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상담
죠지 A. 레커즈
편집자 서문
가족 상담 컨퍼런스에서 거의 매주마다 나에게 강연해 달라는 요청이 한 두 건은 꼭 있다. 학문적인 연구기관들, 전문단체들, 기독교기관들, 특히 교회단체들은 가족문제 세미나, 웍샾, 주말 수양회, 만찬등을 끊임없이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군대 지휘관들은 가족불안정과 잦은 별거 생활로 인해서 군인들이 혼란에 빠지고 있으며, 사기에도 막대한 지장이 초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족과 관계된 가정문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수많은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있으며, 산업체에서도 가족문제가 고용인들의 효율성을 파괴시키고, 사기를 저하시켜 간접적으로 기업이익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제임스 돕슨(James Dohson)의 가족영화들과 라디오 프로그램은 계속 광범위한 청중들을 확보해가고 있으며, 다양한 잡지의 기고들은 다음의 멧시지를 강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 현대의 가족은 문제투성이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여러해 전체 2000여명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오늘 우리 시대가 당면한 가장 긴박한 문제인 가족문제들 중에 몇 가지라도 해결해 보려고 한 주간동안 가족컨퍼런스를 가진 적이 있다. 참석자들은 북미에서 가장 뛰어난 가족문제 전문가들이 지도하는 여러 그룹모임에 참여했다. 컨퍼런스가 끝나면서 우리는 성경적인 기초에 근거하여 “가정에 대한 긍정적 이해”라는 글을 발표하고, 가정과 교회와 지역사회에서 가족의 삶을 개선해 나가자고 결단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결과로 무언가 달라진 것이 있었는지 의심하고 있다.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혼문제는 대중화되고 있으며, 이혼율은 높고, 아름다운 가족 연합은 찾아보기 힘들다. 상담자들은 역기능 가족식구들과 계속 상담하고 있으며, 목사들은 교회의 중직자들의 가정에서도 싸움과 불화가 계속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가족상담자들과 기독교 지도자들마저도 상담소와 교역현장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 가끔 긴장과 부딪치고, 커뮤니케이션이 깨어지고, 대인관계의 문제들 앞에서 당황해 한다.
기독교 상담 자원 시리즈를 계획하면서, 워드회사(Word)에서 일하는 나의 동료들은 가족상담를 심도있게 연구하여 이 시리즈에 포함시키자고 제의했다. 가족상담의 저자는 전문적인 저술가로서 가족상담에 정통하고 경험이 많은 분이 되어야 한다고 합의했다. 조지 레커즈(George A. Rekers)박사가 적임자로 선정되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가족들과 상담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실천적인 도움을 제공해 줄 것이다.
이 상담 시리즈는 한 권 한 권 모두 실천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게 고안되었다. 이 시리즈는 상담의 전문가이면서 강한 기독교 신앙과 광범위한 상담 경험을 가진 저자들이 저술하였다. 한 권 한 권은 정확한 심리학의 실예들을 제시하고 주의 깊은 성경연구에 기초하였다. 이 시리즈는 분명한 복음적이 관점과 주의 깊은 문서적인 뒷받침과 강력한 실천적 경향성을 가지고 있으며, 상담분야 서적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포괄적인 설명들과 문서적인 근거가 없는 수사적 표현들을 탈피하려고 노력했다. 우리의 목표는 이 시대의 기독교 상담이 당면하고 있는 최근의 것이다. 논점들을 분명하게 기술하고, 유익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기독교 상담자원 시리즈는 모두 비슷한 외형으로 만들 것이며 함께 모으면 유익한 기독교상담백과사전이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의 저자와 처음 만난 것은 1984년 여름 워싱턴 D.C.의 쇼레함 호텔에서이다. 저드슨 스위하트(Judson Swihart: 기독교 상담자원 시리즈 가운데 한 권을 집필함)와 함께, 죠지 레커즈는 가족복지와 건강에 대한 국가 지도자 포럼을 주최하고 있었다. 이 포럼은 연구모임으로 학문분야, 신학분야, 상담분야, 그리고 정부관리등이 참여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족의 운명을 슬퍼하기 위하여 모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방법으로 가족들을 강화시키고(특히 기독교 가족들을) 그들을 더 안전하게 도와주기 위해서 모였다. 후에 죠지 레커즈는 이 컨퍼런스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모든 문서들과 토의 요약들을 한데 묶어 가족생활에 대한 의미있는 책으로 출간했다(조지 레커즈가 편집하고, 레갈사에서 출판하였으며, 제목은 Family Building: Six Qualities of a Strong Family이다). 이 책은 레커즈가 계속적으로 가족문제를 연구한 결과로 재술한 여러 권의 책들 가운데 하나이다.
죠지 레커즈는 계속하여 가족상담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미국 남부에 소재한 권위있는 의과대학에서 전임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저술가와 연구자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세계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웍샾과 훈련교육을 지도하고 있다. 대부분의 해외웍샾과 훈련교육은 대개 가족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대상들의 대부분은 선교사들, 신학생들, 그리고 지역교회목사들이다. 가능할 때에는 레커즈 가족식구들이 함께 여행하며 웤샾을 지도한다. 죠지는 세계를 여행하면서 가족들이 하나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자기는 자기가족들과 자녀들을 홀로 버려두는 사람이 아니다.
다음에 나오는 글들을 읽으면서 당신은 가족을 중시하는 남자요, 가족생활의 논점들을 깊이 이해하고 성경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일급 전문 도우미(helper)를 만날 것이다. 저자의 결론은 실천적이요, 자신의 상담경험들로부터 얻은 풍부한 실례들을 들어 설명하는 것이요, 과학적인 연구조사에 근거한 것이요,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게 민감성과 정열을 가지고 설명한 것이다.
이 책은 가족상담에 대한 모든 것을 다 담은 책은 아니다. 가족 컨퍼런스와 쎄미나와 웍샾들은 계속 될 것이며, 가족식구들은 계속문제들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족들이 당신의 교회에 있거나 그들이 자기의 문제들을 갖고 당신의 상담사무실에 찾아 왔을 때에 이 책은 당신을 돕는 유익한 도우미가 될 것이다. 당신이 가족상담을 할 때에 당신은 기독교교역 가운데서도 가장 도전을 주는 분야들 가운데 하나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게리 R. 콜린스, Ph. D.
일리노이주 킬디어에서
서론
내가 미국 상원 공식청문회 지정석에 앉으려고 안내를 받으면서 걸어가는 동안에 여러 방향에서 내 눈을 자극하는 휘황한 불빛이 타오르는 불꽃과 같이 비쳐왔다. 나를 안내하는 상원직원은 상원들을 마주보고 제일 앞줄에 앉으라고 했다. 그가 내 자리 바로 오른 쪽에 앉은 갤렆조사연구소의 죠지 갤렆박사에게 나를 소개하는 동안에 나는 그 방안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대화를 희미하게 들을 수 있었다. 텔레비젼 카메라는 갤렆박사와 내가 앉아 있는 방향으로 향하여 있었다. 우리는 가족과 인간봉사에 대한 상원 소위원회 앞에서 청문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거기에 참석한 사람들은 새로운 갤렆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캘렆박사와 나는 청문회에서 이야기할 내용을 최종점검하였다. 어쨌든 그는 카메라 앞에서 나보다 더욱 편안한 것 같았다.
카메라 후래쉬가 터지고 TV담당자들이 그에게 카메라 초점을 맞추고 있는 동안에 그는 최근 수십 년간에 조사한 갤렆여론조사 수치들을 검토했다. 그는 가족생활을 완성시키고자 하는 미국인들의 열망이 50년 전이나 마찬가지로 지금도 강열하지만 이나라 사람들 중 소수만이 가족의 가치들을 실천하고 있다고 힘있게 결론지었다.
결혼한 두 쌍 가운데 거의 한 쌍이 붕괴되고 있는 미국의 엄청난 이혼율에 비추어서 상원은 이 청문회를 “붕괴된 가족”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내 자신의 증언은 주로 이혼이 자녀들의 정서적, 사회적, 학문적인 성취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추었다.1) 같은 날 여러 전문가들이 이혼이 개인들과 지역사회와 우리 국가에 미치는 경제적 심리학적 영향에 대해서 증언한다.
안정된 가족생활에 대한 열망을 성취하려고 애쓰는 가족들을 위하여 교회는 어떤 교역을 할 수 있을까? 최근 수십년동안 상담해 달라고 목사들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고난의 가족들은 증가일도에 있다. 우리의 지역 사회에는 교회와 나란히 수많은 기독교상담소들이 설립되었다. 가족상담에 대한 요청은 대단히 증가되고 있다. 20세기가 끝나고 21세기가 시작되어도 이러한 요구는 감소될 것 같지 않다. 신학교에서 가족상담분야에서 제한된 훈련밖에 받지 못한 목사들이 교회에서는 수많은 가족상담의 요청을 받고 있다. 사실 최근의 조사에서 지역사회주민들이 가족문제에 대해서 성직자를 선택한 비율은 77%이다. 이에 비해 비종교적인 상담자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14%에 불과했다. 다른 문제들(우울증, 심각한정신질환등)에서 성직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비율은 이처럼 높지 못하다.2)
수많은 목사들은 상담봉사를 제공함으로 그러한 요구에 적절하게 응답해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결국 가족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최초의 사회기관이요, 아직도 가족은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하고 훈련하는 선택된 환경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교회와 사회의 구조 자체가 가족이 붕괴될 때에 함께 붕괴될 것이다. 특별히 도와 달라고 긴급하게 요청하는 상황하에서 교회는 어떻게 조용히 서서 자기들의 눈 앞에서 붕괴되어가는 가족들의 고통을 지켜볼 수만 있겠는가?
나는 캘리포니아 주 반 누이스에 있는 가족상담소에서 여러해동안 임상심리학자로서 일했다. 이 기독교 상담센터는 한 지교회에서 시작했으나 여러 복음적인 교회들의 지원을 받는 독립봉사기관이 되었다. 이 상담소는 12명의 파트타임 상담자들과 전임 상담자들을 고용하여 목사들과 함께 개인들과 가족들을 상담하고 있다. 나는 12년 이상 목사들과 개인적으로 또는 그룹으로 만나서 그들의 교회와 지역사회에서 상담이 필요한 가족들에 대해서 토의하였다. 목사들은 이런 만남에서 토의내용들을 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면 “내가 상담하고 있는 가족에 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하고 이야기하면서 토의 내용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상담의 기술들과 신학적인 원리들을 같이 나눈다. 이런 모임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 많은 것을 배운다. 우리가 함께 나누는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지역사회와 교회에서 모두 가족문제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1950년에 12명의 아동들 중에 1명이 결손부모가정에서 자랐다. 그러나 이혼율이 계속 높아지고 결혼하지 않은 어머니가 4배가 증가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4명의 어린이 가운데서 1명이 결손부모밑에서 자라나고 있으며, 모든 어린이의 반 이상이 적어도 한 번 이상 결손가정에서 자란 경험이 있다. 미국 통계청은 1985년에 출생한 모든 어린이의 삼분의 이는 아동기에 적어도 일정기간 동안만이라도 결손부모 밑에서 자라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한다.3) 참고 인내하며 결혼서약을 지키는 부부들이 헌저하게 줄어든 결과로 이혼한 부모의 자녀들은 비극적인 정서적 고통을 당하고 있다.
내가 편집한 Family Building 이라는 책에서 하바드 대학교의 심리학자인 아만드 니콜라이(Armand Nicholi)의 연구조사는 미국의 부모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발견을 하였다. “미국의 부모들은 아마도 영국을 제외한 세계의 어느 다른 나라의 부모들보다도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다. 그런데 영국은 폭력범죄와 청소년 범죄율에서 미국보다 더 높은 유일한 나라이다.4) 경력 쌓기와 물량주의가 가족헌신과 경쟁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 결과로 자녀들은 불행스러운 희생자가 되어 고통을 당한다. 교인이든 아니든지 미국의 국민들은 약간만이라도 이유가 생기기만 하면 무비판적으로 이혼해 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 너무 많은 가정의 어린이들과 십대들은 엄청난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세뇌되고 있다. 사실 텔레비전은 가족관계에 관해서 왜곡된 가치들을 전달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이웃에서 가족식구들은 가족생활에 대한 비성경적인 사고방식들을 무의식중에 배우고 있다. 만약 이런 가치들을 적절하게 도전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둔다고 하면, 가족은 그런 가치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요, 그 결과로 가족간의 결속은 부식되어갈 것이다. 5) 이러한 상황에서 목사들과 기독교인들이 가족상담의 기술로 무장하여 상담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긴급한 요청이다.
내가 나의 조국 미국에서의 가족상담의 필요성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지만, 이러한 요청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나는 오늘 아침에 홀란드 배드호베도프에 있는 틴데일 신학교(Tyndale Theological Seminary)에서 상담과목을 가르치는 동안에 이 사실을 생각했다. 나는 암스텔담시에 인접한 시외에서 미국에서 뿐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유우럽 여러나라에서 온 상담전공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 생각을 하고 있다. 인간의 필요는 나라에 따라 서로 다르다. 그러나 가장 친밀한 인간관계구조인 가정에서 삶의 문제들이 점점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20세기 말의 징조인 것 같다.
바로 일년전에 나는 오스트리아, 그리스, 터키(다른 여러나라들 가운데서)등에서 일하고 있는 복음주의 선교사 단체의 정기 필드컨퍼런스에 강사로 초청받았다.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 외곽에서 실시된 웍샾에서 나는 유우럽의 가족들을 어떻게 상담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많은 질문들을 받았다. 논점들 중에 많은 것들이 미국과 별차이가 없었다. 지역마다 문화환경과 전통이 다를지라도 가족문제만큼은 별로 다른 것이 없다. 오히려 복음화되지 못한 나라에서 일하는 미국 선교사들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가족상담을 제공하는 것이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데에 중요한 기회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가족상담의 필요는 너무 크게 나타나고 있으며, 고난은 너무 깊이 침투해 있기 때문에 가족상담기술을 갖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멧세지들을 들을 귀를 쉽게 찾아낸다.
유우럽에서의 방문강의 경험들과 제 3세계 여러나라에서 미국의 대학에 공부하러 온 나의 학생들은 목사들의 대부분의 요구가 세계 어느 곳이나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가족 상담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은 현명한 그리스도인 교역자들의 임무이다.
앞으로 나는 이론적인 진리를 증명하기 위하여 수 많은 상담사례연구들을 사용할 것이다. 모든 이야기들은 진짜 사례에 근거하였다. 그러나 이름, 내용등은 비밀 보장을 위하여 바꾸었다. 이 책에 나오는 도표와 목록들은 더 효과적인 가족상담을 실천할 수 있게 여러분 상담자들은 도울 것이다. 상담자들은 자기의 상담시간에 필요하다면 어떠한 도표든지 스스로 복사하여 사용할 수 있다.
나는 베키 킬구스(Becky Kilgus)가 이 책이 나오기까지 정확한 타자기술을 사용하여 부지런히 도와준 것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또한 이 씨리즈의 편집자인 게리콜린스에게 감사하며, 전문가로서 지혜로운 지도를 아끼지 않은 워드사의 편집자 케리무어(Carey Moore)씨에게도 감사드린다. 나는 오스티리아 인스부룩대학교에서 온 방문의학도인 윌리 그랜더에게 특별한 격려를 받았다. 윌리, 고마워요, 상호간의 우정은 나에게 너무 귀중한 선물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책을 쓰는 동안에 사랑으로 지원해 주고 견디어 준 사랑하는 나의 아내와 5명의 아들들에게도 뜨거운 고마움을 드린다. 나는 이 책에 있는 어떠한 실수들도 활기 넘치는 나의 자녀들이 수도 없이 방해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 말은 진실도 아니고 정당하지도 못하다. 사실 나의 가족은 나의 멘토들과 같이, 나의 교재들과 같이, 그리고 나의 내담자들과 같이 나를 많이 도왔다. 그리고 독자들이 나에게 지적해주는 어떤 실수든지 그것들은 바로 나의 개인적인 책임이라는 사실을 밝혀두고 싶다.
제 1 장
가족상담의 필요
“열광적”이라는 말이 앤드류 모간목사의 그날 하루 스케쥴을 대변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일 것이다. 그는 가혹하리만치 철저하게 일을 추진하는 성격이다. 그는 아침일찍 일어나 경건의 시간을 가지고, 저녁 기도회에서 가르칠 성경말씀 준비를 하고 나서 곧 바로 시립병원으로 달려가 수술을 받고 회복실에 누워있는 환자 세명을 심방하고, 초산엄마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나서 곧바로 도시변두리에 사는 그 교회청소년 지도목사를 만나 점심식사를 하면서 하계청소년 수양회 계획을 확정지었다. 그가 교회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에는 다섯통의 전화가 그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2시의 약속 때문에 그중에 두통의 전화만 응답했다. 그는 곧바로 결혼전 상담을 위해 기다리는 두 쌍의 남녀를 만났다. 3시까지 그 상담을 끝내고 나자 긴급한 또 다른 전화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전화는 남편 없이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에게서 온 것인데, 그녀는 지금 밀린 방세를 내지 못하여 좌절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목사에게 심각한 행동장애를 갖고 있는 자기 아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울먹였다. 몇통의 편지에 싸인을 하고 나서 교회 구제기금 담당자에게 연락하여 이 여인을 만나 의논하게 하라고 교회비서에게 지시하고 곧 바로 집으로 향했다. 급히 집에 와서 저녁식사를 하고 늦지 않게 수요일 저녁 예배를 인도해야 했기 때문이다. 예배가 끝나서 가족과 함께 집에 도착하여 막내를 재우고 나서는 기진하여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쉬는데 전화벨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가 부엌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여보, 이 전화 당신에게 온 거예요, 다넬 부인이래요.”
“열다섯 살 난 내 아들 숀 때문이예요”하고 말하면서 다렐 부인은 흐느꼈다. “내 남편과 숀이 다투다가 숀은 자기 방으로 뛰어 가더니 문을 쾅소리나게 닫았어요. 우리는 그가 진정되기를 기다렸지요. 그래도 그는 다시 나오지 않았어요. 한참 후에 우리는 그의 방문을 두드리고 문을 열었어요. 그런데 그가 사려졌어요. 그리고 집을 나가니 경찰을 부르지 말라는 글만 남겨놓았어요. 만일 경찰이 자기를 뒤 쫓아 온다면 들고나간 사냥총으로 자살해버리겠다는거예요.”
다넬 부인을 진정시키고 숀이 갈만한 장소를 생각해 보라고 하고 나서 모간은 전화로 그녀와 함께 기도했다. 모간목사는 다음과 같이 권면했다. “이제는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눈대로 따라 행하세요. 그래서 숀을 만나면 전화하세요. 나는 내 사무실에서나 부인의 집에서 부인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도록 스케쥴을 잡아 놓을께요”
다음날 아침, 다넬부인은 정각 9시에 전화했다. “로버트부인에게 전화했더니, 숀이 자기가족과 함께 자기 집에 있다는 거예요. 숀은 그 집에서 잤어요. 그리고 아빠와 함께라면 목사님을 만나겠다고 동의했어요. 톰이 두 아들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목사님도 아실꺼예요. 그는 항상 자기 일에 메달려 있고, 내가 무어라해도 집에 일찍 들어오지 않아요. 애들은 아빠의 관심이 필요한데, 실제로 아빠가 애들에게 이야기하는 유일한 시간은 그들에게 숙제하라든지 무엇을 하라고 소리지를 때 뿐이예요. 에젯밤에도 톰이 지난학기 숀의 성적표를 보다가 성적이 형편없다고 야단을 쳤는데 드디어 숀이 폭발한 겁니다.”
모간 목사는 그의 사무실에서 그날 오후 늦게 숀의 가족들을 만났다. 모간목사는 숀의 가족식구들에게 현재의 갈등, 감정들, 그리고 가족관계개선에 대한 희망등을 이야기하라고 격려했다. 모간 목사가 성경말씀에서 용서라는 주제로 이야기하자 숀은 화가나서 집을 뛰쳐나간것을 용서하라고 말하여 다른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목간목사는 친구와 함께 놀러 가는 여부는 숀이 전날 숙제를 완성했는지에 따라 그날 그날 결정하기로 새로운 약속을 이끌어 내었다. 이렇게 해서 현재의 위기는 넘겼지만 숀의 가족의 근원적인 문제는 아직도 남아 있다는 사실을 모간은 알고 있었다. 그는 숀이 기독교 심리학자와 만나서 그의 우울증의 정도와 자살가능성을 더 점검해 본 후에 필요하다면 숀의 가족과 계속 상담하기로 약속했다.
목사와 가족상담
1980년대 이래로 미국 복음주의 협회는 계속적으로 가족 특별위원회를 운영하기로 하고 각 교단에서 각기 대표를 파송하여 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여러명의 가족전문가를 초청하여 이 위원회에서 의논하기로 했는데 나도 가족 상담전문가로 초청을 받아 그 위원회의 일원이 되었다. 이 위원회는 정기적으로 모여 지교회 상담교역을 통하여 가족을 강화시킬 방안들을 토의한다. 우리는 337명의 목사에게 가족상담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설문으로 조사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 결과는 1985년 복음주의 년차 대회에서 미쉬간 주립대학교와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교수인 테드와드(Ted Ward)에 의해 발표되었다.
이 설문들 가운데 하나는 목사들에게 가족교역자원들을 가장 필요로하는 주제를 열거하라는 것이었다. 다음 두가지 주제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가정경제문제, 그외에 가족교역자원을 필요로하는 주제들을 순서대로 보면 다음과 같다.
부모와 사춘기 자녀와의 관계
자녀교육
결혼상담과 결혼전 상담
알콜중독과 약물중독
이상의 6가지는 목사들이 교인가족들을 도우려고 할 때에 가족교역자원들을 가장 필요로 하는 주제들이다.
이 연구는 이 외에도 여러가지 다른 발견을 했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여러해동안 목회하는 동안에 기독교가정의 문제들과 비기독교 가정의 문제들이 점점 더 비슷해지기 시작했다고 믿고 있다. 누가 가족문제로 당신에게도움을 요청했는가하는 질문에 대해 목사들은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훨씬 더 많이 도움을 요청했으며, 남성혼자 보다는 부부가 함께 도움을 요청하는 비율이 높다고 대답했다. 세속상담자들도 비슷한 발견을 했는데, 사회적응문제로 상담요청을 해 오는 경우를 보면 사춘기 여자보다는 사춘기 남자아이들이 많으며, 남성들보다도 여성들이 훨씬 더 많이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상담전문가들인 심리학자들과 정신과의사들은 미국 문화에서 우선적으로 여성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들이 어떤 일을 문제로 규정하기를 더 좋아하며, 그것을 문제라고 더 쉽게 인정하며 더 많이 도움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가족 상담에서 대체로 여성들이 첫번째 접촉을 시도한다.
목사들은 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가족문제들을 순서에 따라 기술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목사들의 관심을 끄는 4가지 가장 중요한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1. 커뮤니케이션 문제들
2. 재정문제
3. 정서(감정)문제
4. 자녀들과의 관계빈곤
이러한 문제들은 발생빈도에서 볼 때, 세속 상담자들의 보고와 별 반 다른 것이 없다.다만 목사들은 외도의 문제를 별로 보고하지 않는 반면에, 세속 상담자들은 배우자의 외도문제에 자주 부딛친다고 보고한다.
57%의 조사대상 목사들은 다음의 진술에 동의했다. “가족파탄은 우리교회에서 점차 증가되고 있다” 그러나 조사에 응답한 목사들의 거의 절반정도는 가족상담이나 가족교역기술개발프로그램에 단 한번 밖에 참여하지 못했거나 한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목사들의 절반 정도는 그런 일로 다른 목사의 도움요청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동시에 목사들의 의견을 쓰라는 난에서 목사들은 교회밖에 있는 상담자들이나 불신상담자들을 불신하도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자기 교회에서 부딛치는 가족문제들을 다루는 기술이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20세기의 가족생활변화
최근 수십년동안에 많은 목사들과 다른 그리스도인 상담자들은 가족상담에 자신들의 시간을 점점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가족상담을 점점 더 많이 요구하게 만든 오늘의 가족상태는 무엇인가?
바로 이것이 1984년 6월에 열린 가족복지와 건강에 관한 미국지도자 포럼이 미국에서의 가족생활강화방안들을 탐구할 때에 표면에 떠오른 논점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포럼에서 강연한 주요연사들 가운데 한 분은 아-만드 니콜라이(Armand Nicholi)였다. 니콜라이 박사는 미국 대통령취임축하연이 열리는 역사적인 장소인 워싱턴 D.C.의 쇼레함호텔 대연회장에서 강연했다. 그는 미국인의 가족생활에 대하여 진지한 평가를 제시했다.
어느 국가에서이든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대체로 그 사회의 가족들의 상태를 반영합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나라의 어린이들과 사춘기청소년들을 주시다면, 이 나라에서 가족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의 경향성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 가운데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족할만큼 상당한 자살증가를 봅니다. 우리는 또한 그들에게 자행되는 폭력 범죄들 뿐 아니라, 그들에 의하여 자행되는 폭력범죄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또한 정서장애와 우울증과 성적정체성위기(동성관계도 꾸준히 증가되고 있다)의 증가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독특하게 일어나고 있는 하나의 현상을 봅니다. 그것은 곧 만연되어가고 있는 약물남용입니다. 개인의 정서적 상태를 바꾸기 위해서 심리적 자극성 약물을 들이마시거나 먹거나 주사하는 경향이 곧 그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경향을 어린이에게서도 발견합니다. 이것은 30여년전에 시작된 가족 안에서의 변화에 상응하는 변화입니다. 그 변화는 무엇입니까?
1. 어린이 돌봄을 다른 사람에게 맡긴것.
2. 밖에 나가 일하는 어머니가 증가된 것.
3. 이혼이 점차 증가된 것등입니다. 6)
니콜라이는 부모들이 점차 자기들의 자녀를 돌보는 책임을 아이를 돌보는 자와 탁아소와 유아원에 맡겨 왔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그는 텔레비젼이 미국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광범한 영향을 끼쳐 왔으며, 특히 어린이들에게 반가족적인 가치를 전달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혼과 사생아
오늘 서구 사회에서는 수 많은 아이러니가 일어나고 있다. 한 편으로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쌍들이 많아지고, 젊은이들은 나이들까지 결혼을 연기시키고 있다. 비슷하게 1960대 이후에 서구세계의 국가들 가운데서 피임수단들이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사생아의 출생율은 지난 30여년간 배가되었으며 임신중절의 비율도 급격히 증가되고 있다.
1970년에서 1982년까지 미국에서, 미혼모와 함께 살고 있는 어린이의 수는 50만에서 280만으로 6배 가까이 증가했다. 현재 5명의 어린이중 한 명은 혼외관계에서 태어나고 있다.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어린이의 수는 1970년에서 1982년까지 230만에서 510만으로 배 이상증가했다. 그 외에 310만의 어린들은 별거중인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7)
편부모가족의 증가율은 양부모가족의 증가율보다 20배 가까이나 된다 이혼은 새로운 가난의 사례를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어머니가 가장인 미국 가정의 52% -600만의 어린이들을 포함해서-가 가난하게 살고 있다. 8) 전체적으로 이혼율은 1980년대에 조금 떨어지긴 했으나 1890년 이래 수백퍼센트 증가 되었다.9)
부모와의 소원감
그러나 이혼만이 우리사회에서 부모와의 소원감을 가져오는 요인은 아니다. 어린이를 가진 결혼한 부부의 52%는 부부모두가 직장을 갖고 있으며 너무 직장에 메여 어린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을 빼앗기고 있다. 그 결과로 소위 “열쇠아이” 즉 양부모가 직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돌봄을 받지 못하고 하루 중 대부분을 홀로 버려지는 12세 이하의 아이들이 현재 650만에 달하고 있다.10)
양부모가 모두 직장을 갖는 가족의 꾸준한 증가와 직장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부모들로 인해서, 미국의 아이들은 영국을 제외한 어느 다른 나라들 보다도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다. 니콜라이는 바로 이 한가지 사실에 오늘 미국의 가족들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정서적인 문제를 증가시키는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정신적인 정서장애(육체적인 원인에서 오지 않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이 아동기에 부모의 죽음이나 이혼이나 또는 부모가 직장일로 너무 바빠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11)
급진적인 여성운동의 요소들 가운데 이 사회의 수 많은 여성들에게 혼란을 일으키는 급진적인 요소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남편에게 순종적이고 집에서 가사일만 담당한다면 남녀 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그들은 “해방된”삶의 방식에도 불안을 느낀다.
어린 아이들의 어머니도 돈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 때문에 일을 해야겠다는 압력을 받는다. 많은 여성들은 직장에 취직하여 일하면서도 불안을 느낀다. 그들은 자식들과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 때문에 죄책감을 갖고 산다. 그러나 그들은 가정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죄책감을 갖는다. 그들은 월급을 받지 못하는 것은 이 사회에서 덜 생산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탁아소에서 월급을 받으며 아이들을 돌보는 여성들은 자기 집에서 자기 자녀를 돌보는 여성들보다 자신들을 더 가치 있다고 느낀다(사실 직업을 갖고 있다는 생각과 봉급 때문에). 여성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하여 봉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글쎄요, 많은 사람들은 그녀에게 대학교육을 헛되이 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물질 운명의 가치관이다: 만약 당신이 무엇에든지 돈을 붙여 놓는다면 그것은 가치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자기의 배운지식과 교육을 가지고 자기 자식을 돌보는데 사용하는 것은 돈과 지위에 따라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에서 별로 의미가 없는 것같이 여겨지고 있다.
많은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양보다 질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들은 “우리가 질 높은 시간을 갖는다면 양적인 결핍을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하고 가정한다. 베스트 셀러 목록에 들어 있는 책들은 “일분 아빠”, “일분 엄마”등을 이야기하며, “질 높은 전화사용”과 같은 구절들을 주장한다. 그러나 당신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우리가 호흡하는 공중의 산소와 같은 것이다.12)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양질의 공기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만약 당신이 앉아 있는 곳의 공기가 과도한 탄산까스나 매연으로 오염되었다면, 당신의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기의 질만이 아니다. 공기의 양도 중요하다. 우리는 8시에서 8시 15분까지 양질의 산소를 호흡하고 9시까지 공기를 마실 수 없다면 살아 남을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산소와 같은 것이다. 자녀들은 질 높은 관계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에게는 양도 필요하다.
가족문제의 공통근원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다른 수많은 문제들은 가족생활의 타락의 결과로 오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아동학대와 유기쎈타는 적어도 130만의 학대와 유기사례들이 미국의 가족들 가운데서 매년 발생한다고 추산한다. 6만 미성년자 매춘이 해마다 미국에서 보고되고 있으며, 이중 80%는 가출자들이다. 매년 180만명의 청소년들이 가출하고 있으며, 집으로 돌아온 자들 가운데 10%는 가출해 있는 동안에 성적으로 학대당했다고 보고한다.13)
연구조사에 따르면 부모의 이혼으로 인하여 아버지와 따로 살고 있는 사춘기 소녀들은 10대에 임신하게 되는 확율이 다른 소녀들보다 훨씬 높다.14)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서 편부모 슬하에서 살고 있는 소녀들은 양부모 슬하에서 살고 있는 소년들보다 행동장애, 정서장애, 자존감 결여, 사회적 성숙장애, 성적 정체성문제, 약물과 알콜 남용, 청소년 범죄행위, 자살, 학교적응 문제, 학교공부장애들에 빠지는 확률이 훨씬 더 높다.15)
최근 수십년간의 가족생활 불안정으로 기독교 가족상담에 대한 욕구가 점차 증가되고 있다. 가족상담을 요청하게 만드는 문제의 종류들은 다양하다: 아동행동장애, 가족식구에 의한 알콜이나 약물남용, 재혼후의 부모-자녀 부적응, 미혼십대의 임신, 가족간의 커뮤니케이션 문제, 실직에 대한 대책문제, 아동양육권분쟁, 가족 식구중 심각한 정서장애, 범죄문제, 숙제하기 거절, 십대반항, 아동징계문제, 또래 압력등등.
최근에 나는 워싱턴 D.C.에 소재한 죠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거행된 가족 연구위원회의 년차회의에 참석했다. 거기에서 채플힐에 소재한 노드케롤라이나 대학교의 사회학 교수인 피터 얼렌버그(Peter Ulhlengerg)박사는 미국 사회의 사춘기 청소년들의 복지에 일어난 최근의 변화에 대한 강연을 했다.16) 얼렌버그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상기시켰다. 사회과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이 어린이 복지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지표의 대부분은 청소년 복지의 증진을 가져올 수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연구 조사에 따르면 같은 기간 동안에 청소년 복지는 실제로 하락했다. 가난과 대가족구성과 낮은 부모의 교육수준등은 아동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널리 인정되어 왔었다. 지난 25년간 위의 세가지 요인(가난, 대가족구성, 부모의 낮은 교육수준)이 없는 가정에서 성장한 십대의 비율이 ⅓에서 ⅔로 거의 배가 되었다. 동시에 학교제도에서 학생당 경비가 상승되었고, 교사들도 질적으로 향상되었으며, 학급당 학생수는 감소되었다. 연방정부가 지출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사회복지 예산은 크게 증가되었으며, 여러 연방기관들은 수백가지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주관하였다. 그러나 청소년 복지의 지수는 이 기간동안에 실제로 하락하였다.
․학교의 학력과 지성적 성취는 하락하였다.
․1960년에서 1980년 사이에 미국 국민의 사망율은 23%나 감소했다. 그런데 다른 나이 집단에서는 모두 사망율이 감소한 반면 15세에서 25세까지의 사망율은 증가되었다. 이 집단에서 오토바이, 차량등의 사고로 인한 죽음, 자살, 그리고 살인등에 의한 죽음의 비율은 급격히 증가했다.
․ 청소년 범죄율이 1960년에서 1980년 사이에 증가했다.
․ 약물과 알콜 남용이 현저하게 증가되었다.
․ 성관계를 가졌다고 보고하는 십대의 비율이 1971년에서 1979년 사이에 배가 되었으며, 그 결과 ⑴ 미혼 10대 어머니가 낳은 자녀들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으며, ⑵ 성관계로 전염되는 병에 걸린 10대가 증가 되었고, ⑶ 10대 임신중절이 현저하게 증가되었다.
우리 나라의 어린이들이 점점 더 많이 물질적 풍요속에서, 소가족안에서 그리고 높은 교육을 받은 부모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어째서 10대의 복지는 현저하게 하락되었을까? 얼렌버그는 어린이와 청소년 복지의 결정적인 요소는 자녀와 부모간의 결속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1960이래 계속 되어온 부모-자녀 관계의 양과 질의 저하는 다음의 두가지 경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⑴ 여성들의 노동력 참여의 증가, ⑵ 이혼율의 증가. 이 두가지 요소들은 모두 부모와 자녀들간의 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얼런버그는 자기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어머니들의 “시간의 질”이 어머니들의 직장에서 일하므로 해서 매우 제한되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부모들이 이혼한 어린이들은 심각한 정서적 격변을 경험한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헌신하지 못하게 하는 또다른 요인은 성인들이 자기 자신의 성취에 더 많이 헌신하기 때문이다. “자기-성취, 또는 자기-완성, 또는 자기-실현은 필수적으로 자기-희생적인 행위의 감소를 가져온다. 그러한 환경에서 어린이들은 나쁘게 대우 받는다. 미숙하고 의존적인 자녀들의 욕구는 자기 자녀의 복지를 위해서 자기의 개인적인 목표들을 희생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회에서 만족스럽게 충족될 수 없는 것이다.”17)
1970년대에 일어난 사고방식의 변화의 연구에서 다니엘 양켈로비치(Daniel Yankelovich)는 오늘의 부모들은 과거의 부모들보다 자기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더 작은 희생만을 한다는 말로 자기의 연구를 요약한다.18) 얼렌버그의 미국 문화비평은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공동체를 중시하는 유대-기독교적인 가치관에서 더 자기 중심적인 개인주의 가차관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자기 중심적인 개인주의는 강한 가족개념과 강한 공동체 개념과 상반되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의 문화위에 미치는 대중매체의 영향은 반복적으로 다음의 사실들을 제안하여 우리에게 프로그램시키고 광고하고 있다. 즉 물질주의는 개인적인 행복에 이르는 합당한 수단이요, 개인적인 행복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상의 목표라는 것이다.
가족상담자들이 직면하게 될 문제들 가운데 많은 것들은 더 이상 남편-아내 관계와 부모-자녀관계를 영구적인 것으로 보지 않으려는 개인들의 숫자가 증가되는데 따른 부산물들이다. 인생행로중에 초기단계에서 문제들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증가되고 있다. 그 이유는 점점 더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을 돌보는 책임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가 하나님이 세운 가족생활에 대한 법칙들을 던져 버리는 일을 가속화시키는 만큼 우리는 가족을 함께 결속 시켜오던 연속성과 헌신을 포기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약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가족 식구들-아이들과 노인들 모두-은 돌보지 않고 버려졌기 때문에만 크게 고통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오늘날 수십년전만해도 생각할 수 없었던 임신중절, 유아살해, 그리고 안락사등의 옹호로 말미암아 크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19)
가족상담의 초점
우리는 가족상담의 필요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이것은 서구 사회에서 수많은 가족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통계자료뿐 아니라 복음주의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사들을 연구조사한 결과를 보아도 명백하다. 이러한 경향성을 내다보면서, 기독교가족상담자는 가족들의 합당한 기능수행에 관해서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기독교 상담자는 누구나 가족에 대한 수 많은 긍정적인 성경의 가르침을 마음에 갖고 있을 것이다. 솔직히 가족 상담은 분명한 가치관에 근거해서 상담해야 한다. 예를 들면, 가족상담자는 커뮤니케이션 빈곤에 반대하여 훌륭하고, 분명하고, 열려진 커뮤니케이션을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가족식구들간의 화해와 갈등의 해소를 미해결의 갈등이 영구화되는 것보다 훨씬 가치있는 것으로 여긴다. 적극적으로 부모가 자녀양육과 자녀돌봄에 참여하는 것을 자녀의 필요를 거절하는 것보다 가치 있다고 판단한다.
목사에게나 기독교 상담자에게 찾아오는 가족은 세속적인 상담자들이 택하고 있는 가치 보다는 가족에 관한 기독교적 가치에 따라서 상담해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가끔 가족 상담자들은 이러한 가치를 분명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든지 기독교 상담자들은 기독교적인 가치관에 따라 가족들을 상담해야 할 것이다.
가족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사람들이 가족에 대해서 가지는 기대는 가족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신적인 구조로 인식하느냐 또는 편리에 의해서 인간이 만든 인간의 창조물로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세속 상담자들은 가족이 단순한 인간들의 계약이거나 사회적인 인습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에 가족식구들이 창조주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개념은 없다. 자녀를 가질 것이냐 또는 계획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을 것이냐 하는 결정은 자기 자신이 선택해야 할 개인의 권리로만 인식된다.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부부간의 갈등이 상승하거나 계속되는 경우에, 부부관계 포기는 중요한 하나의 선택으로 고려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난다. (히브리서 13:4, 고린도전서 6:14, 에베소서 5:21-33, 시편 127:1, 잠언 18:22).20)
이에 반해서 기독교 가족상담자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가족구조를 창조하셨다고 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위해 하와를 창조하시고 평생동안의 결혼언약으로 그들을 하나가 되게 만드셨다. 여기에는 하나님과 남자와 여자의 3자간의 언약이 포함된다(창2:22-24, 사49:15). 하나님께서 가족단위를 지으셨을 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이 땅에 자기의 형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하셨다(엡5:22,23, 창1:27,28).
가족관계들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세속적인 가족 상담자들중에는 비논리적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가족관계를 정의하는데에 고도로 탄력성을 갖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같은 집에 살면서 경제적인 자원들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을 모두 하나의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서로간에 혈연관계가 없거나 동성연애 파트너까지도 가족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상담자들이 인정하는 성경적 가족의 정의는 결혼한 양성부부와 그들의 자녀들 또는 입양한 자녀들로 구성된 핵 가족에 기초하고 있다. 성경적인 의미의 가족은 또한 공동조상에 뿌리를 둔 모든 핵가족들을 포함한 대가족을 말하기도 한다.21) 성경적으로 이야기하면, 사람들간에 가족관계가 있다고 할 때에, 그것은 남성과 여성간에 결혼으로 맺어진 부부, 혈연관계, 부모가 낳은 자녀, 공식적으로 입양한 자녀등을 의미한다.
한 가족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가족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혼란에 빠진 오늘의 사회에서, 가족상담자가 진정한 가족관계의 기초인 헌신이 무엇임을 분명히 밝혀주고, 헌신적인 가족관계와 다른 인간관계를 분명하게 구별해 주는 것은 중요하다. 예를 들면, 입양한 자녀는 낳은 자녀와 똑같이 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위탁자녀는 다른 수준의 헌신을 가지고 양육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기관이 위탁자녀를 다른 가정에 맡기게 되면 관계가 끝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위탁자녀에게 행사하는 부모의 책임과 권위도 자기가 낳은 자녀나 입양한 자녀는 무언가 다른 점이 있다. 가끔 기독교 상담자는 성경적인 관점이 어떻게 세속사회의 관점과 다른가를 강조해야만 한다. 성경은 동성연애에 관해서, 그들의 관계가 아무리 특별하다고 할찌라도 그것을 결혼이나 가족이라고 취급하지 않는다.
가족의 목적은 무엇인가?
어떤 세속가족상담자는 단위가족식구의 필요와 욕구라는 관점에서만 가족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들은 가족식구들의 개인적인 필요와 욕구들이 합당한 수준으로(물론 타협과 절충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충족되는 상태를 최선의 가족기능으로 보고 있다. 가족은 자기의 가정을 단순히 “충전소”로 보고 여러가족 식구들이 필요할 때에 들려서 “봉사받는 장소로”생각할 수 있다.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나의 욕구가 가족 밖에서 더 잘 충족이 된다면, 내가 나가서 다른 관계를 추구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어린이들의 욕구들은 부모의 보호에서 보다 탁아소 시설에서 더 훌륭하게 봉사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기능의 대부분은 가족 밖에 있는 사회기관으로 이전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 견해에서는 심지어 성적인 욕구까지 부부간에 동의만 된다면 다른 데서 충족시킬 수도 있다.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것들을 오늘의 부부와 가족관계의 새로운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와 반대로 기독교 가족상담자는 하나님께서 가족에게 특별한 명령을 주셨으며 가족안에서 식구들 각자의 역할 위임을 주셨다고 믿는다. 가족의 중심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대로 자녀를 낳고 그 자녀들을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게 훈련시킴으로 이 일을 성취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환대, 긍휼, 그리고 전도의 교역은 기독교 가족생활의 필수적인 부분들이다.
성경은 자녀들을 주님이 주신 기업이요, 하나님께서 주신 상급이요, 하나님께서 친히 부모의 손위에 주신 것이라고 가르친다(시편 127편, 128편). 그러므로 부모들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께 받은 자녀들을 돌보는 책임을 수행하여야 한다.이것은 부모들이 이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 맡기거나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가족은 자기들의 책임을 완성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다른 자원들을 사용할 수 있으나 부모들에게는 자기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계와 교훈으로 자녀들을 양육하라는 권면을 하고 있다(엡6:4)
그러므로 기독교 가족상담자는 부모와 자녀들간의 소원한 관계를 어쩔 수 없는 사회현실이라고 보아서는 안된다. 즉 부모는 자식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기독교 가족상담자는 이와는 반대로 가족생활을 다스리시며 가족관계 모델을 정하신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규범적인 지침들과 명령들을 받았다고 믿는다(창33:5, 시78:1-8, 신4:9, 6:1-9, 딤전 2:15, 잠17:6, 엡6;1-4). 가족은 하나님이 주신 기능과 목적들을 가졌기 때문에, 기독교 가족상담자들은 상담의 목표를 설정할 때 이것을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상담하는 동안에 자주 이러한 목표들을 분명하게 이야기해야 하며, 상담자는 이 과정에서 성령께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그 가족을 인도하시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기독교 가족상담자는 가족식구들이 가족의 필요들을 희생시키고 자기 개인의 독립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것을 지원해 주어서는 안된다. 가족상담자는 성경을 열고, 하나님의 기본적인 계획을 가족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하나님은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생산적으로 봉사하며, 하나님의 계획을 이땅위에서 실현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이러한 독특한 목적을 확인하고 실천하기를 원하신다(창1:27,28, 마28:18-20, 신6:7, 11, 19, 딤전 2:15-3:13, 고전 7:2-16).
상담시간에 목표를 정하면서 가족상담자는 가족들을 격려하여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순종하도록 도와야 한다.
상담자는 가족들에게 분명한 성경의 명령들을 지적해 주어야 한다. 자녀를 부양하고, 어린이들과 나이가 많아 도움을 받아야 하는 가족식구들의 육체적인 필요들을 채우고, 장애가족식구들을 돌보며, 가족환대와 긍휼의 실천을 통하여 자기의 지역사회의 필요까지 채우는 것등은 가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명령이다. 22)
결론적으로, 이혼률의 증가, 무혼부모의 증가, 심각한 성적 방종, 그리고 부모의 자녀양육 책임포기등으로 인해서 가족상담의 필요성은 높아만 가고 있다. 오늘날 자식이 부모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점차 감소되어가고 있고, 부모-자녀 결속은 약화되고있다. 그러므로 목사와 다른 기독교 상담자들은 가족상담방안에 특별한 기술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가족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을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모든 가족 상담이 기초해야 할 틀을 제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제 2장
근원적인 문제탐구
어느날 오후 나는 10대소녀 말린다의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결혼도 하지 않는 자기 딸 말린다가 임신했기 때문에 상담 받기를 원했다. 어머니는 자기 딸이 임신중절을 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임신중절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바로 이것이 당면한 그녀의 문제였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의 근원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겉으로 나타난 문제밑에 숨겨져 있는 근원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여러가지 근원적인 문제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아버지와 딸 사이에 감정적인 거리감이 있을 것이다. 연구조사에 따르면 아버지와의 관계에 거리감이 있는 미혼십대소녀들이 임신할 가능성이 더 많다는 것이다.
또는 말린다와 그녀의 어머니사이에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 다른 연구조사는 자기 어머니와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갖고 있는 10대 소녀들의 임신율이 매우 낮은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어쩌면 그 임신이 근친상간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아버지나 오빠와의 관계에서 임신할 수도 있다. 근친상간관계는 친아버지와 살고 있는 가족에서보다 계부와 살고 있는 가족에서 4배내지 5배가 높다. 우리는 이혼과 재혼의 증가로 계부와 살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므로 이점이 근원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또는 그 10대 소녀는 독립을 위해 자기 부모와 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딸이 보통 누구나 갖고 있는 건전한 독립을 허락해 주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해방시키고, 어린애를 가짐으로 성인이 되려고 반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외에도 여러가지 다른 가능성들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족상담자에게 이야기하는 표면의 문제가 여러가지 근원적인 문제로부터 생겨난 것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 분명하게 드러나는 하나의 문제는 죄의 문제이다. 말리나는 결혼전에 성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것은 스스로 선택한 것일 수도 있고(자기의 죄), 강제로 당한 것(강간자의 죄)일 수도 있다. 어떤 가족들은 자기들의 딸에게 성문제에 관하여 옳은 것과 잘못된 것을 전혀 이야기 해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도덕적 가르침의 결여가 또 하나의 근원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제1차 가족상담면접
일반적으로 말린다의 어머니와 같이 가족식구들 중 한 사람이 상담자에게 전화하여 자기 개인의 문제로 도움을 요청하며 면담을 약속하든지 또는 여기의 사례와 같이 다른 가족 식구들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가끔 가족 식구들 중 어느 한 식구를 불평하며 전화할 수도 있다(“말리다가 임신을 했는데 임신중절을 하려고 하고 있어요”, 라든지 또는 “나의 10대 아들이 귀가시간에 집에 돌아오기를 거절하고 있어요”라는 불평을 한다).
많은 가족상담자들은 그러한 불평을 단순히 “우! 내 가족이 상처입고 있어요”라는 의미로 해석한다.23) 결국 그들은 그 집에 같이 살고 있는 모든 가족 식구들이 첫번째 가족상담 면접시에 함께 오겠다고 요구했다. 이것은 그 가족이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그리고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하여 가족식구들이 어떠한 전략들을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를 얻는 기회가 되었다(이 경우의 스트레스는 첫번째 상담면접으로 말미암아 받는 스트레스를 의미한다).
다른 한편 유명한 가족 치료사인 버지니아 새터(Virginia Satir)는 가족상담을 할 때에 처음 두번의 면접상담은 자녀없이 아내와 남편만 함께 만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부모로서 그들 부부가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과 함께 그들 부부의 관계를 바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터의 주장에 따르면, 4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있을 때에는 처음 면접상담때 그들도 부부와 함께 데려오고, 그 다음에 부부간의 문제를 상담할 것이요, 그리고 나서 4세 이상의 아이들도 포함하여 상담하는 것이 좋다. 4세 이상의 어린이들은 그 이후 가족상담이 끝날 때까지 부모와 함께 상담에 참여하여, 현재 당면한 어린이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일어나는 자녀들의 모든 삶을 상담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24) 다른 가족상담자들도 부모들만 먼저 만나 가족상담의 접근방향을 알게 하고 그후에 모든 자녀들을 상담에 포함시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가족치료사인 죤E.벨(John E. Bell)은 9세미만의 어린이들을 제외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9세 미만의 아이들은 아직도 자기 중심적인 감정들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가족의 문제를 심사숙고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25)
영향력이 있는 가족상담의 저술가인 제이 할리(Jay Haley)는 첫번째 가족 면접시간은 어떤 문제 또는 문제들에 관심을 집중할 것인지를 합의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26) 할리는 미리 계획된 체계적인 단계를 거쳐 다음과 같은 것들을 얻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⑴ 모든 가족 식구들을 가족 상담에 참여하게 한다. ⑵ 가족 식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기가 원하는 변화들을 확인하게 한다, ⑶ 해결방안을 세우기 전에 가능한한 완벽하게 가족 문제를 정의한다.
“경험이 풍부한” 가족 상담자는 첫번째 가족면접 때에 가족식구들 각자가 자기 노출을 통해서 자기들의 취약성을 드러나게 한다. 가족식구들이 상담자에게 서로에 대하여 불평할 때에, 상담자는 직접적으로 가족식구들을 향하여 자기 감정을 이야기하라고 해야 한다. 가족 식구들이 서로에게 자기의 감정을 이야기하게 하고 자신들의 내면을 노출시키도록 하는 이유는 이 과정에서 가족문제를 풀어나갈 해법을 발견할 희망이시작되기 때문이다. 가족상담자 월터 켐플러는 가족상담을 하면서 대결적인 방법으로 가족상호간의 대화를 촉진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27)
서로 다른 가족 상담자들은 첫번째 가족면접에서 서로 다른 접근들을 사용한다. 그들의 접근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론방향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또한 도움을 요청하는 가족들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 새터와 같은 몇몇 상담자들은 과거의 가족 이벤트들 중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통해서 가족식구 각자의 관점들을 비교하면서, 첫번째 면접시간에 가족생활의 역사를 수집한다.28) 제랄드 쥬크(Gerald H. Zuk)와 같은 다른 상담자들은 현재의 가족기능상태와 활동들을 우선적으로 점검하면서 가족사에 대한 정보를수집하려고 한다.29) 또 다른 상담자들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의 현장상황을 중시하고 공식적인 가족 역사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가족도표 또는 족보
가족의 역사를 얻으려고 작정한 가족상담자들은 가족도표위에 그 가족의 3대나 그 이상의 가계를 지도로 그리는 테크닉을 사용한다. 그들은 이 도표를 종이 위에나 또는 칠판에 그린다. 이 도표는 그 가족의 전체적인 구조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가족식구들과 가족경계선을 정의하는데 도움이 된다.30)
이 도표는 가족 식구 한 사람 한 사람과 그들간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하여 표준화된 상징들을 사용한다. 속이 빈 원은 여성을 의미하고, 네모는 남성을 묘사한다. 결혼은 여성을 의미하는 원과 남성을 의미하는 네모를 연결하는 가로선으로 표시한다. 그 가족의 자녀들은 가로선(결혼을 의미하는)중간에서 밑으로 세로선을 그어 표시한다. 가로선을 가로 질러서 가로선을 찌르는 두개의 사선은 이혼을 의미하고, 재혼은 새로운 배운자의 상징을 그리고 또다른 가로선을 그려서 표시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족보를 만드는 것은 가족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는데에 위협을 줄이기 위한 한가지 방법이다. 상담자는 이름들, 나이들, 그리고 경력들과 같은 이미 확인된 정보를 질문하면서 족보그리기 작업을 시작한다. 결혼, 이혼, 죽음, 이사, 그리고 재혼과 같은 중요한 삶의 변화를 이 과정에서 얻게 되며, 가족도표를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가족식구들의 분쟁이 노출되기도 하고, 가족의 위기들과 가족의 비밀들이 드러나기도 하는등 상담에 필요한 중요한 문제들이 발견된다.
상담자가 가족도표의 방법을 사용하든지 아니하든지간에 가족문제들을 점검하는 것은 가족 상담의 첫번째 단계가 되어야 한다. 가족 상담자는 가족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하며, 가족생활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이러한 문제파악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가족 도표를 그린 후에 가족상담자는 가족역사를 더 완전히 파악하기 위하여 좀 더 구체적인 질문들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부부가 원하는대로 부부와 함께 면담하면서 할 수도 있고 부부각기 따로 따로 면접하면서 할 수 도 있다. 다음에 제시하는 개요는 취급해야할 잠재적인 질문들의 목록이다. 구체적으로 부부를 면접할 때에 당신은 이 질문들 중에 얼마를 선택하여 질문하거나 또는 면접과정에서 일어나는 관련된 질문들을 물어야 할 것이다.
구조로서 가족
한 가족이 목사나 가족상담자에게 올 때에는 보통 당면한 하나의 불평이 있다. 어떤 상황을 이야기할 것이나 사실은 그것이 표면적인 것에 불과할 것이다. 즉시 당신은 근원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당면 문제의 겉표면 아래에 숨겨져 있는 가족문제들을 점검하기 위하여, 한 가족이 어떠한 방식으로 역기능에 빠지는가를 이해하여야 한다. 가족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든지 역기능에 빠지든지간에 가족은 하나의 구조이다.31) 이 구조는 오랫동안 서로간에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사실 가족 단위는 어떤 사회에서든지 기초적이요, 근원적인 구조이다.
가족을 천정에 줄로 묶어 메달려 있는 장식용 자동차로 비유해서 그려보라. 그 줄은 가늘고 긴 강철봉 중간에 걸려 있으며, 강철봉 양쪽 끝에 다른 줄들이 연결되어 있다. 각줄마다 또 다른 것들이 메달려 있다. 그 자동차는 줄에 메달려 조심스럽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 현재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 당신이 만약 그 위에 조그만 것이라도 올려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전체의 구조에 영향이 미칠 것이다. 그 자동차가 흔들거리다가 다시 균형을 되찿았다면 그것은 다시 한번 처음의 평형상태로 되돌아 갈 것이다. 당신이 균형을 유지시키고 있는 줄 하나를 잘랐다고 가정해 보라. 그 구조에 어떤 영향이 미칠까? 이것이 바로 하나의 구조로서의 가족을 비유한 것이요, 어떻게 그 구조가 역기능에 빠지는지를 보이는 그림이다.
이 구조에는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부분들이 있다. 그것은 함께 변하는 상호연결된 요소들로서 가족안에서 하나의 요소의 기능이 다른 기능들에 상호 의존하여 수행되는 것이다.
가족의 규칙
위의 자동차가 중력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듯, 가족구조도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가족 안에는 가족식구들이 이해하고 있는 규칙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분명하게 선언된 것일 수도 있고 암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32) 이러한 규칙들은 꼭 목록화하고 부엌에 있는 냉장고에 붙여 놓은 것만이 아니라 가족들이 성장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받아 들인 것들도 있다. 이러한 규칙들이 가족들 가운데서 행동모형을 만들어 간다.
몇해 전에 나는 다른 대학에서 나에게 지명하여 보낸 교육조교를 데리고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도나그린이다. 그녀는 매우 똑똑하고 능력있는 조교였다. 그녀는 또한 아주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녀는 내게 자기의 룸메이트의 초청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도 기독교인이었고, 대학원학생이었다. 도나는 그녀와 함께 그녀의 집에서 주말을 보내기로 했다 도나는 그녀의 집에서 머무는 동안에 그 집 식구들로부터 크게 환대를 받았다고 느꼈다. 그들은 도나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동네의 볼거리들을 보여주었는데, 도나는 이 동네를 처음으로 구경하였다. 그들이 도나에게 너무친절하였기 때문에 일요일 저녁에 대학으로 돌아오기 위하여 그 집을 떠날 때에 도나는 진심으로이런 말을 했다. “이처럼 훌륭한 주말을 보내게 해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나는 이 동네를 보면서 아주 즐거웠습니다.” 이 말을 하면서 도나는 자연스럽게 감사의 표시로 친구의 아버지를 껴안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런데 즉시 친구의 아버지가 얼어붙고 경직되었다. 도나는 그 즉시 자기가 그 집의 규칙을 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우 거북스러운 순간이 되었다 모두가 이야기를 멈추고 도나를 노려 보았다.
이것은 도나에게 충격이었다. 도나의 집에서는 가끔 서로 껴안아 인사했고 대학으로 떠나려고 할 때에는 특별히 그러했다. 그러나 도나의 룸메이트의 가족들에게는 암묵적인 하나의 규칙이 있었다. 그것은 어디에도 써 붙여 놓지 않은 규칙이다. 이 가족은 결코 껴안아 인사하지 않았다. 도나가 그녀의 룸메이트와 함께 차를 운전하여 대학교로 돌아 올 때에 그녀의 룸메이트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너는 정말로 나의 아버지를 놀라게 만들었어. 내 아버지는 정말로 크게 충격을 받았을거야. 우리 가족은 결코 그런식으로 껴안아 인사하지 않아. 아빠는 그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해 쩔쩔매었을꺼야.”
가족 가운데는 이와 같이 여러가지 종류의 규칙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규칙들은 어떤 특정한 가족관계의 모형을 결정한다. 가끔 한 가족의 근원적인 무제들을 점검해 나가는 과정에서 가족 상담자는 이런 암묵적인 규칙들을 확인하고 그 규칙들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그 규칙이 당면한 문제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가족경계선
가족 안에는 어떤 류의 하부 구조들이 있어 독립된 가족 기능을 수행한다. 가족 가운데서 흔히볼 수 있는 하부구조들 가운데 하나는 부부관계이다. 아버지-아들 관계가 또 하나의 하부구조로 작용할 수 있고, 아버지-딸 관계, 어머니-아들관계, 어머니-딸 관계들도 하부구조가 될 수 있다 .자녀들도 함께 그들 사이에 어떠한 관계를 가질 수 있다. 조부모, 아저씨, 아주머니, 그리고 사촌 형제들도 대가족 하부구조를 만든다. 가끔 가족 상담자는 그 가족의 하나의 하부구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하부구조에 속한 사람들만 집중적으로 상담하는 면접시간들을 가질 수 있다.
한 가족이 다른 가족과 가족 경계선을 갖는 것처럼, 여러가지 종류의 하부구조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경계선을 갖고 있다.33) 예를 들면, 부부간에는 어떤 류의 경계조건들이 있다. 만약 그들이 자녀를 낳으면 남편과 아내는 애를 양육하는 일에 함께 역할을 나누는 것이다. 부부는 계속 지금까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자녀들과 관계를 맺어간다. 가족 안에 있는 하부구조 하나하나의 윤곽을 그려주는 경계선들은 분명하게 남아 있어야 하며, 그러나 건강하고 적절하며, 기능적으로 가족안에서 작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가족식구들 간의 경계선들이 뚜렸하지 않고 식구들이 다른 식구들의 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할 때에 그 가족은 “혼란에 빠진다.”34) 어떤 분이 혼동과 친밀과의 차이를 이렇게 기술한 적이 있다: 혼동(enmeshment)은 그릇에 담겨 있는 녹두죽에 비유할 수 있다. 모든 녹두들은 잘게 빻아 죽을 만들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 죽 가운데서 녹두 알맹이를 하나하나 구별하여 찾아낼 수 없다35) 그러나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가족들 가운데서는 한 그릇 속에 담겨있는 녹두와 같이 서로 가깝지만 녹두 한 알 한알을 구별해 낼 수 있듯이 가족 식구들 간에 분명한 경계선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같은 그릇 속에 담겨져 있다. 즉 그들은 모두 한 가족안에 있다 .그러나 당신은 가족 식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체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 속에 몰입해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 친밀하고, 건전한 하나 됨을 즐거워할 것이다. 그러나 혼동에 빠지지는 않는다. 혼동은 가족 식구의 개체성이 상실했을 때에 일어난다. 가끔 상담자는 어떤 어머니가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는 자기의 취학전 자녀들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을 본다. “우리가 처음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 우리가 학교에 갔을 때.” 이러한 말은 가족 식구들 각자의개인 정체성을 허용하지 않는 말이다.
극단적인 혼동의 경우에 가족 식구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가족과 분리할 때 가족을 배신하는 것으로 느끼거나 배신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가족의 식구됨을 너무 강조할 때 가족 식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구별된 인격으로서의 정체성이나 구별된 존재감을 개발하는데 심각한 어려움을 갖게 되며, 그들은 정신육체적인 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있다.36)
혼동과 정반대의 상황은 가족 식구들이 자기들을 분리시키는 경계선이 지나치게 엄격하여 다른 식구들과 상관없이 행동하고 자신들을 고도와 같이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가족들간의 친밀감이 상실된다. 이러한 가족을 “분열가족”이라고 부른다. 이런 가정에서 자라난 어린이들은 가족 밖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가까운 관계를 맺기 어려울 때가 많다.37)
가족 상담자는 문제 가족을 점검하면서 가족식구들의 경계선들이 희미해지고 불분명해진 것을 발견한다. 지난해 나는 첫 딸이 11세, 두째딸이 8세인 한 가족과 상담했다. 아버지 웨이드씨는 주정부공무원으로 봉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야간에 학사학위 과정을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서 지내고 있었다. 그가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든지 또는 도서관에서 공부하였다.
웨이드 부인은 학교 교사였다. 그녀는 전임으로 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집에서는 딸들을 돌보아야 했다. 딸들은 온갖 행동장애들을 일으켰다. 학교숙제를 전혀 하지 않는다거나 거의 끊임없이 말다툼을 하고 가정 심부름을 전적으로 거절한다든지, 토라져 있다든지, 서로 물건을 던지며 싸우고, 불평하며, 속이고, 아침에 학교버스 탈시간이 되었는데도 옷을 입지 않고 뭉기적 거렸다(이것도 그들의 행동장애중 몇가지만 이야기한 것이다). 어머니는 딸들을 더 잘 돌보기 위하여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가족 상담을 요청했다.
웨이드씨는 시간을 조정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는 계속 바쁜 일정으로 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다른 가족 식구들과 함께 면접 상담에 참여했으나 매우 수동적이요 비협조적이었다. 딸들은 즉시 서로에게 불평하기 시작했다. 언니인 케티는 덩치가 크고 동생 리자는 날씬하고 조그마했다. 그래서 리자는 “언니는 뚱뚱이,” “언니는 너무 많이 먹어”, “언니는 숙제도 안해”,“언니는 침대도 정리 못해”, “언니는 버스시간이 다 되어도 일어날 줄을 몰라”, “나는 엄마 아빠가 언니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 다이어트도 시키고, 자기방도 제대로 꾸미고 벌을 주어야 해요”등등 계속 언니를 비난했다.
리자가 말을 잠깐 멈추자마자 캐티가 반격하기 시작했다. “리자는 언제나 들이 받는 것 밖에 몰라. 엄마 아빠가 집에 와서 나에게 이야기할 때마다 리자가 끼어들어 마치 자기가 집을 꾸려가는 것같이 혼자 난체한단말야.” 겨우 두번의 면접상담을 한 뒤에 이미 이 가족의 문제점이 명백해졌다. 이 집에는 누가 어른이고 부모인지, 누가 애들인지에 대한 경계선이 희미해져버린 것이다.
아버지는 수동적으로 앉아서 바라보기만 하고, 어머니는 탄식하며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나는 두 아이가 아니라 세 아이가 있는 집을 돌보고 처리하는 것 같이 느낀답니다. 내 남편은 또 다른 아이처럼 행동해요. 그는 집에 와서 신을 벗고 셔츠는 리빙룸 마루바닥에 벗어던지고, TV만 보지요. 그러면 나는 그를 따라 다니면서 뒷치닥거리를 하고 우리 딸들을 위해서 무언가 해야 하지요.” 아버지는 아이인 체하고 행동한다. 그는 아이취급 받는 것을 반대하기 보다는 오히려 아내에게 보호받는 아이가 되고자 한다. 나아가서 막내딸 리자는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고 아빠에게 할 일을 엄마가 지시해야 한다고 엄마에게 지시한다. “엄마는 아빠에게 저녁을 지으라 말하세요. 엄마는 아빠에게 방을 닦으라고 시키세요. 엄마는 어째서 아빠에게 도서관에서 빨리 집에 돌아오라고 말하지 않으세요? 아빠는 8시30분까지는 집에 돌아와야 한단 말이예요. 엄마는 아빠가 9시30분이후에는 절대로 집밖에 머물게 해서는 안되요.” 자기 막내딸의 말대로 웨이드 부인은 웨이드씨에게 이야기 한다. “그래요, 당신은 8시30분까지는 집에 와야 해요.” 다음날 저녁 리자는 아빠의 순종여부를 감시한다. 리자는 시계를 보면서 8시30분까지 아빠가 돌아오지 않으면, 아빠에게 이런말을 한다, “아빠, 아빠는 8시30분까지 들어와야 하는데 지금 8시45분이란 말이예요.” 그 딸은 십대의 자기 애들이 약속시간까지 들어오기를 감시하는 부모와 같이 행동한다. 그러므로 이 가정의 하부구조들 사이의 역할경계선이 흐려져 버렸다. 부모역할과 아이들의 역할이 가끔 바꾸어지고 있다.
가족의 역할
수 많은 가족상담연구는 사회학분야에서 개발된 역할 이론에 기초하였다.38) 가족의 식구들 각자는 어떤 종류의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식구들은 그 역할에 따라 의무를 수행하여야 하고, 그 역할을 기대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하지 아니하는 어떤 일들을 하여야 하며, 아버지는 어머니가 하지 않는 어떤 일들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아버지는 잔디를 깎아야 하고 차를 수리해야 하며, 이런 일은 아버지가 할 것으로 기대한다. 부엌일은 엄마의 책임이다. 엄마는 아빠가 부엌에 들어와 찬장을 열어 그릇을 꺼내고 식시준비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이러한 역할들은 가족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역할에 관해서 가족 가운데에 약간의 혼동이 있다. 아마도 역할이 변하고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치가 않다. 역할에 대한 갈등이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웨이드 가족에서 막내딸 리자는 부모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것이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가족은 하나의 구조이기 때문에 가족식구들 각자의 역할은 다른 가족식구들과 서로 보완효과를 갖는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효과적으로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가족에서 자녀들의 역할에 영향을 준다.39) 웨이드씨 가족에서처럼 아버지가 지도력을 포기해 버릴 때에 역할진공이 일어나고 자녀들의 역할도 애매해져 버린다.
성경의 기준에 합당하게 역할들이 기능하는 가족에서는 역할들은 적극적으로 상호보와적인 효과를 나타낼것이다. 예를들면, 어머니는 딸에게 보다 아들에게 좀 더 조심성있게 대할 것이다. 그래서 적극적인 상호보완적 성역할의 개발을 격려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문제 가족에서의 역할은 고정관념에 빠져 완고할 것이다. 만약 아들이 어떻게 스스로 목욕을 하는지 배우고도 제대로 혼자 목욕하지 않으면 엄마는 언제나 그를 목욕시킨다. 그래서 그를 작으마한 의존적인 아이로 남아 있게 하고 성장하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그가 5세,6세,7세,8세,9세,10세가 되어도 누군가 아직도 그를 위해 목욕탕에 목욕물을 받아주고 그의 몸을 씻기고 그래서 그를 의존적이요, 성숙지 못한 어린애기 역할을 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 상담자는 역할들을 명료화하고 그 역할들을 수정하는 일을 해야 한다. 즉, 적극적인 상호보완적 역할을 개발하고, 역할 갈등을 해소하고, 역할 혼동들을 해결하여야 한다. 내가 가르치는 심리학과 학생들과 내가 웨이드 가족에게 한 일들 중의 하나는 그들이 면접상담장면을 비데오 테이프에 담아서 그들의 상호작용을 그 필림에서 보게 한 것이다. 그들은 여러가지 문제로 서로 싸우는 장면들을 거기에서 보았다. 예를들면, 캐티가 자기 침대를 정리하는지 아니하는지 때문에 말다툼하고, 막내딸 리자의 불평하는 장면도 보았다. “그래, 캐티는 학교가기전에 침대를 정리해야 해, 언니는 아침 6시 30분까지는 일어나야 하고, 아빠도 모범을 보여야 해요, 만약 아빠가 저녁 8시30분까지 집에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날 저녁 스냌을 먹지 못하게 해야 해요.” 우리가 그 테이프를 가족들 앞에 보여준 후 우리는 여러가지다른 질문들을 했다. “여기서 누가 아버지이지요? 누가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지요?” 그들은 가족상호작용을 테이프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문제에 대하여 많은 통찰을 얻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가족이 상담받으러 올 때, 식구들중 어느 한 사람을 문제 식구로 낙인을 찍고 온다. 위에서 언급한 웨이드 가족의 경우에, 큰 딸이 침울하고, 행복하지 못하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불평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독자들이 분명히 보았듯이, 문제의 핵심은 가족관계에 있었다. 전체가족식구들이 서로간에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점에 문제의 근원이 있었다.
엄마는 큰 딸 캐티에게 방을 깨끗이 정리하라는 등의 일들을 하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이 가족들에게는 암묵적인 불문율이 있었다. 그것들 가운데 하나는 “그러한 요구사항들을 자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네가 그것을 순종하지 않아도 엄마는 벌을 내리지 않으실꺼야’고 서로간에 암묵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엄마는 자기의 명령을 강화시키지 않았다. 캐티는 엄마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아도 아무런 일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캐티의 침실에 가서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캐티, 일어나, 일어날 시간이야. 너, 지금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학교버스가 도착하기전에 아침을 먹을 수 없단 말이야.” 그런데 캐티는 일어나지 않고 좀 더 잠을 잔다. 이때 다시 어머니가 들어와서는 몹시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른다. “캐티, 너 정말 안 일어날거니? 버스 늦는단 말이야” 캐티는 버스시간 늦는다고 해도 엄마가 단순히 불평하기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야, 이놈아, 이제는 내가 너를 학교까지 태워다 주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단 말이야. 너 때문에 내가 직장에 늦게 되었단 말이야!”(물론 이것은 웨이드 부인이 직장을 그만두기 전이다.) 캐티가, 늦게 일어난 결과로 캐티에게 일어나는 유일한 일은 엄마가 직접운전하여 캐티를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 것이다. 웨이드 부인은 캐티가 차안에서 계속 먹어대기 때문에 과체중이 된 것을 확인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 웨이드 부인의 책임가운데 하나이다. 그녀는 캐티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먹지 않으면 오늘 학교까지 데려다 주지 않을 거야!”.
작은 딸 리자는 이 가족에서 하는 야단치기의 대부분을 도맡아서 한다. 리자가 언니보다도 더 지배적이다. 그녀는 “좋은 아이”역할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자신이 희생자가 되어 버린다. 캐티는 “나쁜아이”역할을 한다. 리자는 항상 자기 쪽의 방을 깨끗하게 정리한다. 침대정리를 하고, 버스를 탈 수 있게 일찍 일어난다. 리자는 캐티가 자기와 같이 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또한 리자는 캐티가 너무 많이 먹어 뚱뚱하다고 불평을 늘어 놓는다.
나타난 문제와 실제의 문제를 구별하기
위의 상담사례에서 보는 바와같이 가족식구들 중 하나가 문제 식구로 낙인 찍힌다(웨이드 가족의 경우에 캐티). 그러나 문제는 실제로 가족 구조에 그 근원이 있다. 웨이드 가족은 역할 경계선의 혼동을 경험한다: 이 가정에는 합당한 부모의 역할이 희미해 졌으며, 성경이 명한 부모의 권위를 상실하고 있다(엡6:1-4, 잠3:11-12, 22:15, 29:17).40) 아버지는 가족에 대한 지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엡5:21-33, 마20:28, 골3:18,19, 고전 11:3, 롬13:1).41) 웨이드 가족의 경우에 아버지는 지도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으며, 어머니는 실질적으로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는 가족구조를 왜곡시키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지도력은 약화되거나 분산되고 있다. 어느 경우에는 아버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다음날은 어머니가 지도력을 행사할 책임을 지는 것 같다. 어떤 때는 전혀 지도력이 이 가족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이 가족에는 진실하고 지속적인 지도력이 없는 것이다. 문제가족들에서는 이런 사실을 흔히 볼 수 있다. 양부모가 모두 직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육체적 에너지를 집밖에서 소비해 버린다. 그들에게는 자기 가족들을 지도할만한 시간이 없을 때가 많다. 가족지도력을 행사하려면 실절적인 에너지 투자와 시간투자를 해야만 한다. 주의 깊게 질문하면서, 가족 상담자는 부모의 지도력과 권위가 행사되고 있는지 그렇지 않는지를 또한 어떤 형태로 행사되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점검해야 한다.
가족속죄양
문제가족에서 어린이들은 자기의 나이, 성별, 또는 인격적 특성에 적합하지 않은 역할을 하도록 위임받거나 선택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42) 가끔 아이들은 부모의 역할을 맡는다. 가끔 어린이들은 여자아이가 되거나 남자아이같이 행동하도록 강요 받는다. 그리고 가족의 페트역할을 하도록 선택될 수도 있다. 가끔 어린이들은 속죄양이 되기도 한다. 웨이드 가족의경우에 12세의 캐티는 모든 가족문제의 책임을 지고 불평을 당하고 있다. 그러한 역할들은 상담자가 가족 식구들 각자에게 가정에서의 중요한 가족 모형들을 기록하라고 요구하면 분명하게 나타난다.
어떤 가족은 한 식구를 “병들었다” 즉 문제 식구라고 규정하므로서 평정(equilibrium)을 유지하려고 한다.43) 속죄양을 만든다는 것은 가족식구 한사람이 가족의 역기능의 증상들을 모두 나타내도록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과정을 의미한다.44) 한 가족 식구를 속죄양으로 만드는 것은 부부관계에 최소한의 상호작용과 친밀만이 남아 있을 때에 일어나는 수가 많으며, 속죄양을 만들므로써 위태로운 부부관계가 깨어지지 않고 유지된다.
바로 이것이 두 딸을 가진 웨이드 가족의 사례이다. 웨이드씨 부부는 서로간에 매우 소원한 상태에 있다. 아버지는 자녀교육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부 결속이 약해졌다. 웨이드씨 부부간의 긴장은 해소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부부 서로간의 적대감의 표현을 피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이 부부는 큰 딸에게 그들의 적대감을 전이시키고 그 딸을 속죄양으로 삼았다.
아이는 자기가 문제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깨닫고 그 역할을 실천에 옮기며, 문제아이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속죄양이 된 가족 식구는 행동장애나 정서장애를 개발한다. 12세의 캐티 웨이드는 자기에게 “문제아이”의 낙인이 찍혔다는 것을 깨닫고, 침대정리를 하지 않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며, 학교버스에 늦는 등의 행동을 함으로 가족들의 기대에 순응하고 있다. 그 결과로 그녀는 가족 속죄양이 되었고, “나타난 문제환자”가 되어 상담받으러 왔다.
부모는 자기네들의 정서적인 문제들을 캐티 위에 투사하고, 그녀의 문제들에 지나친 관심을 표현했다. 그러므로 캐티는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물론 그 관심은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의 관심이었다. 그녀는 상당한 가족의 힘을 휘둘렀다. 즉 그녀는 “문제아이”로서 자기의 역할을 유지하는데 상당한 투자를 했다. 만약 캐티가 문제아이로서의 자기의 역할을 포기했다면, 그녀는 관심과 힘을 잃었을 것이요, 그 가족은 붕괴되고 말았을 것이다. 속죄양으로써 캐티는 스트레스를 흡수해 들이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부모는 덜 갈등을 느끼고 덜 긴장하면서 기능할 수 있었다. 그녀의 증상이 가족 속죄양 만들기의 결과였기 때문에 가족 상담은 그녀를 대상으로 요청되었던 것이다.
개인의 문제인가 또는 가족의 문제인가?
가족 상담자는 가족식구들의 개인적인 성격들이 어떻게 가족문제를 조장시키고 있는지 또는 어떠한 방식으로 다른 식구들의 고난을 조장하고 있는지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식구들 각자의 성격특성들을 평가하고, 성격기능을 평가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런 평가과정에서 상담자가 마음에 품어야 할 질문들은 다음 페이지 챠트에 요약해 놓았다.
만약 가족 식구들 중 하나가 어떤 형태이든지 정서적인 장애나 정신적인 장애를 경험하고 있다면(불안, 우울증, 분노, 만성좌절감등등) 우리는 이 문제를 그 개인의 문제로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가족문제의 증상으로 생각할 것인가? 그리고 한 가족이 자기 식구들중의 하나가 역기능의 식구이거나 문제 식구라고 생각하고, 상담하러 왔을 때에 개인문제가 먼저인가 아니면 가족문제가 먼저인가?
극단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어느 극단에서 대답한다. 한편으로 한쪽 극단을 취하는 가족 상담자들은 개인적인 정신장애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그러한 장애나 문제는 가족구조의 증상이라고 주장한다.45) 그들은 가족식구들중 하나가 경험하는 심리적 장애는 단순히 가족문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와 정반대의 입장을 표명하는 전문가들이 있는데, 그들은 내면적인 개인의 갈등이 가족 가운데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46) 그들은 개인적인 정신장애들과 정서장애들을 인식한다. 그들은 개인의 심리장애를 발전시키는 요인으로서 가족의 요소를 보면서도, 그 심리적인 문제는 그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개인이 치유받아야 할 어던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그 개인의 문제가 치유되면, 가족 가운데 만연해 있던 문제들은 깨끗이 없어진다.
위의 두가지 극단적인 입장들에 관해서 우리는 연구조사로부터 몇가지 점들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로, 부부간의 부부관계와 그들 자녀의 정신장애 사이에는 분명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47)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연구조사로부터 가족구조안에 있는 어느 한가지 요소에 변화가 생기면 그 가족구조의 다른 요소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안다.48) 이러한 견해들을 균형있게 인식하는 하나의 방법은 가족문제는 존재하며, 개인의 문제도 동시에 존재하며, 나아가서 이 둘 사이에는 중대한 관련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좀 더 현실적인 견해로 가족구조의 문제와 개인의 심리적 영적 문제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비정상적인 가족 관계는 개인의 정신장애나 정서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49) 나아가서 심리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가족 식구는 가족관계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면, 디프레스에 빠진 가정주부는 빨래를 하지 않고 버려두고, 식사준비를 하지않고, 식품을 구입하지 않는등의 일상적인 집안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가족구조의 작용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동시에 가족의 다른 특성들, 예를 들면, 위협과 욕설과 물리적 폭력을 통하여 모든 다른 가족식구들을 통제하려고 하는 독재적인 남편으로 인해서 아내에게 우울증이 생겨날 수도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개인의 심리적 건강상태와 건강한 가족기능사이에는 상호관계가 있다. 어떤 정신이상증세(개인의 현실과의 접촉을 상실하는 장애)는 육체적인 원인에 의하여 생겨날 수 있다. 반대로 정신이상행동을 하는 가족식구는 나머지 가족식구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고, 이 때문에 가족구조의 기능에 장애가 생길 수 있다.
성경은 개인적인 순종을 촉구하고 있으며, 죄에서 떠나라고 개인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욥11:14, 딤히2:19, 히12:4, 고전 6:18, 딤전 6:11)동시에 성경은 공동체적인 책임을 촉구하고 있으며, 사회적인 의무에 따라 살아가라고 요구하고 있다매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한 미국인들은 이 사실을(롬13:3, 4:1, 딤전 5:1-21) 기억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심사숙고하여야만 하는 개인적 도덕율과 동시에 가족도덕율이 있다.
그러므로 두가지 극단 가운데 어느 하나를 택하여, “모든 문제는 가족문제이다. 그러므로 그 해결은 항상 가족상담이다”라고 하든지 또는 “모든 문제는 실제로 개인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개인상담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 양극단들이 모두 약간의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고 가끔 한 가족을 상담할 때에 상담자는 어느 식구에게는 개인상담을 권면하면서도 동시에 가족상담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최선이다. 가끔 어떤 식구는 적응문제를 가질 수 있고, 그러므로 상담자는 그 사람과 일대일관계로 상담하면서 그 개인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바로 이 역기능의 식구로 인하여 그 가족의 항상성 또는 평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특별한 가족적응을 해왔기 때문에, 그 가족식구의 문제가 치료되었을 때에 그 가족은 평정을 잃고 다른 가족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가족 상담과 함께, 또는 가족 상담을 대신하여 어느 특정한 가족 식구가 개인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것인지의 여부를 발견하는 하나의 효과적인 방법은 그 사람을 임상심리학자에게 위탁하여 검사를 받게 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수천가지의 심리테스트가 20세기에 개발되어 성격장애, 발달장애, 정신이상, 광적흥분장애, 심리적 역기능, 불안 장애, 신경정신질환, 그리고 다른 정신기능장애와같은 수 많은 문제의 진단을 도와주고 있다.50) 가족 상담자(목사든지, 임상사회사업가든지, 정신과 의사든지, 또는 다른 형태의 상담전문가를 포함하여)는 한 두 사람의 자격증이 있는 임상심리학자들과 관계를 개발시켜서, 심리진단테스트가 필요한 개인이나 가족들을 위탁하여 검사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이런식으로 임상심리학자를 컨설탄트로 활용하는 것은 상담자의 가족 점검의 질을 크게 향상시켜 상담노력을 아주 적절하게 집중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가족 상담자는 단지 몇가지 성격검사 방법에만 익숙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익숙한 테스트 방법이 그것 뿐임으로 모든 내담자를 꼭 같은 수단으로 테스트 하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 아마도 우리는 어느 의사가 약에 대해서 광범위한 지식이 없으므로 모든 환자에게 꼭 같이 아스피린을 처방하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가족 식구들에게 피상적이거나 잘못된 점검을 하기 보다는 광범위한 심리진단 수단을 가지고 있는 유능한 임상심리학자에게 위탁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그러면 그 심리학자는 여러가지 다양한 방법들 가운데서 특정한 개인의 문제에 알맞는 구체적인 점검수단을 선택하여 전문적인 테스트를 실시 할 수 있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문제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들 가운데 아주 중요한 근원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는 커뮤니케이션 모형에 관계가 있다. 빈약한 커뮤니케이션은 가족기능을 훼손시킨다. 커뮤니케이션 문제는 수 많은 방법으로 나타난다. 첫째로, 커뮤니케이션은 한 사람이 무엇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이 듣는 것을 수반한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가족 기능은 식구들이 훌륭하게 생각들과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 뿐아니라 훌륭하게 서로에게서 듣는 것을 수반한다.
닉 스티네트(Nick Stinnett)는 링컨 대통령의 이야기를 실예로 들어 이것을 설명한다.51)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에, 그는 가끔 일리노이 주에 살고 있는 자기의 친구를 불렀다. 그 친구는 링컨대통령이 변호사로 일할 때부터 서로 잘 알고 있는 사이였다. 어떤 위기나 중대한 결정에 부딛쳤을 때, 링컨은 이 친구를 화잇하우스로 불러 그와 의논했다. 그 당시에는 대통령이 그 친구를 태우고 일리노이주에서 화잇하우스까지 데려올 공군기가 없었다. 그래서 대통령은 4륜마차를 보내어 그 친구를 데려오게 했는데 여러 날이 걸리지만 결국 화잇하우스에 도착했다. 링컨의 친구는 화잇하우스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아랫층의 대통령집무실로 간다. 그러면 링컨은 그 친구에게 자기가 당면한 딜레마를 자세히 이야기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여러가지 선택가능성들을 말한다.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한 후에, 이 친구는 링컨과의 우정관계에 대하여 섰다. 그는 자기의 역할은 대통령의 조언자였으며 기본적으로 훌륭한 청취자의 역할을 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는 링컨이 이야기하는 선택가능성들을 조용히 귀기울여 들은 후에 링컨 대통령을 향하여 자기가 들은 바를 다시 이야기 하였다. “그래요, 당신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당신은 한편으로 A를 선택하면, X와 Y라는 잇점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B를 선택하면 Z라는 잇점이 있는데, 당신은 A와 B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고, 그러면 하나의 잇점은 잃어버릴 수 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좌절을 느낀다는 말이네요.” 그는 조용히 듣고 있는 것이요, 지금 상담자들이 이야기 하는 “적극적 청취”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링컨은 어떤 결론을 내리고 그 친구를 집으로 돌려 보낸다. 이 친구는 훌륭한 청취자였다.
수동적 청취와 묵살하기
역기능의 가족에서 우리는 가족식구들이 서로에게 자기들의 진실한 감정들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빈약한 청취자들을 발견한다. 좋게 말하면 수동적 청취요, 아주 나쁜 경우에는 서로를 묵살해 버린다. 다른 가족 식구들은 수동적 청취와 묵살하기의 차이를 이야기할 수도 없다. 만약 10대가 어떤 피이드백도 주지 않는다면, 부모는 자기들의 말을 명심하여 듣고 있는지 아닌지를 말할 수 없게 된다.
이중의 메시지
어떤 역기능 가족 가운데서 생겨나는 또 다른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은 이야기하고 있는 표현과 그 말 뒤에 숨은 메시지와의 불일치이다. 우리는 언어적 컴뮤니케이션이라고 칭하는 말로하는 커뮤니케이션 뿐 아니라 목소리의 억양, 제스쳐, 표정과 같은 비 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도 사용한다. 강하고 적응력이 있는 가족들 가운데에는 언어적인 메시지와 비언어적인 메시지간에 조화가 있다. 그러나 수 많은 문제 가족안에서는 자주 이중의 메시지가 전달된다. 말로 표현된 내용과 그 뒤에 숨은 메시지가 다른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어머니가 목소리에 적대감의 날카로움을 담고 자기의 어린 자녀에게 “아가야, 이리와”하고 이야기 한다. 그 아이는 어머니에게로 다가온다. 그런데 그 아이가 어머니에게로 다가오자 어머니는 물러서 버린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가까이 가서 손을 내미는 대신에 뒤로 물러서면서 몸이 굳어진다. 어머니가 보이는 비언어적인 메시지에 응답하여 그 아이도 어머니에게서 자신을 움추린다. 그 어머니는 세가지 일을 했다. 그녀는 아이에게 “이리와”하고 말했다. 그것은 그녀의 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음성은 약간 적대감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동작은 그 아이로부터 자신을 움추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어머니에게서부터 자신을 움추리는 반응을 보이자 어머니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왜 이러니. 아가야? 넌 엄마를 사랑하지 않니?”
이 조그만 상호작용에서 당신은 베이트슨(Bateson)이 말하는 “이중메시지”를 볼 수 있다. 그 아이는 어쨋든 손해 볼 것이다. 만약 애는 어머니가 물러서며 굳어질 때에 어머니에게 가까이 나가면 거기에서 진정으로 어울리지 않는 상황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불안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가 물러서면 따가운 비평을 받을 것이다. “너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바로 이런 것이 정서적으로 장애가 있는 자녀의 가족에서 자주 볼 수있는 어머니-자녀관계 또는 아버지-자녀관계이며, 이런 관계는 일종의 혼동관계 또는 비합리적 관계라고 할 것이다. 이중적인 메시지에서 표현된 내용과 뒤에 숨은 메시지가 불일치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가끔 전체로서의 가족이 상반된 필요를 가질 수 있으며 또는 가족 식구들이 상반된 필요를 가질 수도 있다. 아마도 이 어머니는 친밀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녀는 그 아이와 가까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아이를 불러서 안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또 다른 부분은 아직도 정서적 친밀을 거절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에게 애매하고 상반된 커뮤니케이션을 주고 있는 것이다.
빈약한 부부협력
건강하고 합당하게 기능을 수행하며 행복한 가족에서 한 식구가 다른 식구들과 관계하는 방법은 문제가정의 그것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우리는 부모간의 협력과 더불어 훌륭하고 분명한 커뮤니케이션 모형을 볼 수 있다.52) 웨이드 가족의 경우에, 부모들은 서로간에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실제로 아버지를 또 하나의 아이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순기능의 가족에서는 부모들이 자녀교육의 책임을 연합하여 함께 지고 있다.
역기능의 가족은 전형적으로 빈약한 커뮤니케이션 모형과 일관성이 없거나 빈약한 부모 결속을 가지고 있다. 부모는 서로 도우며 함께 기능하지 못한다. 가끔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기 다른 훈계접근을 사용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재빨리 그 사실을 감지한다. “엄마에게 받은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는 아빠에게 가겠다. 그러면 아빠에게서 또 다른 대답을 얻겠지.” 부모가 팀이 되어 함께 자녀교육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너무 쉽게 양부모사이에서 게임을 시도한다. 가족상담자는 가족의 커뮤니케이션 모형들과 부모간의 협력모형을 점검하려고 할 때에 가족식구들에게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어떠한 방법으로 훈계하는가? 한 자녀가 순응하지 않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부부가 효과적으로 그리고 협력적으로 함께 자녀교육을 하려고 할 때에 여러가지로 어려움을 당한다. 상담자는 다음에 제시하는 점검표를 사용하여 부부의 자녀교육의 실제를 평가한다면 유익한 도움을 얻을 것이다. 점검표의 목록들은 가족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자주 부딛치는 문제들이다. 더 많은 목록들을 점검할수록 가족문제의 복잡성과 심각성도 더 커질 것이다. 이 문제들 가운데 몇가지는 단순히 부모들과 자식들간의 상호작용을 주시하기만 해도 제외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것들은 부모-자녀 관계에 관해서 부부나 자녀들에게 구체적인 질문을 하므로서 제외시키거나 조사할 수 있을 것이다.
적응능력이 있는 가족은 발달과정의 생의 주기를 통과하여 성장할 때에 융통성을 발휘한다.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어떤류의 가족관계가 구식이 되어버리면 부모와 자녀는 새로운역할에 순응한다. 미취학 아동의 부모는 실제로 아이를 위해 옷을 고르고, 그 아이에게 옷을 입혀주고, 애들의 신을 신겨주고, 옷의 쟈크를 닫아준다. 그러나 그 아이가 조금씩 성장하면서, 아이는 점점 더 옷을 입는 책임을 자기가 진다.
나의 5세 아이는 지금 자기대로 신을 신으려고 하는 전환기에 와 있다. 그는 지금 혼자서 그것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엄마나 아빠가 자기를 위해 신을 신겨주기를 원한다. 가끔 그는 아직도 자기 신을 혼자신지 못하는 자기동생과 같이 무력하고 조그만 미취학 아동의 역할로 되돌아간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방문할 때에 그는 자기의 작은 신발을 들고 할아버지에게 가서 자기의 양말과 신발을 신겨 달라고 한다.
문제 가족들은 여러가지 정도의 경직성을 드러낸다. 발달단계를 거쳐 가는 과정에서 그들이 역할 관계를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다. 거기에는 숨은 갈등들이 있고, 무서운 협박이 타협보다 앞선다.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을 위협하려고 하며, 그래서 자녀들은 서로간에 위협하는 방법들을 배워간다.
부부의 문제들은 또한 효과적인 부모교육협력을 방해한다. 다음의 점검표는 그런 점검을 할 수 있게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확인하기
커뮤니케이션 문제는 문제가족들 가운데 거의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상담자는 상담받으러 오는 가족이 경험하는 구체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난점들을 발견하고자 한다. 다음의 점검표는 점검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망라한 것이 아니다. 단지 상담자의 진단에 유익한 지침을 제공하려는 것 뿐이다.
부적절한 가족균형
가족식구들간에 상호작용의 모형들을 바꾸면서 가정에서의 정서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과정이 계속적으로 일어난다. 어떤 가족에서는 여러가지 다양한 정서적 필요들이 균형을 맞추어 나간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가족 이론가들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가족들이 사용하는 여러가지 과정들을 발견했다. 그것은 작은 자동차가 무언가 막혔다가 평정을 되찾는것과 같다. 가족들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다섯가지 불완전한 방법들은 정서적분리, 과도적절-부적절 균형, 공모제휴, 분리하기, 그리고 표면평화등이다.
정서적 분리
보웬(Bowen)은 “정서적 분리”라고 부르는 하나의 과정을 발견했다.53) 어떤 가족들에서는 식구들이 서로간에 갈등을 피하기위하여 “안전한” 정서적 거리감을 유지한다. 의견이 엇갈리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그들은 서로에게 강한 감정들을 표현하지 않는다. 부모가운데 한 사람은 - 아마도 어머니는 - 한 아이와 친밀관계를 만들고 아버지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아버지는 바로 그 아이와 거리감을 둘 것이다. 어떤 것이든지 외적인 갈등을 피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가족 식구들은 서로로부터 감정적으로 분리하므로써 일종의 균형을 유지한다.
과도 적절- 부적절 균형
보웬은 “과도적절-부적절 모형”이라고 부르는 부모들간의 정서적 균형을 유지하는 또 다른 가족 모형을 발견했다.54) 이 모형은 어머니가 지도력을 행사하고 반면에 아버지는 뒤로 물러나서 수동적이 되는 것이다. 그녀는 자기 남편의 “부적절”을 보상하기 위하여 “과도적절”하게 된다. 그리고 이 두가지 역할 사이에는 맞물리는 관계가 있다(한가지 예는 지배적인 아내와 알콜중독의 남편의 경우이다). 다른 경우에, 아버지가 주도적인 반면 어머니는 뒤로 물러나 있다. 가끔 이런 모형은 한 부모와 한 자녀 사이에도 일어난다. 그 부모는 자기딸이 스스로 옷 입는 것을 배웠는데도 항상 딸의 옷을 입혀준다. 이렇게 하므로 아이는 무기력하고 부적절하게 되고 그 부모는 과도적절한 역할을 담당한다.
제휴와 분리하기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균형은 구조의 작동원리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가족은 한 식구가 하는 것이 다른 모든 식구에게 영향을 준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구조로서 작동한다. 역기능의 가족은 간혹 두 식구들간에 제휴하거나 또 다른 가족 식구와 분리하여 일종의 부적절한 가족균형을 유지한다.55)
여기에 하나의 실예가 있다. 제닝의 가족은 10대소녀 린다, 10대 소년 톰,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로 구성되어 있다. 제닝씨와 톰은 저녁식사를 하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가 기분이 좋다는 것을 알고 톰은 용기를 내어 가족의 자동차를 운전하게 허락해 달라고 이야기 했다. “결국 나는 운전훈련을 받고 있어요, 그리고 이미 운전허가를 받았어요. 나는 운전교습을 마친후에 내 운전면허증을 받으러 갈거예요.”
그의 아버지는 잠깐 생각한 다음에 큰 소리로 대답한다. “글쎄, 아마도 우리가 몇가지 합의를 할 수 있다면, 너에게 허락해 줄 수도 있을꺼야, 우리가 네게 차를 빌려준다면 너는 기꺼이 연료대를 지불할 수 있겠니?”
톰의 눈은 감격으로 크게 떠졌다, “예, 내가 다음달에 자격증을 얻으면, 나는 충분한 돈을 벌 수있어요. 나는 첫번째 우리 학교 훗볼경기에 차를 운전해서 가고 싶어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가까와지는 것을 보면서 어머니가 톰의 이야기 중간에 끼어 들어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분리시키는 뜻을 담은 코멘트를 한다. 이 말은 서로간에 갈등을 조장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만약 톰에게 자동차를 운전하게 한다면, 린다에게도 차를 운전하게 해야하지 않겠어요? 그래야 공평한 거예요. 당신은 최근의 속임수 때문에 린다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예요. 우리는 그녀에게 11시까지 들어와야 한다고 이야기 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제시간에 들어와 본적이 없다구요. 그러므로 우리는 린다를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 톰에게 운전을 허락할 수 없는거라구요. 우리가 톰에게 우리차를 운전하게 할 수 없잖아요.” 이런 어머니의 소견은 아버지의 관심을 톰에게서 린다에게로 전환시켰다.
린다는 자기 주장을 내세운다. “그렇지 않아요. 나는 신뢰받을 수 있게 할 자신이 있어요. 아빠는 나에게도 운전을 허락해야 해요. 아빠 엄마가 만약에 나를 좀 더 성숙하게 믿어준다면, 나도 더 성숙하게 행동하겠어요.”
이제 아버지는 린다와 어머니와 심한 토론을 하게 되었다. 반면 톰은 그들의 대화에서 완전히 제외되었다. 톰은 자기가 자동차면허증을 딴 후에 가족 자동차를 운전하게 해 달라고 자기아버지와 협상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어머니는 그들을 갈라 놓았다. 아버지는 자기 아내와 의견이 갈라져 싸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아들과의 의논을 포기해 버렸다.
이런 유형의 제휴와 분리는 역동적인 것이다. 서로 다른 제휴들이 시간마다, 날마다, 주마다, 또는 달마다 새로이 생겨난다. 그리고 역기능의 가정에서 이것은 다른 가족식구가 분리되고 제외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닝의 가족은 인위적인 수단으로 약간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으나 그것은 또한 혼동되고 무질서한 관계들을 생산해 내었다.
표면적인 평화
어떤 경우에 한 가족은 근원적인 문제들이나 의견불일치를 흐리게 하거나 덮어 버릴 수 있는 일연의 표면적인 제휴를 개발할 것이다. 그러한 가족은 중요한 갈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좀 더 가까이 드려다 보면, 가족상담자는 표면적인 친밀을 유지하기 위하여 가족간의 상호작용에서 진짜문제들은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관찰할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식구들은 더 치밀한 관계의 불안을 피한다. “표면적인 평화”는 이러한 방식으로 가족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56)
여기에 그 실예가 있다. 한 가족과 면접상담을 하는 가운데, 어머니가 자기의 10대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쥴리가 데이트할만큼 성숙했다고 보아요. 그러나 우리가 내 딸과 사귀어도 좋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그 남자를 인정하는 조건하에서 데이트할 수 있어요.”
약간 격분되어서 쥴리는 불평을 늘어 놓는다. “글쎄요, 어머니, 나는 빌과 데이트 하기를 원했어요. 그러나 어머니는 항상 ‘안돼, 너는 빌과 데이트할 수 없어’하고말했어요. 엄마가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엄마는 우리 데이트를 거절했어요. 글쎄요. 나는 그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왜 내가 빌과 데이트 할 수 없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에게 무슨 잘못된 것이 있는지 보지 못하겠어요.”
어머니가 재빨리 대답했다. “글쎄다, 실제로 빌을 반대하는 것은 네 아버지이다. 너의 아버지는 네가 빌과 데이트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잠깐 생각할 시간을 가진 다음에 아버지가 주장한다, “글쎄다. 내가 진짜로 빌을 반대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거다. 빌만 보아서야 무슨 문제가 있겠니? 사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네가 빌을 데리고 왔을 때에, 나는 너에게 엄마가 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 보라고 했다. 나는 실제로 아마도 너의 어머니가 남자에 대한 판단을 잘한다고 말했을 거다. 결국 네 어머니는 나와 결혼하지 않았니? 그래서 네 어머니의 의견을 들어 보라고 말한거야. 그게 내가 기억하는 것이다. 나는 빌에 반대해서 아무런 이야기도 아니했다.”
크게 한숨을 쉬면서 쥴리가 소리지른다. “그러나 내가 엄마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아빠에게 물어보라고했단 말이예요!”
엄마가 재빨리 가로챈다, “글쎄, 나는 너의 아버지와 내가 네가 사귀어도 좋은 남자의 타앞에 관해서 상당히 많이 동의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실제로 나는 네가 앤디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믿어, 앤디는 아주 멋진 젊은이야. 그는 네게 데이트를 신청잖니. 너는 왜 앤디와 데이트 하지 않니?”
눈을 위로 굴리면서 쥴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오, 나는 결코 그와 데이트하지 않을꺼야. 그는 따분해. 그는 도대체 재미가 없어.”
그 때에 대화를 부드럽게 하려고 어머니가 말했다. “글쎄, 나는 우리가 그것에 대하여 말한다면 너는 아빠와 나에게 동의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어쨌든 대부분 동의하지 않았니? 아마도 너는 지금은 동의하지 않는 것 같아. 그러나 대부분 너는 우리와 동의했어”.
여기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진짜 문제 즉 부모가 받아들일 수 있는 남자 친구의 자질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는 가족대화이다. 이 대화에서, 부모는 자기네가 받아들일 수있는 남자의 특성들을 정의하지 않고있다. 그들은 그 문제의 변두리만 짚어서 이야기 했다. 아버지는 어느 누구와도 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는 쥴리와도 다투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는 갈등을 피하고 표면적인 평화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진짜 논점을 피해가고 있다. 만약 부모들이 받을 만한 남자친구의 특성들이 무엇이냐 하는 점을 솔직하게 토의하기 시작했다면, 쥴리가 원하는 남자친구의 자질과 어머니나 또는 아마도 아버지가 갖고 있는 생각들과 다르기 때문에 틀림없이 갈등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기서 진짜 논점을 피해감으로써 가족관계에 일종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문제들의 뿌리들
가족관계에 대한 성경적 원리들을 따르지 않을 때에 가족문제는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가족식구들이 그리스도인이냐 또는 불신자냐의 정도에 따라서 사실로 나타난다. 심지어 모든 가족 식구들이 비기독교인들인 경우에도 만약 가족식구들이 알게 모르게 성경적 가족관계의 원리들을 따른다고 하면, 어느 정도 건강하고 적응력이 있는 가족기능을 수행할 것이다. 이런 성경적 원리들 가운데는 아버지와 남편의 지도력의 역할을 지원하고, 서로간에 사랑으로 행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행동하며, 서로를 용서하는 것등이 있다.
물리적인 세계에는 물리적인 법칙들이 있듯이 가족관계에는 심리학적 영적인 법칙들이 있다. 사람들은 우주의 물리적인 법칙을 따를 때에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기능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높은 빌딩에서 떨어지는 것을 피함으로 육체적으로 생명을 구하였다. 사실 그는 중력의 법칙 때문에 높은 빌딩에서 떨어진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고, 하나님이 그 법칙을 만드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고 다른 누구에게 중력의 법칙을 설명할 수도 없었지만, 그 법칙을 순응하여 살아났다. 하나님은 관계에 대한 법칙들과 원리들을 만드셨다. 누구든지 이것을 순응하여 따르면,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거나 아니거나 누구든지 성경에 기록된 관계의 법칙들을 범하면, 자연스럽게 관계의 문제가 야기된다.
가족의 문제들에는 두가지 뿌리가 있다. ⑴ 가족 식구가 고의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죄를 짓는 것 ⑵그 죄의 결과와 타락한 세상에 살고있기 때문에 오는 것. 한편으로 가족식구들이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명령들 가운데 하나를 범하는 것은 분명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 가족 식구들은 간접적인 죄의 결과나 혹은 타락한 세상에 사는 결과로 인하여 문제에 부딛치게 된다.
예를 들면, 웨이드씨와 같은 아버지는 자기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합당한 지도력과 훈육을 행사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가 어린아이였을 때에, 심하게 비판을 받았거나, 일관성이 없는 훈육을 받았거나 또는 물리적으로 학대를 받은 결과로 자신감이 약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빈약한 부성모델을 가졌던 결과로 그는 스리스도인 아버지로서 어떻게 행동하여할 것인지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그래서 자기의 훈육방법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거의 신뢰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행한 범죄로 말미암은 결과이다.
또 다른 경우에 가족문제는 이 세상에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악으로 말미암아 생겨날 수도 있다. 3자녀의 젊은 아버지가 일찍 죽음으로해서 가족구조에 스트레스를 가할 수 있다. 충분한 경제적 여유도 없는 편모가정을 생각해 보라. 어머니는 자녀교육의 책임과 가사일의 책임과 생계비를 혼자서 벌어야 하는 책임등, 과도한 짐을 지게 될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도 건강하고 적응력이 있는 편모가정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러한 적응을 하려고 할 때 배우자가 죽고 나서 처음 두어 해 동안에는 중대한 문제에 부딛치는 것이 보통이다.57) 친족들과 지역사회와 교회로부터 오는 외부의 도움을 충분히 받지 못한다면, 편부모가족은 부모가운데 한 사람을 빼앗겼기 때문에 오는 비정상적인 장애로인하여 발생하는 여러가지 다양한 가족문제를 당할 위험이 아주 높다.
요약
결론적으로 가족이 경험하는 수 많은 문제들은 인간관계에대한 성경의 원리들을 따라서 살지 못한 결과로 온다. 문제 가족마다 우리가 앞서 언급한 모든 문제들을 다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가족문제들은 서로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한 가족은 여러가지 문제들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가족문제들을 하나하나 구별하여 따로 가려내기는 어렵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강하고 건전하고 적응력이 있는 가족의 특성들도 하나 하나 구별하여 내기가 어렵다. 모든 문제들과 특성들은 서로 간에 연결되어 있다.
가족 상담자는 가족들이 처음에 보고하는 “드러난 문제들”과 그 문제들 밑바탕에 있는 근원적인 문제들을 분별한다. 한 가족이 어떻게 서로 연결된 구조로써 작동하는가를 관찰하면서 가족상담자는 ⑴ 가족 규칙들, ⑵가족경계선들(분명한가 또는 혼동되었는가 또는 단절되었는가) ⑶가족역할들(지도력의 역할, 자녀교육의역할, 속죄양 만들기등을 포함하여), ⑷연약한 부모결속등을 명료화하기 위하여 질문을 해야 한다. 모두 가족은 건전한 균형이나 부적절한 균형을 유지한다. 그리고 상담자는 다음의 5가지 흔히 나타나는 부적절한 균형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⑴정서적 분리, ⑵과도적적-부적절 모형, ⑶제휴, ⑷분리하기, ⑸표면평화 모든 가족문제의 뿌리는 ⑴죄나 ⑵ 타락한 세상에 살기 때문에 온 것이므로, 기독교 가족 상담자는 가족식구들과 가족 전체의 영적인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최종적인 점검표는 이러한 가족의 상호작용문제를 요약한 것이다. 이 점검표는 본 장에서 이미 제시한 점검표와 함께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다.
제 3 장
목표설정과 성경적 관점
웨이드 부인이 상담약속을 하려고 처음 나에게 전화했을 때, 그녀는 자기의 큰 딸 캐디가 과식하고 있으며, 정서적으로 불안하여 자주 엉망으로 속이 뒤짚히며, 침대를 정리할 줄 모른다고 불평했다. 캐티도 자기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가 미워요, 엄마가 미워요, 엄마가 날 미워하는 줄 나도 알고 있단 말이야!” 처음에 어머니의 목표는 자기 가족에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라고 생각되는 큰딸에 대한 도움을 얻는 것이었다.
우리가 제 2장에서 웨이드 가족에 대해서 토의하면서 본 것처럼 가족 상담자가 한 가족의 문제들을 정확하게 점검하여 그 가족 구조에 숨어 있는 근원적인 문제를 발견해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가족이 중요한 문제라고 확인한 것은 상담자가 곡 상담해야 할 근원적인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웨이드 가족의 경우에는 부모와 자녀사이에 일어난 역할 경계선 혼동이 근원적인 문제들 가운데하나였다. 부모들은 작은 딸, 리자를 문제로서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 딸이 가족 역동성안에서 부적절하게 부모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가족 상담과정의 초기에 상담자와 가족은 상담의 주요목표들에 관해서 어느 정도 동의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는 가끔 협의가 필요하다. 웨이드 가족의 경우에, 상담자와 가족이 문제의 일부분은 전체로서의 가족안에 내재한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상담약속에 캐티뿐 아니라 리자까지 데리고 오라고 할때 부모들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가족 상담자가 첫번째 가족 면담 때에 전 가족을 함께 만나는 것이 아주 유익을 줄 때가 많이 있다. 만약 부모들이 동생이나 형제자매가 없을 때에 동생에 관하여 이야기 하고 싶은 예민한 정보들을 몇가지 가지고 있다면, 첫번째 면접에서 가족상담자는 적어도 세가지 일을 성취하고 싶어한다.
1. 상담자는 그 가족이 가족 문제를 이야기할 때에 그가족을 자세히 관찰하고 싶어한다. 가족식구들이 문제 상황을 이야기할 때에 그들은 서로에게 어떠한 식으로 이야기하는가? 가족식구들에게 불만을 일으키는 가족역동성 안에 내재하는 근원적인 문제들은 무엇인가?
2. 가족구조의 역동성에 관해서 약간의 첫 인상들을 얻은 후에 상담자는 가족 식구들이 부적절한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는 그 방식에 민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상담자는 상담의 목표를 협의하면서 이 정보를 사용하기 원한다.
3. 상담자는 첫번째 면접이 끝나기 전에 하나의 전략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이 전략에는 다음 면접에 모든 가족 식구를 부를 것인지 어는 특정한 가족과만 상담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도 포함된다.
물론 모든 가족들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목표는 가족들이 상호의존적인 집단으로서 기능수행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상담자는 상담을 받고 있는 그 가족 식구 모두가 결과적으로 상담과정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것을 희망한다. 실제적인 방안의 하나로, 상담자는 가족들이 어떻게 일련의 문제들을 자기에게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관찰한 후에 가족 식구들에게 그들의가족생활에 어떠한 변화를 갈망하는지를 질문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어째서 그들이 상담을 받으러 왔는지에 가족초점을 맞출수 있을 뿐 아니라 상담목표를 설정하는데에도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즉각적으로 상담자는 가족 식구들 간에 목표에 관해서 어떤 갈등이 있는지를 관찰할 수 있다. 식구들 각자는 서로에게 연관된 상담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서로 협력하여야만 한다. 또한 이러한 목표를 설정하는데에 가족과 상담자 사이에도 하나의 협력과정이 있어야 한다. 가족 식구들과 상담자가 갖고 있는 가치는 상담목표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아주 분명하다. 반대로 어느 개인의 특정한 가치쎄트는 그 개인의 세계관이나 신앙 구조를 반영할 것이다.
미국인들은 무엇을 믿는가?
미국에서 상담하고 있는 가족 상담자들은 미국인 대다수가 유신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가족 생활의 가치에 여러가지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한다.
1840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알렉시스 토케빌(Alexis de Tocqueville)은 이렇게 주장했다. “미국에 영국의 식민지를 탄생시킨 것은 종교이었다. 아무도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미국에서 종교는 모든 국민적 관습들과 조국이라는 단어가 일으키는 모든 감정들과 어우러져 있다. 이러한 이유로 종교는 특별한 힘을 가졌다.” 아주 최근에 죠지 갤럽 여론조사는 미국 대중의 종교적인 신념이 높고 안정되어 있다고 상세히 보도했다. 1983년 부활절에 갤렆여론조사가 전국적으로 조사 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인의 87%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들의 삶에 영향을 주었다고 믿고 있다. 78%는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믿었고, 60%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참지식을 위해 “절대로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72%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고 대답했다.
1976년 갤렆조사에서, 미국 국민의 38%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한다고 말했으며, 42%는 지난 7일 동안에 교회에 출석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이것은 4년후 1980년의 조사와 일치한다. 게리 윌리스(Gary Willis)는 적절하게 이런 주장을 했다, “여러해에 걸쳐서 조사한 갤렆의 신앙조사는 어떤 변동이 없이 안정성이 있다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58)
80년대 미국인의 가치에 관한 코네티커트 상호관계의 생활리포트:신앙의 영향이라는 광범위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신앙헌신의 수준이 미국인들의 가치들과 행위를 이해하는데 열쇠”라고 지적한다.59) 「코네티커트 상호관계의 생활」사에 의하여 조사된 전국적인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발견했다:
◎ 미국인들의 44%는 자주 교회에 출석하고 있으며 77%는 종교적이라고 대답했다.
◎ 미국인들의 49%는 성인이 된 후에 그리스도에게 인격적으로 헌신하였고 그 결과로 자기들의 삶이 변화된 특별한 경험이 있다고 보고했다.
◎ 28%는 성경을 자주 읽고 있으며, 47%는 성경을 가끔 읽고 있다.
◎ 73%의 미국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자주 느끼고 있으며, 21%는 가끔 느끼고 있다.
◎ 57%는 자주 기도하고 있으며, 32%는 가끔 기도하고 있다.
◎ 90%의 미국 대중들은 기독교에 속하고 있다(62%는 개신교에, 28%는 천주교에); 유대인2% 나머지 종교에 속한 자는 4% 나머지 4%는 어느 종교도 갖지 않고 있다.
◎ 1948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94%의 미국인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했는데 1980년대에도 이 수치는 변하지 않았다.60)
미국인들은 대체로 가족생활의 가치에 관해서도 매우 강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연구조사의 보고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자기들의 삶에 아주 중대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서 대인관계, 특별히 가족관계를 꼽고 있다:
◎ 79%는 자기 배우자나 또는 친밀한 동료와 함께 개인적인 감정들을 나누는 것을 자기들에게 매 우 중요한 것으로 평가 했으며, 16%는 이것을 어느 정도 중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 74%는 “가족집단으로 일을 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했으며, 22%는 어느 정도 중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 69%는 자녀들과 함께 노는 것을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했으며, 24%는 어는 정도 중요하다고 평 가했다.
◎ 67%는 나이 많은 가족 식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아주 중요하다고 평가했으며 26%는 이것이 어느 정도 중요하다고 평가했다.61)
「코네티 커트 상호관계의 생활」사가 시행한 전국연구조사보고서를 요약한 조사자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1980년대의 미국인들은 어느 다른 것 보다도 자기네들의 관계에 대한 헌신을 더 원하는 것 같다.”62)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의 52%가 이혼이 현재의 삶보다 더 어렵게만들 것이라고 믿었으며, 21%만이 이혼이 현재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믿었다. 44%는 결혼생활이 불행해진다면 어떠한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부부문제를 화해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했으며, 56%는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나 성공하지 못하면 이혼이라도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4가지 삶의 스타일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미국민들에게 요구했을 때에,
◎ 63%는 상호책임을 나누는 동등한 결혼생활을 선택했다. 이 스타일은 남편과 아내가 직장일, 가사, 그리고 자녀양육의 책임을 함께지고 협력하는 것이다.
◎ 29% 전통적인 부부관계를 선택했다. 이스타일은 남편이 가족을 위해서 돈을 벌고, 아내는 가 정과 자녀를 돌보는 것이다.
◎ 5%는 독신으로 살겠다고 선택했다.
◎ 3%는 결혼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겠다고 대답했다.63)
여성의 80%와 남성의 75%는 자녀양육을 위해서 적어도 한번은 직장을 희생할 용의가 있다고 대답했다.
연구조사의 보고에 따르면 가장 높은 신앙헌신을하는 미국인들은 가족생활전반에 대해서 그리고 우정관계에 대해서 더 큰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 93%의 높은 종교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가족집단으로서 일을 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다고 여 긴 반면에, 낮은 종교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58%만이 그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 가장 신앙적인 사람들의 71%가 그리고 가장 비신앙적인 사람들의 40%가 자주 가족과 친척들을 방문한다고 말했다.
◎ 가장 신앙적인 사람들 80%가 나이 많은 가족 식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반면 가장 비신앙적인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것이 52%에 그쳤다.
◎ 64%의 가장 신앙적인 사람들이 자기의 직계가족으로부터 만족을 얻는 반면 가장 비신앙적인 사람들의 경우는 이것이 39%에 그쳤다.
◎ 41%의 가장 신앙적인 사람들은 전통적인 부부관계를 선택했으나 가장 비신안적인 사람들중에 는 16%였다.
◎ 60%의 가장 신앙적인 사람들은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불행한 결혼을 화해시켜야 한다고 여긴반면에 가장 비신앙적이 사람들의경우에는 33%에 불과했다64)
「프린스턴 종교 연구소」와 갤렆기관이 공동으로 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발견되었다:65)
◎ 교회에 잘 출석하는 78%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중에 38%는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고 있다고 말한다.
◎ 89%의 교회 출석을 잘하는 교인들과, 64% 그렇지 않는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 들, 하나님으로 믿는다.
◎ 93%의 교회출석을 잘하는 교인들과 68%의 그렇지 않는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다.
◎ 98%의 교회출석을 잘하는 교인들과 76%의 그렇지 않는 교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74%의 열성적인 교인들과 45%의 그렇지 않는 교인들은 하루에 한번이상기도한다고 했으며, 나머지중에 19%의 열성적인 교인들과 34% 그렇지 않는 교인들은 하루에 한번은 기도 못하지만 기도한다고 대답했다.
◎ 95%의 열성적인 교인들과 74%의 그렇지 않는 교인들은 자기 자녀들이 신앙적인 훈육받기를 원했다.
◎ 이 연구조사에서 41%는 비열성적인 교인이요 59%는 열성적인 교인으로 분류되었다(열성적인 교인이란 주일외에도 교회에 출석하며 교회의 교인으로 등록되어 있는 교인을 말한다).
이러한 연구조사의 발견에 따르면, 미국 대중들은 고도로 신앙적이며, 현저하게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 신앙적인 헌신도가 강할수록 확신과 행동실천에서 더 강한 가족가치들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미국대중의 대다수는 자기들의 가치관을 기독교 성경에서 이끌어 내고 있으며, 성경이 가르치는 인간관계의 윤리적 영적 원리들이 미국인들 대다수의가족생활가치의 틀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성적인 교인들이나 그렇지 않는 교인들 모두가 가족생활과 부부관계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고 있다. 가족상담자들은 이 사실을 인식해야 하며, 가족식구들이 성경적 가치에 의해서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영향 받고 잇다는 기대를 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지식이 필수적으로 상담자의 상담목표설정에 영향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상담자가 가족관계에 관해서 성경적인 원리들을 잘 파악하는 것은 전략적 중요성이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원리들이 상담을 받고 있는 가족들 중에 고도로 신앙적인 헌신을 하고 있는 가족들의 목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있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원리들은 교회에 열성이 아닌자의 가치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 이유는 그들도 대부분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가치조망
그리스도인 상담자는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우리 곁에 계시다는 것과 절대적으로 선하시다는 것을 믿는다. 가족은 이 믿음 위에서 효과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가족 생활에 대한 이러한 성경적 조망은 다음과 같은 기능적 개념들을 포함한다: 어느 사람도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하나님이 한 분의 주님이시다). 사람들은 생활필수품 때문에 근심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과 하나님의 나라의 일에 헌신하여야 한다(마6:24-33).
기독교 상담자는 영적인 뿌리가 생활의 모든 필요들을 채우는 근원이라고 생각한다(눅6:43, 45). 이러한 이유로 상담자는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이 자기들의 필요를 위하여 하나님께 돌아서서 기도하는 것을 찬성한다(눅11:9-13, 마8:8-10, 약1:5-8).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그분이 적극적으로 가족 생활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상담자들과 미국인 대부분의 기본적인 전제이다.
가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께서 가족을 창조하신 것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역사(役使)를 우리가 알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것을 일반계시(과학적인 연구에 의한 인간의 탐구등을 통하여 얻는 것)와 더 완전하게, 특별계시(성경)를 통하여 깨닫는다. 그러므로 기독교 상담자는 성경의 권위의 지도아래서 사회과학으로부터 얻는 지식에 기초하여 가족에 접근한다.66)
성경의 계시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성부, 성자, 성령 3위 하나님으로 계시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계셨으며, 인격을 가지시며, 사랑,양육, 창조적 생명력, 최종적인 권위등의 특성을 지니시며, 우리의 삶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가족식구로 판단하신다.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성은 인간관계의 궁극적 모델이 된다. 사랑과 완전한 커뮤니케이션이 인간의 창조이전부터 삼위하나님의 3위가운데에 있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먼저 지으시고 그 후에 하와를 지으셔서 개인으로 창조하시고 이 둘을 부부로 한 몸이 되게 하여 가족을 창조하셨을 때에, 그 분은 가족을 평생동안 헌신의 언약으로 제정하신 것이다. 이 헌신은 서로를 향한 것일 뿐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함께 섬겨야 할 하나님을 향한 헌신을 의미한다(창2:21-24).
이것은 기독교상담자가 가족 관계의 정의를 양성간이 결혼, 혈연, 혈통, 또는 입양에 의하여 창조되는 관계로 이해하여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적인 세계관은 그외의 어떤 가족정의, 예를 들면 관계없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이든지 결혼관계인양 동성연애자들이 함께 사는 것 등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성경적인 세계관에서는 가족은 인간에 의하여 시작되고, 편리에 의하여 단순히 사회적으로 계약을 맺어 그 결과로 생겨난 하나의 통일체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최초의 인간기관이며, 이 땅위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며,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루어 나가는 환경으로 지음을 받은 기관이다(창1:26-28, 2:21-25, 시127:1, 잠18:22, 고후6:14, 히13:4).
가족안에서 사랑과 화합
이러한 기독교적 세계관으로부터 아주 중요한 가족 상담의 하나의 목표가 따라온다: 가족식구들은 전체가족을 희생시키고 자기의 개인적인 목적들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상담자는 가족들이 날마다 하나의 통일된 목적을 가지고,아내와 남편사이에 화합하여 함께 살아가도록 도와야 한다. 이러한 통일과 화합은 개인적인 차이들과 은사들을 초월하는 것이며, 사실, 개인적인 차이들과 각자의 은사들은 대등한 것으로 받고 조화시켜야 하는 것이다(창2:18-25, 솔로몬의 애가 8:7, 잠언 31:20, 로마서 15:1, 2, 엡5:31, 마19:5, 막10:7,8).67)
상담자에게 가져오는 수 많은 가족문제들은 가족안에서 특정한 식구들의 이기적인 태도의 결과로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이기적인 태도들은 가족붕괴, 자녀교육에서 부부협력의 어려움, 그리고 다른 가족 식구들의 필요를 거절하는 등의 근원적인 문제를 만들어 낸다. 반대로 기독교 세계관은 성령의 능력으로 실천되는 사랑이 모든 가족 관계의 최우선의 원리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성경적인 사랑은 다른 가족 식구들이 어떠한 행동이나 태도나 상황에 있을지라도 그것에 상관없이 그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이런 종류의 사랑은 다른 가족식구들의 필요를 자기 자신의 필요보다 먼저 내세울 때에 드러나는 사랑이다(요15:12, 13:35, 고전13, 골3:14, 빌2:1-4). 마태복음 10장 20절과 요한복음14장 12-17절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지혜와 사랑등의 효과적인 가족관계에 꼭 필요한 특성들을 제공해 주신다고 가르친다.(갈5:13-26)
하나님과의 관계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살았을 때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보여 주었던과 같은 성품을 드러낼 수 있는 힘을 사람들에 줄 것이다(요15장). 사람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가족안에서 다른 사람을 창조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줄 것이다(요17:20-24, 26을 보라).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구속하시고 사람들 안에 거할 때에 사랑, 평화, 인내, 친절, 기쁨, 선함, 온유, 신실등과 같은 성품이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들에게 생겨난다고 가르친다. 마찬가지로, 질투, 시기, 이기주의와 독선, 급한 성격과 악감정을 품는 것과 같은 부정적 성격들은 사라질 것이다. 이런 선한 성품의 존재와 부정적 성격의 배제는 가족들 가운데서 양질의 관계를 촉진시킨다. 기독교가족 상담자는 일상생활의 실천 가운데서 이런 긍정적인 열매를 생산하는 영적인 사람으로 발전하도록 격려하는 것을 상담의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성경에서 권장하는 가치체계에서, 인간의 최우선의 헌신은 하나님께 향한 것이다. 사람에게의 헌신은 하나님께 헌신에 이어 두번째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완성을 추구하는 대신에 하나님과 이웃에게 헌신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이웃에게 먼저 헌신하여 사는 동안에 그 부수적인 열매로 자기 완성을 경험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다. 둘째는 이와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모든 율법과 선지자는 이 두계명에 달려있다(마22:37-40). 그 분은 또 이런 말씀도 하셨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5).
성경전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웃의 복지에 관심을 가지라고 권면한다.(마10:42, 눅9:48). 이것은 날마다의 삶 가운데서 실천된다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수 많은 가족 분쟁들은 이 하나의 기본적인 영적 문제의 결과로 온다. 즉 가족식구들 중에 자신들을 최우선 또는 궁극적인 우선권으로 생각하고 하나님과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복지에 더 높은 헌신을 보이지 않는 식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상담자들이 이와 같은 영적 필요를 확인했을 때에, 그들은 이문제를 그 특정한 식구나 또는 관계된 식구들의 상담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식구를 향한 분노는 하나님이 판단하실 것이요(마5:21,22), 다른 한편으로 긍정적인 태도들은 기도와 함께 긍정적인 보상을 받게 할 것이다.(마6:5,6). 기독교 가족상담자는 가족식구들의즉각적인 복지 뿐만 아니라 그들의 궁극적인 영적 복지까지도 관심을 표명하여야 한다.
주님의 기도
기독교 상담자는 가족의 문제를 보면서 하나님의 조망을 갖는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주신 모형적 기도인 주기도는 상담에서 가족들을 향한 관심들을 담고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뿐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용서한 것같이
우리의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 기도는 전혀 다른 하나의 관점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특히 한 개인이나 가족 집단은 상담자에게 올 때에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들의 행복을 찾아서 온다. 기독교적관점에서 볼 때 자신을 위한 행복추구는 합당한 상담목표가 아니다. 주님의 기도는 이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먼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인하고, 그분의 의롭고 거룩한 성품을 높이 올리며, 그분의 뜻이 하늘에서 다 이룬 것 같이 이 땅위에서도, 즉 인간의 모든 삶 가운데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나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날 그날에 필요한 양식을 구한다. 주기도의 그 다음 항목은 용서의 필요를 가르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하다. 문제가 생겨 상담하러 오지 않으면 안되는 가족은 자기들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을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우리는 가족 식구들이 서로에게 죄를 지을 때 그 결과로 생겨나는 고통과 상처와 갈등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기도는 서로간에 용서해야 할 필요를 고양시킨다.
용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 대가 지불로 오는 상실을 받아들이기로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용서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 그까짓거 뭐, 괜찮아, 내가 용서하지.” 이런 것은 순수한 의미의 용서가 아니다. 만약 아버지가 아들에게 100만원을 빌려 주었고, 후에 그 빚을 갚아준다면(그의 죄를 용서한다면), 그 뜻은 아버지가 100만원 손해보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용서는 그분께 어떤 상실을 요구한다. 즉 자기 아들과의 분리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 가족식구들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날마다 한 맺힘과 분노를 안고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상실을 가져올 것이다.
가족 상담 상황에 합당한 또 다른 주기도의 항목은 “시험에 들지 말게하옵시며”하는 간구이다. 가족들이 경험하는 수 많은 어려움들은 반복적으로 시험에 빠지는 근원적인 문제와 관계가 있다. 더 나아가서, 미국인들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자주 나아 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님이 가르친 모형적 기도인 주기도는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기도로 하나님 앞에 모든 문제들을 가지고 나가게 만드는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성경의 사용
기독교 상담자들이 가족상담에서 구체적으로 성경구절들을 사용하지 않을 때에라도, 그들이 전체적인 상담목표를 설정하는 일은 성경적인 원리들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가족 상담과정에서 기독교 상담자가 가족문제에 적합한 성경구절을 직접적이요, 분명하게 증거하기를 원할 때에 그는 자기가 기억하는 것이든지 또는 직접 성경구절을 읽고 가족들에게 이 구절이 그들의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물을 수 있다. 또 다른 경우에 기독교 상담자는 성경구절에 가족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성경에서 가르치는대로 결정을 내리도록 가족들을 권면할 수 있다. 가족 식구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선택할 필요가 있다. 다른 경우에 가족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한번은 한 가족이 슬픔의 과정에서 도움을 받으러 왔다. 젊은 아내요 어머니인 부인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 가족은 그 어머니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가족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위로의 말씀을 듣고 크게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가족생활에 그 위로의 효과를 심을 것인가 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가족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 여호와께서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그 명하신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라 할지니라(신6:4-7, 24-25).
가족 생활에 대한 수 많은 명령들을 우리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기독교 가족 상담자는 이 모든 성경의 가르침들을 상담과정속에 통합시켜 나가야 한다. 특히 이 가르침들이 가장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전략적인 장소는 상담의 목표를 설정하는 데 이다. 가족 결속력, 가족 정체성, 그리고 가족의 복지등은 가족의 유산들을 먼저 깨달아 알고 그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요, 그 다음에 가족들의 구체적인 역할, 교회의 영성생활에의 참여등의 순서로 상담이 진행된다.
예수의 어머니는 자기와 요셉이 예물을 드리고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와서 약속의 축복을 받았을 때에 그 때에 받은 축복이 예수님의 생애동안에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이 구절들은 또한 예수께서 성전에서 장로들과 함께 앉아 있으면서도 자기 부모님들에게 순종했다고 가르친다(눅2:22-51). 히브리의 유산에는 가정과 회당이 서로 지원하여 유아로부터 사춘기에 이르기까지 자녀들을 양육한다는 세계관이 포함된다. 예수님이 성장할 때에 거기에는 육체적, 사회적, 정신적, 영적인 가족생활의 국면들이 균형있게 유지되었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가시더라”(눅2:52). 신앙공동체의 삶에 참여하는 것은 예수님의 영적 성장에 매우 중요한 요소였으며,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기독교적 가정 생활의 모형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성경적인 가족 모델은 가족 식구들이 서로 다른 역할들과 기능들과 능력들을 가졌다고 가르치면서도 동시에 공동의 선을 위해서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성경은 가족안에서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등에 관해서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가족안에서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
성경은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되심을 비유로 해서 가족통치의 모습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임과 같이 남자가 여자의 머리이다. 그러나 이 머리는 교회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적으로 내어주는 머리이다. 마찬가지로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사심없이 자신을 희생하여 아내에게 헌신하여야 하는 책임을 갖는다. 방향을 정하기 위하여 자기의 머리인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남편은 자기 아내의 필요를 채우며, 아끼므로서 자기아내를 적극적으로 사랑해야만 한다(엡5:22-33, 골3:18, 19, 딤전 3:11,12, 고전 11:3, 14:34,35, 벧전 3:7).
가족 상담을 하는 가운데, 남편이 자기 아내에게 독재적인 방법으로 권위를 행사하여 인간으로서의 자기 아내의 존엄성을 무시해 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상담자가 발견하였다면, 상담자는 성경적인 가르침에 남편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그의 잘못된 행동을 그치라고 권고하고 성경적인 모형을 따르도록 권면해야 할 책임을 진다.
성경은 중대한 문제로 논쟁이 생긴 경우에 부부관계는 각 사람에게 한표씩만 주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남편에게 지도력을 가지게 하는 관계라고 가르친다. 남편의 책임은 사랑으로 최종결정을 내리는 것이다(엡5:22-6:4).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면, 남편은 자기의 머리됨의 위치와 연관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가족의 머리로서의 지도력을 자의적으로 포기할 수 없다. 남편은 자기의 머리됨의 권리를 재확인 받을 필요가 없다. 그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심한 손상을 입어 이 책임을 행사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기의 머리로서의 지도력을 아내에게 양도할 수 없다.
성경의 따르면 남편의 권위는 하나님이 위임하신 지위요, 그러므로 어떠한 합법적인 권위도 하나님의 명령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다(롬13:1, 엡5:22-33). 이 말은 남편은 자기 아내에게 죄를 범하라고 명령할 권한이 없으며, 마찬가지로 아내도 하나님을 불순종하라는 명령에 순종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가져서 남편의 지도를 받는데 따르는 책임과 도덕적 판단을 행사해야 하는 책임을진다(벧전 3:1-6). 성경적인 모형은 남편이 예수님을 본 받아서 사랑과 섬김의 정신으로 머리의 지도력을 행사해야 된다고 가르친다(빌2:5-11, 마20:28). 남편은 우선적으로 가족을 섬기는 책임을 져야 하며 자기가족을 지배하려 해서는 안된다(골3:19, 21, 엡6:4). 그리스도인 남편은 자기의아내와 자녀들을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보호하기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야 하며, 따라서 성경은 남편에게 자기의 필요를 먼저 챙기려는 권리를 주지 않았다.
디모데전서 5장 8절과 창세기 3장 17-19절은 남자가 자기가족을 재정적으로 부양하는 책임을 진다고 가르친다. 성경은 아내가 효과적인 관리와 몇가지 형태의 사업을 통하여 가족의 수입을 증대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잠31:10-31). 그러나 성경은 물질적인 소득의 목적을 위해서 가사일을 포기하고 직장에 나가도록 아내에게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남편에게 없다고 가르친다(디전 5:8, 엡5:5). 기독교인 남편들이 더 높은 물질적 수준을 위해서나 또는 중류사회의 삶의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하여 아내를 직장에 내 보내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딤전6:8). 남편은 아내에게 직장에서일하는 것을 요구하면서 자기의 동기가 무엇인지를 잘 분석하여 물질적인 동기가 자녀양육의 영적 책임을 가리우게 해서는 안된다.
가족 상담자는 가족부양의 책임을 다하느라고 아내와 자녀들의 영적 지도를 소홀히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남편들의 합리화를 잘 살펴야 한다. 성경적인 원리는 이러한 합리화를 해서는 안된다고 그리스도인 남편들에게 권면한다(딤전3:4; 벧전 3:7, 엡5:28,29).
성경은 기독교인 남성들에게 지속적인 교육과 모범을 보이는 기독교인의 생활과 가정에배인도등을 통하여 자기자녀들을 선하게 인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신6:7, 11:19, 엡6:4, 시34:11, 78:5,6). 기독교인 아버지와 남편은 자기 가족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 가족을 보호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온 가족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도록 정기적으로 기도해야 한다(딤전2:8, 살전 5:17, 벧전3:7). 아버지는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자동적으로 자기 가족을 지키실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된다.(약4:2) 성경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이 가족을 하나의 통일체로 보며, 머리인 가장의 지도를 받는 가족식구들이라고 가르친다(행16:31, 요4:53, 행11:14). 그리스도인 남편과 아버지가 없는 경우에 여자가 하나님의 도움으로 지도자의 책임을 담당한다(예, 행16:4의 루디아, 딤후1:5의 로이스와 유니게, 또한 행16:10을 보라).
아내와 어머니의 가족안에서의 역할
성경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교회의 비유를 사용하여 어떻게 아내가 사랑과 순종으로 남편에게 기꺼이 복종하도록 하나님께서 명하고 계신지를 보여준다(엡5:22-24, 골3:18). 성경은 아내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이라도 남편이 요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순종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벧후3:6). 또한 기독교인 아내가 자기의 남편을 꾸짖을 수 없다고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엡5:21, 골3:16). 그러나 아내는 끊임없이 비판하며 남편을 괴롭게 함이 없이 유순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하여야 할 것이 있다(벧후3:1-5).
성경은 여인의 우선적인 의무로서 자녀를 낳고 양육하며, 가정을 열심히 가꾸며, 가정을 정서적인 면에서 생산적으로 만들며, 가정을 교역의 중심으로 삼는 것이라고 가르친다(딤전5:10, 14, 디도서2:4,5, 잠31:10-31). 그녀는 이것을 하나님의 부르심을 완성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며, 일하는 데에 급료가 부가되지 않으면 값어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의 통상적인 문화개념에 복종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류의 물질주의적 평가는 성경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것이다. 여성은 가정 밖에서의 수입의 정도에 따라 자기의 정체성이나 가치를 구할 필요가 없으며, 자기완성이라는 세상의 아이디어를 거절하고 다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려고 힘써야 할 것이다(마16:24-26, 막8:34,35, 죽9:23-26).
이런 성경적 가르침을 어떻게 상담목표설정에 적용할 것인가?
기독교 상담자가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기독교 가정을 상담할 때에, 가족상담을 위한 몇가지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같은 가치 오리엔테이션을 함께나누는 상담자와 가족은 자기의 가족상황에 어떻게 성경적 원리를 적용해야 할 것인지를 더 쉽게 발견하다 .그러나 기독교신앙을 갖고 있는 식구가 안 믿는 식구와 함께 살고 있는 가족에서는 목표를 설정하는데에 상당한 갈등이 예상된다. 불신자는 성경적 가치에 반대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상담자에게 가치를 개입시키지 말고 상담만 하자고 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연구조사에 나타난 증거에 따르면, 상담에서 가치를 명백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몇번의 면접상담이 지나면, 내담자는 자기의 가치를 상담자의 가치에 맞추어 전환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상담자가 불가피하게 자기의 가치들을 내담자에게 전달할 수 밖에 없는 간접적인 길들이 열려있다. 상담은 그 성격상 가치를 전달할 수 밖에 없다. 상담을 위해 어떠한 목적을 설정하든 그 목표를 선택하느냐 아니하느냐 하는 것은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이다.
목표설정에 어려움이 있을 때에, 일반적인 원칙은 가족식구들이 문제라고 여기고 가지고 오는 문제들을 다루고, 그 가족의 수준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대로 공통점을 찾도록 노력하라. 상담자로서 당신이 기독교신자인 가족식구들과 불신자 식구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공통된 가치들을 발견하도록 하라.
맥앤드류가족은 아내는 신자이고 남편은 성경적인 원리에 매우 반항적이기 때문에 기족교 상담자에게는 하나의 도전이었다. 맥앤드류 부인은 고집스럽게 말했다, “나는 내 남편이 우리 가족을 지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매우 수동적인 성품으로 성경적인 지도력의 모델을 거절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했다. “결국 나는 나의 일 때문에 너무 바쁩니다. 나는 집에 돌와올 때면 극도로 피곤해있습니다. 나는 나의 아들의 생활에 끼어들고 싶지 않습니다.” 맥앤드류부부는 누가 자녀들을 훈육해야 하는지와 맥앤드류씨가 어떻게 자녀훈육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인지에 관해서 상당한 갈등을 겪은 역사를 가졌다. 이제 이상적으로 말하면, 자녀발달에 관한 아버지 훈육의 효과에 관한 연구조사와 성경의 모델에 따라서, 맥 앤드류씨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자기 가족의 영적 지도력을 담당하여야 옳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영적인 일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그는 기독교를 거부하는데에 극도록 감정적이 되어있다. 이 문제로 그에게 압박을 가한다면, 이혼해 버리겠다고 자주 위협하고 있다.
이 경우에 맥 앤드류부인은 결혼한후에 예수를 믿었고, 그들 부부가 처음 결혼했을 때에는 성경적 모델에 따라 자녀를 교육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남편도 아내도 갖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자기 남편의 요구에 조용하고 유순한 존중과 순종으로 따르려고 하지 않고 자기 남편을 이겨 보려고 아내가 성경의 권면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내의 책임은 남편의 영적인 복지를 위하여 기도하고 자녀들을 영적으로 양육하려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맥 앤드류씨는 매우 난폭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첫번째 면접상담에서 그는 소리 질렀다, “나는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수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나는 잔소리하는게 아닙니다. 내 아내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녀도 내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요. 그러나 결국 우리는 자녀들을 가졌고, 나는 그들의 생계비를 책임져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나에게 무엇을 더 기대하겠다는 것입니까?”
이 가족을 위해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어려운 과정이다. 기독교 상담자는 자기 아내와 자녀들의 물질적인 필요를 제공하기 위하여 아버지가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공명해야 한다. 가족식구들의 장점들을 발견하고 그 장점 위에서 상담대화를 진행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아내가 이야기에 끼어들게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특히 남편 성질이 급하고 폭발하는 경향이 있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첫번째 면접상담시 맥 앤드류씨는 무심결에 자기의 성질을 들어냈다. “그렇지요, 나는 성이 나면 성질을 참지 못해요, 때때로 내 아내에게 거칠게 대한 것은 사실이지요.”
이런 경우에 상담자는 먼저 몇가지 단기 목표를 세우고 약간 다른 곳에서부터 상담을 시작해 나가는 것이 좋다. 육체적 폭력을 눌러 참고 있는 남편과 함께 그 문제를 상담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일이다. 상담자는 그가 자기 자녀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도 알아보아야 한다. 남편의 화가 폭발했을 때에 그가 어떻게 가족관계를 가지고 있는가하는 것을 탐색하고, 절제를 배우게 남편을 도와 주는 것은 그에게 뿐아니라 모든 가족 식구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이 불신남편과 함께 상담하면서 상담자가 성경의 장 절을 인용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사람이 성경에 대해서 공공연히 적대감을 표시하다면, 이런 접근은 실패할 것이다. 그렇다고 기독교 가족상담자가 가족들을 권면하면서 성경의 원리들을 따르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남편과 몇가지 영적인 문제들을 부드럽게 탐색하기 전에 적극적인 관계를 맺고 파포를 형성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부모와 자녀
가족 상담의 가장 보편적인 목표가운데 하나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부모결속을 강화시켜 부부가 팀이 되어 자녀 교육의 책임을 함께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부모들 사이가 단절상태라면, 그들은 자녀를 훈육하고 양육하는 데에 서로 지원하면서 일 할수가 없다.
기독교 가족 상담자들에게, 이것은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복이라는 서경의 가르침에 근거한다. 자녀들은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 측량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가졌으며, 부모는 자녀들을 창조주로부터 받은 선물로 여기고 가족으로 받아들여야한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요, 부모는 다만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위임을 받은 자이다. 성경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교육시키며, 물질적 영적인 복지를 제공하여야 할 우선적인 책임과 권위를 가졌다고 가르친다(창33:5, 시78:1-8, 127:3-5, 잠17:6, 엡6;1-4, 딤전 2:15, 신4:9, 6:1-9).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부모는 자녀들을 훈육하고, 훈련시키고 양육하는 역할을 담당하면서 하나님의 사랑, 정의, 자비, 그리고 정의의 특성들을 반영해야 한다(잠22:6, 29:15, 삼상3:13, 시78:1-8, 딤후1:5, 3:15, 엡6:1-4, 고후12:14). 자녀들은 주 안에서 자기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하며, 부모들은 신체적인 형벌을 포함하여, 사랑으로 행사하는 훈육을 통하여 자녀순종을 강화해야 한다(신5:16, 삼하 7;14, 잠3;11,12,13,24, 22:15, 23:13, 29:15).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부모직의 최우선의 목표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하여 자녀들이 육체적으로 성숙했을 때에 영적으로도 성숙한 성인이 되게 하는 것이며, 십대들을 성인에 들어가는 과정으로 보고 책임있는 인간으로 존중하여 지도하는 것이다(눅2:41,42).
자녀들이나 부모들은 모두 가족이 식구들 각자가 한 표씩 행사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다고 부모들은 사춘기 자녀들이 가족의 규칙에 따라 제안하는 것들까지도 주의 깊게 들을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이 말은 가족식구들은 모두 자녀들을 위해 최종적인 규칙을 세우는 부모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십대자녀들과 부모들 사이에 일어나는 심각한 갈등영역들 가운데 하나는 밤에 몇시까지 귀가해야 하느냐 하는 것과 어디에 있는지 가족들에게 자기들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는 가족규칙을 정하는 것이다. 만약 팀이 자기 어머니에게 죤의 집에가서 농구하겠다고 이야기하고, 그가 죤의 집에 도착하여 농구는 약간만하고 죤과 함께 햄버거 먹으러 가기로 했다면, 부모는 그가 어디로 가는지를 정확하게 보고하게 만드는 일종의 가족규칙을 세우고 싶어한다.
먄약 사춘기 자녀들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어떤 규칙들이 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 경우에 가족 상담자는 부모들과 사춘기 자녀들의 주장을 듣고 협의하여 서로간에 동의한 것을 문서로 써서 약속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나서 식구들 각자가 그 약속문서에 서명하고 복사본을 만들어 각자에게 주고 상담자도 복사본 하나를 가지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함으로 해서 부모들의 기대가 무엇이고, 자녀들이 그 기대를 따르지 못했을 때에 어떠한 결과가 생기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되고 애매모호함이 없어질 것이다. 이러한 류의 행동계약은 행동기대에 관해서 부모와 청소년 자녀들 사이의 분명한 전달의 목표를 성취하는 것으로 부모들의 권위도 함께 세울 수 있는 방안이다.
가족 상담시 상담목표들을 설정할 때에, 상담자는 부모들이 자녀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오고 오는 세대에 중대한 책임을 가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가족에서 부모의 지도력 스타일은 의로운 삶과 죄 스러운 삶이 자녀들을 통해서 오고 오는 세대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에서 부모자신들에게 뿐 아니라 미래에도 그 결과가 미친다. 기독교부모들은 가족 상담자를 찾을 때에 자녀들을 위해 자기들이 자라나면서 경험한 것보다 더 성경적인 접근을 가족 생활에 제공받아야 한다. 이러한 우선적인 목표는 잘 성취될 때에 여러 세대동안 교회의 성장과 양육을 촉진시킬 것이다. 가족의 역사적 의미에 관한 성경적인 원리들은 출20:5, 신5:9, 10, 16, 렘 35:18, 19, 애5:7, 시78:1-8, 그리고 행 2:39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과 가족의 관계가 세대를 통해 이어지며, 하나님의 약속들의 결과로 3,4대 자손까지 도달한다고 가르친다. 많은 영적 생활의 약속은 개인과 가족들에게 동시에 주는 것이다(창12:2, 3, 행16:31, 고전 7:14, 딤전 5:3-16, 딤후1:5등을 보라).
독신성인들이 자녀교육을 통해서 세대에서 다음 세대에로 자기들의 삶의 결과를 전달하는 가능성이 직접적으로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적인 가족관에서 그들이 간관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결혼하는 대신에 독신으로 살도록 부르시고 있으며, 독신성인들은 모두 시간을 바쳐 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열심을 다하여야 한다.(고전 7:32, 34, 전 12:1-7). 이 말은 성인이 되어 독신으로 사는 것이 아동기의 연장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며, 그들이 자기 이기주의적인 욕망과 성적 방종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성경전체의 가르침은 독신들로 하나의 가족 단위로 생각하여 교회안에서 다른 가족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시68편 롬6장).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을 숙고하면서, 우리는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삶에 접근하는 가족들 뿐 아니라 가족 상담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은 모두 가족 상담이 전 과정의 근원이 되는 여가지의 중심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족상담의 과정에서 협의되는 목표는 다음과 같은 성경적인 가치에서 도출되어야 할 것이다.
1. 부부구조에 대한 확고한 헌신과 부부관계는 영속적이라는 인식
2. 자녀를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며, 자기 자녀를 위한 책임이 부모에게 최우선의 것임을 인식함.
3. 모든 인간의 삶의 신성성인식(장애자이든지, 병자이든지, 태아든지 노인이든지 누구이 든지 모든 인간의 삶)
4. 혼돈된 가족 관계에 반대해서 안정되고 화합적인 가족 관계가 바람직함.
5. 자녀들의 합당한 영적, 정서적, 사회적, 그리고 육체적 발달을 위해 효과적인 자녀양육 기술의 중요성
6. 문화적 가치들이 가족을 통하여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에도 전달됨.
이 사회의 중심적인 단위로서, 가족의 보존은 개인의 복지에 뿐 아니라 사회의 안정에도 핵심이다. 대부분의 가족상담에는 개인적인 “권리”에 초점을 맞추는 자기 중심적인 방향에 반대하여 가족적인 삶의 방식의 계속을 지지하는 일련의도덕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
제 4장
가족상담의 목표
상담자는 가족들을 위해 광범위한 수많은 치유적인 목표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일반적인 목표들은 양육, 도움, 돌봄, 지원, 위로, 그리고 육체적인 애정등을 포함하는 성경적인 사랑의 개념에서 도출된다(고전 13장의 예를 보라). 기독교 가족과 기독교 상담자는 모두 가족식구들이 서로 사랑해야 하며, 이 사랑이 가족식구들이 서로 용서하며, 유순하게 서로 도우며, 확실한 방법으로 서로 지원하며, 서로 보호하며, 그리고 서로 안위하는 데에서 분명하게 표현된다는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가족 식구들이 필요한 사랑을 이미 받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그 사랑을 보류하지 말고 가족 식구들은 모두 정기적으로 서로를 향한 애정과 존중을 표현해야 한다.68) 성경적인 사랑의 포괄적인 개념은 가족상담에서 수 많은 일반적인 목표들로 표현될 수 있다.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향상시키기
가족 식구들이 효과적으로 서로 사랑할 때에, 가족들간에 각자의 필요들과 감정들과 생각들을 단순하고 합당하고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 상담의 하나의 목표는 가족들이 빈약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 경우에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물론 커뮤니케이션은 식구들 각자가 자기들의 필요들, 감정들, 생각들을 서로에게 분명히 표현하는 것 뿐 아니라 가족들 서로간에 경청하는 것이다. 사랑은 가족 식구들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경청할 때에 표현된다. 가끔 가족상담자는 경청하는 기술 뿐 아니라 생각들과 정서들을 전달하는 기술도 가르칠 필요가 있다.
상담을 받으러 온 가족들은 서로에게 부정적인 비판의 모형을 갖고 있을 때가 많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받은 커뮤니케이션 형태를 되돌려 주려는 경향이 있으므로(신학자들은 이 경향성을 죄의 모형이라고 기록한다(롬12:17), 비판의 사용이 가족관계에서 갈등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비판하는 것과 귀찮게 하는 것은 사랑과 하나님 사이에 영적 조화를 깨는 것이다(엡4:26, 31, 골3:8). 비판은 또한 식구들의 성장과 가족의 화해를 방해한다. 이것은 식구들에게 손상을 주어 상대방에게 거치른 판단을 하게 할 뿐 아니라 판단 받은 사람을 상처입게 만든다. 마태복음 5:23절과 24절은 이렇게 가르친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누가복음 6장 37절과 38절은 이렇게 가르친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성경은 사람들에게 거치른 비판과 물리적 폭력으로 갈등을 해결하기 보다는 다른 편 뺨을 돌려 대라고 가르치며(마5:39-48), “다른 사람이 너희에게 하여 주기를 원하는대로 너희도 그들에게 하라”(눅6:31)고 가르친다.
반복적인 비판이 있는 가족에서 가족 상담은 가족식구들간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증가시키고 해로운 비판을 감소시키려고 해야 한다. 목표는 가족식구들이 서로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성도들 사이에 감사의 표시를 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사도 행전은 성도들 사이에 바나바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요셉을 소개한다. 그가 그런 별명으로 불리는 이유는 다른 사람을 잘 격려하기 때문이다.69) 비평은 가족 식구들 상이에서 격려의 말과 사랑의 말로 바꾸어져야 할 것이다.
장애적 경직 모형들과 제휴의 교정
가족 구조안에 있는 두 사람이나 그 이상의 가족 식구들이 다른 가족식구들에 대항하여 팀을 이룰 때에, 불건전한 제휴(coalition)가 형성된다. 우리는 이런 유형의 문제를 제2장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성경적인 견해에서 볼 때, 기독교 상담자는 이런 모형이 가족식구들을 괴롭게 만들 뿐 아니라 하나님을 슬프게 만드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성경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피조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은 성령안에서 하나님과 하나됨을 나눌 수 있다고 가르친다(창1:26, 요17:11, 21-23). 더 나아가서 가족식구들은 성령안에서 서로와 함께 그리고 하나님과 통일과 조화를 경험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가족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만들어가는 통일이며, 이것은 다시 가족의 결속을 강화시킨다. 한편으로 성경에는 가족식구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건전한 개체의식이 있다. 그러나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은 가족 단위의 창조주시요, 개체적인 모형 뿐 아니라 한 하나님 안에 성부, 성자, 성령 3위 하나님의 하나됨을 반영하는 공동체적 통일성을 계획하셨다. 성경은 3위안에 완전한 사랑과 커뮤니케이션이 있다고 가르친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으므로 가족단위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그들의 가족안에서 삼위안에 있는 사랑과 커뮤니케이션을 반영하는 가족 관계를 가지도록 계획되었으며, 이것은 가족식구들을 중생시키는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가능하게 된다.
반대로, 가족이 둘이나 그 이상의 가족 식구들이 다른 식구들에 대항해서 장애적이요 경직된 제휴모형을 경험할 때에 거기에 곧 타락의 결과로 생긴 죄에 의하여 창조된 하나의 상황이 있을 것이다(창3장). 많은 경우에 가족 상담자는 그 이전 가족 식구들이 어떻게 현재의 가족 식구들에게 죄를 지었는지의 역사를 세대를 따라 추적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가족 상담자는 가족식구들간의 이러한 장애적인 제휴들을 사랑과 서로 복종하는 관계로 바꾸는 것을 하나의 목표로 설정한다. 서로 복종하라는 성경의 가르침 가운데서 우리는 다른 가족 식구들의 이익을 먼저 보살피기 위해서 자기자신의 이익을 뒤로 미루기로 작정하는 자율적인 인간상을 본다. 물론 복종의 뒤에 있는 동기는 가족식구들의 복지를 위한 관심과 사랑이다. 가족식구들은 가족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는 능력을 먼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과 용서를 경험함으로써,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 사랑으로 응답함으로서 얻는다(마5:44-46, 19:19, 22:37-39).70) 그러므로 복종은 가족 안에 있는 모든 식구들의 선을 이루며, 그것은 복종하는 자와 동시에 그 복종을 받는 자에게 일종의 자유를 가져온다.
혼동의 극복
사람들의 정서적인 문제들과 영적인 문제들과 관계의 문제들은 가족문제들과 서로 얽혀 있을 때가 많다. 이러한 경우의 예는 우리가 2장에서 이미 언급한 혼동의 문제이다. 상담자가 가족안에 혼동을 발견하면, 상담의 목표는 가족식구들을 가족단위로부터 구별하도록 돕는 것이다. 어떤 가족은 하나의 혼동모형을 발전시키는데, 그런 가족에서 보면, 개체는 전혀 용납되지 않으며, 조작적인 통일성이 비정상적으로 친밀하고 서로 얽힌 가족관계속에 강요된다.
이런 모형이 그레그의 가족에서 관찰되었다. 8세인 그레그는 아침마다 무엇을 입어야 하는지 결정하는데 어려움을 가졌다. 그의 어머니가 그레그의 생활의 모든 일들 하나하나를 너무 세세히 간여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개체성의 의식과 자기 스스로 선택할 가능성을 거의 개발하지 못했다. 그레그는 옷장안을 쳐다보면서 청색셔츠, 녹색셔츠, 황색셔츠등을 본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 중에 어느 것을 입어야 할 것인지 그레그에게 선택하지 못하게 한다. 대신에 그녀는 자기가 선택한 것을 강제로 입히면서 독제자처럼이야기 한다, “오늘 너는 청색셔츠를 입어야 해!”
후에 15세가 되어서도 그레그에게는 아직도 어떠한 독립적인 선택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가 언제 샤워해야 할 것인지 그에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고집스럽게 이런 말까지 했다. “이번에 너는 샴퓨를 쓰고나서 머리를 꼭 린스해야 한다. 그리고 온 몸을 비누로 씻어야 해.” 그레그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에게 불건전하고 지나친 간섭을 계속했다. 이러한 혼동의 모형을 상담하면서 상담자는 혼동이 어째서 문제가 되는지를 분명히 밝히고 가족식구들 안에 건전한 개체성을 개발해야 한다.
다른 상담자들은 식구들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들을 설정하므로 가족혼동의 문제를 풀어보려고 할 것이다. 웨이드 가족의 경우(2장에 소개한 사례)누가 부모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누가 자녀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분명치 않다. 이 가족은 부모의 역할과 자녀의 역할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이 결여되었다. 그러므로 분명한 경계선들을 설정하는 것은 가족 상담에서 하나의 목표가 될 때가 많이 있다. 성경은 가족에서 아버지의 지도력과 권위와 자기부모에게 순종하여야할 자녀들의 의무에 관해서 원리들을 가르친다. 합당하게 실천된다면 이런 성경적 원리들은 분명하고 합당한 경계선들을 설정해 줄 수 있다.
지나친 개인주의의 교정
어떤 가족들은 너무 지나치게 통일을 강조하는 반면에 어떤 가족들은 서로간에 거리가 먼 개인주의적 식구들로 구성된다. C.S. 루이스는 죄가 양극단 모두에서 온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사탄은 사람들에게 한쪽의 극단을 피하고 다른 극단의 함정에 빠지도록 유혹한다. 혼동은 두개의 원이 서로 표개져 있는 것이라고한다면, 지나친 개인주의는 두개의 원이 완전히 따로 떨어져 젼혀 서로간에 접촉점이 없는 것이다. 가족 가운데서 성취되어야 할 균형은 두원이 서로 반정도 포개어지므로 통일성이 있으면서도 자기 개인의 독자적인 영역도 남아있게 하는 것이다.
어떤 가족은 잠재적인 갈등을 드러나게 만드는 모든 가까운 접촉을 피하기 위하여 베니다판 적응을 유지한다. 그러한 가족에서 상담자의 목표는 진정한 상호관계를 개발하는 것이다. 많은 가족들은 표면적인 통일성을 유지하지만 의미있는 관계가 결여되어 있다. 그들의 통일성은 함께 노력하여 진정한 상호관계를 개발하며 서로에게 진실한 헌신을 하려는 것이라기 보다는 논쟁과 갈등에 직면하기를 피하려고 개발한 것이다.
용서와 화해를 통한 갈등해소
당신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우리의가족 식구들에게 하는 것보다도 더 호의적으로 우리 가정에 찾아오는 나그네와 손님들을 접대한다는 우리의 경향성을 관찰한 적이 있는가? 이러한 경향의 연장이 바로 나그네나 손님이나 직장동료에게 결코 가할 생각도 못하는 폭력을 가족식구에게 행사하며, 가족식구들 서로간에 의도적으로 그리고 독선적으로 용서를 보류하게 만든다. 성경의 가르침들은 기독교인들이 밖의 세상에서 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절제와 호의를 가정에서도 행하여야 한다고 권면한다.
성경은 모든 백성이 타락했으며 불완전하고 죄에 빠져 하나님의 용서와 구속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었다고 가르친다.71) 나아가서 모든 사람이 다 죄에 빠졌기 때문에 이 죄가 가족식구들에게 표현되고 그래서 정상적인 건강한 가족생활 회복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용서와 화해가 필요하게 되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기독교 상담자는 가족식구들 사이에 화해를 격려한다. 화해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적용하는 것은 가족갈등해결의 기초라 할 수있다. 성경의 개념은 서로를 용서하며, 헐뜯기를 그치며, 서로 사랑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런 기초에서 기독교 가족식구들은 갈등을 해소할 수 있으며, 날마다 자기집에 오는 손님에게 하듯이 가족식구들에게 예의와 호의를 보여야 한다(약2:8,9).
성경은 근본적인 인간의 욕구가 하나님과 화해된 관계를 갖는 것이요, 그러므로 하나님과 평화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러한 평화의 선물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 이런 하나님과의 평화는 모든 문제와 고난과 갈등을 갖고 있는 가족 생활에 아주 중대한 영향을 준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4-7).
만약 인간이 근본적인 필요가 하나님과 화해관계에 있다면, 그리고 가족 식구들 사이의 갈등과 분열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의 결과로 온 것이라면, 가족식구들 사이의 진정한 하나됨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떠나서는 영원히 성취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분열의 궁극적인 원인을 인정한다면, 성경적인 세계관은 순수하고 영속적인 화해가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칠 것이다.
더 나아가서, 화해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가족 식구들 간의 피상적인 통일과 진정한 화해의 차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가끔 부모와 자식, 또는 남편과 아내는 공공연한 갈등이 없이 조화스러운 협력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별한 상황이 사람들에게 공동의 계획을 함께 수행하게 만든다. 그러나 시간은 그 하나됨이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또는 피상적인 것인지를 드러내는 시험대가 된다. 피상적인 통일에 근거한 부부관계는 조만간 갈등과 분열을 드러낼 것이요 많은 경우에 이혼에까지 이른다. 피상적인 통일에 근거한 부모-자녀관계도 마찬가지로 압력을 받을 때 그 정체를 드러낸다.
하나님의 화해
화해과정이 그리스도인 가정상담에 아주 핵심이기 때문에, 바울이 고린도후서 5장 17-19절에서 가르치는 성경의 화해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외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강조는 저자의 것임).
이 성경구절은 속죄가 우선적으로 하나님이 죄인들과 화해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었다고 가르친다. 성경이 하나님께 화해된 죄인에 대해서도 언급하지만(롬5:10, 고후5:19, 20),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2차적인 것이요, 화해의 주관적인 측면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배반을 당하신 하나님이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우리를(배반자)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다. 이것은 우리안에서 어떤 도덕적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율법의 요구를 이루사 믿는자를 위하여 하나님을 만족시하게하셨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이것은 로마서 5장 10절과 11절에서 명백히 가르친다:
곧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 뿐 아니라 이제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5장은 매우 인격적이요 관계적인 용어로 인간상황에 영향을 주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강조한다. 로마서의 그 다음 장들은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식구가 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를 우리에게 가르친다. 바울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새로운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는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하나님과의 화해가 다른 사람과 우리와의 관계속에서 어떻게 전개되어 나가는지등을 가르친다.
이 화해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일어난 분리의 죄 때문에 필수적이다. 화해는 완전하게 벌어진 이 분열을 고치며,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싸움을 그치게 하고, 영원한 멸망으로 운명지워진 전능하신 하나님의 대적자로 인하여 생겨난 엄청난 불행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한다. 하나님과의 평화가 없으면, 사람들에게는 소망도 없다. 인간들은 죄와 반역가운데 갇혔고 인간들 스스로는 이러한 도덕적인 딜렘마에서 빠져나올 힘이 없다. “하나님과의 평화”는 단순히 내면적인 감정적 평온만이 아니다. 이것은 객관적인 존재의 변화로, 심판날에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는 것이며, 하나님이 받아주심으로 그 분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는 것이다.
이웃과의 화해
신자가 경험한 화해는 이웃과의 평화관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롬14:19). 더 나아가서 골로새 3장 15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화해의 개념과 인간 이웃과의 사이의 이러한 연결은 에베소서 2장 11-22에서 더 자세히 개발하고 있다. 이 진리의 핵심은 13-16절에 기록되어 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 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구절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에 관한 가르침을 연장하여, 인간들을 분열하게 만드는 공격적인 요소들을 제거하여 적대관계에 있던 자들을 하나로 만드시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을 선포하는 것에까지 이르게 한다. 두 사람이 서로간에 다툼이 있을 때에 각자는 하나님과 개별적으로 화해되어야 하며 동시에 그들은 서로간에 화해되는 수단을 경험해야 한다. 19절 말씀을 보면 그들은 “동일한 시민”이 되는 것이다.
에베소 2장 11,12절에서 보여주는 중요한 하나의 의미는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을 소외시킬 뿐 아니라 인간들도 서로 소외된다는 것이다. 에베소 2장 14절은 죄는 인간들끼리 서로 적이 되게 만들며 하나님과도 적을 만든다고 가르친다. 교만의 죄는 하나님의 도덕적인 요구를 무시하고 자율적으로 자신을 주인으로 만드는 죄로서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시험을 받아 그 결과로 생겨난 죄이다(창3:1). 교만과 자기 중심적인 죄로부터 경쟁, 질투, 시기, 탐욕, 경쟁, 인간들 간의 갈등등의 심리학적 결과가 반드시 나타나고, 그것들은 인간 가족 가운데서 맨 먼저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이 맥락에서 바리새인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매우 교훈적이다, “선생님이여, 율법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22:36-39).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보다 앞선다. 주님과 구세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의 평화뿐 아니라 사람들간의 평화도 가져오셨다.
가족과의 화해
에베소서 2장은 죄의 결과로 사람들사이에 어떻게 적대관계가 생겨났는가를 가르친다. 가족안에서 이런 죄의 모형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생겨난다: 하나님께서 한 가족 식구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신다.- 재 빨리 이해하는 능력과 같은 것이다 - 죄의 영향으로 이 사람은 자기의 형제자매들을 보면서 교만스럽게 변한다, “그가 누구냐? 그까짓게 무얼알아? 그는 이해하지 못해, - 그는 바보야.” 그러한 선물을 하나님께 받은 것을 함께 감사하지 못하고, 서로간에 으러렁 거리고 결국 질투, 시기, 미움, 한 맺힘, 경멸, 그리고 적대감등의 죄를 생산한다.
구원의 복음의 소식은 그리스도의 목적이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는 것이라고(엡2:16) 말씀하신다. 이 구절이 가르치는 바에 따르면, 가족안에서와 가족밖에서 인간들 간에 생겨나는 분열과 싸움과 분리등은 결국 그 뿌리에까지 추적해 들어 가보면, 한 사람이나 또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가족식구들 간에 진실한 사랑이 결핍된 것은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간의 진정한 하나됨의 회복은 함께 하나님과 화해하는 데에 달려있으며, 이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와 화해하시는 부차적인 결과이다.
중생된 가족 식구들에게 하나님을 본 받아 사랑으로 행하라고 바울 사도는 권면한다(고후 6:18, 엡5:1,2). 이 말씀의 의미는 수직적인 관계인 하나님과 신자들과의 화해는 가족생활의 수평적인 관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탕자이야기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어떻게 화해가 가능한가를 보여주는 비유이다(눅15:11-32). 성경의 가르치는 화해의 단계는 우리와 하나님의 화해에서, 우리 사이의 화해에로, 그리고 이웃과의 화해를 향하여 나간다. 마태복음 18:15-18은 화해가 신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지를 더 자세히 가르친다.
결론
가족의 가치들과 가족상담자의 가치들은 가족상담의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서로 얽혀들어간다. 한편으로 가족과 다른 한편으로 상담자는 “훌륭한 가족생활”이 무엇이냐 하는 점에 관해서 각기 어떤 신념들을 가지고 있다. 상담자는 일반적으로 가족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가족 역동성의 근원적인 문제들을 분석하고, 가족과 상담목표를 협의하기 위하여 성경적인 원리들을 따른다.
제 5장
건강과 가족상담
댄 코우츠(Dan Coasts)는 미국 하원의 「아동, 청소년, 가족 선발위원회」의 소수파 상무위원이다. 그위원회에서 그가 맡은 임무 가운데 하나는 캘리포니아주 산타아나 시에 있는 비행 청소년 수용소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현대식으로 지어진 이 수용소는 가장 최근의 연구조사에 기초하여 설계되었다. 엄청난 돈이 해마다 간수봉급과 운영자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하원의원 코우츠는 다음 말로 이 시설 감사 결과를 보고했다:
대략 50여명의 청소년이 거기에 수감되어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우리는 거기에있는 동안에 상담자들과 청소년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느 거의절망감을 가지고 거기를 떠났다. 여기에는 돈으로 살 수 있는 최신의 시설을 갖추고있었고, 최고의 테크닉을 갖추고 있었지만, 거기에 아직도 어떠한 발전도 없었기 때문이다. 후에 상담자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이야기할 때 나는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여기에 청소년 비행, 마약, 음주, 성적인 문제, 그리고 오늘 청소년들에게 흔한 각종 다른 문제들을 가진 청소년들과 함께 있습니다. 당신이 이 모든 것을 요약할 수 있다면, 공통적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 모든 사람들을 포괄할 수 있는 문제의 공통 분모는 무엇입니까? 이 청소년들이 이곳에 있는 한가지 이유를 말하라면 무엇입니까?”
그는 아주 빨리 대답했다. “글쎄요, 나는 이 일을 25년간 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질문을 수도 없이 해 왔습니다. 하나의 공통분모는 이 시설에 있는 아이들 모두가 붕괴된 가족이라 부르는 가정에서 왔다는 사실입니다. 서로 다른 가족안에 무엇인가 같은 것이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정상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 사실 정상적인 가족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폭력으로 인해 여기에 있는 아이들은 그들의 가족에서 폭력을 당했습니다. 약물이나 음주로 여기에 와 있는 아이들은 가족 가운데서 약물남용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순환이 반복적으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72)
가족상담자는 누구나 문제가족들이 어른들과 자녀들 모두에게 똑같이 파괴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닉 스티네트(Nick Stinnett)는 가족 장점의 영역에서 지도적인 연구가들 가운데 한 사람인데 열쇠가 되는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수 많은 우리의 중요한 사회문제의 대부분은 - 청소년 비행, 아동학대, 배우자 학대, 노인학대, 어떤 종류의 정신병등 - 가족생활의 질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즉 가족의 장점들의 결핍에 그 문제들의 근원이 있다. 우리들 모두는 마음 속 깊이에서 우리의 행복의 대부분, 우리의 정서적 건강의 대부분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 관계의 질에 크게 의존하거나 영향을 받고 있으며 특히 가족관계라고 부르는 친밀한 인간관계의 질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가족의 정점들을 촉진하는 것은 우리 나라의 최고 우선순위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73)
분명히 가족은 어떠한 문화에서든지 그 문화의 요람이다. 가족은 인간발달을 양육하는 사회의 기초단위이다. 기독교 관점에서 가족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제자화 시키고, 전도하고,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접대하는 교역을 수행하는 기본단위이다.
가족 상담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가족의 건강을 촉진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가족문제와 갈등들과 역기능의 해결을 돕는 것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N.A.E.(복음주의 미국연합회) 가족문제 소위원회 모임에서, 우리는 깨어진 가족 즉 이혼과 자녀의 가출로 깨어진 가족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연구위원회 회원중 한 사람이 이런 제안을 했다, “우리는 먼저 가족붕괴의 원인에 대한 연구조사의 결과를 검토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혼과 다른 형태의 가족붕괴를 방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작동시킬 것인지에 관한 조언을 교회들을 향하여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 당시 캔사스 주립대학교 가족과 자녀 발달학과의 주임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연구위원회는 가족붕괴방지에 관한 연구조사를 얻을 수 있을지의 여부를 나에게 물었다. 나는 연구위원회가 그런 연구조사 결과를 검토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나는 이 연구위원회에게 긍정적인 가족 모델들에 관한 연구조사결과를 토대로 하여 가족건강의 모델을 개발하여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나는 이런 질문을 제기했다. 깨어지지 않는 강한 가족들의 특성은 무엇인가? 닉 스티네트는 이 논점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고 주장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테니스치는 법을 가르치면서, 그렇게 치면 안된다는 것 만을 이야기하므로 가르칠 꿈을 꾸지 않을 것이다. “너는 라켓을 이런 식으로 잡아서는 안된다. 너는 빽스트로우크를 이렇게 치면 안된다.” 코치가 이런식으로 학생을 가르치면 안된다. “이것은 잘못이야, 이렇게 서서는 안돼, 이것은 결정적인 잘못이야” 그 학생에게 어떻게 정확하게 라켓을 붙잡는지와 어떻게 서는 것이 바른 것인지를 결코 이야기하지 않고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식의 가르침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우리는 대체로 그런 방법으로 가족생활에 대해서 가르쳐 왔다. 예를 들면 우리는 청소년 범죄나 가출이 어떤 것이라고 설명한 다음 이렇게 말한다, “이제 당신의 가족에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모델을 보여주는 접근을 사용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 못했다. “튼튼한 가족은 이런 것입니다. 당신의 가족은 이런 긍정적인 특성들을 개발해야 합니다”74)
모든 가족 상담자들이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는 가족모델을 마음 가운데 분명하게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아마도 의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최근 몇해 동안에 수 많은 연구조사자들이 발표한 연구들은 튼튼하고, 건강하고, 적응력이 있는 가족들에게 공통적인 특성들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알 수 있게 보고하고 있다.75) 예를 들면 스티네트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부부행복과 부모-자녀관계 만족도의 측면에서 아주 만족하다고 생각하는 3000여 가족들을 대상으로 연구조사를 시행하였다.76) 그지역 사회의 다른 가족들은 이 가족들을 건전한 가족 기능의 모범이라고 지지했다. 인터뷰, 면담, 자료수집후의 실험명제등 집중적인 연구조사를 한 후에 연구자들은 이 가족들이(북미, 남미,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남아프리카 출신 가족들) 6개의 공통된 가족특성들을 가지고있다고 보고하였다.
튼튼한 가족들은 다음의 특성들을 가지고 있었다. ⑴그들은 가족에게 헌신한다, ⑵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⑶ 가족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훌륭하다. ⑷ 서로에게 감사 표시를 잘 한다. ⑸ 영적인 헌신의 가족이다. ⑹ 위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족이다. 이 여섯가지 특성들은 가족 상담의 긍정적인 목표들이 될 수 있다.
가족헌신
튼튼한 가족은 서로에게 헌신하고, 자기집단에 고도의 충성을 바친다. 가족 상담을 받으러 오는 가족들 가운데에서는 가족헌신이 결핍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가족 상담자는 그 가족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가족 특성들을 확인하고 그 가족이 가족 상호간에 고도로 헌신하는 방안들을 찾아내게 도와야 한다.
튼튼한 가족에서 가족식구들은 서로의 복지 향상을 위해 헌신하며, 서로가 서로를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러한 헌신은 가족 식구들이 가족적인 논점들과 가족 생활에서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지를 보고 평가된다. 스티네트는 이런 지적을 하였다, “헌신은 어떠한 집단이든지 성공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다. 축구팀이거나 사업기관이거나 가족에서이거나 헌신은 성공의 필수요건이다.”77)
이 진술은 수업이 끝나서 나의 학생과 나눈 대화를 기억나게 한다. 론은 경영대학생인데 나의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이다. 나의 과목은 「가족관계」로 선택과목이다. 가족헌신에 관하여 강의하면서 위의 인용구를 읽었는데 그 수업이 끝나자 론은 교탁앞으로 나와서 양립할 수 없는 헌신들에 관해서 질문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스포츠나 사업의 성공에 필수적인 헌신과 꼭같은 수준의 허신이 가족 성공에도 필요하다는 것에 저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떻게 가족의 요구와 사업의 요구 사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이 양자는 모두 고도의 수준의 헌신을 요구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이 둘 가운데에서 우선순위를 정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과로를 피하고 일을 산뜻하게 해 낼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을 이론적으로 함께 나누었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을 세워야 하며 동역자에게 어느 정도의 일들을 할당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직장때문에 가족이 희생될 우려가 있을 때에 직장에서의 승진보다 가족을 선택해야만 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이야기 했을 때에, 론은 이론적인 이야기에서 자기 개인의 이야기로 이야기를 바꾸면서 자기 문제를 털어 놓기 시작했다.
“나의 아버지는 대학교의 풋볼코우치로 있고 어머니는 병원의 간호사로 전임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풋볼 시즌 동안에 나는 나의 아버지를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나에게는 누나가 둘이 있었는데 모두 고등학생들이었고, 동아리의 친구들과 어울렸습니다. 나의 큰 누나 브렌다는 방과 후에와 엄마의 야간 근무시에 나와 작은 누나를 돌보는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엄마가 우리 모두가 학교에 다니고 이제는 집에서 더 이상 자기가 필요없는 나이가 되어서 기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집에 있을 때에 엄마는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집안일이 제대로 돌아가는지를 점검했습니다.
“브렌다가 나를 돌보아 주었지만 누나는 아버지 역할까지 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적응을 잘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좋지 못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부모님들은 내가 그 동네 강패들과 어울리고 있는 것을 알아차릴 만큼 집에 머물지 못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너무많이 나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우리의 친구들과 우리마음대로 어울려 다녔습니다. 브렌다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눈물이 그의 눈에 글썽이면서 그는 솔직히 인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까지 후회될 일을 그 강패들과 저질으로 말았습니다. 나는 나의 가족들과 더 이상 함께 있기도 싫었습니다. 나는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에 풋볼경기를 하지 않는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나를 버렸고 더 이상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화를 내었습니다.
“내가 범범행위로 체포되고 수감되었을 때, 나의 부모님은 내가 깽들과 한패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나의 아버님이 나를 출감시키려고 경찰서에 왔을 때 불신의 눈으로 나를 보면서 충격에 떨던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아버님은 크게 충격을 받아서 자기의 인생을 완전히 다시 정리했습니다. 그분은 코치 직업을 얼마동안 떠나서 시간이 덜드는 가르치는 직업을 선택하고, 이제까지 가족식구들과 함께 보내지 못했던 시간을 보충하려고 했습니다. 어머니도 병원일을 그만 두고 시간제로 의사 사무실에 나갔습니다. 부모님은 우리를 대리고 주말 캠핑 여행과 한달에 3회 토요일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대리고 일요일에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 때에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이요 구세주로 영접하고 나의 삶을 그분께 의지했습니다. 나는 튼튼한 가족헌신과 가족에게 그런 헌신이 없는 상황과의 차이를 경험했습니다.”
고도의 가족헌신 수준은 대체로 결혼한 부부관계에서부터 시작된다. 부부관계에서 남편과 아내는 엄숙한 결혼의 서약을 “슬프때나 기쁠때나 변함없이” 평생동안 서로에게 해야 할 헌신의 약속으로 본다. 니콜라이는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하였다: “헌신한다는 것은 여러가지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자녀들과 성인들과의 극도로 복잡한 관계가 포함된다. 여기에는 자녀들의 부모와의 동일시가 포함된다. 여기에는 어린이가 장성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모든 상호관계들이 포함된다. 그러나 부모가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거기에 함께 있지 않는다면, 그리고 부모가 시간을 헌신하지 못한다면, 이 모든 복합적인 과정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78)
그러므로 결혼관계에 헌신하는 것으로 출발되는 가족헌신은 자녀를 낳거나 입양한 후에는 부모-자녀 관계에서의 가족헌신까지 연장되는 것이다. 가족 상담에서 가족 식구들이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을 도와주고, 시간과 에너지를 헌신하는 것이 바로 가족을 위한 헌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는 것은 필수적이다.
시간을 함께 보내기
가족 헌신과 밀접하게 연관된 두번째 튼튼한 가족의 주요 특성은 가족식구들이 상당한 양의 시간을 식구들 서로와 함께 보내는 것이다. 연구조사자들이 사람들에게 아동기의 가족생활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들을 이야기하라고 했을 때에,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자기 가족식구들과 단순한 일들을 함께 한 실예들을 제시하였다.79) 사람들은 할머니를 방문하였던 일, 가족 식구들과 게임을 함께 하였던 일, 가족들과 함께 성탄축하를 했던일, 캠핑을 함께 하였던 일등을 기억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일들은 돈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일들이다. 튼튼한 가족들은 계획적으로 서로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반대로 많은 문제 가족은 피상적인 접촉만을 가지고 서로간에 깊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인간관계를 갖지 못한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교 2학년 학생 가운데 한 사람은 보고서 숙제 가운데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이 중요한 특성이 빠져버린 한 가족을 소개했다. 어머니 에벨린은 가정주부이었지만 여러개의 여성 클럽에 참여하여 활동했다. 그 클럽가운데 하나는 자선 모금을 위한 단체였다. 아버지 릭은 전국적인 플라스틱재료 판매고문으로 일하였으며, 가장 훌륭한 판매실적을 올리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들의 딸 쥴리아는 16세로,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13세의 아들 제프는 8학년, 그리고 로라는 11세로 6학년이었다.
릭은 직업 스케쥴과 잦은 판매여행 때문에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가 저녁을 먹으러 오는 경우에도 서둘러 먹고, 판매상담이나 라켓볼이나 찬양연습, 또는 교회나 시민모임에 나갔다.
쥴리아는 컬 스카웃, 교회청소년 그룹, 응원단, 청소년 합창단, 그리고 방과 후의 프렌치 클럽등으로 눈 코뜰새 없이 바빴다. 제프는 학교 테니스팀에 들어서 가끔 연습으로 학교에서 늦게 돌아왔다. 그는 또한 친구들과 활동적인 클럽활동을 하고 있었다. 어린 로라는 방과 후 스카웃단에 들어 활동하며, 플룻레슨을 받고 교회에서 아동합창단에서 일하며, “Y” 축구팀에서도 활동했다.
엘벨린은 로라의 스카웃단의 지도자들 중 하나였으며, 중둥부학생들을 교회학교에서 가르치고 교회 여성전도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일했으며 거기에다 동네여성클럽활동에도참여하고 있었다. 이 모든 바쁜 일정에 메여 있으면서도 그녀는 가족들을 위한 “택시운전기사”로 식구들을 이 활동장소에서 저 활동장소로 데리고 다녔다.
이 가족은 거의 식사를 함께 할 수 없었다. 식구들은 각기 아침에는 이것을 저녁에는 저것을 혼자 먹고 식사를 대신했다. 그들은 스케쥴이 맞지 않아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 수 없었다. 에벨린은 마이크로 오븐에서 쉽게 데울 수 있는 음식들을 구하는데에 가히 전문가라고 할 수 있었다. 가족 식구들은 신문이나 잡지를 식탁에 들고와서 읽거나 TV를 보면서 음식을 먹는것에 익숙해졌고 심지어는 둘이나 그 이상이 함께 식사하면서도 무슨 음식을 먹을 수 있을거라는 말 이외에는 서로간에 대화가 없었다.
가족 식구들은 자기들의 스케쥴에 몸짝 달싹 못하게 갇혀 있다고 느겼다. 만약 로라가 부엌에 있는 아빠를 훔쳐보다가 눈문을 글썽이면서 조심스럽게 아빠에게 다가와 “아빠 나 안아줘”하고 말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숨쉴여유 없이 바삐 돌아가는 가족생활은 영구히 계속되었을 것이다. 로라는 아빠에게 달려와 울음을 터뜨리면서 “나를 돌봐줄 가족이 필요하단 말이야”하고 소리질렀다.
나의 학생은 이 가족을 “조직화된 활동의 덫”이라고 기술했다. 심지어는 주일에까지도 각자는 다른 방향으로 갔으며, 예배드리면서도 가족들로서 함께 앉아 있지 못했다.
이 가족은 스케쥴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지만 아빠의 주장으로 가족상담을 받으러 갔다. 상담자는 그들에게 가족생활과 그들의 욕구와 필요들, 그리고 활동스케쥴들을 점검하게 했다. 상담자는 튼튼한 가족들이 어떻게 자발적으로 정기적인 가족모임을 위하여 활동스케쥴에 시간을 만들며, 단위로서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훌륭한 활동가운데 몇가지를 희생하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상담하는 동안에 이 가족은 새로운 우선 순위를 설정하였다. 아버지는 지도력 기술을 개발하고, 가족 식구들 각자는 적어도 한가지 활동을 희생하고, 저녁을 함께 먹으며 일 주일에 하루는 “가족의 밤”으로 보내자고 작정했다. 그들은 자기 가족식구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가족들이 각기 흩어져 있었는지를 발견하고, 여가의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하였을 뿐 아니라 정원을 가꾸거나 차고를 청소하거나 동시에 집안 청소를 하는등의 “가족 작업의 날”을 작정하였다. 에벨린은 가족시간을 함께 지킬 수 있게 가족들의 스케쥴을 조정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 가족 상담자는 “중요한 것은 당신이 함께 보내는 시간의 양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질이다”라는 합리화에 가족들을 직면시켰다. 심리학자 아만드 니콜라이(Armand Nicholi)는 이 말이 자기 배우자나 자녀들과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자의 자기 합리화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간은 산소와 같은 것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절대양이 있습니다. 그 양보다 적을 때에 영구적인 손상이 생겨납니다. 내 생각으로는 아이가 자기 부모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 대해서도 이 말은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가 정상적인 인간 발달에 대하여 무엇인가 알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양부모와의 친밀하고 따사로우며, 지탱적인 관계를 갖는 것이 정상적인 인간발달에 매우 중대하다는 것입니다.”80) 니콜라이는 이 말을 부정적으로도 할 수 있다고 한다: “부모와 자녀들간에 함께 보내느 시간의 결핍은 지난 몇년동안 이 나라 어린들과 청소년들 사이에 만연되고 있는 자살과 정서장애 증가의 일차적인 원인이 된다.”81)
가족 상담자는 문제 가족들에게 건전한 가족 기능을 위해서는 서로를 위해 많은 양의 시간헌신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알려 주어야 한다. 이러한 상호관계의 시간이 없다면, 가족 문제 해결은 아주 어렵다.
효과적인 가족 커뮤니케이션
튼튼한 가족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들은 훌륭한 청취자들이요, 자기들의 생각들과 원하는 것들과 감정들을 서로에게 기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튼튼한 가족에 발견되는 이러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은 가족상담자들에게는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다. 기독교 가족 상담에 상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져드슨 스위하트(Judson Swihart)박사가 지적한 말을 가족들에게 이야기 해 주는 것도 매우 유익하다.: “… 튼튼한 가족은 자동적으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열망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것을 평가하며, 그것을 계속유지해야 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은 끊임없이 점검하는 눈과 많은 양의 양육을 요구합니다.”82)
빈약한 가족간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하여 생겨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가족들이 상담자를 찾아오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레이스 케터만(Grace Ketterman)은 자기의 어린 시절의 예를 들어 부정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주는 파괴력을 설명했다:
여섯살에 나는 캔사스주 중부지방에 있는 농촌국민 학교 1학년에 들어갔다. 그 당시 일년중 가장 신나는 때는 역시 성탄절이었다. 그 때는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가족의 시간이었다 .학교와 교회는 우리 농촌동네에서는 말 그대로 가족 생활의 중심이었다. 추수감사절이 끝나자 우리는 곧이어 성탄절 준비를 시작하였다. 전교생이 28명이요 8학년 까지 있는데 선생님은 한 분만 있는 이 학교의 모든 학생들은 그날을 위해 매일같이 준비하였다- 부모님들을 위한 성탄선물을 만들고, 놀라운 성탄절 행사를 하기 위해 대화와 캐롤과 시들을 준비했다.
일학년인 나는 이 모든 것을 너무 좋아했다. 나는 그 프로그램에 너무 흥분하고 들떠 있었다. 1학년에는 나 외에 여자 한명 뿐이었는데 우리둘을 그 날을 함께 애쓰면서 준비하였다. 그녀는 후에 학교를 떠나서 나는 우리반에서 혼자 마지막 가는 해를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녀와 함께 성탄절 프로그램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지금 수준에 비해 보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어쨋든 우리는 최고의 옷을 입고 치장을 했다. 우리반의 짝꿍은 다른 학생들보다 더 많은 자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노랑 쉐터를 입고 갈색주름치마와 멋진 보우타이를 쉐타의 목에 걸었다. 조그만 보우타이의 끝에는 아주 작은 방울 종들을 달았다.
나는 프랜과 함께 제일 앞줄에 서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손을 내밀어 그 작은 방울 종들을 건드렸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너무 호기심이 넘쳐서 그것들을 쳐다 보았다. 그것은 너무 부드러워 보였다. 나는 여기에 와서 노래 부르는 것은 잊어버리고 그 조그만 방울 종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여간 그날 저녁은 아름답게 지나갔고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런 것 같았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을 먹으면서 매우 정숙한 숙녀인 나의 어머니는 내가 좀 더 준엄한 생활의 실상을 배워야 한다고 결정을 했다. 엄마는 점점 과격해지면서 얼마나 어제저녁에 자기가 당황했는지를 역설하기 시작했다, “너는 사람들이 웃는 것도 몰랐니? 너는 그런짓을 해서 안되는 것을 몰랐니?” 그리고 이것 저것 계속 꾸짖었다.
그렇게 기쁨과 감격과 흥분으로 들뜬 그 절기는 이제 암울하고 천박하고 텅빈 절기로 바꾸어졌다. 부두에서 발생한 범죄도 내가 그날 아침 느낀 것보다 더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아침 식탁에서 일어나 부엌 한 귀퉁에 숨어서 쭈그리고 앉아서 절망과 무기력과 완전히 무가치한 나 자신을 느끼면서 있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그 때에 일어났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바로 그 때가 유일하게도 자녀 훈육문제로 엄마와 아빠가 다른 의견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의 아버지는 일어나서 나를 발견할 때까지 나를 찾았다. 그는 나를 발견하자 나를 안아서 자기의 눈 높이 까지 나를 들어 올렸다. 그는 아름다운 갈색의 빛나는 눈으로 나를 쳐다 보면서 이런 말을 했다, “그레첸, 나는 그것이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사실, 네 그런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희망이 회복되었다. 나의 가치성이 다시 한번 내품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다시 나의 가능성으로 변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는 참으로 놀라운 절기였다.83)
문제가족들 가운데서 가족 상담자는 종종 거치르고 비난조의 비판을 하는 부모들을 만날 것이다. 부모들은 선한 의도로 그렇게 할지라도 이렇게 거치르고 무정스러운 커뮤니케이션은 가족 식구의 복지를 파괴시킨다.
효과적인 가족 커뮤니케이션은 적응력이 있고 건강한 가족들의 증명서이기 때문에 가족상담의 중요한 목표가운데 하나는 종종 관계모형을 향상시키고 가족들에게 어떻게 기술적으로, 효과있게, 그리고 사랑으로 커뮤니케이션을 가질 것인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케터만 박사는84)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의 7가지 특성들을 확인하였다.
1. 전달자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당면한 잇슈에 초점을 맞춘다.
2. 전달자는 자기들의 감정과 지성이 같은 수준이 되거나 지성이 감정을 초월하여야 한다.
3. 전달자는 판단적이거나 비난조의 태도를 피할 때 더 성공적이다.
4. 전달자는 서로 공감하면서도 동정이나 연민을 피할 때 더 성공적이다.
5. 전달자는 자기들의 머리뿐 아니라 심장으로 들을 때 최선이 된다.
6. 전달자는 대화의 주제 하나마다 그 주제가 가지고 있는 목표에 분명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7. 전달자는 확신히 자기 주장과 자비스러운 존중의 사용에서 만족스러운 균형을 발견해야 한다.
감사를 표시하기
문제가족들과 대조적으로 튼튼한 가족들은 정기적으로 서로들에게 많은 감사를 표현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심리적으로 덕을 세우며, 서로를 인정하면서 신실한 칭찬을 하므로서 감사를 표시한다. 가족 상담자에게 찾아온 문제가족들은 이것을 실시함으로 종종 유익을 얻는다. 가족 식구들에게 서로에게 감사를 표시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부모가 이러한 특성을 모델로 보여주면 그들의 자녀들은 이것을 배울 것이요, 감사를 표시하는 실천은 다른 가족 식구들에게 비슷한 행위를 하도록 격려한다.
불행하게도 많은 문제 가족들은 예리한 칼날과 같이 서로에게 퍼붓는 비판의 악순환에 붙잡혀 있다. 어떤 가족들에게 식구들은 지적할 다른 식구의 약점들이나 실수들을 찾는다. 그리고 그 식구들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요소들은 무시해 버린다. 이런 파괴적인 비판은 그 자체로 가족을 무너뜨리는 힘이 있으며, 가족 가운데 부정적인 사고방식들과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나의 내담자 가운데 한 분은 감사의 결핍을 “정서적 사막”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기록했다.
바바라는 자신에 대해 극단적으로 비판적인 태도를 가졌다. 그녀는 종종 우울에 빠졌다. 젊은 목사인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극진히 돌보며 격려했다. 그는 자기 아내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큰 위로를 주었다 이 두부부를 상담하는 초기에 나는 바바라에게 그녀의 아동기의 가족 상황을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녀는 자기 어머니가 4세에 과부가 된후 그 이후에 재혼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대단한 힘을 기울여 그녀는 네 자녀를 매우 엄격하게 양육하였다.
바바라의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완전주의적인 요구를 했다. 그러나 그녀는 매우 부정적이요 비판적인 방법으로 이 일을 했다. 바바라가 아무리 훌륭하게 일을 했을 때에라도 그녀의 어머니는 자기딸을 야단쳤다. “너는 어째서 보다 잘하지 못했니?” 집에서 심부름을 했을 때에도 어머니의 태도는 이런 것이었다. “그래, 그런데 너는 어째서 스스로 생각해서 이런 일을 못하니? 말하기 전에 이런 일은 해야 않겠니?”
어린 아이인 바바라는 자기 어머니의 칭찬과 인정을 받으려고 매우 열심히 노력하였다. 한 번은 감히 어머니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엄마는 어째서 한번도 나를 칭찬하지 않으세요?” 그녀의 어머니는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너무 많은 칭찬을 하면 잘난체할 뿐 아니라 사실 칭찬 받을 자격도 없어, 나는 합당한 행동을 원할 뿐이야. 그게 네 의무야, 네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자랑할 게 없어, 게다가 나는 입에 바른 칭찬이나 하는 사람이 아이야.”
결국 바바라는 절망을 느끼고자기 어머니를 기쁘게 하려는 노력을 포기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바바라는 자기 집을 방문하는 것을 될 수 있으면 짧게 하고 있다. 아직도 그녀의 어머니는 톡쏘는 비판으로 바바라의 감정을 유린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자기 비판과 부정적 자아상을 성장과정에서 경험한 자기 어머니와의 관계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내가 바바라에게 그녀와 어머니와의 관계를 도울 수 있는게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이런 대답을 했다, “몇년 전에 나는 어머니에게 가족 상담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자기는 상담의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 용서하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11절, 누가복음17장, 야고보서 3장, 그리고 에베소서 4장 29절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어쨋든 바바라의 남편은 그녀가 하나님께 어떤 가치와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게 도웁고 있었다. 그는 종종 그녀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고, 그리스도는 그녀를 위해 죽으셨으며, 그녀는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버리실만큼 중요한 사람이요, 이제 그녀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되었으며, 자신이 이미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고 있다고 믿도록 도와주었다. 편부모가 자기 아이의 협조가 완전하지 못할 때에라도 아이에게 솔직한 감사를 표시하므로 부정적인 비판의 악순환을 깨뜨리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계를 밟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윌리암 제임스(William James)가 이야기한대로 “인간본성의 가장 깊은 원리는 감사받고 싶어하는 갈망이다.”85)
내가 가르치는 대학부학생들 가운데 하나는 자기의 11세 동생 랜디의 감사받고 싶어하는 열망을 기록하였다. 그들의 가족은 어떤 종류의 감정이든 거의 표현하지 않았다. 그들의 아버지 알렉스는 자기의 감정과 자기 가족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사랑이나 유순함을 표현하는 것은 마치 약함의 표지처럼 여겼다.
랜디는 모든 스포츠를 좋아했고 특히 축구에는 뛰어났다. 그러나 바쁜 그의 부모는 랜디의 게임에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랜디의 팀은 주챔피온쉽 게임 최종결선까지 나갔다. 그의 아버지는 그 게임에마저도 15분정도 앉아 있다가 자기 개인 사업을 위해 떠나버렸다. 그날 저녁 랜디가 그 게임의 중요한 순간을 자세히 열거하고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물론 너는 잘했어, 그런데 너는 무엇을 기대하는 거냐? 우리 가족은 조상부터 대대로 언제나 일등이었어. 이제 흥분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나는 네가 축구에 이긴다고 해서 별것이 아님을 알게 하고 싶어. 인생에 더 중요한 다른 것들이 많이 있어. 네 숙제는 더 중요해. 가서 공부해!”
랜디는 짓구겨진 느낌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자기가 얼마나 잘했는지 인정하고 자기를 자랑스럽게 여겨 주기를 원했다. 그는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꽝 닫고 문을 잠갔다. 그의 큰 누나는 복도에 있었다. 그녀는 랜디가 부드러운 어조로 반복이야기하는 것을 넘겨 듣고 그가 거울앞에서서 자기의 얼굴을 드려다 보고 있다고 추측을 했다. 랜디는 그날 오후에 다른 친구들의 아버지들이 자기 아들들에게 한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내 아들아, 나는 네가 정말로 자랑스럽다. 아들아 나는 그렇게 멋진 축구를 하는 선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단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랜디가 우는 소리를 넘겨들었다.
알란 페테슨(J. Allan Peterson)은 어째서 감사를 표시하는 것이 튼튼한 가족들의 특성이 되는지를 지적하였다:
말은 창조적인 능력을 가졌으며, 칭찬한 그것을 생산해 낸다. 감사의 말은 가족식구들을 함께 끌어안게 만들며, 긍정적인 복지의식을 창조해 내며, 서로의 내적인 자기 가치를 강화시키며, 상호의존을 격려하며, 성장과 성숙을 위한 강력한 자극제가 되며, 엄청난 성취의 잠재력을 풀어낸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은 튼튼한 가족들의 다른 특성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정에서의 감사의 표현은 이렇게 할 수 있다, “너는 매우 중요해. 너는 고아가 아니야. 너는 우리편에 있어. 너는 여기에 속해 있어. 우리는 너를 믿어. 너는 굉장한 가능성이 있어.”86)
가족 상담자가 가족 식구들이 하나하나 돌아가면서 자기가 어째서 그에게 감사하는지 그 이유를 말하므로 부정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악순화의 고리를 깰수 있게 가족 식구들을 돕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상담의 과제가 되었다. 예를들면 맨 먼저 그 초점을 어머니에게 맞출 수 있다. 아이들 하나 하나와 남편은 차례로 어머니에게 가서 자기가 어째서 어머니에게 감사하는지를 표현하게 한다. 그리고 나서 다른 식구가 이런 긍정적인 감정을 받는 자로 선정된다. 그리고 가족식구들은 차례로 한 사람 한 사람 그에게 가서 감사를 표현한다. 모든 가족 식구들이 다른 가족식구들에게 이런 감사의 표현을 받고 나면, 가족들은 날마다 서로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것이 얼마나 긍정적이요, 건설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발견할 것이다.
영적인 헌신
많은 연구조사자들의 발견한 바에 따르면, 튼튼한 가족들은 고도의 종교적 성향과 헌신을 가지고 있다.87) 스티네트 박사는 튼튼한 가족들은 이런 말을 한다고 보고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위하여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가족의 능력의 근원일 뿐 아니라 나 개인의능력의 주님이시다.”
“우리가 날마다의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을 깨달을 때에, 우리는 서로에게 더 인내할 수 있고, 분노를 더 빨리 극복할 수 있고, 서로와의 관계에 더 지원적이요 적극적이 된다.”88)
사랑, 친절, 관용, 그리고 지원과 같은 영적인 가치들은 적극적인 가족관계를 촉진시킨다. 튼튼한 가족은 일반적으로 교회에 함께 출석하고,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며, 신앙 가운데서 서로를 격려한다. 연구조사자들의 발견한바에 따르면 신앙적인 헌신의 수준이 높을수록 부부만족의 수준도 높다.89) 튼튼한 영적 헌신이 튼튼한 가족들 가운데서 발견되는 하나의 특성이기 때문에 목사들은 특별히 가족 상담을 할 수 있는 적임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가족상담자들은 가족들의 적극적인 영적성장과 영적인 발전을 격려해야 하며, 이것을 가족 상담의 최우선적인 목표가운데 하나로 삼아야 할 것이다.
가족의 필요들에 응답하기
여러해전에 복음주의 선교연맹이 나를 강사로 초청하여 오스티리아 비엔나에서 열리는 필드컨퍼런스에서 연사로 세웠다. 거기에서 선교사들은 사람들이 복음에 응답하는 일에는 신속하지 않으나 가족문제를 나누는데에는 더 열려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자기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빌딩에서 선교사들은 가족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며, 특히 자기의 자녀들과 비슷한 나이의 자녀들을 가진 가족과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만약 이 선교사들에게 자녀들이 없었다면, 그들은 지금과 같이 오스트리아 사람들을 위해 교역할 수 있는 기회를 그렇게 많이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일하는 선교사들의 자녀들의 나이는 대략 5세에서 12세 사이였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초청하여 학동기 자녀를 둔 가족들의 발달과제에 대하여 웤샾을 인도해 달라고했다. 이 웤샾의 과정중에 선교사들에게 자기들이 돕고 있는 가족의 사례연구를 제출하도록 했으며, 우리는 이것을 함께 토의했다. 선교사들은 매일의 삶의 과정에서 그 아파트 빌딩에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 사람들은 자기를 열고, 모든 종류의 부부문제들과 자녀교육 문제들을 털어놓았다. 이러한 필요들이 복음을 나누는 관계형성에 중요한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선교사들은 이런 문제들을 상담하려고 노력했다. 오스티리아 사람들의 가족들을 상담하기 위하여 어떤 접근들을 사용하였는지에 대하여 브레인스토밍의방법으로 이야기하는 가운데서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들이 나에게서부터 상담의 방법을 배운 것보다도, 내가 그들로부터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가족생활에 대해서 배운 것이 훨씬 더 많았다. 우리는 그 문화속에서 제기하는 가족상담의 수 많은 도전들을 이야기하고 거듭이야기하면서 그들의 절실히 필요하는 가족상담의 욕구에 응답하는 것이 그들을 전도하는 중요한 전도의 통로임을 발견하였다. 이 가족들과 인내하면서 도움의 관계를 형성하므로서 선교사들은 결국 그들의 가정속에 있는 죄의 문제를 전달할 수 있었고, 그 해결책으로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다.
모든 가족 상담자들은 식구들이 여러가지 다양한 세계관을 가진 가족들을 만난다. 그들은 각기 여러가지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다 개인들에게 엄청난 대중매체의 영향들이 쏟아지고, 그들이 TV와 라디오, 그리고 각종 신문잡지등을 통해 다양하게 프로그래밍이 되어 가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모든 가족의 역기능들을 포괄할 수 있는 어떠한 단일 사고방식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제 3세계의 수 많은 가난한 가족들은 생존의 잇슈나 정의와 정치적 해방의 관심에 사로 잡혀 있을 것이다. 북미의 중류가족들과 많은 유럽의 가족들은 프란시스 쉐이퍼(Fransis Schaeffer)가 “개인적 평안과 축복”이라고 이름 붙인 무기력한 가치와 연관된 여러가지 편견들을 추구하기에 바쁠 것이다.90) 서로 다른 가족들 뿐 아니라 한 가족안에 서로 다른 식구들은 서로 다른 문제와 편견들을 갖고 있을 것이요, 이것은 그들의 신념과 삶의 상황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어떤 가족들의 상황은 이와 반대로 가족 식구들이 범하는 죄의 선택들 때문에 생겨나기도 한다. 또 다른 가족상황은 창세기3장의 기록대로 타락의 결과로 조성된다. 예를 들면 어떤 가족식구는 다른 식구가 의도적으로 알콜 중독이나 약물중독등의 죄를 선택한 결과로 고통을 당한다. 어떤 자녀들은 자기 부모의 이혼결정이나 다른 비극적인 상황으로 인하여 감정장애를 경험한다. 가족폭력의 희생자들은 폭력가해자의 잘못된 결정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식구들 중에는 다른 가족 식구가 습관적으로 가하는 범죄행위 때문에 우울증과 불안을 경험하는 이들도 있다. 낮은 자아상, 불안감, 그리고 경제적 고통등은 가족식구들의 죄스런 선택의 결과로 오는 일이 많이 있다. 가족은 아주 친밀한 환경이기 때문에 한 가족 식구의 죄는 결국 죄를 지은 자의 가장 가까운 이웃들에게 미치며 그들에게 고통을 가져온다.
신뢰관계 세우기
가족상담자는 어떻게 죄의 문제를 설명해야 할까? 가족상담자를 가족 식구들 중에 중생한 신자가 아닌 식구들이 있는 가족을 상담해야 할 때가 종종있다91). 물론 어떤 가족은 어느 식구도 회심하지 않는 불신가족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가족상담은 그 가족에 문제를 가져온 근원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소식을 함께 나누는 좋은 기회가 된다(요 3:16). 도전은 질문들, 필요들, 가족 가운데 있는 불신자들의 편견 등에 대하여 복음은 어떤 대답을 제시하는가를 전달하는 것이다. 성경과 변증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게” 우리를 도와준다(골 4:6). 그리스도인 상담자는 특별한 필요에 관해서 개인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준비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어느 특정한 가족 식구에게나 또는 가족에게 기독교적인 대답을 하면서 당사자의 상황에 적절한 대답을 해야하므로 여기에는 먼저 유익하고 친밀한 상담관계형성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것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내가 만난 선교사들이 발견한 하나의 사실이다. 변증학은 논리적인 요소와 증거요소를 포함하지만 그런 변증학적인 요소들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효과적인 인간관계 형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성경에 계시된 복음의 내용은 전도과제의 핵심이지만 그 가족이 받을 수 있게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가족과 기독교 상담자 간의 상담관계가 선행되어야 한다.
가족이 상담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수용할 콘텍스트가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신자들의 세계관은 본래 자기들 자신의 경험에뿐 아니라 예리하고 논리적인 도전에까지도 아주 빈약하고 유약하다. 그러한 가족과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관계를 맺을 때에, 그 가족식구들은 자기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거부, 합리화, 지성화의 수단을 덜 사용한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없고, 자기들의 세계관이 부적합하다는 사실과 직면할 수 있는 힘이 증가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족상담자의 인격, 가치, 태도, 행위, 신념, 등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복음을 전달하고자 하는 가족상담자는 불신자 가족들과 냉담, 우울, 귀찮은 갈등, 참지 못함, 불친절, 악한 생각, 의지할 수 없음, 거치름, 또는 충돌성 등의 관계를 갖고 있다면, 자기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적극적으로 수용되기를 거의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91). 바람직하지 않는 상담자의 성격들의 목록은 갈라디아서 5:22 - 23절에 “성령의 열매”으로 기록된 특성들의 목록들과는 정반대이다. 죄를 깨닫고 회개에 이르게 하는 성령의 역사이다. 그리고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상담관계의 특성들을 준비해주는 것은 상담자의 삶 가운데에 오신 성령의 역사이다. 이런 식으로 전도에 관계 중심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받아들이는 불신자 속에서 삶을 변화시키는 회심을 일어나게 만들 것이다91).
공감적 이해, 존중적 온정, 그리고 진실성 등의 특성을 가진 관계를 유지하는 상담자는 효과적으로 복음전도의 과제를 수행하는 상당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관계는 불신가족 식구들에게 기독교 상담자가 그들의 절실한 필요의 시간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전달해준다. 물론, 효과적인 가족상담자는 단순히 그 가족의 구원의 영적 필요만 돕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도움을 위해서 대인관계 수준의 갈등과 가족의 역기능들을 풀어보려고 애 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적으로 관계의 문제에 도움을 주려고 애쓰는 가족상담자는 불신자에게 하나님을 알게하는 영적인 필요를 채우는 일에도 크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복음을 전달하기
일단 그 가족과의 튼튼한 관계의 라포가 형성되면, 상담자는 프란시스 쉐이퍼가 권면한 단계를 취할 수 있다. “현대인을 위한 우리의 변증학에서 맨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그 사람의 긴장이 어디에 숨어있는가를 발견하는 것이다91).” 즉, 상담자는 불신자와 함께 그의 전제들과 실재(외적 세계나 우주의 실재와 인간 내면의 인격적 실재) 사이에 있는 긴장을 발견하는 것이다. 쉐이퍼에 따르면, 그 다음 단계는 불신자의 비현실적인 전제들의 논리적 귀결을 볼 수 있게 불신자를 밀고 나가는 것이다.
쉐이퍼가 예리하게 관찰한 대로, “모든 인간은 실재 세계와 자기의 비기독교적 전제들의 논리적 귀결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다. ... 비기독교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이 자기 자신의 전제들에 더 논리적일수록 그는 점점 더 실재 세계로부터 멀어질 것이요, 실재 세계에 더 가까이 갈수록 자기의 전제들이 갖고 있는 비논리적인 귀결들을 보게 될 것이다91).” 일단 불신가족과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었다면, 기독교 상담자는 불신자의 긴장의 지점이 어느 곳에 놓여있는지를 확인하는 지성적이요 심리학적인 과제에 참여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성령의 역사에 의지해서 수행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불신자는 실재 세계와 자기의 전제들의 논리적 귀결 사이에 멈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쉐이퍼는 바로 여기에서 그의 전제들이 취하고 있는 자연적인 방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91). 만약, 가족식구들이 이기적으로 자신의 “자기완성”을 추구하고 있다면 가족상담자는 이러한 이기적인 추구가 얼마나 자기 패배적인 모형인가를 논리적으로 지적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건전하고 안정적인 가족관계에서 생기는 만족과 완성은 지나친 이기주의와 그리고 자기희생의 거절로 인해서 크게 손상을 입는다. 자기 자신의 “자기완성”을 촉진시키려는 바로 그 행위로 말미암아 자기의 완성의 뿌리가 흔들리는 것이다. 이것은 행복이나 자기완성에 대한 불신자의 전제들의 논리적 귀결에 대해서 가족상담자가 어떻게 깨우쳐 나갈 것인가하는 것을 보여주는 한 가지 실례에 불과하다.
쉐이퍼는 사람은 누구나 긴장이 생길 때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기 머리 위에 지붕을 덮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게 “외부세계의 인간 존재자체의 진리를 깨닫게 하려면 그 지붕을 걷어치워야 한다91).” 이와 마찬가지로 가족상담자는 합리화와 또 다른 자기방어수단들을 제거시켜야 한다. 이런 방어수단들은 가족식구들이 자기들에게 침투해 들어오는 외부세계의 실재를 막으려고 자기 머리 위에 세워놓은 방패들이다. 이렇게 함으로 가족식구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떠났기 때문에 생겨난 상실과 허무와 무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또한 복음전달을 위한 대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 가족식구들은 성경의 구원의 메시지의 절대적인 진실성과 역사적 확실성을 확인하고, 그 복음을 어떻게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시킬 것인지를 깨닫는다.
공감적이요, 사랑이 넘치는 진실한 관계의 맥락에서만, 기독교 상담자는 불신자들이 가지고 사는 비합리적이요 비현실적인 일련의 전제들의 “지붕을 효과적으로 벗길 수 있는” 예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숙련된 상담자는 불신자들에게서 진리를 가로막는 회피, 거부, 합리화와 같은 심리적 방어수단을 감소시키는 기술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술들은 적극적인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즉, 당사자에게 결단의 책임을 남겨두어야 한다. 세뇌, 환경조절, 또는 주입과 같은 모든 강제적인 접근들을 피해야 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가족상담자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다. 즉 가족들이 상담 받으러 오면서 가지고 오는 심각한 문제들의 대부분은 죄의 결과라는 점이다. 많은 경우에 가족 가운데에서 생기는 거대한 죄의 파괴력은 가족식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주님이요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즉 가족상담자가 해야하는 중요한 과제들 가운데 하나는 불신자들에게 복음의 좋은 소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복음의 수용가능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가족들이 당하고 있는 일시적인 문제에 궁극적인 대답을 줄 수 있다. 가족식구들이 상담을 요청해야할 만큼 중대한 갈등과 고민을 경험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은 가족관계에 대해서 좀 더 현실적인 견해를 발견하는 기회가 될 뿐 아니라 그러한 고난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으로 성경적인 진실을 제공하는 기회도 된다. 불신가족이 상담을 받으러 올 때에 그것은 깨어지고 조각난 관계들을 고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전달하는 놀라운 기회이다.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성령은 튼튼하고 기능적인 가족관계를 개발하는 필요한 능력과 “열매”을 제공한다(갈 5:22 - 23).
캔사스 주립대학교의 가족연구교수인 월터 슘(Walter Schumm)은 설득력있게 이러한 강력한 영적 헌신의 특성이 어떻게 가족을 튼튼하게 만드는 모든 다른 특성들의 기초가 되는지를 설명한다91). 영적인 헌신은 대체로 가족헌신의 근원이 된다. 순수한 가족헌신음 실제로 날마다의 삶 가운데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양을 결정한다. 강력한 영적 헌신은 다음과 같은 일들에 동기를 부여한다 : (1) 가족식구들을 서로 사랑한다, (2) 시간을 함께 보낸다, (3) 식구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이 세 가지 요소들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모형개발의 기초를 제공한다. 가족식구들이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과 충실한 커뮤니케이션 모형은 서로 합동하여 튼튼한 가족을 보장한다. 그들은 효과적인 문제해결 기술들을 개발하여 바로 이것은 튼튼한 가족들의 여섯번째 중요한 특성이 된다.
위기 시의 문제해결 기술
스티네트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튼튼한 가족들도 어느 다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위기들을 경험하지만 이 가족들이 가진 특성은 자기들의 부딪치는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집중시키는 능력이다. 튼튼한 가족에서는 하나의 위기나 스트레스 요인이 가족식구들을 흩어지게 만들지 못한다. 튼튼한 가족은 악한 상황들과 스트레스가 쌓이는 시간을 적극적이요 건설적인 방법으로 대처한다. 가족식구는 서로 도우며 하나의 지원구조로서 기능한다.
듀크대학교 의과대학 명예심리학 교수인 윌리암 윌슨(William Wilson)은 튼튼한 가족이 갖는 효과적인 위기관리능력에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
1. 튼튼한 가족은 위기 사건을 현실적으로 이해한다. 위기를 그 자체의 사건보다 더 크게도 보지 않고 더 작게도 보지 않는다.
2. 이런 가족은 공동체 안에 적절한 지원구조를 갖는다.
3. 그 가족은 필요한 자원들을 활성화시키고, 필요한 경우에는 희생도 불사한다.
4. 튼튼한 가족은 미래를 예상하는 능력이 있으며, 그러한 도전에 대처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구조를 변화시킨다.
5. 튼튼한 가족은 희망을 주는 삶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가족상담자는 튼튼한 가족이 행운이 많아 중요한 위기들을 만나지 않는 그런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문제가족들에게 지적해준다. 오히려 튼튼한 가족들도 다른 가족들과 똑같이 위기들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들은 가족협동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효과적인 위기조정능력들을 개발한다. 위기 가운데서 문제를 해결하는 협동능력은 어쩌면 위에서 지적한 여섯가지 튼튼한 가족의 주요특성들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족상담은 한 가족이 하나의 위기를 경험할 때에 시작되며, 그 위기는 그 가족으로 상담자에게 찾아가게 만들며, 위기조정을 부탁하게 만든다. 가족상담자는 당면한 특정위기만 중재하는 것으로는 부족함을 깨닫고 그 가족이 효과적으로 가족구조를 바꾸어 미래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중재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질 수 있게 돕는다.
가족건강을 촉진하기
가족들은 관계의 문제들이 생겼기 때문만이 아니라 튼튼한 가족들의 적극적인 특성들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가족상담을 받으려고 한다. 본장에서 검토한 연구조사의 발견들은 건강하고 적응력이 있는 가족기능의 모델을 제공한다. 반대로 2장은 가족상담자가 검토해야할 공통적인 가족문제들의 개요를 소개했다. 상담자는 일반적으로 가족들이 갖고 있는 장점들과 약점들을 점검해야 한다. 더 적응력있는 가족이 되기 위하여는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확인하고 그 장점에 근거하여 약점들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족상담자가 해야할 일이다. 이러한 방법은 과거에 가족의 문제들에만 초점을 맞추던 가족상담보다 더 나은 전략이다. 과거의 방법은 잘못된 점을 지적하므로 테니스를 가르치려는 것과 마찬가지 방법이다. 스티네트가 지적한 대로, 당신이 어떻게 테니스를 칠 것인지 배우고자 한다면, 코우치가 당신에게 이런 식으로 가르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래 이것은 테니스 못 치는 사람들이 라켓 쥐는 법이야. 이것이 볼이 날아올 때 그들이 움직이는 방법이야. 이런 것은 테니스 못 치는 사람들의 방법이지.” 당신이 테니스를 잘 치기 위하여 코우치에게 배워야 할 것은 성공적인 테니스 선수가 어떻게 라켓을 잡는지, 성공적인 선수가 바르게 하는 모델이 무엇인지 등 적극적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족들을 돕기 위하여 상담자는 건전하고 적응력있는 가족기능의 모델을 보여주고 이것을 상담받으러 온 가족의 문제와 비교해주는 것이다.
가족상담자가 취하여야할 가장 건설적인 접근은 위에서 제시한 연구조사에 근거한 가족건강의 모델을 상담의 목표와 방법에 활용하는 것이다. 3장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가족상담과정에서 목표들을 상호협의하는 것은 가족상담의 초기단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가족상담자는 문제가족이 갖지 못한 가족장점들이 무엇임을 확인할 수 있게 가족을 도우며, 가족건강을 촉진시키는 특성들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상담해야 한다. 다행히 가족은 단순히 스트레스를 주는 가족문제를 제거하는 일시적 전략에 만족하지 않고 튼튼한 가족의 특성들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것이다.
제 6장
가족상담 접근방법들
가족상담자는 도움을 요청하는 수많은 가족들이 제기하는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문제들과 부딪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중요한 공통목표들이 있으며, 이렇게 광범위하고 다양한 구체적인 문제들을 상담하는데 사용되는 몇 가지 일반적인 접근방법들이 있다. 이제 우리는 상담자가 어떻게 일반적인 목표설정에서 다음 단계로 나가야하는지를 보고자 한다.
개인들의 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상담하는 개인상담과는 다르게 가족상담은 날마다 서로 함께 살아가는 가족식구들 전체의 복지에 관심을 갖는다. 많이 사용되는 가족상담 핸드북91)은 다음 다섯 가지의 가족상담의 목적들을 제시한다.
1. 정상적인 발달과 성숙을 촉진하기
2. 가족기능을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돕기
3. 가족 가운데 내재한 불안을 감소시키기
4. 변화상황에 적응하기
5. 가족커뮤니케이션을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돕기
정상적인 발달과 성숙촉진
하나의 일반목표로서 가족은 식구들의 정상적인 발달과 성숙을 촉진시키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가족은 식구들의 나이와 성숙 수준에 따라서 기능방법을 적응할 필요가 있다. 상담자에게 제시되는 구체적인 문제들에 상관없이 중요한 공통의 문제는 어떤 발달영역에서 자녀들이 정상적인 성장을 할 수 없게 가족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자녀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독립하려고 한다. 그런데 어떤 가족들은 자녀들이 성숙하여 스스로 일을 해나가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상담자는 어떠한 방법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여 해결을 시도할 수 있게 조장시킬 수 있을까?
다음은 가족상담자의 첫번째 면접상담을 발췌한 것이다. 상담자는 가족들에게 정상적인 발달을 방해하는 문제들을 확인할 수 있게 도왔으며, 그 원인들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했다. 11세의 애론은 자기 나이에 비해 퇴행적인 행동을 하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문제아로 생각되었다. 애론의 가족식구들은 애론을 포함해서 아버지, 어머니, 15세의 형, 그리고 9세의 여동생 등이다. 가족식구들은 첫번째 면접상담에 나오면서 애론이 “어린 아기와 같이” 행동하는 여러 가지 실례들을 가지고 왔다. 가족상담자는 가족식구들에게 애론이 어째서 때때로 아기와 같이 행동하느냐고 하는 단순한 질문을 했다.
어머니 :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말한대로 내가 애론을 과보호했다는 사실을 인정 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바로 이런 문제를 일으켰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도 그 이유는 모르지만 나는 그가 어린아이처럼 행동해주기를 원하는 일종의 소원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 : 그것이 바로 우리가 여기에 오게된 진짜 큰 이유입니다. 그가 태어난 후 줄곧 당신은 그애 곁에 맴돌면서 그를 보호해 왔어. 나는 그처럼 그를 지키지 않았어. 나 는 그가 두발로 바로 서는 법을 배우기를 원했어. 그래서 남자가 되기를 바랬어.
어머니 : 정말로 진실을 말하자면, ... 내 생각에는 여기 상담자도 우리가 솔직히 말하 는 것을 원할 거예요. ... 당신은 애론을 전혀 돌보지 않았어요. 애정을 주어보지 않 았지요?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불평하지 않겠어요. 그게 당신 성격이지 않아요. 당 신이 못 다해주기 때문에 나는 항상 애론에게 더 큰 사랑을 주어야 했지요. 그것을 당신은 응석받이로 만든다고 비난했지요.
상담자 : 아마도 당신들은 애론의 문제를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서로 다투는 것같이 보이는군요. 당신들은 그것이 엄마의 잘못인가, 아니면 아빠의 잘못인가, 또는 애론 의 잘못인가로 고민하는 것 같군요.
어머니 : 나는 정말 모르겠어요. 그래서 우리가 여기 상담받으러 온 것이지요. 내가 인 정할 수밖에 없는 일은 우리 부부는 집에서 애론의 문제가 누구 때문에 왔느냐를 놓고 많이 다투지요.
상담자 : 그말은 당신 부부가 한 가지에만은 서로 동의한다는 말이지요? 즉, 당신들은 애론이 어린아이로 머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어머니 : 물론, 그렇지요. 우리가 공공장소에 갈 때는 정말 당황스러워요. 예를 들면, 식당이나 그런 곳 말이예요. 거기서 애론은 애기짓을 하지요. 여종업원 앞에서는 정 말 당황하지요. 나는 정말로 그애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해요.
상담자 : 그래요? 한편으로 당신은 애론의 행동 때문에 당황해하고, 또 다른 편으로는 당신 속에 당신이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 있어서 그가 애기짓하는 것을 막고 싶지 않다는 말이군요. 그래서 당신은 애론에게 지나친 모정을 끊기가 어려운 거지요. (상담자는 애론을 향하여) 너는 이처럼 엄마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니?
애론 : 글쎄요. 예, ... 나는 정말로 엄마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내 뜻은 내 가 그것을 이용해온 것 같아요.
어머니 : 그러나 너는 어린 아기와 같이 계속 행동해왔잖니. 그래서 나는 그것은 견딜 수 없었어.
상담자 : 애론, 내가 깨달은 것을 지적하고 싶은데, 너는 내 상담소에 들어온 후에 항 상 네 엄마만 쳐다봤어. 너는 네 아버지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어. 내가 한 가지 물어볼게. 너는 어째서 지금 네 아빠를 쳐다보지 않니?
애론 : 우, 내가 아빠를 쳐다보아야 하나요?
상담자 : 어째서 아빠를 쳐다보는 것이 그렇게 귀찮게 생각되니?
(즉시, 그의 형과 누이동생이 히히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상담자 : 오, 그래서, 그가 보는 것이 너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이구나. 나에게 설 명 좀 해줄래?
애론 : 글쎄요, 그가 보는 것에도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그가 말하는 것은 무뚝뚝하고 큰 소리를 의미해요.
상담자 : 그래서, 네 아빠의 목소리는 네 엄마의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와 상당히 다 르다는 말이지? 그래서 너는 무엇이든지 필요할 때마다 네 엄마를 바라보고 있다는 말이구나. 너는 엄마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만 아빠와는 멀리하는구나. 그러나 너 는 그렇게 하면서 아빠가 네게 줄 수 있는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거야.
어머니 : 애론, 상담자의 말을 잘 들어. 그는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네가 아버지를 피하면, 너는 남자가 되는 법을 배우지 못할 것야. 너는 나에게서 그것을 배우지 못해. 나는 결국 여성이지 않니. (애론에게서 상담자에게 돌아서면서) 이제 나는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해보겠어요. 아마도 이 문제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것은 애론이 어린아이와 같이 행동한다는 것뿐이 아니예요. 애론이 아버지로부터 배워야할 것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예요.
상담시간에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본대로 이야기함으로 상담자는 애론을 성숙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가족관계의 문제들을 깨달을 수 있게 그 가족을 도울 수 있었다. 분명히 애론은 의존적이요 유아기적인 과보호 어미니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일상생활 가운데서 정상적으로 독립해야한다. 그러나 상담자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가깝게 만드는 일도 해야한다. 아버지는 애론을 접촉해야 하고, 애론은 자기 아버지와 동일시할 수 있어야 그는 정상적인 발달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족환경은 애론이 자기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개발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애론의 남성동일시는 지연되고 있다. 상담자는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해석해줌으로써 정상적인 발달과 성숙을 촉진시키는 목표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가족기능을 더 효과적으로 촉진시키기
두번째 가족상담의 주요목표는 가족이 자체의 목적달성에 노력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정상적인 가족은 목표를 세우고 집단으로서 가족이 함께 그 목표달성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문제가족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 거릴 때가 종종있다. 가족식구들은 어떤 목표들은 세워야 할 것인지 혼란에 빠진다. 또는 몇 가지 목표는 마음에 갖고 있으나 정작 그 목표들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방법을 모른다. 상담자는 가족의 목표들을 분명하게 만들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 목표달성을 위해 기능할 수 있도록 가족들을 도와야 한다. 다음은 면접상담내용을 발췌한 것으로 두 명의 국민학생 아이들을 가진 가족이 가족관계에서 얼마나 갈등과 혼란을 빚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상담자 : (의도적으로 유도질문을 한다) 나에게 말해 보세요. 여기 당신의 가족 중에서 누가 보스입니까?
어머니 : (어머니가 먼저 대답하고 있다는 사실의 의미에 주의하라) 글쎄요, 분명치가 않아요. 나는 그 누구도 보스가 아니라고 말해야할 것 같네요.
아버지 : 나는 내 아내와 내가 모두 보스라고 말해야 할 것 같네요. 어떤 일에는 내가 최종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또 다른 일에는 내 아내가 최종적인 이야기를 하니까요.
상담자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볼까요. 자녀문제에 대해서 누가 보스이지요?
아버지 : 내 아내가 그 일을 책임지지요. 나는 아니라고 말해야겠네요. 분명히 제 아내 가 나보다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니까요.
어머니 : 그러나 솔직히, 그것이 나를 괴롭혀요. 나는 단순히 모든 결정들을 하고 싶지 않아요. 가끔 나는 프랭크가 그 일을 떠맡아 아이들을 돌봐주었으면 해요.
아버지 : 글세, 내가 애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할 때마다 당신이 거기에 끼어들어서 내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나요? 그래서 내가 자녀훈육에 끼어들 필요를 느끼지 않지요.
어머니 : 그게 무슨 말이예요, 프랭크. 당신도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않나 요? 내가 무엇이라고 끼어들어 말하는 유일한 시간은 당신이 너무 화가 나서 당신 이 제정신을 잃었을 때예요. 그게 유일하게 내가 끼어들 때이고 그것은 애들을 보 호하려고 그랬던 거예요.
상담자 : 당신은 프랭크가 부당할 때에만 그에게 끼어든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거지요? 그렇다면 무엇이 정당한 것이고 무엇이 부당한 것이냐에 관하여 서로 동의할 수 있 을지 봅시다.
어머니 : 글쎄요. 나는 그일에 대하여 동의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데요.
상담자 : 그러면, 우리가 자녀에게 합당한 훈육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점검하고 살펴 봅시다. 당신은 나에게 자녀를 대할 때 당신에게 가장 고민하게 만드는 상황을 설 명해 보세요.
아버지 : 그럼, 오늘 일 같은 것입니다. 오늘 저녁 이 상담면접을 받으러 오기 전에 애 들이 학교에서 집에 오자마자 내 아내는 애들에게 즉시 숙제를 하라고 얘기했어요. 그러나 그들이 학교에서 돌아와서 곧바로 숙제를 하지 않을 때마다 내가 직장에서 돌아오면 아내는 나에게 이제는 당신이 맡아서 애들에게 숙제하도록 시키라고 말하 지요. 자기는 이미 해보았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해야한다는 거지요.
커트 : 하지만,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또다시 학교일을 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하루종일 학교에서 공부했고, 그래서 내가 집에 돌아오면 놀고 싶어요. 특히 요새와 같이 날씨가 좋고 아직도 밖이 밝을 때에는 밖에 나가 놀고 싶어요. 내가 숙제를 먼저해야 한다면, 숙제가 끝날 때 쯤이면 밖은 너무 어두워서 놀 수 없게 돼요. 그 래서 난 학교에서 돌아오면 즉시 밖에 나가 놀고 싶어요.
베쓰 : 나도 그래요! 우리는 충분히 나이들었어요. 이제는 숙제하고 싶을 때에 숙제하 는 것을 결정할 만한 나이예요. 결국 그건 우리 숙제 아녜요?
커트 : 예, 가끔 숙제가 없는 날도 있어요. 하지만 엄마는 그때도 숙제하라고 소리질러 요.
상담자 : 숙제에 대하여 여러 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구나. 그러면 우리가 어떤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볼까요.
어머니 : 글쎄요. 우리가 이 문제를 가지고 전에 해결하려고 할 때마다 서로에게 화를 내는 것으로 끝나버리고는 했죠.
상담자 : 그래요? 제가 보기에는 애들은 숙제를 늦게 하고 싶어하는군요. 그러나 가끔 그들이 숙제를 하지 않는 때를 발견했겠지요? 당신이 이 사실을 애기할 때에 분노 가 솟아나왔겠죠. 그러나 이제 여기에서 어떤 합의를 해보는 것이 어때요?
아버지 : 그럽시다. 그들이 언제 숙제하느냐 하는 문제는 아이들이 그날에 숙제를 끝내 기만 한다면 별로 문제가 안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군요. 숙제해야 하는 것은 애들의 책임이니까요.
어머니 : 그러나 그게 문제예요. 애들은 누군가 옆에서 감시하지 않으면 숙제하지 않아 요. 아이들이 숙제를 다했는지를 누가 검사할 거예요? 당신이 그것을 얘기해보세요.
상담자 : 그렇지요, 그것을 얘기해 봅시다.
어머니 : 애들은 누가 옆에서 감시해야 해요.
아버지 : 글쎄, 당신이 집에 있는 장본인이지요. 그러니 당신이 결정해요. 그러나 잘 안 된다고 나에게 기대지 말아요. 그것은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이요. 너무 끓이면 고 깃국도 맛을 잃어버려요.
어머니 : 그게 문제예요. 그는 끼어들려고 하지 않아요.
상담자 : 아마도 아버지는 끼어들기를 원치 않고, 아마도 당신들 중 어느 누구도 당신 자녀들이 숙제하는 일에 대한 책임을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요. 이제 당신들 중 어느 누구도 이 책임을 실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요.
어머니 : 그래요, 나는 그것을 인정해요. 사실 나는 이 모든 상황에 속이 상하고 피곤 해요. 이 모든 일을 지금 당장 프랭크에게 떠넘기고 싶어요. 아빠도 이 일이 힘들 것을 알아요.
아버지 : 알았어. 당신이 나에게 그것을 하라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해야할지 보여주 지요. 당신이 참견만 하지 않는다면 숙제하는 것은 내가 책임을 지지요.
커트 : 나는 아빠가 책임지면 좋겠어요.
베쓰 : 나도 그래요!
상담자는 이번의 면접시간에 모든 가족식구들의 관심을 공동목표에 집중시키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가족의 기능향상을 도모하고 있다. 상담자는 집중적인 질문들을 하고 부정적인 감정표현으로 주의력을 분산시키기보다는 문제해결의 과제로 가족을 인도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 상담자는 자녀들의 숙제를 그날그날 완성하기 위하여 부모 중 한 사람이 부모의 권위를 행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상담자는 가족대화를 해석해주므로 부모 중 어느 누구도 이 책임을 맡고 싶어하지 않으며, 가족 안에서의 기대도 이점에서 분명치 않다는 사실을 밝혀준다. 위의 상담대화 가운데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들은 자녀들과 어머니는 아버지가 이 책임을 맡아주었으면 한다는 것과 아버지는 이제까지 이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담자는 이 부분에서 효과적인 부모의 책임이 결여되어있다는 사실을 지적해줄 수 있다. 사실, 이제까지 이 책임을 회피하여 온 아버지가 이 책임을 맡아야 한다고 도전받고 있으며, 아버지는 자기가 이 책임을 맡는 경우에 아내가 이 일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이 면접상담 중 이 부분에서 가족식구 네 사람은 모두 이러한 행동지침에 동의하고 있다.
이 경우에 가족식구들 간에 합의된 정확한 해결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사실은 모든 식구들이 함께 참여하여 실제적으로 문제해결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과 서로의 기대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점, 그리고 어떤 구체적인 미래의 행동방향을 위해서 몇 가지 헌신을 약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아버지가 자기의 약속대로 헌신한다면 자녀들이 숙제하는 가족기능은 어느 정도 개선될 것이다.
이 가족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하나는 숙제하는 문제로 감정적인 갈등이 너무 심해서 가족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식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상담자는 중요한 잇슈를 여기에서 제기했다. “누가 이 가족의 보스입니까? 누가 쇼를 책임지고 있습니까?” 그 가족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본질에 있어서 아내는 보스는 아무도 없다고 대답한 반면 남편은 아내와 자기, 둘 모두가 보스라고 대답했다. 분명히 가족기능에서 약간의 혼란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러한 일반적인 잇슈에서 출발하면서 상담자는 다시 구체적인 가족생활의 한 가지 영역, 즉 자녀훈육의 영역에 대한 질문을 한다. 그리고 나서 상담자는 그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 즉 그들이 상담을 받으러 온 날에 일어난 숙제 갈등에 초점을 모으게 했다. 그 가족은 몇 가지 문제에 합의하였다. 아들과 딸은 학교에서 돌아온 즉시 숙제하지 않는다는 것에 동의했다. 아내와 남편은 숙제하는 것을 감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전가족은 오랫동안 많은 논쟁을 벌여온 문제에 대하여 합의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합의에 중점을 두었는데도 그 면담은 약간 좌절 같은 것, 아마도 분노의 감정으로 끝났다. 이 가족은 더 나은 부모제휴관계를 맺지 못했다. 이 면담이 끝나 후에 아버지가 직장에서 돌아오기까지 커트와 베쓰에게 숙제를 하라고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다. 이러한 합의는 학교 끝난 후에 놀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욕망은 만족되었다. 그러나 전술상의 문제가 생겨났다. 이 상황에서 양부모가 서로 협력했다면, 어머니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에게 얼마동안 나가 놀 수 있게하고, 어두워지면 또는 저녁식사 한 시간쯤 전에는 숙제를 시작하게하여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는 어느 정도 숙제를 할 수 있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는 집에 오자마자 아들의 숙제를 검사하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상담면접이 시작되기 전에 아내는 하나의 특별한 조치를 주장했고 남편은 끼어들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문제 자체는 결코 해결된 것이 아니다. 아내와 남편이 전적으로 합의하지 못할 때에 성경은 남편이 아내에게는 사랑으로 대하고 저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엡 5:25, 벧전 3:7, 딤전 3:4). 그리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 그러한 경우에 남편은 이런 말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오케이, 우리 당신의 방법을 따져봅시다.” 또는 “애들은 저녁때까지 기다리고 그후에 숙제를 하며, 그때쯤이면 나도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거요”. 만약 엄마가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즉시 숙제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고집스럽게 갖는다면, 그녀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성경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 가족식구들이 기독교의 사랑의 원리에 따르기를 원한다면, 자기 자녀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 받아들여 함께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자녀들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 얼마동안 놀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집으로 오자마자 15분 동안 놀게 하고, 어제 숙제를 다 끝낸 경우에 한 시간까지 놀 수 있게 하고 어제 숙제를 다 끝내지 못한 경우에는 15분까지만 놀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그 가족은 상담자와 함께 여러 가지 다양한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상담자는 합의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상담자는 합당한 문제해결 모델을 제공할 수 있다. 상담자는 가족이 특별한 잇슈에 대해서 막다른 골목에 빠졌을 때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전략을 발견하게 도울 수 있다. 상담자는 새로운 해결의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자원제공자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어떤 가족은 이렇게 하고, 다른 가족은 저렇게 하고, 또 다른 가족은 이러저러한 해결책을 사용합니다.” 상담자는 가족이 생각하는 방법에 또 다른 대안들을 제시하고 가족들에게 가장 편안한 것을 선택하게 도울 수도 있다. 가족들이 모두 동의하는 하나의 해결책을 발견했다면,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지혜를 줄 수도 있다. 기독교상담자는 사랑이나 성령의 열매 같은 성경의 관계원리들을 제시하고 가족들에게 그런 원리들을 그들의 구체적인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물을 수도 있다. 이것은 가족식구들이 어떻게 자기자신의 유익을 얻을 것이냐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에로 방향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된다.
가족불안을 감소시키기
일반적으로 가족상담을 받는 가족은 가족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상당한 불안을 경험하고 있으며, 좌절, 불안, 분노, 슬픔, 또는 두려움과 같은 수많은 종류의 감정들에 빠져있다. 그러므로 가족상담자는 이런 감정들을 일으킨 원인들과 더불어 이런 갈등의 근원들을 확인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나서 갈등의 근원들을 감소시키는 총괄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상담자는 불안을 일으키는 감정들의 원인들을 설명하고 가족들이 그런 원인들을 통찰할 뿐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하여 어떠한 실제적인 단계를 밟아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게 돕는다.
먼저 상담자는 안전한 상담 분위기를 조성하여, 가족식구들이 면접상담을 하는 동안에 이런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경험할 수 있게 한다. 가족상담자의 “심판” 역할로 인해 도입된 안전의 요소는 가족들에게 안심하고 상담에 응할 수 있게 하며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만약에 여러 가족식구들이 동시에 이야기를 시작하여 서로에게 소리지르고 잠잠하라 외치고 한다면, 상담자는 이런 말로 그들 사이에 끼어들 수 있다. “자, 잠깐만, 이제 모두 그만하세요. 나는 한 번에 한 사람 이야기밖에 들을 수 없어요.” 이런 식으로 상담자는 조직화된 환경을 조성하여 어려운 감정들을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한다.
나는 7세 소년의 극단적인 분노의 격발로 고민하는 가정을 상담한 일이 있다. 그 소년의 이름은 차드인데, 그는 10세의 누나와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집에서 차드는 성난 망아지와 같이 행동할 뿐 아니라, 자기의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고 그때마다 자기 어머니와 누나를 꼬집고 밀치고 때리고 찌르기를 쉬지 않았다. 이런 분노의 폭발이 하루에도 여러 번이어서 이 가족은 상당한 곤경에 빠졌다.
가족상황에서 그러한 감정들을 다루면서, 감정들을 설명하는 감정과 언어는 단순히 느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가족상담자가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언어들은 느낌을 전혀 담지 않고 사용될 수 있다. 즉, “나는 우리 경제가 몇 년 내로 불황을 맞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말 속에 감정을 담지 않을 수 있다. 가족상담에서 여러 가족식구들은 자주 감정언어들을 사용하지만 그것은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 전혀 아닐 때가 많다. 그것은 단순히 어떤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감정언어들이 하나의 감정을 표시할 때가 있으며 이러한 경우에 그러한 감정언어는 단순히 감정만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이 이 감정 언어 속에서 암시된다.
예를 들면, 어느 사람이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라고 말했을 때, 그 죄책감은 그 죄책감을 느끼게 한 어떤 대상물과 연결되어 있다91). 이것은 보통 구체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어떤 것에 대한 감정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는 사랑을 느낀다”고 이야기했으면, 그 사랑은 어떤 사람 또는 사랑의 대상이 되는 어떤 물건과 연결되어 있다. 만약 그 사람이 “나는 두렵다”고 이야기했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하나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두려움에는 어떤 대상물 즉 실제하는 것이든지 또는 상상에 의한 것이든지 두려움을 일으키는 대상물을 갖는다.
내가 방금 이야기한 7세의 소년의 경우에 그가 분하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 분노를 일으키는 어떤 것 즉 분노의 대상물이 있었다. 그러므로 상담자는 일련의 질문을 사용하여 그가 표현하고 있는 분노의 대상물이 무엇인지를 조심스럽게 탐색하여야 한다. 이 경우에 그 소년의 분노의 대부분은 자기 어머니를 향한 것이었다.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그 소년의 분노의 실례들을 본다면 거기에 하나의 모형이 드러난다.
예를 들면, 이 소년 챠드는 상담면접에 나올 때 몹시 화가 나고 속이 뒤집혀 있었다. 왜 그가 그처럼 화를 내느냐고 물었을 때 그의 어머니는 그와 함께 애완동물 가게에 가서 거북이를 사기로 그와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차드는 거북이를 사는 것으로 온통 자기 마음을 채웠다. 그러나 그들이 애완동물 가게에 도착했을 때에, 그 가게 창문에 “닫혔음”이라는 표시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애완동물 가게에 갔다가 상담 약속 때문에 이곳으로 직접 왔다는 것이다.
나는 챠드가 그 분노의 대상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질문했다. “너는 누구에게 그렇게 화를 내고 있니, 챠드?”
챠드는 “나는 어머니에게 화가 났어요” 라고 대답했다.
이 비슷한 질문을 여러 번 한 후에 자기의 본래 분노의 대상이 자기 앞에 없을 때 자기 어머니에게 자기의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애완동물 가게 주인이 어디 가버리고 그 가게는 일시 문을 닫는다고 표시를 내걸었다. 차드는 자기가 만나지도 못한 가게 주인에게 직접적으로 분노를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분노의 감정들을 자기 어머니를 향하여 전이시켰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분노의 감정들을 자기 어머니를 향하여 분노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 아님을 볼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 그의 과거를 탐구하는 가운데 그는 아주 어린 아이일 때에 매우 고통스러운 수술을 여러 번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왜 자기가 그처럼 고통스러운 일을 당해야 하는지 아직 이해할 나이에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수술이 자기 어머니의 잘못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는 여러 번의 수술에서 경험한 고통을 자기 어머니에게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과거의 적대감과 분노의 저수지에서 분노를 퍼내어 계속 자기 어머니에게 전이하고 있는 것이다.
거북이를 사지 못하고 상담하러온 바로 그날 차드는 자기가 원하는 애완동물인 거북이를 사지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화를 낸 것을 어머니에게 사과했다. 그는 이것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는 실제로 자기네가 거북이를 사러간 바로 그 시간에 가게를 일시적으로 닫아버린 애완동물가게와 그 가게주인에 대하여 분노하였고 그 때문에 실망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자기 어머니는 약속을 지켜 그를 데리고 그 가게까지 갔으며 그 가게가 닫힌 것은 자기 어머니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나아가서, 감정언어는 논리적으로 몇 가지 동기부여의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면, 당신이 만약 두려움을 가졌다면 그 두려움은 하나의 대상 즉 당시이 두려워하는 바로 그것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두려움은 또한 논리적으로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피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동기를 부여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약 당신이 어떤 것에 대하여 불안을 갖는다면, 거기에는 그 상황을 피하거나 그 상황으로부터 도망가려는 하나의 동기부여가 있을 것이다. 당신이 만약 죄책을 가졌다면, 당신은 자신에게 죄책감을 일으키는 것을 피하려 하거나 또는 어떤 형태의 보상을 제공하거나 또는 용서를 빌고자 하는 동기가 부여될 것이다. 가족상담자는 그 감정들 때문에 생겨나는 동기부여에 대하여 질문할 수 있을 것이요, 그렇게 할 때, 그 가족들은 그 감정들에 대하여 더 깊이 통찰하고 그 감정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지 그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감정들은 고의적인 생각이 없이 그 감정들을 행동에 옮기게 하는 습관성을 갖는다. 예를 들면, 차드가 자기 어머니에게 화를 낼 때에 그는 자기 어머니를 때리고 미는 습관을 가졌다. 그는 잠깐 머물러 서서 “어디 보자. 누가 나의 분노의 대상일까? 나는 엄마에게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거의 자동적으로 공격적인 행동으로 어머니에게 달려들었다.
기독가족상담자는 가족들이 하나의 감정에 대한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습관성과 그 감정의 대상물과 그 감정으로 부여되는 동기들을 통찰할 수 있게 도울 뿐 아니라 가족들에게 감정에 관한 성경의 원리들을 가르쳐주어야 할 것이다. 차드가 표현한 분노의 경우에 에베소 4장 31절과 32절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같은 에베소서 4장 26절은 이렇게 가르친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며.” 가족상담자는 누구든지 분노를 다음날까지 간직해서는 안 되며 용서가 필요한 경우에는 그 가족식구를 용서해야한다고 지적해주어야 한다. 에베소 4장 25절 말씀을 주의깊게 경청하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위의 경우에 상담자는 차드에게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진실이 아님을 분별할 수 있게 가르쳤다. 즉, 상담자는 그가 수술을 받으면서 경험했던 그 고통에 대해서 정확히 누구에게 그 고통의 책임이 있는지, 그리고 그가 원하는 그 시간에 거북이를 살 수 없었던 그 실망에 대해서는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분별하게 도와주었다. 그는 또한 자기 어머니와 누나와 아버지에게 대하여 그들의 모자란 점들을 용서하는 법을 배웠다.
변화상황에 적응하기
수많은 종류의 변화하는 상황들은 가족들에게 중요한 적응을 요구한다. 가족상담의 많은 부분은 새로운 경험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탄력성을 유지하는 목표를 갖는다. 예를 들면, 한 가족이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사하게 된다. 할머니를 새로 모셔서 여생을 돌보아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자녀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과외활동과 클럽활동으로 분주하게 될 수도 있다. 가족이 한 발달단계에서 다음의 발달 단계로 가족순환이 변할 때에는 가족의 목표와 가족관계들을 재평가해야할 것이다. 한 자녀가 미취학 아동이었을 때에 가졌던 평소의 모형은 그 아이가 10대가 되었을 때에는 더 이상 소용이 없을 것이다.
가족상담자는 제일 먼저 그 가족에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확인하고, 그 변화가 가족식구들과 가족식구들 서로간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예를 들면, 만약 할머니가 이사오셨고 병 때문에 하루종일 누워있어야할 처지라면, 할머니의 침실에 인접해 있는 거실에서 자녀들이 시끄러운 놀이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이다. 상담자는 종종 탄력성 있게 변화에 그 가족이 적응할 수 있도록 가족규칙 만들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사실 상담자는 할머니가 이사해들어 오기 전에 그런 규칙을 만들도록 가족들에게 요구할 수 있다. 많은 경우에 이런 규칙들을 정하지 않거나 있어도 불분명하거나 전혀 그런 규칙들이 없을 수도 있다. 또 다른 경우에는 한때 효과적이던 규칙이 이제는 소용없이 낡았거나 잊어버렸거나 또는 규칙으로서의 힘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가끔 하나의 규칙은 세월이 가면서 예외를 너무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더 이상 소용없는 규칙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할머니의 사례에서 할머니가 낮잠을 주무시는 동안에 용납될 수 있는 행동에 관하여 몇 가지 새로운 규칙을 정하여야 할 것이다.
가족들의 변화에 더 탄력성이 있고 더 적응력을 높이는 목표실현을 위해서 상담자는 다음에 제시하는 몇 가지 접근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접근방법들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1. 가족들이 자기의 규칙을 더 분명하고 명시적으로 만들게 돕는다.
2. 규칙들이 불분명하고, 독단적이요, 또는 실천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갈등을 피하기 위하여 그 규칙들을 어떻게 고쳐야 할 것인지 가족들이 고려할 수 있게 돕는다.
3. 가족식구 중 한 사람이 규칙을 어긴 경우에 어떻게 그 규칙을 강화시킬 수 있는지(벌칙규정)를 결정할 수 있게 가족을 돕는다. 규칙을 어긴 결과로 모든 가족식구들이 함께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해야 한다.
효과적인 가족커뮤니케이션 촉진
돌로레스 큐란(Dolores Curran)은 가족들과 상담하는 목사, 교육자, 의사, 심리학자, 그리고 정신과 의사들을 조사하였다. 그녀는 이 사람들에게 전문적인 상담을 하는 동안에 발견한 건강하고, 튼튼하고, 적응력있는 가족들의 특성을 적으라고 하였다. 그녀의 연구조사계획에 아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는데, 그녀는 500통의 질문서를 보냈는데 551통의 응답서가 그녀에게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분명히 그녀의 질문서를 받은 사람들 중에 어떤 분들이 그 연구에 대하여 매우 열성적이어서 그 질문서를 복사하여 다른 동료들에게도 주어 그 질문지를 완성하게 하였다. 보통 우리가 500통을 보내면 그중에 70%가 되돌아온다. 어느 사람도 110%가 회수되기를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큐란 박사는 그녀가 조사한 전문가들이 보고한 튼튼한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 가운데 차례로 15가지를 선택하여 책을 쓰고 그 제목을 “건강한 가족의 특성”이라고 붙였다91).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이 첫번째로 선택한 건강한 가족의 특성은 “건강한 가족은 전달하고 경청한다”였다. 이것이 첫번째였다. 열세번째는 이와 유사한 것으로 분류되었는데 그것은 “건강한 가족은 식탁대화를 조장한다”였다.
가족 안에서의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은 큐란의 연구에서 발견된 첫번째 특성이기 때문에, 가족커뮤니케이션을 효과적으로 촉진시키는 것이 가족상담의 중요한 하나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가족상담자가 가족과 함께 목표들을 협의하지만 그러한 목표들을 설정하는 것은 가족들 간에 진행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모형과 상담이 그 가족의 커뮤니케이션을 얼마나 향상시키느냐의 정도에 따라서 달라지는 일이 종종있다. 갈등을 해결하려고 가족식구들은 서로에게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하는가? 그들은 어떻게 서로에게 경청하여 이해를 증진시키고 있는가? 어떠한 방법으로 그들은 가족식구들과 가족단위전체의 성장을 촛진시키는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가? 가족상담의 중심 과제 가운데 하나는 갈등을 해결하고 가족의 복지향상을 위해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모형을 개발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 창조되기 이전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위 안에서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커뮤니케이션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91). 그러나 당신과 나는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는 하늘의 이편에 있는 가족 가운데에서 이런 일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가족들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오랜동안 믿음 가운데에서 성장하며 성숙해가는 가족들 가운데에서 주님은 가족식구들을 성화시키시며 이점에서 완전하신 하나님을 본받아 점점 그의 형상을 닮아갈 수 있게 만드신다. 에베소 5장 1,2절은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에서 행하라”. 상담자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을 닮는 한 가지는 3위 하나님 안에 있는 완전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상담자는 가족식구들이 표현한 감정의 의미를 설명하는 등 가족식구들에게 의미를 밝혀주어야할 때가 종종있다. 상담자는 또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모델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그 가족은 과거의 불완전한 커뮤니케이션, 혼동된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불일치의 커뮤니케이션 등의 습관들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불일치의 커뮤니케이션이란 언어적 표현과 비언어적 표현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또다시 나는 하나의 사례로 설명하려고 한다. 다음의 가족면접상담 기록을 주의깊게 읽으면서 이 가족의 커뮤니케이션 모형에 어떤 잘못이 있는지 생각해보라.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라. 상담자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돕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거기에서 진행되고 있는 잇슈들을 빼놓고 변두리만 이야기하는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가족은 지금 무엇에 빠져있는가? 그리고 그들이 이야기해야할 잇슈들은 무엇인가?
어머니 애나 : 나는 혼란에 빠졌어요. 그리고 솔직히 피곤해요. 나는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어요.
아버지 제프 : 그래요, 아마도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없겠지 요. 나는 가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 정해야 된다고 생각해.
체릴 : 엄마, 아빠. 나는 엄마 아빠가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요.
제프 : 그러나 내 생각에는 우리가 실제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을 거야. 그랬다면 아 마도...(쉬는 게 길어진다)
상담자 : (어머니가 이야기한 것에 관심을 돌리면서) 조금 전에 애나는 약간 실패한 것 같이 느낀다고 암시했는데...
체릴 : (즉시 큰 소리로 자기 주장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엄마는 실패하지 않았어 요! 내가 엄마의 모든 소원들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엄마가 실패한 것은 아 니예요. 결코 그렇지 않아요!
상담자 : (체릴에게) 그러면 너는 너 때문에 엄마가 실패한 것처럼 느끼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이지, 그렇지?
체릴 : 예, 엄마는 엄마가 실패했다고 느껴서는 안 돼요. 사실 엄마가 실패한 것은 아 니니까.
애나 : 나는 정말 매일같이 실패했다고 느껴요. 나는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나라고 하 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
체릴 : (정떨어진 목소리로) 오, 제발 그만둬요, 엄마. 그건 허튼 소리예요. 제발 그런 엉뚱한 소리 그만해요.
애나 : 그래, 내가 엉뚱한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지.
체릴 : 이것은 우스꽝스러워요. 나는 엄마가 싫어하는 몇 가지 일을 했어요. 그래서 엄마 는 그렇게 화가 난 것이라구요. 이제 어마는 좀 진정할 수 없어요?
제프 : 자, 체릴, 너는 단지 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않 니?
상담자 : 그게 무슨 뜻인지 좀 설명해주실 수 있겠어요?
제프 : 체릴의 엄마가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체릴을 위해서라는 거지요.
상담자 : 다시 한 번 생각해봅시다. 애나는 자기가 실패자와 같이 느낀다고 했는데, 정 말 그래요?
체릴 : 아니예요. 그렇지 않아요. 엄마는 단지 내 속을 뒤집으려고 그런 말을 하는 거 예요. 엄마는 그런 말을 할 때 내 속이 뒤집히는 것을 알아요. 엄마는 그런 말을 할 때에 내가 얼마나 그것을 싫어하는지 알아요. 틀림없이 엄마는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예요. 엄마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어떤 일 때문에 불평을 나에게 쏟아놓고 있는 거예요.
상담자 : 체릴, 네 엄마는 실제로 이런 식으로 불평을 네게 쏟아놓고 있는 것이라고 느 낀다는 말이지? 네가 실패자다, 그런 이야기니?
체릴 : 엄마는 나 때문에 스스로 비참한 실패자가라고 느끼고 있다고 나에게 느끼게 만들어요. 나는 내가 실패했다거나 실패 안했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예요. 나는 그 것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어요. 내가 확신하는 단 하나의 사실은 내 방식대로 하는 것은 엄마가 싫어한다는 거예요.
애나 : 나는 모든 것이 혼돈스러워요. 나는 어느 것에도 확신이 안 서요. 내 생각에는 어머니가 자식을 위하여 자기 최선을 다하고 자녀는 그것을 마음에 두고 따라야 한 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나는 생각하고 생각하여 낸시와 어울리지 말라고 체릴에 게 이야기해요. 그러나 체릴은 내 말을 듣지 않아요.
체릴 : 그만둬요, 엄마. 내가 낸시와 친구가 된다는 것에는 아무 잘못도 없어요.
애나 : 너는 네가 실제로 얼마나 반항적인지 네 스스로 볼 수 있어야 해!
상담자 : 그렇다면, 체릴이 당신의 말을 순종하지 않을 때마다 당신은 자동적으로 큰 실패자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애나 : 글쎄요. 당신도 당신의 말을 듣지 않는 10대를 가졌다면 실패했다고 느끼지 않 을까요?
상담자 : 글쎄요, 당신은 당신이 참으로 큰 실패자라는 말에 내가 동의해 주기를 원하 는 겁니까? 아니면, 내가 부모로서 실패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도 그런 실패자 라고 나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당신의 말에 동의하 지 않고 당신은 실패자가 아니라고 주장해 주기를 바랍니까?
제프 : 나에게는 애나가 보통 10대 소녀딸을 둔 어느 다른 어머니보다 더 크게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들리는군요. 결국 어떤 애들도 자기 부모가 하라고 시키는 대로 모 든 일을 하지 않으니까요.
애나 : 아마도 당신이 옳아요.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이 모든 혼란 때문에 내가 소름이 끼친다는 거예요. 아마도 정확히 말해 실패한 것 같은 느낌은 아닐지 몰라요. 그것 은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존중받지 못했을 때에 느끼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할 거 예요.
상담자 : 그래요. 당신은 체릴이 어머니로서 존중해 주기를 바라는군요. 그리고 체릴은 당신에 순종함으로 엄마에게 존중을 보여야 하고.
애나 : 그래요. 바로 그거예요.
상담자 : 그리고 체릴이 순종하지 않을 때, 어머니로서 거절당한 느낌을 갖고 실망에 빠진다는 말이군요. 당신은 존중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결국 나는 실패했다고 느 끼는군요. 당신을 그렇게 뒤집히게 만드는 것은 체릴의 불순종이구요. 실제로 당신 은 근본적으로 체릴의 행위를 통제하는 문제에 빠져있군요.
이 면접상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아버지는 매우 수동적이다. 그는 옆에 조용히 앉아서 이 대화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기만하고 자신을 거기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는 자기 딸을 복종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그녀는 자기 딸을 복종시키기 위하여 재미있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감정 섞인 말을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므로 자기 딸의 행동을 통제하여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려고 하고 있다. “나는 실패자다”, “미칠 것 같다”, “나는 혼란을 느낀다”, “내 딸이 무섭다”. 그래서 이 가족의 커뮤니케이션의 문제 가운데 하나는 부모들이 애매모호하고 분명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리고 부모들 간에도 어떤 조화가 없다. 어머니는 혼자 궁지에 몰린 것 같이 느끼고 있으며, 그래서 감정을 과장하고 있다.
그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두 번이나 상담자가 어머니에게 질문했을 때에 딸이 대답했다. 이 가족의 경계선에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즉, 누가 부모이고 누가 책임을 지는지 분명치 않다. 어머니가 하나의 규칙을 정하고 딸이 그 규칙에 순종하지 않기로 작정했을 때에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 결과 규정이 분명치 않다. 부모의 역할도 잘 정의되지 않고 있다. 자기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명료화하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다.
딸과 어머니 사이의 간단한 상호대화에서 어머니의 전략은 딸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딸의 감정을 조작하려는 것 같다. 어머니는 남의 탓으로 돌리는 불평의 질문으로 꽉 차 있다. 그녀는 간접적으로 묻는다. “내 딸이 해야만 하는 것을 하지 않았을 때에 내가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딸은 여기에서 자기 어머니가 불평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어머니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딸은 자기와 자기 어머니 사이의 갈등상황을 정확히 정의하고 있다. 그녀는 정곡을 찌르고 있다. “엄마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내가 찔리는 줄 알기 때문이예요. 나는 더 이상 그런 말을 하지 말았으면 해요.” 그래서 체릴은 자기 어머니의 이야기를 비판하면서 그말에 끼어들고 있다. 그녀의 비판은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정확히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91). “나는 실패하고 있다”, 고 말하면서 어머니는 실제로 간접적으로 자기 딸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아버지가 하고 있는 유일한 역할은 자기 딸과 어머니를 달래서 문제를 축소시키고 그 문제를 취급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내 아내가 다른 어떤 어머니들보다 더 큰 실패자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어떤 10대도 부모가 이야기하는 대로 무엇이나 다 하지는 않아요.”
물론 상담자는 어머니의 정신적인 안정성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 하는 것은 그 가족의 역동성 안에서 그녀의 관계의 성격, 특히 오랜 동안에 걸쳐 개발해온 습관적인 모호하고 간접적인 커뮤니케이션 모형에 큰 관계가 있다. 그러나 그녀의 감정은 몇 가지 다른 요소들, 부적절한 자아상,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개인적인 문제, 왜곡된 사고, 또는 깊은 영적인 문제와 같은 것과 연관되어있다. 그녀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가족면접상담요약을 여기에 실은 우선적인 이유는 상담자는 가족의 커뮤니케이션 모형을 어떤 방법으로 도울 수 있는가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상담자는 정서적 감정들이 특히 권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에 의하여 재설명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감정들의 근저에 있는 기본적인 심리학적 상태들은 별로 없으나 정서적 감정의 서로 다른 색조를 지칭하는 말들은 수천은 안 된다고 할지라도 수백은 될 것이다. 이 말의 의미하는 바는 하나의 특정한 정서적 감정상태는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의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수많은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 목사나 전문상담자같은 사람이 또 다른 해석을 우리에게 제시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서 심사숙고해야 한다. 특히, “나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겠군요”하고 이야기하는 위의 여인과 같이 애매한 말을 할 때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상담자는 하나의 해석을 내리는 데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시간을 두고 계속 이야기하는 많은 이야기 가운데에 드러나는 분명한 하나의 모형을 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위의 면접상담요약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상담자는 그 어머니가 실패자라고 믿었을 수도 있고 안 믿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담자는 자기의 들은 바로는 그녀가 자기의 실패의 감정에서 진짜 문제로 관심을 바꿀 수 있게 도왔다. 즉, 자기 딸의 행위에 대한 관심이 그것이다91). 체릴이 어머니가 자기에게 하라고 하는 것을 따르지 않았다. 이제 그러한 움직임은 분명한 커뮤니케이션을 향한 첫단계였다. 물론 여기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몇 단계 더 거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잠시 가족커뮤니케이션 모형이 혼란에 빠진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 이 상담자가 어떻게 중재하고 있는지를 주목해 보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당신은 이 과정의 면접에서 이 가족에게 어떤 성경의 원리들을 제시하고자 하는가? 이것은 기독교상담자가 상담의 전과정에서 계속적으로 마음에 두어야할 열쇠가 되는 질문이다. 체릴과 그녀의 부모에게 우리의 목적은 완전하고 더 붙일 것이 없는 대답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가능성들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다. 어머니의 중요성은 자기 딸의 순종하느냐에 있지 않고 그녀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기초한다(시 42:5). 남편은 자기 아내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책임을 진다91). 딸 체릴은 자기 부모에게 순종할 윤리적 책임을 지고 있다(엡 6:1). 더 나아가서 아버지는 화평케 하는 자의 성경적 접근을 따를 필요가 있다. 문제를 그럴 듯하게 해석하여 갈등이 없는 것처럼 가장하지 말고 그는 산상보훈에서 성경이 가르치는 화평케 하는 자의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마 5:9).
아버지도 역시 자기 자신의 중요성에 대하여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는 가정에서 지도력의 역할을 담당하라는 성경의 권면을 간과하고 있다91). 그는 수동적으로 앉아있는 자가 아니라 지도자로 일어서야 한다. 여기서 아버지는 너무 직업에만 헌신하고 있고 가정에서 직접적인 참여를 하지 않으므로 자녀들은 일관성있는 훈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불안정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가끔 그들은 체릴과 같은 딸을 간접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훈계할 필요를 깨닫는다. 에베소 6장 4절은 이렇게 가르친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만약 아버지가 진실로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고자 했다면, 그 딸은 그렇게 분노하고 좌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야고보 제 3장의 대부분의 가르침은 혀의 해로움을 보이고 있으며, 이것은 바로 이 시간 이 지점에서 체릴에게 필요한 영적인 몇 가지 가르침을 제공할 것이다.
모든 기독교 가족상담자는 성경이 사람들 간에 어떤 사랑과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파악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 상담의 중요한 과제들 중 하나가 가족식구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분명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노와 혀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잘 파악하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들을 상담하는 기독교 상담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한 가족의 커뮤니케이션을 촉진시키는 기술들은 도움을 요청하는 거의 모든 가족들을 상담하면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제 7장
가족상담의 방법
상담자가 사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과 작전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이 질문은 군대식 질문같이 들린다. 상담자가 마치 전쟁하러 가는 것 같다. 솔직히 당신이 특별히 상담하면서 호되게 당했다면 그 후에는 마치 전쟁에 참전했던 기분일 것이다. 당신은 최전방에서 호되게 싸웠던 것 같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에베소 5장과 6장에 기록된 부부와 가족관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연구하던 중에 나는 에베소서 6장에 부부와 가족에 대한 가르침에 곧 이어서 우리가 싸우는 영적 전쟁에 대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가족 갈등이 결국 근원적인 영적 싸움의 표면에 나타난 결과일 때가 흔히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가족치유요법자들이 개발한 주요가족상담전략들을 숙고하면서 영적인 차원을 간과해서는 안 되며 성경적 원리들이 기독교 상담자들이 사용하는 세속적인 전략들을 지도하고 교정해야 한다.
가족상담 전문가들 가운데는 가족기능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들이 무엇이냐에 대하여 상당한 차이들이 있다. 이런 불일치의 원인들 가운데 하나는 가족이론의 핵심91)이 무엇이냐에 대한 일반적인 일치점이 없기 때문이며, 상담자들에 따라 여러 가지 이론들과 가족상담의 모델들을 선택하는 기호가 다르기 때문이다(부록I을 보라). 더 나아가서 수많은 연구조사자들이 가족상담의 효과에 대하여 연구해왔지만91), 전략적 접근, 구조적 접근, 커뮤니케이션, 부부연대 가족요법, 등 포괄적인 접근을 사용하는 연구조사만 출판되었고, 구체적인 중재전략의 효과에 대한 조직적인 연구조사는 별로 없었다91). 그뿐 아니라, 많은 가족상담 모델들은 구체적인 중재전략의 사용에 있어서 공통성이 있으며91), 실제로 많은 가족상담자들은 절충적인 접근을 사용하여91) 여러 가지 서로 다른 모델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전략들을 도출하여 사용한다. 이러한 이유로, 본장에서 가족상담방법을 다루면서는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다룰 뿐 아니라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중재전략들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경험이 많은 가족상담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론적 성향은 매우 다양하지만, 몇 가지 중재전략들이 초기 단계의 가족상담에 특별히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다음 면에 수록된 도표는 이중에 다섯 가지 전략들을 요약하여 기술한 것이다.
이 전략들은 가족을 상담할 때에 특별히 초기 단계에 유익하지만, 유능한 가족상담자는 상담을 진행하는 전과정에서 언제든지 어느 전략이든지 적합하다고 생각할 때에는 이 전략을 사용할 것이다.
직접적인 중재전략
초기 가족면접상담에서 상담자는 꼭 바꿔야할 가족상호작용의 모형을 발견할 것이다. 그런 상호작용의 모형은 성경적이 아니다. 그것은 건강하지도 않으며 파괴적이다. 그러한 상호작용에는 반드시 어떤 코멘트를 하여야 하며, 상담자는 상담하는 동안에 그러한 부정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날 때 즉시 중재해야 한다91). 상담자는 파괴적인 모형이 일어나는 것을 관찰하면 재빨리 그리고 정확히 그 가족에게 지적해 주어야 한다. 너무 수동적이요 허용적인 상담자는 별로 효과적이 되지 못한다. 그런 직접적인 중재는 그 가족들 스스로의 행동을 유발시키기 위해서 필수적일 때가 종종 있다. 가족은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사용하여 온 상호작용 모형의 덫에 걸려 있을 수 있다. 파괴적인 상호교제 모형을 관찰하고 즉시 중재하므로 상담자는 그 가족이 변화하려고 할 때 부딪치는 장애를 극복하게 도울 수 있다.
감정조사
가족문제에 직접적으로 중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한 가지 방법은 이제까지 억제시키고 밖으로 공공연히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을 조사하는 것이다. 앞장에서 언급한 체릴과 그녀의 부모들의 경우에 상담자는 자기가 실패자라고 느끼는 어머니의 감정을 조사했다. 그때까지 어머니는 그러한 감정들을 많은 이야기로 표현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상담자는 어머니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조사하고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아있던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게 도와줬다. 이렇게하여 상담자는 가족상호관계를 겉표면에서 맴돌게 하지 않고 좀 더 깊은 곳으로 인도하고 있다. 체릴의 가족은 누가 비난받아야 하는가의 질문에 초점을 모으고 있으나 이 질문은 겉표면에 나타난 상호관계에 불과하고 실제로 이런 상호교제 밑에 숨겨진 깊은 의미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상담자는 가족이 제시한 당면문제의 뒤에까지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그는 근원적인 진짜 문제를 확인하였다. 상담자는 감정들을 조사하기 위하여 자주 질문을 사용하고 있다. 공감적인 질문은 말이나 직접적인 해석보다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
파괴적인 모형을 발견하기
가족상담자는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직접 중재할 수 있다. 상담자는 속죄양 만들기 등을 지적해주면서 그 가족을 더 깊은 가족상호관계로 인도할 수 있다91). 다른 경우에 상담자는 가족들이 고통스러운 주제들을 피해가거나 그 주제에서 탈선하지 않고 직시할 수 있게 도울 것이다. 또 다른 경우에 상담자는 아주 가벼운 적대감을 숨기는 농담에서와 같이 어떤 말에는 한 가지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한 상담자는 면접상담을 하는 동안에 아버지가 자기 아들 14세인 마이크를 향하여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목소리가 커지고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발견했다91). 그 상담자는 이런 반응을 해석하면서, 이것은 아버지가 마이크를 불쾌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가족과의 면담 중에 마이크는 자기 아버지를 화나게 할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마이크가 잘못하고 있다는 말을 구체적으로 아들에게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목소리의 높낮이를 변화시키므로 아들에게 귀찮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 상담자는 여러 번의 면접상담 과정에서 이것을 계속 관찰하면서 한 가지 모형을 발견했다. 아버지가 마이크에게 귀찮은 어조로 말할 때는 언제나 자기 아내에게 자기의 능력을 비판 받은 직후였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아버지를 비판할 때 아버지는 신경질을 내었고 그의 적대감을 자기 아들에게로 향하였다. 그때마다 마이크는 무엇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분명한 메시지를 받지 못했으므로 자기 아버지가 자기에게 부당하게 대한다고 점점 화를 내고 있었다.
상담자는 아버지가 실제로 자기 아들을 노엽게 만들고 있으며 에베소 6장 4절의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하게 말고” 라는 권면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줄 수 있다. 그리고 상담자는 오히려 아버지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하여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중재하여야 한다. “당신을 그렇게 좌절하게 만들고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런 방법으로 그 상담자는 아버지의 적대감 뒤에 숨은 의미를 해석했다. 그 아버지는 자기 아내와의 사이에 해결되지 못한 관계의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아들에게 자기의 좌절을 돌리고 있다. 이런 통찰의 아픔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상담자는 상사에게 야단맞은 아버지를 그린 옛날 만화를 사용할 수 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서 자기 아내에게 소리질렀다. 그 아내는 자기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그 아이는 나가서 강아지를 발로 찼다. 이 만화는 자기의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는 흔히 있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성경의 상담원리들을 적용하기
충고하기 이 기독교 상담자는 그 가족에게 여러 가지 성경의 원리들을 적용했다. 우리는 성경에서 “상담한다”은 단어를 여러 곳에서 발견하는데 지혜나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예, 출 18:19, 삿 20:7, 18, 23, 잠 12:15, 19:20, 렘 38:15). 사도행전 5:33, 27: 39, 그리고 누가복음 14:31은 “상담한다”은 단어를 조언한다는 뜻으로 쓰고 있다. 요한계시록 3장 18절은 이 단어를 “충고하다, 권위있는 조언을 하다”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가끔 기독교 상담자는 직접적인 조언이나 충고를 주어야 한다. 상담자가 어느 가족에서 파괴적인 모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에 그는 그 가족이 이해할 수 있게 지적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조언한다는 의미이다.
위로하기 “위로하다”은 말도 관계를 돕는다는 의미로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다. 위의 상담에서 부당하게 고난당하고 있는 마이크는 위로가 필요하다. 고난당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누가복음 6:24, 사도행전 9:31, 로마서 8:24-28, 그리고 고린도전서 14:3 등에서 가르치고 있다. 어떤 경우에 “위로하다”은 위안이나 격려(살전 2:16)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그리고 골로새서 4:11의 “위로하다”은 달래다 또는 기분전환 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아버지가 자기의 분노를 아들에게 덮어씌우고 있기 때문에 14세의 마이크는 분노하고 있다. 그러므로 상담자는 면접을 하는 동안에 그 소년의 심정에 공감하고 위로를 주고 있다.
권면하기 그러나 먼저 상담자는 아버지에게 권면하여 자기의 부정적인 감정을 부당하게 아들에게 돌리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자기 아들에게 사과하게 해야한다. “권면하다”은 “적절한 행동을 권하거나 부탁”하는 것이다. 우리는 빌립보서 4:2, 데살로니가전서 4:10, 5:14, 히브리서 13:19 - 22, 디모데전서 1:3, 5:1, 고린도후서 8:6, 12:8, 등에서 이 단어를 발견한다. 권면은 미래적 관점을 갖는다. 다행스럽게 그 아버지는 일단 상담자에게 그 문제를 지적받자 자기 아들을 노엽게 하는 것을 진실하게 후회하였다. 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사과에 긍정적으로 응답할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 상담자는 아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용서한 것과 같이 자기도 아버지를 용서하라고 아들을 권면했다. 결국 마이크는 현명한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가르치기 상담자는 이 가족 식구들에게 성경의 진리들을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했다. 성경의 “가르친다”은 단어는 종종 전적으로 교훈을 준다는 의미로 사용된다(마 4:23, 9:35, 롬 12:7, 고전 4:17, 등). 혹은 진리를 가르친다는 뜻으로 쓰인다. 상담자는 가족식구들에게 성경의 원리들과 커뮤니케이션, 용서, 그리고 사랑, 등에 대하여 가르쳐야 할 것이다. 적극적 중재에는 이 모든 전략들과 여러 가지 가르침들이 포함된다.
남편에게 초점을 맞추는 중재방안
중서부지역에 소재한 한 대학교 가족상담소에서 실시한 연구조사의 발견에 따르면 다섯 가지 가족상담전략이 상담이 끝난 후에 남편들과 아버지들의 감정을 더 편안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다음 도표는 이 다섯 가지 전략의 목록과 간단한 정의이다.
문제 가족들의 남편/아버지들은 변두리로 밀려나 있거나 비참여적인 가족식구들일 때가 종종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만족시키는 상담전략을 적극적으로 경계선을 재구성하는 중재방안이 되어야 하며, 그래야 남자들은 부부와 부모 하부 구조 모두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연구조사의 발견에 따르면 가족상담자가 상담초기에 소외된 가족식구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성공적인 가족상담자는 가족식구들과 재빨리 치유관계를 형성하고, 가족구조의 문제들을 진단하며, 가족이 갖고 있는 장점들을 확인하고 그리고나서 신속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가족구조의 변화를 시도하여 새로운 경계선 설정 중재를 할 수 있는 자이다91).
아내에게 초점을 맞추는 중재방안
상담이 끝난 후에 아내들 자신의 부부관계와 삶에 적극저인 영향을 주었다고 보고한 가족상담전략을 다음의 도표에 제시한다.
상담 후에 조사한 상담의 만족도 조사에서 남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중재전략과 달리, 아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전략들은 가족구조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방법이 아니고 약간 부드러운 방법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내는 상대적으로 가족의 일에 지나치게 끼어들어 자기의 중심적인 역할을 유지하려고 상당한 감정에너지를 투여하는 일이 많다. 가족을 하나되게 하려는 아내의 중추적인 아내의 역할에 도전하는 것은 아내의 역할의 적극적인 기여도를 간과할 때에 잘못될 경우가 많다91). 오히려 아내의 적극적인 역할을 인정하고 확인하여 받아들이고, 그 문제 때문에 가장 고민하고 좌절을 경험하는 아내/어머니를 위하여 당면문제를 재구성하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다.
치료지도
또 다른 상담전략은 “직접중재”보다도 더 적극적이다. “치료지도(remedial guidance)”은 극도의 무질서에 빠진 분열된 극도의 혼란가족에게 필요한 전략이다. 어떤 가족들은 한계상황에 빠져 극도로 혼란상태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공격적인 지도가 그들을 구조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그런 가족들은 너무 심한 혼란과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목표들을 세울 수 없고 그 상태에서 어떠한 발전도 불가능하다.
상담자는 아주 기초적이요, 치유적인 직접지도를 사용하여 이 가족식구들에게 목표를 세우게 하고, 그 목표를 성취할 수 있게 방향을 지도하고, 그래서 극도의 혼란상태에서 긍정적인 변화프로그램을 실천할 수 있게 돕는다. 그 가족 안에 성경적인 지도력이 결여되어있다면, 상담자는 아버지나 편부모가 따를 수 있는 성경적 지도력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극도의 혼미에 빠지면 거기에는 상당한 혼동이 따라온다. 일을 제대로 풀어가려면 상담자는 보통때 필요한 것 이상으로 강력한 중재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상담자는 처음에 그 혼동과 분열을 극복하여 그 가족을 지도하고 방향을 잡게 하기 위하여 상당한 지도력을 행사한다. 치료지도는 필요한 전략이다. 당신은 트랙터나 특수기구를 사용하여 진흙탕길을 뚫고 밀림 밖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성경의 단호한 권면
이런 경우에는 성경의 “권면하다”, “꾸짖다” 등의 단어들이 적합할 것이다. “권면(admonition)”이 이처럼 혼란에 빠진 가족들을 상담하는 데에 알맞는 단어일 것이다(롬 15:14, 고전 4:14, 엡 6:4, 골 1:28, 3:16, 살전 5:12 - 14, 살후 3:15). 권면은 훈계(instruction)를 포함한다. 그러나 이 말은 또한 위험에 대한 경고를 내포한다. 특별히 불순종 때문에 임박한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교정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말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삶을 그만두라고 경고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라고 훈계하는 의미의 단어이다. 상담자는 알콜중독이나 마약 등으로 혼란에 빠진 가족들에게 권면이 필요하며 특히 교회의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기독교적 훈련을 받은 가족들에게 더욱 권면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명령을 대면하여 권면할 필요가 있다.
“꾸짖다”은 말은 상담에 필요한 또 다른 성경 용어이다. 이 말은 사람들의 잘못과 죄를 지적하고 깨닫게 한다는 의미이다. 이 단어는 시편과 잠언에서 교정을 위한 훈계의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디모데후서 4:2의 “경책하다(rebuke)”은 강력한 명령을 뜻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었다(막 8:33, 눅 9:55). 마찬가지로 상담자는 가족식구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분명한 죄를 꾸짖음으로 가족의 덕을 세워야 한다. 혼란과 혼돈에 빠진 가족들에게 치료지도를 함으로 상담자는 가족들이 성경의 원리에 기초한 의미있는 규칙을 개발하고, 가족식구들이 그 규칙을 따르고 가족의 하나됨을 개발하며, 공동목표를 위해 함께 노력하여 그들의 혼란된 상태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겸손
가족들의 문제를 중재하여 직접적으로 지도하는 가족상담자들은 어느 정도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상담에 임하여야 하며 그 가족이 경험하고 있는 복합성에 대하여 자기들의 지식이 제한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한 가족이 상담을 받으러 오기 전에 기독교 상담자가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 가족의 실제 문제의 근원에 자리잡고 있는 역동성에 대한 통찰을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한다. 상담자는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와주소서. 이 가족 가운데에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바로 깨닫는 마음을 주소서.”
오직 하나님만이 전능하시다. 그분은 모든 사건의 전말을 알고 계신다. 상담자는 가족들이 제공하는 부분적 지식만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상담자는 상담하는 동안에 적절한 세부내용들을 표면에 드러나게 인도하여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한다. 상담자는 실제적인 상황이 무엇인지 드러나게 할 수 있는 바른 질문의 지혜를 구할 수 있다(히 4:16, 살전 5:17, 약 4:2, 요 16:24, 빌 4:19, 눅 21:36).
사람들을 오래 상담하면 할수록 가족문제들 가운데는 일정한 공통점들이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이 발견할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지을 수 있는 죄들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결국 당신은 여러 가족들이 같은 문제들을 안고있다는 사실 뿐 아니라, 같은 가족도 같은 죄를 반복하여 범하면서 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창의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주 독창적으로 죄를 짓는 거대한 능력을 주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많은 경험을 쌓은 상담자라고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가족문제에 부딪칠 수 있다. 나는 30여년간 상담해온 남캘리포니아의 유능한 기독교심리학자 한 분을 알고 있다. 그는 한 번 나에게 도전을 주는 한 가지 사례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솔직하게 “뒤적이고만 있었다(just fishing)”고 고백했다. 그는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영문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는 이 문제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이었다. 그런데 두번째 면접에서 그는 바른 질문을 했다. 그 질문이 가족전체의 역동성을 끄집어냈다. 그는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에 응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기의 지혜와 지식에 관한 한에 있어서 그는 되는 대로 “뒤적이고만 있었다”. 즉, 마치 물고기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낚시줄을 여기저기 던져보는 식으로 상담하고 있었다.
경험이 있든지 없든지 어떤 상담자라도 다른 상담자에게 위탁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례들을 발견한다. 상담자가 그 가족에게 별로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때를 발견하는 것은 매우 현명한 일이다. 그 상담자가 어떠한 훈련이나 경험이나 능력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자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적합한 사례들이 있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가족을 상담하면서 별로 결과가 나타나지 않고 게속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 있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다른 사람과 의논하는 것이 현명하다 상황을 설명하고 그들이 그 가족의 문제에 어떤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지 보라. 그렇게해도 별로 충분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 가족을 다른 상담자에게 위탁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단순히 당신의 성격과 가족식구들의 성격들 간의 상호작용은 적정선이 없을 때가 많다. 내 생각으로는 우리 모두에게 그런 경우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중서부에 살고 있는 내가 아는 기독상담자는 부부상담전문이었다. 그는 부부상담소를 개설하고 처음 3년 동안에 100% 성공률을 보였다고 말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는 한쌍도 이혼하지 않았다”고 열광적으로 대답했다.
나는 부부관계를 보존시켰다는 그 통계를 들으면서 기뻤지만 동시에 성공적인 부부상담은 법적인 이혼을 방지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부상담을 받으러 오는 모든 부부들이 다 이혼을 고려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관심은 완전히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미네소타 상담자가 그들 부부의 문제들을 정확하게 진단했는지 의심스럽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예수님보다도 더 성공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상담자는 자기가 모든 가족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궁극적으로 주권자이시다. 당신은 매우 정확한 진단을 하고 매우 훌륭한 기술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가족들은 당신이 무엇을 해주든지 간에 진보하지 않는다. 예수님도 지혜로운 상담을 했으나 똑같이 거절당한 적이 있다(눅 18:18 - 23).
해석진술
해석은 “이것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는 말이군요”, “배신당한 느낌이 들었군요”, “당신은 거절당했다고 느끼고 그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는 말씀이군요”, “이 가족식구들 중 아무도 당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말씀이군요”, 등 내담자에게 직접적인 진술을 하는 것이다91). 그러한 진술은 감정, 동기, 마음의 상태 또는 영적인 상태, 등에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기독교 상담자는 그 사람의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해석해준다. “당신은 하나님과 상당히 멀어졌다고 느끼시는군요”, 또는 “하나님의 도덕법의 관점에서 당신의 행동을 생각해보니 매우 큰 죄책감을 느낀다는 말씀이군요” 하고 해석할 수도 있다. 가끔 상담자는 면접하는 동안에 서로 말을 주고 받는데 어느 식구는 다른 식구의 질문을 받았으나 대답하지 않는다. 그 상담자는 “당신은 오늘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군요”, “당신은 이 문제가 왜 당신에게 그렇게 민감하게 들리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겠어요” 하고 말할 수 있다.
다른 경우에는 상담자가 가족에게 행위를 해석해 줄 수 있다. 예를 들면, 면접 상담시간에 13세의 딸이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열띤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자기의 부모들이 정반대의 입장에서 대답할 것을 이미 자기가 알고 있다고 재치있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자기 집에서 어떤 주제로 이야기할 때에 자기 부모들이 서로 반대의 입장을 취해왔다는 역사를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단순히 그 문제를 더 크게 만들도록 부모들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예민한 상담자는 그러한 가족상호작용을 해석해주었다. 그는 사실 그딸이 부모들 간의 논쟁을 의도적으로 확대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91). 그렇게 함으로써 딸은 그 문제에 대한 자기의 책임을 이야기하지 않도록 관심을 성공적으로 딴 데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의 상담방안은 가족식구들의 행위나 가족구조의 역동성에 주의를 돌림으로써 그 가족이 어떻게 그 상황을 조작하고 있는지를 해석해주는 것이다. 가족식구들은 그 상황에 너무 밀착되어있기 때문에, 즉 그러한 행위모형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그 자체를 제대로 보지 못할 수 있다. 이때에 상담자는 제 3자로서 그 상황을 바로 보고 해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상담자는 그 딸이 이렇게 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분명히 깨닫고 지적한다. “그래, 이것이 바로 하나의 모형이군요. 아버지가 딸의 책임에 대하여 이야기하려고 할 때마다 딸은 부모가 서로 의견이 다른 A, B, 또는 C라는 문제를 들고 나오는군요. 그러면 부모는 다시 옛날의 문제로 서로 다투게 되고, 대화는 딸의 문제에서 다른 데로 옮겨지고 있군요.” 그러한 해석은 사람들과 상담한 경험과 가족들을 상담해본 경험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상담자는 한 가지 해석을 할 때에 장애에 부딪칠 수 있다. 어떤 가족식구들은 쉽게 그것은 인정하는 데에 반해 어떤 가족식구들은 “아니예요, 그렇게 않아요”라고 말하면서 정면으로 부인할 수 있다. 거부는 당신이 아는 바와 같이 심리학적인 방어수단이며 상담자가 진실에 가까이 갈수록 내담자는 더 큰 소리로 “아니요, 그런 일이 없어요”하고 말할 때가 종종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상담자의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거부의 방어수단을 피하기 위하여 당신은 약간 시험적인 방법으로 해석을 줄 수 있다. “나에게는 태미가 이런 논쟁적인 문제를 꺼냈을 때에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 들리는군요.” 해석을 시험적으로 하는 또 다른 방법은 이것이 “무의식적인” 과정이라고 암시하는 것이다. 사실 무의식적으로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태미는 사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논쟁적인 문제를 끄집어냄으로서 자신이 관심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상담자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태미는 아빠 엄마가 서로 다투는 문제를 끄집어냄으로 자기의 책임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피하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누구라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까? 그것을 좀 생각해보세요. 그것이 바로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까?”
“아마도”, “하겠네요”, “그렇겠네요”, 등과 같이 시험적 언어를 사용하여 해석을 제공하면 그 가족들에게는 덜 위협적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거부나 또다른 방어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그 말에 대하여 신중히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약 상담자가 너무 대담하게 마치 무오하고 틀림없는 것처럼 가족을 해석하면, 가족식구들은 쉽게 그것을 거부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점검
여러 해 동안, 나는 “가족관계”라는 과목을 대학에서 가르쳤다. 학기마다 나는 여러 다른 교단들과 신앙이 다른 많은 목사들을 초청하여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하게 하였다. 질문하는 문제들은 대체로 종교가 다른 사람들끼리의 결혼, 교회에서 결혼 전 상담의 필요성, 성윤리, 부부관계와 부모자녀관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등이었다.
어느 학기에 나는 학생들이 특히 좋아하는 개신교 목사들 가운데 한 사람을 초청하여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하게 하였다. 그 목사는 나의 초청에 응하면서 자기가 상담하고 있는 한 가족을 나에게 위탁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가족을 어떻게 해볼 수 없습니다. 그 가족은 우리 교회의 교인인데 열심히 출석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족상담을 받으러 오면, 서로에게 지나치게 감정적이 되고 속이 뒤틀려서 내 앞에서 다투고 싸우기만 합니다. 상담하는데 거의 진보가 없습니다. 아마도 알콜중독이 개입된 것도 같구요. 그러나 나는 술문제가 얼마나 그 가족과 식구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나는 지금 시간에 쫓겨서 알콜중독에 관해서 책을 읽을 충분한 시간이 없군요. 교수님게서 그분들을 상담할 수 있는지 알고 싶군요.” 내 시간이 아주 빡빡했지만 이 목사가 학기마다 내 과목에 열심히 참여해주었기 때문에 나는 그 가족을 상담하기로 허락했다.
피트와 로라는 15세의 딸 멜로디와 함께 다음날 나에게 왔다. 멜로디는 로라가 전남편 사이에서 난 딸인데, 전남편은 약물중독자로 로라와 멜로디를 버렸다. 로라는 11년 전에 피트와 결혼했는데 그들은 그 사이에 세 번 별거했었고, 별거 기간도 그때마다 달랐다. 로라는 만성알콜중도자였다. 그녀에게는 지난 18년 간 알콜문제가 있었다. 3년 전에 로라와 피트는 몇몇 이웃들과 가까운 친구가 되었는데 그들이 이 부부를 교회에 인도하였다. 그들이 약 3개월 정도 교회에 출석했는데 로라와 피트 사이에 큰 싸움이 일어났고 피트는 로라와 멜로디를 떠나 그의 부모들이 사는 다른 주로 이사갔다. 피트가 다른 주로 떠나있는 동안 그곳에서 부흥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기쁘게 하지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작정했다. 그는 즉시 자기 아내에게로 돌아가 그들을 부양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트는 내가 그 가족을 상담해주기로 약속하기 3개월 전에 자기 아내에게 돌아왔다. 피트와 로라는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건축일을 하는 전임직업을 구하고 있었다. 직업을 구하는 일이 그들과 가족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전보다 더 나은 아버지, 그리고 더 나은 남편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실제로 나의 가족에 대해서 책임지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피트는 자주 불법으로 약물을 사용했으며, 지금도 약물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또한 경직되고 비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조그만 자극에도 갑작스럽게 분노, 적대감, 울분, 등을 토하는 성격이었다.
로라는 최근에 와서야 피트의 권유로 교회에 더 열심을 내고 있는데 피트가 돌아와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그들의 결혼을 회복시키는 열쇠가 된다고 그녀를 설득하였다. 그녀는 아직도 영적인 필요를 깨달아 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기독교 신앙에 열려져 있었고, 자기와 친구관계를 맺은 교회식구들의 지원을 감사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15세의 멜로디는 만성적인 학교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두 해 동안이나 자기 부모의 요구를 무시해버리는 생활모형을 개발했다. 피트는 로라를 도와서 멜로디의 행동에 대해서 부모의 지도를 받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최근에 멜로디에게 여러 가지 새로운 가족규칙들을 설명했다. 이 가족이 첫번째 면접상담 시에 나에게 가져온 중심문제는 전날 학교가 끝난 후에 멜로디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로라는 그날 아침에 학교에 전화를 걸어서 멜로디가 수업에 참석하고 있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피트는 멜로디의 마지막 수업시간에 맞추어 학교에 가서 그녀를 데리고 가족상담면접에 온 것이다.
처음 면접상담은 로라가 멜로디의 불순종의 행위와 집에서 불끈하고 화를 잘 내는 멜로디 행동모형을 설명하면서 시작되었다. 피트는 근본적으로 그 어려움에 동의하였다. 그는 자기가 가족을 떠나서 그들의 생계비를 지원하여 주지 않음으로 문제가 더욱 복잡하게 되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신실한 아버지와 남편이 되기로 다시 다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멜로디는 학교에까지 와서 자기를 데리고 옴으로 “자기를 무시했다”고 피트를 공격했다. 그리고 그녀는 만약 그가 자기에게 더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한다면 자기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고 자기의 계획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예리하게 얘기했다.
로라는 분노한 어조로 멜로디가 어젯밤 집에 돌아오지 않음으로 자기에게 딜레마를 만들어 주었다고 다투는 것 같이 얘기했다. 그래서 로라는 멜로디에게 상담약속을 미리 얘기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멜로디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면서 어머니에게 모욕을 주었다. “정신과 의사가 필요한 사람은 바로 엄마예요. 엄마는 하루종일 손에 맥주병을 들고 비틀거리며 집에서 돌아다닌다구요.”
피트가 끼어들어 멜로디에게 자기 어머니를 좀 더 존중해야한다고 요구하자 멜로디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피트, 아버지나 모범을 보이시죠! 아버지는 아버지같이 행동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항상 엄마를 때리고 밀쳐대면서 아빠가 존중에 대해서 무얼 안다고 그러세요?”
분노로 얼굴이 붉어지면서 피트는 멜로디에게 이런 말로 반격을 시도했다. “멜로디, 네가 나보다도 엄마를 더 때린다는 사실도 얘기해야지.”
로라는 단호하게 멜로디를 향해 자기의 목소리를 높였다. “멜로디, 너 한 번 진실을 말해봐라. 지난 월요일 내가 네 방에 들어갔다고 나를 때렸지? 너는 그때 베니와 함께 자고 있지 않았니? 너는 매춘부 창녀일 뿐이야. 그 다음에 내가 발견해야 할 것은 네가 임신하는 것이겠지?”
이 면접상담을 시작해서 5분 이내에 수많은 심각한 갈등들과 문제들이 드러났다. 피트, 로라, 그리고 멜로디는 모두 이 갈등들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리고 심각한 주장들이 날아다녔다. 가족상담자는 이렇게 열이 올라있는 상황에서 가족식구들 각자는 그 상황의 사실들을 자기 주장에 맞추기 위하여 과장하거나 사실을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어야 한다.
멜로디는 수업이 끝나서 나오자마자 자기의 계부가 교실문 밖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고 약간 당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무시당했다”고 하는 것은 과장이었다. 로라가 알콜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하루종일 술병을 들고 비틀거리고 있었다”은 멜로디의 말은 과장이었다. 그 뜨거운 다툼 속에서 로라가 계속 얻어맞았다고 했지만, 로라와 남편이 얼마나 물리적으로 구타했는지의 사실은 분명히 않았다. 로라가 멜로디를 공격하면서 성적으로 난잡한 “창녀에 불과하다”고 소리지른 것은 자기의 감정을 쏟아내는 과정에서 나온 과장된 말이었다.
상담자는 그렇게 폭발적인 감정들로 가득한 위와 같은 가족상담에서 좌절을 느끼고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상담자는 조용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머물러 있음으로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가족이 그 문제를 풀기 전에 그 문제를 더 정확하고 더 합리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을 점검하는 상담방안은 이 점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
상담자는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다. “이제 잠간 머물러서서 한 번에 한 가지씩 이야기해 봅시다. 멜로디, 피트가 오늘 오후에 너를 데리러 갔다는 것은 바로 네가 네 친구 집에서 잠을 잔다는 네 계획을 네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 같은데 사실이 그러니?”
멜로디 : 네.
상담자 : 네 부모가 최근에 네가 방과 후에 어디에 있든지 그들에게 꼭 알려야 한다 는 규칙을 만들었는데, 너는 그것을 알고 있지?
이렇게 사실을 점검하는 질문을 제기함으로 상담자는 가족식구들에게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느끼게 할 수 있다91). 이것은 또한 멜로디와 같이 자기의 개인적인 책임을 직면하기 싫어서 그것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다른 가족식구를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전략이 될 것이다.
사실을 점검하는 전술은 날짜, 시간, 특수한 행위, 그리고 상황, 등에만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일들에 초점을 맞출 때 더 유익하다. “사실”에 정서적 사실들과 도덕적 사실들도 포함된다. 예를 들면, 피트, 로라, 그리고 멜로디의 가족에서 문제의 핵심에 있는 사실은 깨어진 신뢰이다. 지금 멜로디가 친구집에서 밤을 보냈다면 부모-딸 신뢰수준에 무엇이 일어나겠는가? 로라가 멜로디의 침대에 누워있는 베니를 발견했을 때 로라의 신뢰수준에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상담자는 멜로디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로라의 문제의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신뢰관계를 재건하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신뢰를 다시 얻으려면 오랜 동안의 선하고 예측할 수 있는 행위를 보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사실을 점검하기”은 구체적인 질문을 하여 가족식구들이 과장이나 왜곡을 하면서 행위, 사건, 생각, 감정, 윤리, 그리고 상황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도와야 한다.
행위변화 방안들
피트, 로라, 그리고 멜로디의 가족이 당하는 문제들은 다른 많은 문제가족의 경우와 같이 구체적인 행위변화 방안들을 필요로 한다. 특별한 이 가족이 어떻게 개선될 수 있을까를 이야기하려면 책 한 권이 필요할 것이요, 그런 책은 흥미있는 TV용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각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나에게는 이 가족의 이야기를 여기에서 끝마칠만한 공간이 없다. 대신 나는 부부와 가족치유저널에 있는 내용을 요약하는 도표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 도표는 그런 가족에서 행동모형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사용하는 기초적인 가족상담전략들을 정의한 것이다.
변화를 지도하기
상담자는 가족관계의 변화를 지도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들을 파악할 수 있다. 한 가족을 위해서 당신은 관계가 더 협조적이 되게 하고 가족식구들이 문제해결과정에서 서로 협동하게 하는 목표를 정할 수 있다. 그러나 때때로 가족식구들은 자기들의 관계 속에 약간의 경쟁적인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교착상태에 빠지게 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그래서 상담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서로 협동하는 새로운 방법을 가르침으로 관계의 변화를 조장할 수 있다.
가족의 새로운 관계기술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가족 치유자들은 여러 가지 전력들을 개발하였다. 다음의 도표는 이 방법들 중 세 가지의 요점을 정리한 것이다.
가족식구들 간의 제휴를 바꾸기
다른 경우에 상담자는 가족 안에 내재하는 가족제휴들의 변화를 지도할 수 있다. 종종 첫단계는 잘못된 제휴들에 가족의 관심을 모으게 하는 것이다. 가족식구들은 자기들의 관계 밑바탕에 있는 역동성들을 완전히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제 3자인 상담자는 지금 가족 간에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볼 수 있게 가족들을 도울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레고리와 제인은 그들 부부와 두 자녀들이 끊임없이 다투기 때문에 상담을 받고 싶어했다. 여러 번의 면접상담을 거치면서 상담자는 제인이 13세의 아들 폴과 아주 강한 제휴를 맺고 있으며, 그 때문에 폴이 자기 아버지로부터 소외되고 있다는 것과 그레고리는 그 반발로 10세의 딸 스테파니와 제휴하고 있으며, 스테파니는 그렇게 함으로 자기 어머니와 대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가족분열은 전가족을 위협한다. 분명히 그레고리와 제인은 그들 부부관계에 모종의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그 가족 제휴들은 그들 사이를 더욱 넓게 갈라놓고 있다. 아들과 딸은 건전치 못한 관계에 갇혀서 앞으로의 성장과 발달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부모들은 각자 한 자녀를 편애하고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그 자녀와 다른 부모와의 관계를 파괴하고 있다. 그레고리가 면접상담을 하는 동안에 폴에게 가까이 하려고 할 때에 제인은 빈정거리는 말로 끼어들어 자기 남편과의 말다툼을 자극하고 있다. 폴이 자기 어머니편에 설 때 그레고리는 대화에서 물러나 스테파니에게 돌아서서 동정과 협동을 구하고 있다.
이 가족을 지도하기 위하여 상담자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성경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시도해야 할 첫번째 변화는 어머니와 아버지 간에 견고한 제휴이다. 일단 핵심 가족관계에서 그 결속이 강화되면, 상담자는 다른 모형들을 처리할 수 있다. 가족상호관계를 주시하면서 상담자는 지금 가족 안에서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해석해주고, 부모들 간의 관계를 세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가족관계 안에 있는 분열을 지적한 후에 상담자는 가족식구들을 지도하여 서로 협동노력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가족 하부구조 다루기
위의 사례는 가족하부구조 상담에도 좋은 실례를 제공한다. 전체로서의 가족을 상담한 후에 남편과 아내관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으며, 이것은 부부상담을 요하는 문제였다. 가족면접상담 중에 보여준 불건전한 어머니-아들 제휴 때문에 상담자는 남편과 아내만을 따로 만나야 한다. 그래서 불건전한 제휴가 작동하지 못한다. 즉, 부부 서로 간의 관계개선의 기회가 따로 주어져야 한다.
지금은 어머니와 아버지 관계가 소원하다. 그리고 그들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만남의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성경말씀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한다면, 상담자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이제 당신들은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요 10:27)’. ” 그리고나서 기독교 상담자는 관계의 특성을 가르치는 성경구절들을 읽어줄 수 있다. 예를 들면, 산상보훈에 나오는 대인관계를 가르치는 말씀을 읽어주고 그 말씀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라고 권면하고(고후 9:5, 살전 5:14, 딤전 6:2, 디도 2:15, 히 3:13) 격려할 수 있다(대하 31:4, 35:2).
상담자는 가족들에게 부부관계가 붕괴되는 큰 위험을 조심하라고 경고할 수도 있다. 부부가 그들의 관계를 치유하지 않는다면 남편과 아내와의 소원한 관계는 결국 부부관계를 붕괴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성경에서 경고한다는 말은 “알려주다, 가르치다, 어떤 것을 보여주다(마 3:7, 눅 3:7, 12:5과 같이)” 또는 시간이 되기 전에 미리 경고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마 2:12, 22, 행 10:22, 히 8:5, 11:7, 12:25). 이런 방법들은 다른 가족들의 역동성에 대한 신선한 통찰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이런 통찰을 얻은 가족들은 이렇게 응답할 수 있다. “아하, 바로 그거예요. 이것은 그렇게 되어서는 안되죠. 우리는 정말로 서로 사랑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요.”
상담자는 고린도전서 13장을 사랑의 해설서로 사용할 수 있다. 상담자는 한 구절 한 구절을 자기말로 고쳐 설명하고 가족들의 상황을 점검할 수 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당신 부부는 이런 관계를 갖고 있습니까? 사랑은 친절한 것입니다. 당신들 사이에 친절이 흐르고 있습니까?”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성경에서 확신하게 된다(마 4:4, 요 8:47, 48, 14:10. 15:7).
목회상담과 일반상담
이러한 특수한 상담방법은 변화를 지시하는 방법이 유익한지 또는 손해인지 하는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목사요 교사로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교역자는 가족상담을 하는 데에 특수한 역할을 갖는다. 교회상담소에서 상담을 하든지, 개인상담소에서 전문 상담을 하는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나 임상대민 봉사자나 또는 다른 가족상담자이든지 일반상담자로 일하는 데에도 역시 유익도 있고 손실도 있을 수 있다. 만약 아내는 신자이고 남편은 불신자인 경우에 아내가 자기 남편과 함께 목회상담을 받으러 왔다면, 목사는 불신 남편과 신자인 아내를 상담할 때에 다른 역할을 가질 것이다.
어떤 가족들에게 목사가 상담비용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 가족이 재정적으로 어렵거나 또는 불신배우자가 비용을 받는 상담자를 거절하면서 상담받으려고 하지 않을 때에 유익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 어떤 가족들은 전문상담자들이 상담비를 받는 것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상담이 가치가 없을 때에 비용을 지불하면 ‘인지부조화’의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높은 비용을 지불했다. 그러므로 이 상담은 가치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상담자의 충고를 무시하거나 변화를 거절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인지부조화라는 심리학적 이론은 약간 복합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다. 만약 한 사람이 일치하지 않는 인식, 즉 두 개의 갈등관계에 있는 생각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한 가지 생각을 버리고 다른 한 가지를 믿으려고 할 것이다. 만약 내담자가 “나는 여기 있어서는 안 돼. 나는 이 상담을 따르고 싶지 않아” 하고 느끼면서 아직도 그 면접상담에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두 개의 불일치하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내게 필요가 없으며 내가 원치 않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더 이상 상담받으러 오지 않겠다고 작정하든지, 또는 이 상담은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상담을 따르고 문제행동을 고치겠다고 라고 작정할 것이다.
어머니-아들, 아버지-딸 제휴의 사례에서 전체가족은 고민에 빠졌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현재 자기들의 관계방식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해왔다. 그래서 그들은 현재의 방식을 버려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의지를 모아서 상담받기로 결정하고 도움을 받고 있다. 이 경우에 상담자가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만 따로 만나고 싶습니다”고 말했을 때에, 그들은 협력하였다. 상담자는 그들에게 결혼한 부부로서 그리고 협력하여 부모역할을 함께 해야할 동반자로서 부부간의 제휴를 강화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몇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그들은 이 권면을 받아들이고 실천에 옮겼다. 그러나 새로운 상호관계 모형으로 과거의 습관을 대신하게 하는 것은 시간을 요한다. 이것은 그들의 의지가 필요한 것이요, 또한 그것은 상담자의 지도로 새로운 행위를 습득해가는 일이다.
그러나 이 상담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남편과 아내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개발한 것이요, 그 결과로 이 부부는 더 가까워졌다. 여러 해 동안 이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여러 가지 죄를 범해왔었다. 서로에게 죄를 범했던 시간들은 모두 이들 부부에게 대가를 요구했다. 그래서 그들의 결혼은 차츰 붕괴되어 나갔다. 못회상담자는 영적인 지도자로서의 합당한 역할을 담당하는 잇점을 가졌다. 그래서 그는 이 부부들에게 서로를 용서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도왔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결혼은 영적, 도덕적인 요소를 그 속에 담고 고안된 제도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제외시켜 버린다면, 기독교 가족상담자가 아내와 남편을 위해서, 그리고 부모와 자녀들과의 관계를 위해서 도울 수 있는 것은 상당히 제한된다. 이 점에서 목회상담자는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도 그들의 죄를 회개하도록 합당한 방법으로 권면하고, 용서와 구원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설 수 있게 도와야 할 것이다. 상담자는 가족식구들이 불신자이고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한다고 해도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진정 영구적인 발전은 그 가족식구들이 건전한 심리학적인 관계원리와 성경적인 관계원리들을 배우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만큼 촉진될 것이다. 변화의 정도는 순수한 회심을 체험한 가족식구들에게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제 8장
가족상담의 도전
운전교육을 받는 학생은 일반적으로 도로규칙, 신호주는 법, 핸들조정법, 좌우회전 기술, 평행주차방법, 등을 따로따로 배운다. 처음에 운전교습을 받는 차 안에서 교습생들은 이 기술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고 운전연습을 해야한다. 그러나 결국에 가서는 운전자는 이 모든 교육과 훈련을 종합하여 목적지를 향하여 부드럽게 그리고 안전하게 운전한다. 이때에 운전자는 얼마 있다가 핸들을 조정해야 하는지나 얼마나 힘있게 악세레타를 밟아야 하는지 그리고 신호등이 나올 때 어디에서부터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지 등과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의식적으로 점검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이 모든 기술을 종합하여 운전한다.운전교육을 받는 교습생이 결국에 가서는 많은 운전기능들을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수행하듯이 경험이 많은 상담자는 지금까지 주의깊게 하나씩 나눠서 따로따로 설명해온 수많은 방법들과 전략들을 의식적으로 주의를 집중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상담의 과정 가운데 통합하여 사용할 것이다. 가족상담자는 초기 면접상담 시의 저항의 도전을 넘어 계획을 세우고 중간과정을 거치면서 결과를 지향하며 상담자는 그 가족에게 필요한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해 나간다. 이 과정 하나하나는 곡 필요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상담자는 많은 가족들이 특별히 힘든 상담관계에서 여러 가지로 변화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상담저항 다루기
몇몇 가족식구들은 다른 가족식구들에 비해서 더 열심히 도움을 구한다는 사실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어떤 식구들은 상담받고 싶은 동기가 약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상담과정에 적극적으로 저항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적어도 한 식구가 가족상담을 요구한다. 그런 경우에 상담을 요청하지 아니한 다른 한 식구나 식구들이 저항하는 것이 보통이다. 성공적인 상담자는 저항을 알고 그것을 다룬다. 저항의 표시는 무엇인가? 상담자는 저항에 부딪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항을 인식하기
저항은 여러 가지 형태로 온다. 예를 들면, 한 자녀는 상담면접 과정에서 전혀 입을 열지 않는다. 한 식구가 가끔 이야기하는 경우라도 저항은 지나친 침묵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10대는 면접상담을 정면으로 반대한다. 또는 가끔 저항은 아주 은밀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십대가 면접상담에 오기는 했으나 참여는 극소화하면서 이런 주장을 한다. “나는 정말로 부모님 면전에서 이렇게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요.” 이 말은 피상적인 것만 다루고 싶다는 암시이다.
또 다른 경우에는 전혀 반대현상이 나타난다. 즉, 지나치게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도 저항의 한 형태이다. 상담자인 당신은 면접시간을 쓸데없는 이야기로 채워 버리는 가족식구들 때문에 지연 전술에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을 것이다. 어떤 상담자는 이것을 “언어적 설사”라고 했다.
회피는 또 다른 형태의 저항이다. 가족식구들 중 한 사람은 주제에서 벗어난 피상적인 대답을 하거나 소견을 제시한다. 이 비슷한 작전은 계속 상담자를 속이면서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한 번은 13세의 소년이 첫번째 가족면접상담에서 내가 질문하는 어떤 질문에든지 바보같은 대답이나 분명히 잘못이라고 생각되는 대답을 했다.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지 마, 챨스야. 솔직해야지. 네가 솔직하지 못하면 박사님께서 너를 도울 수 있겠니?” 바로 이것이 면접 전과정에서 챨스가 보여준 저항이었다. 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그의 생각이 아니었으며, 그는 어떤 도움도 요구한 적이 없었다.
저항은 직접적일 수도 있고 간접적일 수도 있다. 직접적인 저항은 공공연히 표현되지만 간접적인 저항은 순종하는 체하면서 그 뒤에 저항을 숨긴다. 상담자는 겉에 나타난 것만 보고 속지 말아야 한다. “예, 정말로 나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고는 약속한 행위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안 돼요. 절대 못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사람과 똑같이 효과적으로 행위변화에 저항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간접적인 형태의 또 하나의 저항은 상담면접을 하는 동안에 가족식구들을 조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모가 훌륭한 부모인 체하면서 거짓행동을 할 수 있다. 그들이 집에서는 이렇게 행동하지 않지만 상담시간에는 지나치게 친절하고 부드럽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진짜 문제를 솔직하게 다루지 않으려고 저항한다. 그들은 “헤이, 상담자 양반, 이래도 우리가 상담이 필요한 것 같습니까” 하고 암시하는 것이다. 가끔 사춘기 청소년은 이상한 옷이나 외모로 나타나서 부모와 상담자에게 이 모든 상담은 하나의 농담일 뿐이라고 암시한다.
부모들은 가끔 자녀나 십대가 가족 문제의 근원인 것이 분명하니 그들만 개인상담하는 것이 옳지, 온 가족이 함께 가족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경우에는 바로 이것이 가족상담을 저항하는 하나의 형태이다. 물론, 개인상담이 필요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자동적으로 가족상담이 필요없다는 이유는 될 수 없다.
어떤 가족들은 늦게 도착하거나, 아무런 연락없이 상담시간에 나타나지 않거나 또는 상담약속을 변경하자고 지나치게 전화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불해야 할 상담비를 지불하지 않는다. 여러 번 상담료를 내지 않는 내담자가 내게 자기의 보험료 용지에 정확히 기록해 달라고 요구했다. 보험회사는 몇 달 후에 그들에게 수천 불을 지급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에게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보험지불을 그들에게 직접한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상담료 계산서를 보냈으나 그들은 전혀 응답하지 않았다.
일단 저항이 확인되고 나면,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상담자는 이런 저항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당신은 당신의 손을 들고 상담소를 떠나 상담을 포기하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문제는 그것으로 끝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심각하게 저항을 받아들인다면, 가족상담의 저항에 부딪쳤을 때에 따라야 할 몇 가지 원리들이 있다.
1. 기본 원칙들을 세우고 강화하라.
2. 근원적인 불안들을 확인하고 다루어라.
3. 개인적인 책임의식을 강조하라.
기본원칙 세우기
경험이 많은 어떤 가족상담자들은 미리 일반적으로 부딪치는 저항에 대한 규칙들을 만들고 저항이 나타나기 전에 선수친다. 예를 들면, 만약 어느 식구든지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가족상담을 하지 않겠다는 규칙이다. 만약 가족과 상담자가 처음 가족면담에서 이런 규칙에 동의했는데 한 식구가 빠지면 그 면접은 다른 날로 연기하여 시간약속을 다시한다. 이렇게 되면 그날 빠진 식구는 다른 모든 식구들로부터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약속한 시간이야. 엄마는 미장원 약속을 다시 잡아야 했고, 테리는 초청받은 생일파티에 가지 못했고, 아빠는 한 시간 직장에서 일찍 나와야 했어. 그런데 빌리가 안 왔잖아” 그는 약속을 ‘잊어버렸다.’
다른 가족들의 경우에 식구들은 모두 상담에 나왔으나 한 식구가 거의 입을 열지 않는다. 적어도 그 식구가 그곳에 나온 것은 적극적인 방향으로 한 계단 올라간 것이다. 여러 가지 문제가 얽힌 가족을 다룰 때에 당신은 조그만 계단이라도 올라가는 진보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에 상담자는 모든 식구가 이 면접에 참여해 준 것을 먼저 감사하고, 만약 모든 식구가 다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준다면 이 가족은 가장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을 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 상담자는 가족이 전체로서 하나의 단위가 되어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결정한다. 또는 아마도 다른 상담자는 가족 가운데 한 식구만 상대로 상담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적절한 규칙은 모든 상담면접은 가족을 함께 다룬다는 것이다. 가족식구들은 개인상담 약속을 요구함으로써 가족상담에 대한 저항을 드러낼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상담자는 다음 규칙을 분명히 밝히라. 상담자는 오직 가족 전체와만 만날 것이다. 어떤 식구는 상담자가 자기에게 따로 약속 전화를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가족상담면접에 빠질 것이다. 다른 상담자는 그런 규칙을 만들지 않고, 상담하러 온 가족식구들과만 상담할 것이다.
가끔 가족식구 모두가 상담시간에 나오지만 그 가운데 어떤 식구가 자기는 가족들과 함께 만나기를 원치 않고 상담자와 따로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이 사람은 면접 중에 일부 시간을 따로 떼어서 자기와 만나자고 요구할 것이다. “처음 15분 동안은 저와 개인적으로 이야기합시다.” 만약 이것이 하나의 저항의 징조라면 상담자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나지 않는 이유를 분명히 설명하고 전 가족식구에게 이것은 하나의 논제로 삼아 의논하게 할 수 있다.
또 다른 작전은 가족식구들에게 저항에 대하여 질문하는 것이다. 빠진 식구가 어째서 이 면접시간에 나오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식구들에게 묻고 빠지는 이유들을 지적할 수 있다. 또는 만약에 저항하는 당사자에 함께 있다고 하면, 그가 상담시간마다 늦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직접적으로 묻고 그 저항을 상담 주제로 삼아 직접적으로 다룬다. 당신은 이런 문제에 직접 대결의 방법을 사용하여 간단하게 그것을 다루고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근원적인 불안 다루기
저항의 이유가 무엇인지 점검하라. 어떤 저항은 의도적이며, 그 사람은 저항의 근원에 모종의 감정들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거절이나 비판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입을 열어 어떠한 말도 하지 않겠다고 작정한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동의 부끄러워하여 상담자 앞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이 아닐 때가 있다. 그들은 상담자를 신뢰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상담자와 신뢰관계가 생기려면 몇 번의 상담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그들의 저항에 대하여 질문하고 다른 식구들에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질문하면서 그들이 어느 정도 그런 동기들을 알고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다. 다른 유형의 저항은 무의식적이다. 다른 말로 하면 당사자 자신도 왜 자기가 상담과정을 저항하고 있는지 정확히 이야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런 경우에, 그러한 역동성을 발견해 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당신이 만일 저항의 이유가 신뢰의 부족이나 두려움 때문이라고 판단했다면, 당신은 그 사람의 장점에 초점을 맞추고 시간을 두고 신뢰관계가 형성될 때까지 덜 위협적인 주제들을 먼저 이야기하게 할 것이다. 당신이 만일 처음에 나날이 일어나는 사건 등 친숙한 주제들을 다루고, 유머 감각을 보여주고 당신이 거기에 앉아서 엄격한 심판관과 같이 결함들을 낱낱이 찾아내어 사람들 앞에서 그것들을 헐뜯고 무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면, 그 사람의 입이 열려질 것이다. 어린 자녀들을 가진 부모들에게는 가끔 사무실에 장난감들을 가지고 와서 애들이 그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사이에 부모들에게 이야기하도록 격려할 수 있다. 가끔 나는 내가 일하는 대학병원에서 애들을 가진 가족들을 상담할 때 그 애들을 데리고 아래층 간이매점에 내려가서 그들에게 음료수를 사주든지 먹을 것을 사주면서 그들과 사이에 라-포를 좀 더 깊이 형성하려고 한다. 우리가 걸어내려가고 올라오는 동안에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덜 위협적이다.
만약 부모와 자녀 사이에 학대관계가 있다면 상담자는 그 아동 또는 십대와 개인면담을 결정할 수도 있다. 상담자는 가족 전체와 상담하기 전에 가족식구 한 사람 한 사람과 개인면담을 하면서 라포관계를 발전시키자고 제의할 수 있다. 상담자는 여러 가지 방안들을 강구해야 한다. 그것으로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가끔 당신이 가족면접상담에서 성취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자세히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저항을 제거할 수 있다. 상담자는 왜 이 상담이 중요한지, 상담을 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어떤 유익이 생겨날 수 있는지를 분명하고 자세히 설명할 수 있다. 만약 어느 가족식구들이 주도적으로 저항하든지 또는 그 저항이 심각하지는 않을지라도, 상담자는 이 가족상담 과정이 그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다른 가족식구들에게 설명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식구들과 저항하는 식구들이 그것을 함께 토론한 후에, 좀 더 나은 가족 협조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가족상담자는 상담을 방해하고 있는 그 식구들을 용서해야 할 것이다. 당신이 그들을 심판하는 자가 아니라는 점을 전달하고 그리스도와 닮은 성품을 보여주어야 한다. 당신은 이렇게도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은 상담 중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심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면접상담에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용서하고 당신이 그런 행동 모형을 바꿀 수 있다면, 나는 당신과 기꺼이 상담하겠습니다.”
나는 보통 첫번째 가족면담에서 더 많은 저항을 만난다. 이때에는 이 상담과정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지에 관해서 가족식구들 대부분이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식구들이 가지고 있는 상담개념은 TV에서 본 토크쇼를 보면서 얻어들은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그들은 상담에 대해서 지나치게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그들이 당신이 진실한 인간이고 당신이 그들을 도우려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면 그들은 자기의 마음을 열어 놓을 것이다.
상담자는 힘겨루기를 피하고, 상담자 자신이 부모의 권위나 책임을 져야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힘겨루기가 발생한다. 가족식구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고 그들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야 한다. 많은 경우에 기독교인들은 어떤 특정한 논쟁거리에 대해서 당신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들이 당신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당신이 성경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면, 그들은 당신과 함께 상담하면서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부모가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 일이 아무리 큰 희생을 요구하더라도 토니를 더 낫게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기꺼이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식을 쳐다보면서 이런 말을 할 것이다. “그래 토니야. 네가 상담 선생님께 네 문제가 무엇인 말해 봐라. 얼른 얘기해야지 뭐하는 거냐?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 네가 얼마나 거침이 없고 솔직하고 네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이야기하는 성격인지 네 자신이 잘 알잖아. 우리는 네가 무엇이라고 말해도 참을 수 있어. 네가 아빠 엄마에 대해서 언짢은 이야기나 분노한 일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이야기해도 좋아. 아마도 그렇게 하고 나면 뭔가 좀 시원해질 거야. 뭐든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해 봐라.”
그들이 토니에게 하는 이야기는 겉으로 보면 이런 의미일 것이다. “너는 입을 열어 네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이야기해 봐라.” 그러나 이 말의 뒤에 숨은 메시지는 “너는 우리 가족에 대해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이 좋을 거야”이다. 그들은 열심히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너는 무엇이든지 이야기해라.” 그러나 숨겨진 진짜 뜻은 그 반대이다.
그래서 토니는 약하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은 별로 없어요” 라든지, “오늘은 괴로운 일이 없어요” 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렇게 안전한 대답을 함으로써 토니는 가족에게 불충성하다고 여기는 나쁜 일이나 또는 아무것도 감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비난 쏟아질 말을 하지 않았으며, 어리석다거나 정신적으로 문제 있다는 인상을 피할 수 있고 조정하고 있다.
여러 가지 질문을 받은 후에 토니는 결국 부모의 부부문제와 그 문제가 자기에게 어떤 고민을 주고 있는지를 희미하게나마 설명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재빨리 주제를 바꾼다. 토니의 누이가 신경질적으로 킥킥거린다. 그러자 어머니가 아연실색하면서 손을 이마 위에 극적으로 올려놓고 다음과 같이 소리친다. “저래서 토니는 문제란 말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공중 앞에서 이렇게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답니다. 보세요. 내가 이미 말했잖아요. 나는 매우 메스껍고 고민스러운 자식을 데리고 삽니다.”
부부 둘은 모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반드시 직면하여 풀어야 할 문제를 자신들이 가지고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하게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모든 문제들을 다른 가족식구들 위에 전가시키고 있다. 이 경우에 상담자는 문제가 어느 가족식구 한 사람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구조 즉 가족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나서 상담자는 식구들 각자에게 현재 가족식구들 간에 진행되고 있는 ‘가족관계’를 설명하라고 요청할 수 있다.
개인적인 책임을 강조하기
저항은 종종 의지의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 어떤 가족식구들이 상담일정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에, 그것은 그들의 책임이요 어느 누구도 억지로 협력하라고 그들에게 강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혀 주어야 한다. 당신은 그러한 상황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거기까지만 책임을 지라. 그들에게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과정을 제시하라. 그들에게 변화되지 않으면 안 될 성경적인 이유를 깨달을 수 있게 도우라. 성경적인 원리들을 가지고 대결하라. 그들의 행동모형을 바꾸도록 촉구하고 격려하라. 그러나 결국에 가서 당신은 그들 스스로의 결정에 맡겨야 할 것이다.
수동적-공격적 성격의 사람들을 다루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당신과 논쟁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당신이 말하는 모든 것에 동의하고 어떤 권면도 그대로 따르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일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잊어버렸다거나 또는 그대로 따르지 못한 이유를 만들어 이야기할 것이다. 당신은 이와 같이 습관적으로 자기의 이야기와 행동 사이의 불일치를 보이는 수동적-공격적 성격의 사람들을 직면하여 지적해 주어야 할 것이다. 행동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할 때가 있다고 설명하라. 그리고 당신은 처음부터 아무에게도 억지로 협력하라고 강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라고 이야기해 주라.. 각자는 자기의 자유의지를 가졌다.
많은 상담자들은 자기가 해야 하는 것을 다른 식구들에게 하도록 조작하는 것을 하나의 도전으로 본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태도의 지혜를 생각한다. 한 사람의 상담자는 하나의 자원으로서, 도움으로서의 관계 과정을 좀 더 분명하게 밝혀 주고 이런 모형들을 분명하게 끄집어내면 한 사람의 가족식구의 수동적-공격적 성품을 고칠 수 있게 만들 때가 있다. 가족의 다른 식구는 이런 유형의 행위를 수동적-공격적이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할 것이요, 이 때문에 그 사람은 자기의 행동을 고치겠다는 동기를 부여받을 수 있다.
저항하고 있는 사람과 더 분명한 접촉을 하는 것이 효과적일 때가 가끔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족관은 무엇인지,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그들은 어디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지, 그리고 어떤 상담목표를 세워야 하는지 등을 질문해 보라.
사춘기 자녀 한 사람은 이런 주장을 할 것이다.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나를 그냥 내버려 줬으면 좋겠어요. 나는 괜찮아요. 나는 이 상담을 받으러 올 필요가 없어요. 나는 이런 거 싫어해요.”
상담자는 이렇게 응답할 수 있다. “그래? 그런데 가족은 좀 다르게 보고 있어. 가족식구들이 너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너는 이 가족식구의 한 사람이야. 네가 하기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 봐. 우리가 여기 모인 것은 네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그것을 도와주려는 거야. 네게 정말로 도움이 되게 말야.”
수많은 저항 가족들이 상담을 그만두어 버린다. 그렇다고 이것을 불가피하다고 체념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포기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저항을 확인할 수 있으며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전략을 사용하여 저항을 극복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첫번째 면접에서 될 수 있는 대로 위협적이 아닌 관계를 만들 수 있다면, 그들은 몇 번 더 면접상담에 응할 것이요, 그러는 동안에 저항도 감소될 것이다.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가족이 상담을 그만두자고 안했는데도 나 자신이 가족상담을 그만 둔 적이 있다. 상담해도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저렇게 저항하는 식구들과 함께 상담하는 것은 나에게 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에게도 시간 낭비이다. 극단적으로 저항하는 가족의 경우에 나는 이런 말을 들려준다. “한두 달 내로 마음이 바뀌면 연락하세요. 그러나 현재 상황으로는 더 이상 만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그런 경우에 상담자는 상담을 받고 싶어하는 식구들과만 상담할 수도 있다. 이것은 이상적인 것은 아니나 다른 식구들과 계속 싸움을 걸고 면접 때마다 상담을 어렵게 만들고 상담 목적들을 파괴하는 경우에 이런 방법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좋은 아빠, 미운 엄마
어떤 형태의 저항은 가족의 치유 목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것은 키는 4피트 11인치이면서 몸무게는 262 파운드인 13세 엘렌의 가족의 경우에서 볼 수 있다91). 엘렌은 중학생이요, 4 형제자매 가운데 맏이다. 엘렌의 어머니는 자기 딸의 먹는 습관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고 불평했다. 딸이 더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어머니는 더욱 더 좌절했다. 어머니는 엘렌이 다이어트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했으나 실패했다. 어머니는 엘렌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아버지는 조그만 쇼핑센터에서 자그마한 빵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상인이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까지도 과체중이다. 어머니는 아버지 가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데 30파운드 과체중이다. 여러 명의 아저씨와 아주머니들도 약간 뚱뚱하며 그 중에서도 괜찮은 엘렌의 남동생 셋도 모두 그 나이에 비해서 과체중이다. 어머니는 의사가 시키는 대로 엘렌의 살을 빼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다 사용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긴급히 엘렌을 입원시키고 싶어했다.
그 소녀와 엄마는 일반적으로 엄마의 훈육방법과 특별히 먹는 것을 제한시키는 일 때문에 싸웠다. 그 가족은 가정에서 정해진 식사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식구들은 언제든지 냉장고를 열고 부엌을 들락거렸다. 엘렌은 자기 어머니가 자기가 먹을 때마다 간섭하고 먹는 음식마다 제한시킨다고 느꼈다. 어머니는 엘렌이 단 것을 먹는 것에 대하여 싸운 후에는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가 버린다고 불평했다. 이런 갈등 후에 엘렌은 자기 아버지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자기 방에서 쀼루퉁하고 토라져 있다. 아버지가 집에 도착하면 엘렌은 신경질적으로 흐느끼면서 자기 어머니가 무자비하고 잔인하다고 주장한다. 엘렌이나 자기 아내에게 더 이상의 질문을 해보지도 않고 아버지는 엘렌의 편이 되어서 자기 아내에게 말한다. “당신은 또 다시 엘렌에게 무분별하게 대했군요.” 그리고 나서 아버지는 어머니가 어떠한 벌을 주었든지 간에 그것을 무시해 버리고 엘렌을 데리고 나가서 피자와 썬데이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자기 가게에 가서 맛있는 빵을 먹게 한다. 그래서 엄마를 미운 엄마로 만들어 버린다.
남편과 아내관계는 아주 빈약하고 소원할 뿐 아니라 2년 여 동안 육체적 접촉도 거의 없었다. 어머니는 가족상담을 받으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항상 반대했다. 그는 부부상담과 개인 심리 치유 제안에도 저항했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쾌활하고 멋진 분이었고 어머니는 엄격한 훈련자가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근본적으로 싸움을 피하기 위하여 서로를 무시해 버렸다. 어머니-딸 관계 갈등에 대해서 아버지는 ‘좋은 아빠’ 역할을 하면서 자기 자녀들을 탐닉에 빠지게 하고 그들을 훈육하지 않았다.
엘렌은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사춘기 정신병동에 입원하여 12개월 동안 영양통제, 환경요법, 정신과 의사와의 개인 심리치유, 병원 원목과의 가족상담을 받았다. 처음 2개월 동안의 칼로리 통제 식사로 해서 37파운드가 빠졌다. 7개월이 끝났을 때에 87 파운드가 빠졌고, 10개월이 되었을 때에는 102 파운드가 빠졌다. 그래서 160 파운드 체중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 가족상담이 시작되었을 때에, 아버지는 계속 저항했다. 어머니와 자녀들이 와서 일반적인 가족상황들을 설명했다. 어머니가 엘렌에게 그만 먹으라고 이야기하면, 엘렌은 소리 지르면서 엄마를 때리고 욕설을 퍼붓고 닥치는 대로 집어던지며, 자기가 좋아하는 단 것들을 사오지 않으면 더 집어던지겠다고 위협했다. 그녀는 자기의 단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자기 것인 양 이야기했다. 그녀는 자기 캔디를 먹어야겠다고 떼를 썼다. 엘렌은 종종 학교가 끝나면 바로 아버지 상점으로 갔고 그러면 아버지는 무엇이든지 먹고 싶은 것을 먹으라고 했다. 아버지는 엘렌에게 돈도 주어 쇼핑센터에 있는 다른 가게에서 사탕을 사 먹게 했다. 가끔 엘렌은 그 상점에서 아버지가 상점문을 닫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빠와 함께 나가서 음식을 사먹기도 한다.
가족상담자는 아버지가 계속 빠지는 것을 주시하고 가족들에게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가족은 식구들 각자가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방식으로 아버지에게 상담받으러 함께 가자고 부탁하기로 합의했다. 결국 아버지는 가족면접상담에 왔다. 상담자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당신은 딸의 요구대로 너무 많이 주는 것 같은데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당신은 자녀들이 무엇을 요구하든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주는 것 같이 보입니다. 당신의 아내는 자녀들의 요구 가운데 어떤 것은 거절하는데 당신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군요. 그 이유를 설명해주실 수 있겠어요?” 아버지는 자기 자녀들의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서 자기 자녀들에게 거절할 때에 불안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자 어머니는 자식들과 탐닉적인 관계에 빠진 아버지에 대하여 분노와 분개를 인정했다. 그녀는 이 때문에 자기가 외롭고 무기력에 빠지고 좌절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자녀들과 탐닉에 빠졌을 뿐 그들과 사이에 피상적인 친밀감을 경험했다. 이것이 어머니에게 동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사악한 어머니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바로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고압적으로 요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기가 자녀들을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에 심하게 우울해졌으며, 그녀가 엘렌을 입원시키자고 그렇게 강하게 주장한 것도 엘렌을 가족들로부터 떼어놓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시인했다. 그렇게 함으로 엘렌의 몸무게 문제도 다룰 수 있을 뿐 아니라 가정에도 숨구멍이 트이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은 이렇게 진행되어 갔다. 엘렌은 몸무게를 줄였다. 그러나 가족상담을 하는 도중에 엘렌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에 아버지와 엘렌과의 유혹적인 관계모형은 더욱 발전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아버지는 여러 번 엘렌에게 전화하여 그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으며 의사에게 이야기하여 그녀를 병원에 입원하게 한 ‘미운 엄마’가 한 짓에 대해서 엘렌에게 동정한다고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딸에게 꽃을 보냈다. 엘렌은 병원에서 다이어트를 해야 하지만, 아버지는 그녀에게 사탕을 보냈다. 아버지가 병원에 면회 왔을 때에 아버지가 로비에 와 있다고 간호사가 엘렌에게 이야기하면 그녀는 15분이나 20분 동안 아버지를 기다리게 했다. 이러한 계획적인 시간지연은 아버지와의 만남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고 아버지에게 더욱 호소력을 심었다. 가족면접상담 중에 아버지와 딸 사이에 이처럼 건전치 못한 관계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한 번의 가족면접상담에 참석한 후 아버지는 여러 번 면접에 출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없는 때에라도 그 가족은 이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결국 이 가족은 아버지를 설득하여 면접에 나오게 했으며 아버지는 엘렌과 자기와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성숙하지 못한 관계모형에 대하여 약간의 통찰을 얻게 되었다. 그녀를 과보호하고 버릇을 잘못 들게 만드는 대신에 그는 엘렌의 자기중심적이요, 파괴적인 모형을 극복할 수 있게 그녀를 돕는 방법을 배웠다. 엘렌은 12개월 후에 140 파운드의 체중으로 퇴원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체중을 지키기 위하여 계속 심리치료를 받았고 가족상담은 계속되었다.
결국 오랜 시간 후에 상담은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2년 후에도 엘렌은 140 파운드의 체중을 유지했다. 그리고 상당히 보기도 좋아졌다. 그녀는 점차적으로 어머니 사이에 더 나은 관계를 발전시켰다. 부부상담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 필요하게 되었고, 그들의 관계도 개선되었다. 결국 여러 해가 지나면서 아버지는 자기의 딸과 더 현실적이고 정상적인 관계를 개발했다.
이 사례연구는 상담에의 저항의 존재 그 자체가 그 가족이 가지고 있는 문제 자체의 핵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증거한다. 가족문제 근원에 있는 중요한 요소는 상담과정에서 저항의 형태로 그 자체의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
상담면접을 끝내기
어떤 가족식구는 상담에 참여하거나 이야기하기를 주저하며, 가족상담면접이 속히 끝나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상담자에게 정반대의 문제를 안겨준다.
어떤 사람들에게 면접을 끝내는 것은 아주 어렵다. 이 문제를 방지하는 한 가지 길은 면접상담을 시작하면서 당신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우리의 약속은 5시 30분까지입니다.” 만약 당신이 면접을 끝내기 어려운 어느 특정한 가족과 상담하고 있다면 면접종료 5분전에 당신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이제 우리의 상담시간은 5분 남았군요. 나는 이 지점까지 우리가 무슨 일을 했는지 요약하고 싶습니다. 이제 오늘 면접의 마지막 단계를 밟아야 하겠군요.” 당신은 6 - 7 분 남았을 때에 다음 면접약속을 하고 요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가족들은 그래도 당신을 지연시킬 수 있다. 만약 그들이 당신이 선언한 면접종료 시간을 넘겨 계속 이야기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의자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당신을 따라 행동하라고 한 후 문 밖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하라. 보통 그들이 아직도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들은 계속 이야기하면서 당신을 따라 문밖으로 나갈 것이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가족들은 만약 당신이 시계를 보면서 “이제 우리에게는 1 - 2 분밖에 남지 않았군요” 하고 말하면 그 암시를 받아들일 것이다.
대부분의 전문상담자들은 50분에서 90분 동안 가족과 면접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보다 더 적게 하면 별로 성취하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그 면접에서 어떤 과제를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많은 목사들은 설교를 준비하고, 심방하고 회의에 참석하고 나면 별로 남은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 가족들과 함께 상담하려고 하면 개인상담에서보다 더 많은 역동성이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과 함께 상담하는 것은 개인들을 다루는 것보다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목표에 달성하는 면접 횟수도 개인면접보다 적을 것이다.
가끔 남편과 아내가 팀이 되어 상담하는 것이 유익한 점도 있다. 남편과 아내가 팀이 되어 상담하는 것이 아주 효과적일 수도 있으나 그렇게 하려면 상담상황에서 더 많은 주의와 협동이 요구된다. 이런 형태의 상담의 유익 가운데 하나는 적극적인 관계 모델을 제시하는 기회가 된다는 점이다.
가족상담의 단계적인 종결
우리는 독자들이 알고 싶어하는 가족상담에 대한 모든 것을 다 논의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의 부록의 참고 도서 목록을 보면 이러한 유형의 상담을 계속해서 연구해 나갈 수 있는 방향을 발견할 것이다. 이제는 가족상담을 종결하는 과정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몇 가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이상적으로 상담자와 가족은 함께 상담목표들이 성취되었는지와 이제는 상담과정을 종결시켜야 할 때인지는 결정한다. 실제로 많은 가족들은 다음 약속을 하지 않거나 앞으로 면접 스케줄을 의논하지 않음으로써 상담을 그만두어 버린다. 종결 문제는 미리 제기하는 것이 좋으며, 그래서 종결이 좀 더 질서 있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때로는 가족이 연말에 상담을 시작하여 단기 목표에 도달할 때쯤 여름방학을 맞으면 방학 기간 상담을 쉬고 9월부터 다시 상담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목표들을 설정한다.
당신은 위기 상황에서 가족상담 요청을 받을 수 있다. 당신이 중요한 위기 해결을 위해 함께 상담한 후에 아직도 여러 가지 관심을 집중시켜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위기 상담 그 자체는 그 위기를 극복하는 목표에 충실해야 한다. 위기 상담이 끝났을 때 당신은 그 가족에게 상담해야 할 또 다른 목표가 있으면 다시 연락하라고 설명하는 것이 좋다. 당신이 그 가족이 다시 상담해야 할 때를 스스로 결정하게 한다면 다음에 상담받으러 올 때 동기부여가 상승될 것이다. 즉, 그들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스스로 해결하려고 먼저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에 그들은 상담을 받아야 하겠다는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때때로 상담 종결을 결정하기 전에 상담자는 가족과 함께 여러 가지 상담목표에 대하여 어떠한 진전이 있었는지, 그리고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점검해 보는 것이 좋다. 가족식구 중 한 사람이 상담을 종결할 시간이 되었느냐고 질문하면, 가족의 진전이나 또는 진전되지 못한 점들과 앞으로 더 면접해야 하는 경우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인지를 점검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 가족이 상담 종결의 준비가 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라.
1. 처음 상담받으러 올 때와 비교해서, 이 가족은 가족관계에서 성경의 원리를 좀 더 성공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되었는가?
2. 그들이 가지고 온 당면 문제 뿐 아니라 당신이 근원적인 문제라고 판단한 문제들까 지 만족하게 해결되었는가? 예를 들면, 가족이 어느 한 식구를 속죄양으로 삼았다 면, 이 가족은 속죄양 만들기를 그만두었는가?
3. 이 가족은 더 사랑스러운 커뮤니케이션 모형을 개발했는가?
4. 이 가족은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에서 부적응의 모형을 버리고 좀 더 합당한 상호적 용모형을 개발했는가? 예를 들면, 가족식구들은 서로 간에 의미를 숨기지 않고 더 분명하고 유익이 되는 말을 하고 있는가?
5. 이 가족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표면적인 문제만 다루거나 문제 자체를 회피하여 갈등을 조장하기보다는 일상생활의 문제들을 풀어 나가는 좀 더 건강한 방법으로 변 화되었는가? 만약 상담이 효과적이라면 그 가족은 상담면접 시간에 함께 문제를 풀 어가는 법을 배웠을 것이요 문제를 정의하고 목표를 세우고 해결을 위해서 함께 노 력하는 것 등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들은 상담면접 시에 개발한 이 과정들을 일상생 활에도 적용하는 것이 상담의 바람이다. 이 가족은 면접과 면접 사이에 이를 잘 적 용하고 면접시간에 보고하고 있는가? “글쎄요. 지난 화요일 밤에 이런 문제가 있었 는데, 빌리는 이런 말을 했고 수지는 저런 말을 했고 결국 우리는 함께 앉아서 이야 기하면서 하나의 결론을 얻었어요.” 상담자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면 이 가족은 상담종료의 시간이 가까웠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6. 가족식구들은 서로를 용서하고 있는가?
7. 그들은 서로의 짐을 더 효과적으로 지고 있는가?
8. 이 가족생활은 일상생활에서 더욱 조화가 있는가? 그들은 서로의 차이를 용납하고 있는가? 그들은 식구 각자의 인격적 발달과 성숙을 촉진할 수 있는가?
9. 그들은 분명하고 분별력 있는 성경의 제한을 설정하고 그 제한에 따라서 자녀들은 부모에 순종하고 부모들은 훈계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10. 가족식구들은 각자 자기들의 책임과 역할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있는가? 아버지 는 사랑을 가지고 참여적인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가? 어머니는 자녀를 훈 계하며 남편에게 합당한 복종을 하는 어머니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당신은 가족상담을 끝낸 후에도 그 가족 식구들 가운데 한두 사람과 계속해서 개인 상담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른 가족들의 경우에 그들이 너무 혼동되어 있다면 그 가족이 어떤 의미에서든지 약간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하여 성취해야 할 단기 목표들을 세우고 그들의 문제에 대한 간단한 도움을 해주고 아직도 수많은 문제들이 남아 있다고 해도 당신은 상담을 종결해야 할 것이다. 당신은 그 가족이 당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다 도와줄 필요는 없다. 상담의 종결은 당신이 무엇을 하려고 계획을 세웠느냐에 달려 있다. 당신은 처음에 세운 목표와 지금 현재 그 가족이 어떤 상태에 있느냐를 비교하면 된다. 당신이 처음에 목표를 세우지 못했다면 언제 끝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럴 때에 당신은 지금 얼마나 성취했는지 비교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가끔 상담자는 당장 상담 종결을 권고할 수도 있다. 다른 경우에 점차적으로 면접을 종결하는 것이 현명하다. 처음에 한 주에 한 번하다가 그 다음에는 두 주에 한 번, 그리고 후에는 한 달에 한 번 면접한다. 그리고 결국 면접을 끝내 버린다. 가족상담의 경우에 대체로 8회에서 20회까지 면접상담을 한다. 어떤 가족도 문제를 다 해결하고 상담을 종결하지 않는다. 처음보다 나아졌다거나 더 적응 기능이 향상되었다거나 문제를 만났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능력이 더 커졌기 때문에 종결한다. 가족상담의 희망은 가족식구들이 가족상담 시에 배운 효과적인 전략을 사용하여 가정에서도 자기들의 문제를 풀어 갈 수 있는 심리적 영적 자원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부록
부록1. 가족상담의 모델
가족 치료자들과 가족상담자들은 자기들의 일을 개인 정신 치유나 개인상담과 구별하여 여러 가지 임상 실천 이론 모델을 개발했다. 제 7장에서 언급 한대로, 연구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가족 치료자들은 그 접근 방법에서 자신들을 절충주의 자라고 생각한다. 가족상담에 관한 서론적 개요 서로서 본서도 근본적으로 일반적인 절충적 접근을 택하여, 여러 가지 가족상담 방법들을 성경적인 개념의 틀 아래 통합했다. 가족관계에 관하여 성경의 최종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이 이 틀의 중심이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가족상담을 하는 독자들은 다양한 가족문제들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하여 가족 치료에 관한 최신의 학문적인 전문 서적들과 논문들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부록1은 가족상담 모델의 전반적인 개요를 매우 간명하게 제공하려고 한다. 부록2는 간명하게 소개된 모델들을 자세히 공부할 수 있는 서적들을 소개할 것이다.
현재 가족상담이나 가족 치료에 있어서 광범위하게 일치되는 기술들은 없다. 상담 접근들은 심리 역동 이론, 커뮤니케이션 이론, 구조 이론, 그리고 행동 원리, 등에서 기술들을 도출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 접근을 사용하는 가족 치료자들과 가족상담 상호작용을 예로 들어, 네 가지 접근들을 하나하나 간단하게 제시하고자 한다.
가족 심리 역동 이론에 근거한 중재 방안
개인 행동에 관한 심리 역동적 견해는 개인의 동기와 감정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개인의 내면에 있는 심리적인 에너지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심리 역동적 접근을 가족관계에서 가족식구들 간의 “맞물려있는 질병(interlocking pathology)"을 강조한다. 그 뜻은 가족의 내면적인 심리 생활과 갈등들이 가족식구들 사이에 얽혀 있다는 것이다. 심리 역동적 이론들은 주로 정신분석에 기초하며, 한 개인의 감정적인 장애는 가족관계 가운데서 발생하며, 치료자와의 관계는 그런 장애를 교정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가정한다.
나단 애커만의 생리 정신 사회 치료(Biopsychosocial Therapy)
애커만(Nathan Ackerman, 1996)은 가족식구들의 역동적 관계를 진단했다. 그는 가족문제 근원에 흐르는 감정조류를 평가했다. 그리고 그는 가족 치료자의 역할을 ‘재교육’을 실시하고, ‘재구조화’시키고, ‘갈등을 해결하는 자’로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가족식구들에게 자기들의 감정들과 생각들과 행동에 더 깊이 접촉할 수 있게 도와주려고 했다.
머레이 보웬의 가족구조 치료(Family System Therapy)
보웬(Murray Boen, 1978)은 자신을 개개인의 ‘선수들’과 그들의 ‘팀(가족)’을 적극적으로 도와서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한 사람의 감독으로 보았다. 가족구조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는 가족의 잘못된 삼각관계를 바꾸고, ‘구별되어 있지 않는 가족자아 혼돈’에 빠진 가족식구들을 ‘구별지어’ 주려고 했다. 그는 특별히 부부 관계에 초점을 모아 부부 서로에게 이야기하게 하기보다는 부부가 각기 상담자에게 이야기하게 하게 하므로 사고(思考)와 감정의 혼돈을 제거하고 이 양자를 구별지으려 했다. 그는 부부 갈등에서 중립을 지키고, 냉정을 유지하고 얽혀 들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가족식구들 각자에게 가족관계 문제에서 자기의 역할에 초점을 모을 수 있게 만들었다.
가족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근거한 중재 방안
커뮤니케이션 이론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과정들에 초점을 모으기보다는 잘못된 가족 커뮤니케이션에서 발생한 관계의 문제에 가족 갈등의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고 본다. 모든 행위를 커뮤니케이션으로 보고, 가족문제의 핵심 요소들은 복합적이요, 상반되고 결함이 있으며 이중적인 메시지에 있다고 생각한다. 치료자는 언어적인 내용만 관찰하지 않고, 목소리의 높낮이, 어감, 자세, 제스처, 그리고 다른 몸의 언어, 등 비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도 중시한다. 이러한 접근 방법에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새로운 치유 기술들이 개발되었는데 여기에는 단기간 가족상담(brief family counseling)이 포함된다. 단기간 가족상담은 직접적이요 실용주의적인 접근으로 더 솔직하고 일치가 되고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촉진시키고 조장한다.
버지나 새터의 부부연대 가족치유(Conjouint Family Therapy)
새터(Virginia Satir, 1967, 1972)는 가족식구들이 서로 간에 구체적인 커뮤니케이션 기술들을 가르침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이해하고 극복하도록 하였다. 그녀는 가족관계에서 친밀의 절대적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그녀의 상담접근은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여 식구들의 자기 가치를 고양시키려 했다. 새터의 기술은 적극적이요 직접적이며 실제적이다. 그녀는 이런 기술을 사용하며 가족이 성장하고 변화하고 문제에 대처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직접적이요, 분명하고 일치하는 커뮤니케이션 모델을 제공하고 촉진자로서 변화과정을 도왔다.
제이 할레이의 문제 해결 치료
가족 치료의 선구적 실천가요 저자인 할레이(Jay Haley, 1963, 1971, 1976)는 관계에 있어서의 힘의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가족들의 행위 모형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하여 가족들을 통제하고 적극적으로 지시하는 방안들을 권면하였다. 할레이는 불안 발작, 우울 증상 발현, 공포 증세, 알코올 마력과 같은 증상들에 대한 정신 역동적 설명을 강력히 거절했다. 그는 증상들을 가족간의 관계를 통제하기 위하여 한 식구가 사용하는 대인관계 작전들이라고 보았다. 치료자로서 할레이는 관계를 규정하는 다른 전략들을 개발하도록 가족식구들을 격려하는 방법들을 고안하였다. 이렇게 되면 증상들은 쓸모 없는 것이 되어 식구들은 그것들을 버릴 수 있다. 그는 또한 치료자와 환자들이 서로 간에 사용하는 힘의 대결을 강조하고 가족상담자들은 주도권을 잡고 가족 변화를 지시하는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족구조이론에 근거한 중재 방안
가족구조 이론은 여러 다른 하부 가족구조들 간의 관계, 가족 경계선들, 발달 단계마다에서 발생하는 변화에의 적응 능력, 등에 초점을 맞춘다. 미누친(Minuchin, 1974)에 의하여 처음 개발된 구조 이론은 가족 단위 전체의 긍정적 전인성을 중시한다. 가족의 상호작용들은 근원적인 구조나 조직에 대한 암시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가족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반하여 구조 주의자들은 ‘어떠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느냐 보다는 ‘어떠한 방법’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느냐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둔다. 가족구조 이론은 혼동, 분열, 가족 지도, 가족 균형, 등의 용어를 사용한다.
살바도르 미누친의 구조이론
치료자로서 미누친(Salvador Minuchin, 1974a, 1974b)은 가족에 들어가서 그 가족과 관계를 맺고 그 가족에 적응하고 나서 가족의 조직을 재배치하는 중재 방안을 고안한다. 그래서 가족이 더 기능적으로 상호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구조를 재구성한다. 그는 원치 않는 행위를 유지시키는 역기능의 모형들을 직면하고 도전하여 가족을 재구성한다. 그의 가족 치료 기법은 ‘혁신적이다’, ‘계획적인 조작 방법이다’, ‘극적이다’, ‘연극적이다’, ‘비관습적이다’(Goldenberg & Goldenberg, 1988), 등으로 불린다. 그의 치료 작전은 가족에게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가끔은 가족 위기에 빠질 정도로 스트레스를 주어서, 가족의 항상성의 균형을 깨뜨린다. 그렇게 해서 가족 변화의 장을 마련하고 가족 상호 간에 더 합당한 방법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돕는다. 그는 병적인 증상을 가족의 구조 문제가 현상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고 가족 치료에서는 가족구조를 재구성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가족 행동 이론에 근거한 중재 방안
가족 행동 이론가들은 부적응의 가족 모형들을 학습 이론으로 설명한다. 적극적 부정적 강화 방법, 계획적 조절 방법, 구체화, 모델링, 소멸, 그리고 다른 학습절차들을 조직적으로 가족문제교정에 적용한다. 행동주의적 분석은 문제행위들에 대한 조심스러운 실천적 정의, 조직적인 관찰, 행동들과 그 행동과 관련된 자극 사건들을 신뢰할 수 있게 기록하는 것 등을 요구한다. 행동주의적 평가는 문제행동을 유지시키는 우발성을 명료화시켰다. 치유목표는 서로 합의하여 만들고, 치료자는 가족의 역기능의 행동들을 강화시키는 우발성들을 고치도록 지도한다.
제랄 페터슨의 사회학습요법
페터슨(Gerald Peterson, 1971)은 부모훈련에 초점을 맞추어 자녀들을 효과적인 행동조정기술들을 사용하게 한다. 훈련 받은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적응력이 있는 행위 모형을 가르치고 수행하게 지도한다. 문제 자녀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심층적으로 연구 조사한 후에 그는 부모들을 가르치는 구체적인 절차들을 만들어 내었다. 여기에는 자녀의 행동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조사하는가, 또는 어떻게 강화 계약을 합의하는가 등이 포함된다. 미연방 정부의 지원을 받아 패터슨은 이런 행동적 접근의 효과성을 실증했다.
리차드 스튜아트의 계획적 대인관계 요법
스튜아트(Richard Stuart, 1976)는 불화관계에 있는 부부치료 중재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조사를 발표했다. 그는 부부간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관계개발을 도왔다. 그는 치료과정의 8단계 모델을 개발했다. 이 모델은 부부행동의 적극적인 변화를 촉진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는 부부간에 행동주의적 계약을 맺는 일과 효과적인 결정전략을 가르친다. 그는 부부가 넉 달에 한 번씩 발전 상황을 자기 점검하게 하고 새로운 관계 변화 목적들의 제정을 권장한다.
로버트 리버만의 우발성계약(Contingency Contract)
리버만(Robert Liberman, 1972)은 가정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우발성 강화 프로그램을 새로 작성하려고 했다. 그는 적극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행동의 구체적 교정을 동의하는 여러 가족식구들 사이에 우발성계약을 맺게 한다. 리버만은 행동주의적 방법으로 목표설정에 합의한 후에 그 가족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현재의 우발성 강화행동을 변화시켜 적응행동을 증가시키고 부적응행동을 감소시키도록 지도한다. 그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치료자의 역할을 강조하고, 구조주의적 관점을 가미시킨다. 그는 우발성 계약의 기술을 개발했다. 여기에는 다른 가족식구들과 자신에게 주는 보상을 확인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보상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공감하고 보상제공의 비용을 정하고 교환하는 것 등이다.
다른 중재모델들
이외에도 수많은 가족상담모델들이 여러 독립적인 치료자들에 의해 개발되었다. 예를 들면 제랄드 쥬크(Gerald Zuk, 1971)는 ‘3자관계에 기초한 가족치료’ 접근을 개발했다. 이 모델에서 그는 만성적인 부적응의 관계모형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가족식구들 사이에 ‘사이로 가기(go-between)' 과정을 통제한다.
죤 벨(John Bell, 1975)은 소그룹행동의 사회심리학에 기초하여 ‘가족그룹치료’를 개발했다. 벨은 문제해결을 촉진하고 가족결정을 고무하기 위하여 그룹과정 지도자로 가족을 돕는다.
H. P. 라커(Laquer, 1976)는 네 가정이나 그 이상 가정들을 이 치유의 촉진자로서 함께 행동하는 ‘다수가족요법’을 개발했다.
부록2는 위에서 소개한 가족상담 모델을 소개하는 저서들을 소개했다. 여기에는 가족상담에 관한 최근의 핸드북과 교제들도 포함했다. 이 책들은 여러 가지 중재기술들에 관한 더 전문적인 정보들을 제공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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