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이후의 저녁 안개처럼 하염없는 희망들이 회색의 옷을 입고 다가온다. 깊은 애수가 심금을 울린다. 감성이 있는 로렌스는 사려깊은 시선과 경쾌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오면서 거룩하고 또한 말 할 수 없는, 신비에 가득 찬 밤을 향해 아랫쪽으로 침몰될 듯이 온 몸을 신속히 움직였다. 그것은 다른 공간에서 다채로운 향락과 다채로운 공기과 음악적인 입을 가진 찬연한 이방인들이 연애의 빛을 숨쉬는 곳이기 때문에 그곳에 가는 즐거움은 그 어느때보다도 가볍고 기대감으로 온통 에너지로 가득했다.
뿌연 안개속으로 보이는 택시의 두눈의 밝음이 빛나는 별들보다도 더 반갑게 그의 시야게 들어왔다. 고귀한 향수의 향기를 의식하며 감미로운 도취속에서 와인색의 붉은 기쁨으로 신속히 차에 올랐다. '브레 슈 레스토랑으로 가 주세요!' 고요한 주택 골목의 정적을 깨고 경쾌한 소리를 내었다. 안개 속을 달려가는 도중에 덩굴과 돌들을 보았다. 웬지 모두 외롭고 이 나무는 저 나무를 보지 않고 다 혼자 있는 듯 했다. 로렌스에게는 세상의 친구로 가득했건만 이제 여기에 보편적인 관계를 의식하게 하는 무관심의 안개 내리니 그와 동행하는 친구는 더 희귀하고 더는 볼 수 없었다. 회비할 수도 없고 소리도 없이 모든 것에서 그를 갈라놓는 그 어두움을 모르는 이는 정녕 그를 현명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짧은 적막속에서 택시는 부드러운 서풍과도 같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택시운전사의 눈길은 그를 밝게 보지 않았다. 그녀가 계단을 밟고 올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피곤에 가득찬 눈을 닦아낸다. 오늘밤 조금 후에 달은 잠들고 말겠지만 별들은 눈뜨고 있으리라.거므스레한 레스토랑의 내부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으리 만큼 희미했고, 간간히 나이프가 접시를 접촉하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단련한 황금과 황금 도금으로 그리스의 금 세공장이가 만든 나이프일지 모른다는 짤막한 상식을 속으로 되뇌이며 무슨 황금동전이라도 찾듯이 구석구석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의 부츠굽이 닿는 소리는 마치 경마장의 말굽소리처럼 강하게 울려 퍼졌다. '로렌스! 여기야! ' 시먼즈의 목소리임을 금방 확신했다. 그의 목소리는 남자이면서도 여성적인 섬세함이 있고 쇳소리가 나는 톤 칼라 그 자체였다. 서로 안부를 묻고, 그동안에 있었던 역사들을 쓸쓸하게 회고하듯이 충실하게 말해주었다. 그는 자극스런 음악과 독한 술을 원했다.'꽃을 잊는 것처럼 잊어 버려요. 한 때 세차게 타오르던 불을 잊듯이...'라고 시먼스가 조언을 한다. 창 밖으로는 안개가 검은 망또처럼 덮히고 작은 고양이들이 조용히 앉아 조용히 항구와 도시를 허리 굽혀 바라보다가 어디론지 떠나간다. 시먼즈는 고개를 돌려 묻고 싶지 않은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 다우슨과 헤어졌다지? 왜 그런거야? 무슨일이 있었던 거야? ' . 로렌스는 자연스럽게 풍선에서 공기가 빠져나오듯이 툭 뱉어내었다. ' 그 때는 가장 처음 첫번 입맞춤으로 축복받은 날이었지. 이제 가슴 깊이 저미던 나의 몽상도 취할 정도로 얌전한 사람 다우슨이었지. 슬픔의 향기 꺽은 꿈이 가슴속에 회한도 환멸도 없이 남기는 슬픔의 향기에 젖어들게 하는 동정의 남자인 그는 지난봄에 이상한 힘을 지닌 봄바람을 찾아 떠났어.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아가씨의 흩어진 머리칼에서 봄바람을 보았고 그는 소리내어 웃고 있는 아가씨의 입술을 살짝 어루만졌고, 부드러운 봄날에 눈을 뜬 들판을 함께 걸으며 서서히 사라져갔어... 나하고는 아무른 상의도 없이, 단지 자신의 감정에 너무도 충실하게 내 마음의 방을 빠져 나갔어...' . 로렌스의 눈에는 희미한 공간속에서도 눈물이 반짝였으며 목소리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시먼스를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금방 알아채릴 정도로 그의 감정은 들판의 들소처럼 격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앞에있는 찻잔을 들고 소름끼쳐하듯하는 태도로, 참새가 이슬 마시듯이 한 모금 마신후에 계속 말을 이어갔다. '헤어지다니..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되다니..영원히 끝나다니...기쁨을 가지고, 또 슬픔을 지니고...인제 우리 서로 사랑해서 안 된다면 만남은 너무나 괴로운 일..지금까지는 만남이 즐거움이었으나 그 즐거움은 이미 지나가 버렸어..' . 마치 시를 낭송하듯 또렸하게 자기 감정을 노출했다. 싸늘한 밤의 접촉을 느끼러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것은 영혼의 고뇌에서 나오는 또 다른 정열이리라. 밖에는 안개속에서 얼굴이 빨간 농부처럼 볼그레한 달이 내부의 공간을 로맨틱하게 비추었다. 여수룬의 소설 <흑색 무지개> 에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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