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F. 케네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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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35대 대통령 | |
재임 기간 | 1961년 1월 20일 - 1963년 11월 22일 |
전임 대통령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
후임 대통령 | 린든 B. 존슨 |
출생지 | 매사추세츠 주 |
사망지 | 텍사스 주 댈러스 |
소속 정당 | 민주당 |
서명 (싸인) | ![]() |
배우자 | 재클린 리 부비에 케네디 |
종교 | 로마 가톨릭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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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피츠제럴드 "잭" 케네디(John Fitzgerald "Jack" Kennedy, 1917년 5월 29일~1963년 11월 22일)는 미국의 제 35대 대통령이자, 미국 대통령 중에서 유일한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라는 점과 상류사회에서 잉글랜드계에 밀리던 아일랜드계 혈통 때문에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반발과 논쟁을 불러온 인물이다.[1] 그는 1961년부터 1963년에 암살당하기까지 겨우 2년 동안 대통령직에 있었지만 미국의 자유주의에 대한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남태평양에서 PT-109 고속 어뢰정의 해군 장교로 근무했는데, 자신의 배가 일본군에게 격침되자 위협을 무릅쓰고 동료를 구한 것으로 영웅이 되었다. 케네디는 1946년부터 1960년까지 미 의회에 있었으며, 1960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케네디는 대통령직에 고작 2년밖에 있지 않았지만, 그의 임기 동안에 피그스 만 침공, 쿠바 미사일 위기, 베를린 장벽, 우주 경쟁, 베트남 전쟁 간접 개입, 미국 민권 운동 등 많은 일이 일어났었다. 서투른 명문가 도련님이라는 우려도 받았으나 역사가들은 케네디를 링컨, 루즈벨트, 워싱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
생애
19세기 후반 아일랜드에 닥친 대기근으로 인해 케네디 가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로 이주하였다. 그는 개신교가 사회의 주류여서 직업선택 등에서 차별받던 로마 가톨릭 교회 집안의 형제 중에서 한명쯤은 대통령이 나오기를 원했던 대(大) 조셉 P. 케네디의 아들로 태어나 1940년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태평양 전쟁 중에 해군에서 복무했었다. 1950년대를 전후하여 민주당 정치인으로 두각을 드러냈고 1960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최연소 당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유세 도중 그는 미국이 소련보다 핵무기 개발 경쟁에서 뒤졌기 때문에 '미사일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63년 11월 22일 리 하비 오스월드에게 암살당했다.
유럽에서의 베를린 위기와 카리브 해에서의 쿠바 미사일 위기가 그에게 부담이 되었으나 극복하였으며, 핵 실험 금지 조약을 성사시켰다.
1963년 6월 26일, 서베를린을 방문하여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연설을 하였다. 베를린 장벽 설치를 공산주의의 실패의 증거로 삼으며 이렇게 말했다.
“ | 모든 자유인은 그들이 어디에 있건 베를린 시민이라 할 수 있으므로 저 또한 자유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베를린 사람입니다(독일어: Ich bin ein Berliner.).'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 ” |
서베를린 시민의 5/6이 거리에 나왔으며 케네디 자신도 놀랐다고 하였다.
존 F. 케네디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일치하는 점이 많으며, 다음은 공통점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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