 말씀이라는 복음적인 입장에서 히브리 성서의 순서대로 쓴 책이다.

  앤더슨의 구약성서이해와 정규남의 구약개론을 각각 대략적으로 요약해보고 그 내용을 비교하여보기로 한다.


정규남 구약개론


I. 개   관


    “구약개론”은 복음적인 입장에서 쓰여진 책이다. 이 책은 구약을 히브리 성서의 순서대로 썼다. 그러므로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전선지서(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 상.하), 후선지서(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12소선지서), 성문서(시편, 잠언, 욥기, 아가, 룻기, 애가, 전도서, 에스더  다니엘, 에스라, 느헤미야, 역대상.하)의 순서로 되어있다. 또한 저자는 지금까지 구약 성서에 관한 여러 가지 학설을 제시하면서 가능하면 성서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때로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학설을 무시해 가면서까지 성서의 견해를 옹호하려는 느낌을 주었다.

   

II. 일반 개론


1.  “히브리”라는 단어의 유래

   ① 에벨로부터 유래

     “히브리”란 말이 아브라함의 조상인 “에벨”(창 10:21,22,25 11:14)에서 유래되었다

       고 본다. 이유는 두 단어 모두 같은 자음(רבע)을 쓰기 때문이다.

   ②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

      아브라함이 처음 “히브리인”(창 14:13)이라고 불리우기 때문에 아브라함으로부터 시

      작된 것이라고 본다. 여호수아 24:2-3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유브라테강을 건너서 팔레

      스타인으로 이주했는데, 이 ‘건너다’의 뜻인 “아바르(רבע)”란 말과 “이브리”란

      말(히브리어로는 “히브리”를 “이브리”라 함)이 서로 꼭같은 자음으로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을 히브리인으로 불리운 것은 아브라함이 유브라데강을 건너왔으니

      “건너온자”란 뜻에서 “히브리인”이라고 불리웠던 것으로 생각한다.

   ③ “하비루”란 말에서 파생

      “히브리”란 말의 어원을 아마르나 문서, 마리 문서, 우가릭 문서등에서 발견되는

      “하비루”란 말에서 찾아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구약의 “히브리”, 아카드어

       의“하비루”, 이집트어 “‘pr” 가 서로 관련된 것을 연구한 학자들은 히브리가 하

       비루의 어원에서 파생된 것으로 생각한다. 올브라이트는 주전 천년을 전후해서 ”하피

       루“와 ”아피루“의 어원 「‘Br(건너다, 통과하다)」의 영향을 받아 발음이 아피르

       에서 아비르로 바뀌었으며 이브르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2.  성경을 정경으로 받아들이는 이유

   ① 정경이란 개념은 랍비 힐렐과 삼마이 때에 랍비 바리새인들이 옛날 특별한 기간동안

      쓰여진 랍비의 전통들을 외경들의 새로운 도전으로부터 보존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라 한다. (G. Holscher)

   ② 고대성 때문에 정경으로 받아들여졌다. (J. G. Eichhorn)

   ③ 히브리어로 씌여졌기 때문이다. (F. Hitizig)

   ④ 율법서에 일치하기 때문이다. (G. Wildeboer)

      후에 정경이 되는 기준은 더 자세히 밝혔는데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어야

      하며 내용은 고대 역사를 다루거나 새로운 사물의 질서를 세우는 것을 이야기하거나

      솔로몬, 사무엘과 같은 옛날 유명한 사람에 의해 기록된 것이어야하거나 백성과 서기관

      들의 민족적인 감정에 완전히 조화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많은 이유들을 정경이 되는 기준으로 제시하지만 그 어느 것도 정경이 되는  근본 이

       유였다고 인정하기에 미흡하고 다만 성경을 정경으로 받아들이며 신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성경자체의 증언 때문이다. 즉 성경의 정경 결정권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

       다.


III. 오  경

1. 오경 저작에 관하여

    모세 오경 전부를 모세의 저작으로 보고 있다. 특히 신명기서 저작권에 있어서 신2:30의

“오늘날과 같으니라”의 구절 이해, 1:1의 요단 저편, 하나님에 대해 사용된 명칭(여호와

 너희 하나님), 가나안 사회의 자세한 묘사로 보아 왕국 분리이전에 기록한 증거들을 예로 들면서 모세의 저작을 부인하려 하지만 출애굽 당시의 상황들의 사실적 묘사, 전쟁의 장면을 묘사하는 고대 애굽의 기록들로 보아 모세의 저작이 타당하다고 본다.

 

2. 출애굽의 연대

 출애굽 사건이 지형학과 고고학의 발굴들을 살펴볼 때 역사적 사건임이 확실하나 그 시      기에 관해서는 주전 16세기로 생각하는 견해(주전 1550년), 주전 15세기로 생각하는 견      해 (솔로몬의 성전건축시기를 기준으로 해서 역산, 여리고의 패망 시기를 기준으로 해      서 역산, 사사 입다의 시대를 기준으로 해서 역산) 그리고 주전 13세기로 생각하는 견      해 (이스라엘을 압박한 왕이 세티 1세 또는 람세스 2세로 생각)가 있다. 저자는 솔로몬      성전 건축 연대가 역사적으로 정확하다고 보아 주전 15세기를 지지한다.

 

3. 출애굽기 6:3의 해석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가 창세기에도 나오는 것에 대해 출 6:3에서 “여호와를 안다”라는 말은 단순히 여호와의 이름만 알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본성과 성격을 알고 이해하게 됨을 뜻하므로 창세기에는 여호와의 이름을 구속의 성격으로 알리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이며, 족장들로 이미 그 이름을 알았으나 심각한 의미로 알려지지 않았음을 주장한다. 또한 비평학자들의 견해에 모순이 있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P 문서는 하나님이 “여호와”란 이름으로 홍수 전에도 숭배되었다는 J문서와 모순되며, 모세의 어머니 이름에도 “여호와”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모세 이전에도 여호와의 이름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려져 있었음을 말한다.

 

4. 모세 율법과 함무라비 법전과의 관계

    어떤 구약학자들은 모세 오경 가운데 출애굽기 21장에 기록된 보복의 법이 모세가 함무라비 법전을 보고 인용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셈족의 혈통과 바벨론이 문화적인 공통성을 가지고 있는 것에서 연유된 것이며, 신체의 상한 부분들에 대한 언급된 순서가 다르다는 점, 함무라비 법전의 보복법은 귀족이 피해를 받았을 때만 적용되고, 다른 경에는 벌금만 내도록 하는데 반해 출애굽기의 보복법은 피해자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형벌을 가볍게 하지 않았다는 점 ,종의 신분에 있어서도 모세의 율법이 더 존중하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IV. 전기 예언서


1 .열왕기 기록 과정과 저자

    열왕기는 하나님과의 계약에 충성되고 온전한 믿음의 통치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만  사람이 보기에는 번영하고 성공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자는 갑자기 죽거나 모든 자손이 멸망당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목적에 따라 역사의 자료들을 정리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열왕기 저자는 그 전에 씌여졌던 여러 자료 즉 솔로몬의 행장,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 유다 왕 역대지략, 그리고 이사야의 책을 이용했다. 열 왕기가 신명기적 저자에 의해서 기록된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신명기가 모세가 쓴 하나 님의 영감된 말씀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평가 기준으로 삼고 기록한 것이라 보아야 한다. 열왕기의 저자는 불분명하지만 예레미야와 같은 시대의 바벨론 포로 생활에 익숙한      자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V. 후기 예언서

 

1. 이사야의 저작권

    탈무드 전통에 의하면 “히스기야와 그의 동료가 이사야, 잠언, 전도서, 아가를 썼다.”고      되어 있다. 다른 한가지는 이사야서 40장 이후가 바벨론 포로 생활가운데 있는 이스라      엘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해 쓴 글이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이 아닌 바벨론에서 다른 저자      가 쓴 것이라는 견해다. 하지만 되덜라인이 말한대로 주전 8세기의 저자가 바벨론의 중      요한 장래일을 예언하는 이사야 40-66장을 쓸 수 없다면 소위 제 1이사야서 안에서도      비슷한 장래를 예언하는 13장과 14장같은 부분들에 대한 제1이사야서의 저작권도 부인      되고 무명의 포로 시대 저자가 써야 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20세기에 있어서 자유주의      경향은 이사야서중 주전 8세기의 저자가 쓰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한 연대를       현대에 가깝게 하려는 경향이 있으나 이사야서의 후반부가 팔레스타인에서 씌여진 내적      인 증거로 내용에서 언급된 나무들이 팔레스타인 고유의 것이라는 점, 저자의 지리적       관점이 분명히 팔레스타인에서 쓴 것이라는 점, 유다의 도시들이 아직 존재해 있다는       점을 들고, 이스라엘 포로 전에 씌여진 증거로 죄악상의 언급이 이사야 때의 사정과 맞      다는 점, 여러 번 언급되는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의 죄는 결코 저자가 살던 이방 나라      에 대한 공격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 지세의 언급과 우상 숭배의 지적이 팔레스타인에      살던 이사야에 부합한다는 점을 들어 이사야서의 후반부가 주전 8세기 이전 팔레스타인      에서 전반부와 같은 이사야에 의해 기록된 것임을 주장한다.

 

2. 예레미야 본문의 역사

 예레미야 36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예레미야는 바룩에게 시      켜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게 하셨다. 처음에 기록한 것은 여호야김왕에 의해 소각되고       다시 바룩을 시켜 말씀을 재기록하게 하셨다. 이러한 예레미야 본문에서 본문의 내용의      기록과정이 반복되었던 사실은 마소라 본문과 70인역을 비교해 봄으로 알 수 있다. 이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데 70인역이 마소라 본문보다 1/8가량이 짧고 장들의 배열에       있어서도 서로 달라 마소라 본문의 46-51장이 70인역에는 32장 바로 뒤에 실려있다. 이      렇게 차이가 난 것에 대해 아처(Archer Jr)는 70인역에 번역되었던 그 사본이 마소라       본문보다 더 먼저 편집되어 예레미야 생존시 이집트에서 읽혀지고 있었고, 나중에 예레      미야가 죽은 후 바룩이 그의 스승인 예레미야의 설교를 많이 수집하여 재미있게 논리적      으로 정립한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3. 에스겔 성전에 대하여

  에스겔 40-48장의 미래의 예루살렘에 세워질 성전에 대한 이해는 상징적으로 이해해야      하며 문자적 성취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라는 견해(H. L. Ellison)와 적당한 문자적 해      석을 하되 이 성전은 예수님 재림후에 세워질 천년 왕국때에 있을 성전이란 견해(          Archer Jr) 가 있다. 또한 에스겔의 성전이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적으로 가리킨다는 견해(영, Young)도 있다. 어느 것이 맞다고 분명히 지적할 수는 없지만 에스겔이 본 환상은 말세에 성취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세우실 성전을 가리키고 있다.

 

4. 호세아의 결혼에 대한 해석학적 고찰

    ① 역사적 사실로 이해하는 견해

      호세아 1:2-9, 3:1-3은 모두 호세아의 결혼 생활을 이야기하는데, 1인칭으로 서술되는 3:1-3은 호세아의 초기 결혼 생활을 이야기하며, 3인칭으로 서술되는 1:2-9는 앞의 구절의 내용보다 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린드블롬은 말하기를 호세아 자신이 호세아서의 저자가 아니고, 호세아가 죽은 후 호세아의 가족들과 호세아 생애에 대한 기록들이 편집한 것이라 한다.

    ② 가상 생활을 예언으로 나타냈다는 견해

       제사장이 음란한 여인과 결혼한다는 것이 거룩한 법과 배치되기 때문에, 부도덕한 가정을 가진 자의 예언은 역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실제 결혼 생활을 했다면, 자녀 출산과 그 이름을 통한 언관적 예언의 효과가, 그 출산 간격만큼 감소되기 때문에, 그리고 1:2에서 고멜이 이미 결혼 전에 음란을 범함 사실을 뒷받침해주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영적 음란의 중복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상적 결혼생활로 해석헤야 더 잘 부합되기 때문에 호세아의 결혼 생활을 가상 생활이라고 한다.


VI. 성문서


1. 지혜란 무엇인가 ?

(1) 구약 개관

    지혜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가치와 목적에 비추어 보아서 무슨 일을 하여야 하느냐에 대한 재치와 통찰력과 올바른 판단“이라고 한다. 그런데 히브리인들은 헬라의 철학자들이나 현대인들과 비교할 때 지혜와 지식을 분명히 구별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대 근 동 지바의 공통된 전통속에서 히브리인들의 지혜의 개념은 기술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출 31:3)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고, 사물에 특별한 통찰력을 가져 왕의 고문들로 활약했던 사람들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다.(삿 5:29)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지혜는 주로 온전한 지혜를 의미하면서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고 생각되었다.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근거한 지혜는 선과 악을 분별하는 절대덕 확실한 수단이 되며, 악한 자에게는 벌을, 선한 자에게는 상을 주는 근거를 말해 준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모든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지혜로서 생각한 것은 궁극적으로 종교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2. 잠언의 저작

    잠언서는 솔로몬과 아굴 그리고 르무엘왕의 어머니에 의해 씌여진 것으로 보지만, 양식 비평의 관점에서 볼 때 잠언서는 가장 발전된 문학적 틀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장 후기에 씌여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특히 잠언 25-29장의 저자에 있어서 25:1이 솔로몬이 기록한 잠언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나, 이 말은 ‘솔로몬의 잠언’이라기 보다 솔로몬의 잠언과 같은 유형임을 가리킨다고 본다.(카이저, Kaiser) 또한 잠언 10-22장이 1-9장보다 더 오래된 것이라는 견해가 있었으나 이는 연대의 차이보다는 문학형식의 차이라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잠언 25-29장의 견해에 있어서는 다윗궁의 현인들이 지혜의 잠언을 말했고, 이집트나 후기 바벨론에서 잠언서와 같은 비슷한 지혜의 말들을 했음을 고려할 때 구약의 잠언서 내용을 포로 후기 때의 것으로 주장하는 것은 올바른 해석이 아니라 본다. 잠언이 우가릭 문서와 시적인 표현 형식에 있어서 공동적인 부분이 B.C 7세기의 아히칼의 잠언같은 데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것도 잠언서가 포로 이전에 씌였음을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욥기의 연대

   ① 욥의 살던 때

    - 모세 이전의 시대(J. H. Raven) : 근거로는 옛날 아브라함때와 같은 씨족사회인 점, 제사가 공식적인 제사장에 의해 드려진 것이 아니라는 점, 돈의 일종으로 케시타(הטישׁק)가 언급된 점으로 보아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아처는 말하기를 욥기의 배경이 에돔 가까운 아리비아였다면, 그곳에 씨족 형태의 사회가 이스라엘 왕조 때와 같은 후기에까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레이븐의 근거가 미약하다고 시작한다. 욥기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을 보더라도 여호와보다는 엘로힘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비이스랄엘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족장들과  동시대(W. F. Albright) : 욥기의 배경이 주전 2000년대 무렵인 것 같은데 근거로는 겔14:14에 나오는 다니엘(여기서 다니엘은 성서에 나오는 다니엘이 아닌 고대 가나안 지방의 영웅이었던 “다넬”이라고 주장), 욥으로부터 추론되어지고, 욥기에 나오는 이름들이 2000년대의 순수한 이름이라고 지적한다.

   ② 본문이 기록된 때

    - 모세 이전의 열조 시대(탈무드나 기독교 학자들) : 욥기 24장에서 모세 율번의 영향을 볼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으나 이미 이런 조항들은 함무라비때도 언급되고, 보다 이전시대에도 언급되므로 신방성이 없다.

    - 솔로몬 시대(Gregory Nazianzen) : 문학적 활동이 가장 활발했고 특별히 지혜에 관심을 두어 삶의 실천적인 문제들을 깊이 생각할 때였기 때문이다. 또한 욥기의 외국 나라들에 대한 여러 가지 지식들을 살펴볼 때, 이스라엘이 외국과 무역을 하며 교통이 잦았던 시대가 솔로몬 시대였다.

    - 므낫세 시대(Ewald & Hitzig) : 므낫세 치세의 악한 때를 비추어 보며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사람들은 의아심을 갖고 있었고, 왜 의인이 고통당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제기되었음으로 이 때에 욥기가 씌여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욥기에서 발견되는 부패상은 어느 시대에도 발견될 수 있는 부패상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근거가 미약하다.

    - 예레미야 시대(J. E. Steinmuller) : 욥기와 예레미야를 비교할 때 내용과 언어에 있어서 매우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욥기외에 우스땅이 언급된 곳은 예레미야와 애가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데 씌여졌다는 것보다는 예레미야가 욥기의 여향을 받았다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 포로 후기 시대(비판적 구약학자) : 욥의 세친구가 주장하는 경직된 인과응보적인 징벌사상은 국가 번영이 하나님의 말씀의 순종에 직결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신명기적 교훈이 개인들에게 적용되던 시기, 즉 주전 7세기에 기록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신명기가 요시야와 무렵에 씌여졌다는 가설에 근거한 것이므로 신명기가 모세에 의해 씌여졌다는 이론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 별 신빙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4. 다니엘 저자와 연대

    역사적 오류(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침공이 여호야김 3년이 아니라 4년이라는 것)와 그릇된 이해를 보여주는 점, 다니엘서의 히브리어가 페르시아와 희랍의 영향을 받은 후기 후기 히브리어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점, 그리고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보다 발전된 천사론을 이야기하며 부활을 믿는 다는 점에서 주전 2세기경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때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첫 번의 것은 내용이 서로 상충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서로 다른 연대 계산법에 의한 차이며,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것은  주전 682년경 이미 페르시아가 한 나라로서 존재하여 바벨론이 헤르시아 관리들의 이름을 영향을 받아 사용할 가능성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천사에 대한 것은 이미 출액굽기, 민수기, 여호수아에서도 나타나며 부활사상은 엘리야에게서도, 욥기에도 나타나므로 페르시아 이후에 온 것이라는 근거가 미약하므로 다니엘 자신이 주전 6세기 경에 기록했다는 것이 타당하다.

 

5. 다니엘 7장의 인자(人子)

   다니엘 7장은 아람어로 씌여 있는데 원문을 보면 “인자”라는 말이 שׁנא רבכ 이다. 문자대로 번역하면 “사람의 아들 같은 이”란 뜻이다. 이 단어에 대한 해석에는 ‘미가엘 천사’(N. Schmidt)나 ‘가브리엘 천사’(Ziony zevit)로 보는 천사적 해석, ‘유대인들’(Ephraem Syrus) 또는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라도 보는 집합적 해석, 집합적이며 메시야적인 두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혼합적 해석,  그리고 바벨론 신화에서 기원된 것이라는 신화적 해석이 있다.


 

 

 

 
출처 : 개혁하는 교회
글쓴이 : 청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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