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의 거룩한 성소가 되기
놀라운 마음의 성소
마이스터 헤크하르트는 "당신이 있는곳이 교회든 독방이든 간에 똑같은 사고의 틀이 세상 속에서도 작용한다. 그것이 세상의 소란함이나 변덕스러움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놀라운 마음의 성소가 있다. 그곳은 거룩한 곳이며, 하나님의 임재의 중심이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곳이다. 그곳은 우리가 끊임없이 돌아갈 수 있는 곳이다. 영원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 그것은 세파에 시달린 우리의 삶에 물밀듯 밀려와서, 놀라운 미래에 대한 임시로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며, 우리를 하나님이 계신 본향으로 초청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조명하여 우리의 얼굴 위에 새로운 그림자와 새로운 영광을 드리우는 빛이다. 그것은 막지만 않는다면,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씨앗이 된다. 그것은 마음의 성소에 나타난 하나님의 현현이며, 우리의 마음 한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임재이다. 바로 여기에 주무시고 계신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우리가 그분을 흔들어 깨울 때, 그분은 이 세상의 형체와 행동으로 옷 입으신 영혼이 되신다. 그래서 그분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내주해 계신것이다.
마음속의 은밀한 장소들
하나님의 빛에 대한 우리 영혼의 기본적인 반응은 마음속에서 우리나오는 찬양과 기쁨과 감사와 경배와 복종과 청종이다. 마음속에 은밀한 장소들은 더 이상 우리의 소란한 작업장이 아니다. 그곳은 찬양과 헌신의 거룩한 성소가 된다. 우리의 삶은 깊은 샘 속에서 우리를 찾아내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고정시키기만 하면, 우리는 그곳에서 완전한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사이사이에 마음의 성소를 세상 속에 옮겨 놓을 수 있게 된다. 세상의 소란함과 변덕스러움 속에서 마음의 성소가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의 샘들이 강력한 감동을 받아 하나님을 마음껏 노래하며 사랑하게 되고,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게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들을 새롭고 힘있게 사랑하게 된다.
영혼의 지하 성소
그러나 빛은 희미해지고, 의지는 약해지며, 단조로움이 다시 찾아든다. 우리가 이런 어두음을 견딜 수있을까? 아니다. 우리는 견디려고 시도해서도 안된다. 우리는 그것들을 통해 훈련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분의 은혜에 대한 이 첫번째 교훈을 통과해야만 한다. 영원한 마음의 빛은 우리의 황홀한 체험이 없어져도 소멸하지 않으며, 가물거리는 불빛처럼 우리의 심리적인 상태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
신앙 생활의 기초에는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한 희미해져 가는 기억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밀접함이 놓여 있다. 이제 좀더 깊은 경건의 비밀을 찾아보기로 하자. 그것은 한층 더 깊은 영혼의 지하 성소이며, 거기에서는 내주하는 하나님의 빛이 결코 희미해지지 않고 영원한 불꽃으로 계속해서 타오른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가 생수의 샘처럼 끊임없이 날마다 시간마다 꾸준히 솟아나와 우리를 변화시킨다.
끊임없이 지향하는 은밀한 습관들
여기서 권고하고 싶은 것은 마음의 내적인 실행과 습관들이다. 또한 내주해 계신 빛에 대하여 끊임없이 우리의 존재의 깊이를 지향하고자 하는 은밀한 습관들도 권고하고 싶다. 그것은 일상적인 세상사로 매우 바쁜 가운데서도 영속적으로 머리 숙여 경배하기 위하여 우리의 내적인 삶을 이끌어 가는 방법이다.또한 가장 깊은 수준의 마음의 내적인 실행들과 우리의 마음이 마치 나침판의 바늘처럼 영혼의 북극성을 향해 흔들리도록 할 것을 권고하고싶다.
그 바늘처럼, 내주해 계신 빛이 삶의 가장 참된 안내자가 되어, 우리 자신과 우리의 친구들 속에 있던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결점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동시에 사람들 사이에 선의를 갖고 살아가는 삶과 그 능력의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더 깊은 의미에서, 우리 안에 내주해 계신 하나님께서 은밀한 설득을 통해 우리를 권고하셔서 하나님께 있는 놀라운 내적인 빛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 결과 우리는 그분만을 굳게 붙잡고 언제나 내주해 계신 빛의 광채를 통해 온 세상을 바라보게 되며, 사람들을 대할 때 마음속 중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자발성과 기쁨을 갖고 반응하게 된다.
영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역사
내적인 지향과 내적인 경배와 청종의 이러한 실행은 단지 특별한 종교적 단체나 소수의 종교적 교단, 혹은 특별한 내면의 영혼이나 흔퇴하여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들만을 위한 권고가 아니다. 이 습관은 신앙의 핵심이다. 내가 알기로 그것은 갈릴리에서 사역하신 예수님의 내적인 삶의 비결이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가 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이 비결이 새롭게 발견되기를 기대하신다. 그것은 놀라운 선교와 보편적인 무형의 교회를 창조하며, 새로운 수준에서 살아가는 단체와 존중심에 근거한 사회, 그리고 영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역사와 천국의 식민지들을 만들어 낸다.
내주해 계신 빛, 곧 내주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단순한교리가 아니며, 특별히 소수 중교 단체에 속하여 단순한 신앙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거부되기도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기독교 단체들을 위한 살아있는 준거의 중심이다.
실천은 이론이나 교리가 아닌 신앙으로 먼저 나타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실천은 외적인 행위로 소진되지 않은다. 그것들은 뿌리가 아니라 열매인 것이다.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그 영혼이 마음의 성소로 끊임없이 돌아가도록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세상을 그 빛 가운데로 가져와서 그것을 재평가할 뿐만 아니라, 온갖 소란과 변덕으로 죽 끓듯 하는 세상 속에 그 빛을 가져와 그것을 재창조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제 이런 실천에 대한 경건한 탐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여보자.
막후에서
한꺼번에 두 가지 수준 이상에서 우리의 정신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방법이 있다. 첫 번째 수준에서는 생각하고, 토의하고, 보고 계산하며, 모든 외부의 사건들이 요구하는 바에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깊은 수준인 마음속 깊은 곳, 즉 막후에서는 기도와 찬양, 노래와 경배, 그리고 하나님의 숨결에 대한 부드러운 수용이 있을 수있다.
이 두 가지 수준 사이에는 유익한 상호작용이 있지만, 역시 강조점은 보다 깊은 수준에 두어야 한다. 그 곳에서 우리의 영혼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하게 되고, 첫 번째 수준의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영원히 가져와서 하나님의 임재해 계신 곳에 붙잡아 매어 둠으로써, 그것들을 새롭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다시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과 믿음이라고 하는 자발적이고, 예리하며, 단순한 방법으로 그 문제에 대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적 지향의 정신적인 습관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런 삶과 능력을 소유하여 중단 없은 기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까? 그것은 우리의 영혼의 심연에서 부르시는 하나님께 기도와 내적인 경배와 복종으로 우리의 모든 존재를 향하게 하는 일을 조용히 계속해서 실천함으로써 가능하다.
내적 지향의 정신적인 습관들이 형성되어야 한다. 수주, 혹은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의 실천, 시행착오와 실패, 그리고 복귀가 있어야 비로소 은밀히 하나님께로 향하는 마음속의 움직임이 제법 꾸준이 일어날 수 있다. 로렌스 형제가 발견한 것처럼 그 일은 단순하긴 하지만, 우리가 그 과정에서 꾸준함을 얻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시작해 보라, 의자에 앉아 이글을 읽으면서 당신의 전존재를 철저하고도 기쁘게 포기하여, 내주해 계신 하나님께 조용히 그리고 기꺼이 드려보라라. 은밀한 찬양의 탄성속에서, 비록 그 빛이 희미할지라도 겸손한 경외심을 가지고 그 빛을 향해 돌이키라. 그와 함께 감각과 의미를 가진 외부 세계와 계속해서 접촉하라, 여기에는 마음을 비우는 그 어떤 훈련도 없다. 친구들과 더불어 걷고 말하고 일하고 웃어도 된다. 그러나 막후에서는 단순한 기도와 내적인 경배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계속해서 힘써야 한다. 내적인 기도가 당신이 잠들기 전에 하는 마지막 행동이 되게 하고, 잠에서 깨어난 후에 행하는 최초의 행동이 되게 하라.
조용히 돌아가라
처음 시작하는 날, 그 주간 그리고 그 달에는 모든 것이 서툴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 보상은 엄청나게 클 것이다. 서투른 이유는 첫번째 수준에서 우리가 경계하고 노력하며, 우리의 의지를 재확인하는 일을 계속해서 해야하기 때문이다. 고통스런 이유는 우리가 너무 자주 실수하고 하나님을 너무나 오랫동안 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상이 큰 것은 이미 생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실수와 망각이 너무 잣다면 다시 자신을 추스려 자기 반격에 나서는 일을 지체하지 말라. 그리고 당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위치에서 조용히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림으로써 다시 시작해 보라. 상한 마음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 경배 드리면서 이렇게 말하라.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저는 이 모양 이 꼴입니다" 절대로 낙심하지 말고 조용히 하나님께로 돌아가 그의 임재하심 속에서 잠잠히 기다리라.
동시성의 첫째 징조
처음 내적인 기도를 하다보면 우리의 주의력이 외부의 것들과 내주하시는 빛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그래서 어느 한편에 몰두하다 보면 다른 하나를 잃어 버리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그 둘 사이에 어느 하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을 동시에 취하는 것이다. 그것은 순간순간을 잡아매는 예배이자, 생명력있는 기도이며, 삶의 모든 순간의 계속적인 흐름이자 배경이 된다.
이러한 동시성의 첫째 징조는, 하나님을 한동안 망각했다가 회복하는 순간 우리가 그분을 완전히 마아각하지는 않았다는 의식이 있을 때 주어진다. 여기서 일어나는 것은 깨어진 기도의 회복이 아니라 원기를 되찾기 위한 복귀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물결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 우리가 그 물 위에서 아무렇게나 떠다녔다고 한다면, 이제는 수영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 가운데 유순하게 됨
그러나 동시성과 변함없는 기도가 시작되는 시기는 왔다가 사라질 수도 있다. 때로눈 오랜 기간 동안 교대로 우리의 관심을 분산 시키다가 다시 영광스런 능력으로 돌아오기도한다. 또한 우리는 받은 은사를 빼앗기는 내적인 훈련에 복종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 이는 우리의 기도가 성숙해진 것에 대해 눈꼽만큼이라도 영적인 교만이 있게되면, 우리가 더 큰 신임을 얻을 만한 가치가 있을 때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시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이다.
은밀한 기도의 시작은 우리가 주도권을 갖고 우리의 의지로 우리의 습관은 형성한다는 강한 의식을 가지고 출발한다. 그렇지만 성숙한 기도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우리 안에 예비된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만나고 그것의 가르침을 받으며 깨끗함을 입고 훈련을 받고 소박해지고 유순해지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기꺼이 참여할 준비가 될 때,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역사하시고 점차 우리를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은 없다
우리의 영혼이 보다 깊은 수준에서 하나님 안에 계속적으로 거하는 이 단계에 들어서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기술이란 없다. 내적인 기도의 과정들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단순해진다. 처음 몇 주 동안에는 간단한 말로 속삭이듯이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그 말을 자연스럽게 명확한 말로 만들어 보라. "오직 주님의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것입니다" 라고 하든지 아니면 시편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오 하나님,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라고 할 수도 있다.
그 말을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반복하라. 왜냐하면 우리의 기도가 습관이 되어 하나님을 지향하는 두 번째 수준으로 나아가기 가지는 처음에 표면적인 수준에서 의식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이런 내면의 기도를 좀더 오래 훈련하다 보면 더욱 지속적인 찬양과 순종의 습관이 형성되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편안히 주님의 말씀을 청종하게 된다. 비록 말은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전심을 중심 되신 하나님께 쏟을 수가 있게 된다.
그리고 영원이라는 엑스레이 광선을 통해 삶의 어두운 부분을 밝히 볼 수 있게 될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의지를 그분 안에서 완전히 포기하게된다. 왜냐하면 그 빛의 인도하심은 비판적이고 신랄하며 좌우에 날선 검보다 더 예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요구하시지만 동시에 모든것을 다 주신다..
관련 성경구절 요한복음 6:32-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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