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영혼의 고통과 몸부림
어두운 곳에 있다가 밝은 곳으로 나오면 눈이 부셔서 똑바로 뜰 수 없습니다. 어두운 곳에 오랫동안 있었다면 수건으로 눈을 감싸고 나온 다음에 조금씩 빛에 반응하면서 수선을 벗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명하거나 눈을 다치게 됩니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산에서 내려오는데 그 얼굴에 광채가 나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냥 빛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 빛을 보면 즉사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한 빛입니다. 그 빛의 옆에 있기만 해도 빛의 영향을 받아서 다른 사람들이 눈뜨고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해집니다. 그래서 옛날 성인들의 그림을 보면 얼굴 주위에 둥그렇게 빛나는 후광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는 서서히 그 빛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해요. 그 기간은 영혼이 고통을 느끼며 내면이 깨지는 아픔을 맛보아야 하는 기간입니다. 왜냐하면 밝은 빛에 드러나는 나의 모습을 보면 그 추하고 더러움이 얼마나 심한지 고통스럽게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거든요. 그런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빛이신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최용우
2.고통받는 이웃들을 향한 태도
인생의 여정은 고통의 여정입니다. 고통에서 예외인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인생을 살아가며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해석함에는 관대하지만 이웃들의 고통을 해석함에는 너그럽지 못합니다. 나는 억울하게 이런 고통을 당하지만 내 이웃들은 그런 고통을 당함이 당연하다고 간주하는 것입니다.
잠언 기자는 가난한 자를 멸시함은 그를 지으신 창조자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어떤 예술가의 작품을 멸시함은 그 작가 자신을 멸시함인 것입니다. 성경은 창조자는 모든 인생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지으셨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바로 그분의 걸작품들인 것입니다. 가난한 이웃도 동일하게 주님의 작품인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도상에서 전혀 준비되지 못 한 채로 재앙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재앙의 결과도 실로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되고, 어떤 사람은 장애인이 되기도 하도, 또 어떤 사람은 관계의 상실로 평생을 고독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재앙의 결과로 나머지 여생을 어떻게 살아가든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작품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재앙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웃들을 대하는 성도의 마땅한 태도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종종 우리 중에는 이런 이웃들을 진지한 긍휼로 대하기 보다 더 오히려 이들의 재앙을 기뻐하는 잔인함을 보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잠언은 이런 사람들이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고통 받는 이웃들을 향한 합당한 태도는 긍휼 뿐입니다. /이동원 목사
3.고통 받는 남편들
아이들 앞에서 자기를 무시하는 아내 때문에 점점 무기력해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남편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남편들은 “남자는 등뼈 대신 가슴뼈를 지니고 있다.”는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를 이끌어갈 수 있는 등뼈에서 나오는 강한 힘은 지니고 있지 못하면서 그저 마음속으로만 아내가 자신의 권위에 복종하고 존경해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특성을 혹시 자신도 지니고 있지나 않은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남편은 먼저 남편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분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남편은 가정의 지도자로써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면서 삶의 모범을 보이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될 때 남편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하나님이 주시는 변화를 갈구해야겠지요.
이 같은 남편의 헌신과 삶의 변화 앞에서 아내들도 남편의 외형적인 등뼈의 능력 보다는 따뜻한 가슴뼈의 역할에 감동되어 남편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남편이 가슴뼈로 상징되는 사랑의 삶으로 변화될 때 그 가정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넘쳐 날 것입니다. 오늘도 고통 받는 남편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같은 하나님의 원리를 당신 삶 속에 적용하면서 그 고통의 늪으로부터 빠져 나오시기를 소망합니다. 강안삼 장로
4.고통 어루만지기
이해는 깊이 바라보는 과정에서 생긴다.
내가 고통을 받는 유일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의 형제자매들도 고통을 받는다. 그들의 고통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게 되고 우리의 고통은 멎게 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어루만질 수 있다면
이해는 거기에서 생겨난다. - 브라이언 피어스의《동행》중에서 -
* 우리가 겪는 많은 문제는
서로의 고통을 어루만지지 못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자신의 고통은 크고 중하게 여기면서 다른 사람의 고통은
작고 가볍게 여길 때, 서로의 고통 어루만지기는 불가능합니다.
자기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우리 형제자매들'의 마음을
깊이 바라볼 때 진정한 이해도 생겨나고
소통도 가능해집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5.고통의 가치
1973년, 호주 출신 작가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패트릭 화이트’는 특별한 삶을 살았습니다. 일찌감치 영국으로 건너가 열심히 작품을 썼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는 못했습니다. 낙심한 그는 호주로 돌아와 나무꾼이 되었습니다. 깊은 산속에서 생활하며 『행복의 계곡』과 『인간의 나무』 등 많은 소설을 썼습니다. 마침내 사람들의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깊은 계곡에서 나무를 베며 살아가는 삶은 고되지만, 그는 그곳을 ‘행복한 계곡’이라 불렀습니다. 작품을 통해 그는 “인간은 자신이 겪은 고통의 분량만큼 진보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의 나무』라는 작품에서는 “인간은 진정으로 겸손해질 때 하나님과 가장 가깝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고통은 눈에 보이는 것 그 이상입니다. 지금 겪고 있는 그 고통으로 인해 한 걸음 더 나아가십시오.
주님! 고통의 참 가치를 알고 도리어 기대하는 마음을 주소서.
현재의 삶 속에서 겪는 고통이 도리어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을 기대합시다.<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6.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여인
14년 전에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여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고통과 근심은 불행하긴 하지만 좋은 성격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나는 경험했습니다. 물론 고통, 그 자체는 반가운 것이 못 됩니다. 그러나 외부에서 찾을 수 없는 행복을 내심에서 찾게 해 주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행복만을 잡으려고 허둥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행복은 근본적으로 내적인 상태, 내적인 성공을 말합니다. 나는 천국이 우리의 내심에 있다고 하고 싶습니다."
고통은 자신을 이해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자신을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서 우리는 이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행복은 사물을 추구하거나 소유하는 데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행복은 나의 고통에서 그리고 이웃의 고통에 참여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장 20~21)
7.고통은 새로운 기회이다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태어난 비버리 스미스는 특수한 병을 가진 소녀이다.
머리를 다쳐 피가 흘러도, 뜨거운 물에 손이 데어서 화상을 입어도 울지를 않는다. 잘 참아서가 아니라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중추신경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데, 아직 치료방법은 없다고 한다.
이 소녀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울지 않을 뿐 아니라 위험한 것을 자각하지도 못한다. 이런 것을 보면 사람이 아픔을 느낀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혜택인지 모른다. 사람에게 아픔의 자각은 꼭 필요하다.
데이비드 브린클리라는 사람은 "신은 가끔 빵 대신 벽돌을 던져주시는데, 어떤 사람은 원망하면서 그 벽돌을 차다가 발가락 하나가 더 부러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벽돌을 주춧돌로 삼아 기막힌 집을 짓기도 한다"는 명언을 했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인 귀족 세 가족이 가장 안전한 곳을 연구한 결과 오키나와 섬으로 결정짓고 그리로 피신을 했다. 그러나 그곳이 가장 위험한 격전지가 되고 말았다.
어둠이나 아픔이나 고통을 피해 다니기만 하려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대부분 도리어 그것에 삼킴을 당하고 만다. 서양 속담에 "고난은 맞서서 이기고 죄는 피해서 이기라"는 말이 있다.
8.큰 능력인 고통
금세기초 세계의 존경과 사랑을 받던 지휘자가 있습니다. 토스카니니하면 누구나 잘알고 있는 명성있던 지휘자입니다.
그는 원래 첼로 연주자로서 심한 근시로 인해 연주 중에는 악보를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연주 때마다 연주할 악보를 모두 외워서 연주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주회를 앞두고 그 악단의 지휘자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단원들 중에 누군가에게 지휘를 대신 부탁해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그때 악보를 모두 외우고 있던 토스카니니가 선발되어서 임시 지휘를 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세계적 대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만약 토스카니니가 그토록 시력이 나쁘지 않았다면 유럽의 한 첼로 연주자에 불과했었을 것입니다.
시력이 나빠서 악보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악보를 모두 외울 수가 있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세계적인 지휘자로 등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괴롭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고통은 더 큰 능력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토스카니니는 이런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어려울 때 힘되신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해서 불평하지 말자, 좋은 환경만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아담은 에덴동산과 같은 좋은 환경에서도 타락하지 아니했는가. 눈물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리자, 눈물 있는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 더 똑똑히 바라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에게 가까이 오셔서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힘이 되어주신다.”
9.무감각의 고통
일본의 작가 중 엔도 슈우사꾸라는 사람이 (바다와 독약)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일본의 후방 가지 병원에 있던 젊은 군의관 로다는 일본 군부의 명령을 받아 미군 포로를 잡아다가 마취시켜서 생체 실험하는 데 참가했습니다. 처음에는 미군 포로를 잡아서 진단하는 헐하다가 그 포로들에게 병이 들었으니까 수술을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미군 포로가 처음에는 의심하고 거부해 보려고 했77만 적의 의사이든 아군 의사이든 혹은 전쟁 중이든 평화시이든 의사만은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의사에 대한 절대 신뢰로 수술을 승락했습니다. 일본 의사는 미국 포로의 몸을 해부해서 왼쪽 폐 전체를 잘라 내고 오른쪽 폐의 상엽을 절단했습니다. 폐를 얼마만큼 남겨 놓았을 때 사람은 얼마 동안 살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리를 잘랐을 경우에는 얼마 동안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생체 실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73은 로다라는 의사는 그 순간에 자기의 귓가에 반복해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죽였다. 죽였다. '라는 소리가 들려왔고, 또 '나는 책임이 없다. 내가 한 것이 아니다. 누구도 안 할 수 없다. 나와는 상관없다. 나는 책임이 없다. '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이후로 의사는 거의 자아를 상실하고 망령처럼 삽니다. 자기가 잘라 낸 미군 포로의 폐를 보며 그 젊은 의사는 무엇을 생각했겠습니까? 그는 미쳐 버렸습니다. 그가 무서워하는 것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 있던 사람의 폐를 보고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죽인 인간의 일부분을 보고도 무감각하고 괴로와하지 않는 무시무시한 자기의 마음을 보고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지금 코가 원하는 것은 가책이었습니다. 가슴의 고통이었습니다. 마음을 찢는 회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생기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설혹 세상의 재판관이 비록 그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정상을 참작해 줄지라도 이대로는 끝날 수가 없는 것이다. '라는 말을 남겨 놓고 그 작품은 끝납니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엡4:19.20)
10.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미시간 주 서부에 사는 15세 소년이 암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화학 요법은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었지만 구역질이 심하게 나고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소년은 병이 가장 불확실하고 고통스러울 때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머리카락이 빠진 채 학교에 가야 했다. 그런데 학교에 간 소년은 놀라운 일을 발견했다. 소년의 많은 친구들의 머리에도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친구들은 모두 머리를 면도하고 왔다. 그들은 친구의 고통을 줄여주고 친구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 끝에, 친구와 똑같이 머리를 자르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인 감정 이입은 공동체 내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복된 표식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몸의 지체들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손을 내밀어 서로를 돕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서로에게 제공하는 보살핌의 명칭은 사랑이며, 사랑은 결코 자신의 방법만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들 각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히 이해되는 것처럼, 남녀간의 사랑도 계속해서 상대방을 온전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11.이해할 수 없는 고통
핸들리 모울이 더햄 지방의 주교로 있을 때 광산 사고 사망자 170명의 가족들을 방문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는 어떻게 그들을 위로할까 고민하고 있다가 어머니가 준 작은 책갈피를 집어들었다. 그것은 뜨 개질된 천조각이었는데 그 뒷면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글자만 새겨져 있었다. 세상은 뜨개질로 만든 책갈 피마냥 이리저리 얽혀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뒤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선한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를 통해 고통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도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고통들이 있다. 메이드스톤의 주교인 가빈 레이드는 한살 때 낙상으로 척추를 다쳐 병원 출입을 했던 자기 교회 소년에 대하여 말했다. 그 소년은 “하나님은 공평하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가빈 은 이렇게 물었다. “몇 살이니?” “열일곱 살이에요.” “병원 에는 얼마 동안 다녔니?” “십삼 년 동안이요.” 가빈은 다시 물었다. “그래도 하나님은 공평하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니?” 소년은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많은 보상을 해주실 영원한 것들을 준비하고 계시거든요.” 하나님은 실로 영원한 것으로 보상해주신다.
12.위대한 고통
위대한 일을 성취하는 사람은
위대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다.
고통의 해결은 고통의 감지에서 시작되고,
위대한 고통은 그것을 해결함으로써 인간의 자부심을
드높일 수 있는 위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위대한 고통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은
축복을 받았다고...
위대한 고통이라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닐 겁니다. 자기 자신의 고통보다 남의 고통, 그것도 자기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지금 무슨 일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지를 알아채고 함께 아파해 주는 데서 비롯됩니다. 오늘 아침, 가까운 누군가에게
"정말 미안하다. 그래, 그동안 얼마나 혼자서 괴로워했니"라고 말하는 순간이 바로 그 출발점입니다.
13.고통으로 맺은 열매
쾌적하고 아름다운 열대지방이 강한 불굴의 진보적인 사람들의 거주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암시적이다.
개척정신이 풍부한 진보적인 사람들은 어려운 기후와 풍토에 살고 있었다. 사치한 생활은 인내력이 강한 사람을 만들지 못한다. 사람은 고난에 의하여 단련되고 난관을 만남으로 강하게 되며 시련에 의하여 굳은 신앙이 세워지는 것이다.
안일한 환경에서 약하고 우유부단하던 사람도 고통을 맛보게 되면서 성숙되어지고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14.경험해 보지 못한 이야기
감나무에 감이 안 달리면 감나무에 개나 소를 매어 놓았단다.
개나 소를 나무에 매어 놓으면 나무의 껍질이 까지는데, 껍질이 까지라고 일부러 짐승을 매어 놓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껍질이 벗겨진 나무는 위기를 느끼게 되고, 그러면 열매를 잘 맺게 된단다.
친구 목사로부터 듣는 감나무 이야기다. 고난이 삶을 성숙시킨다는 이야기를 그는 어릴 적 듣고 본 감나무 이야기를 통해 하고 있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이야기가 재미있다.
15.고통에서 벗어 나려면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중병에 있는 안티스테네스를 문병했다. "제발 나를 이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게나." 병에 시달린 안티스테네스는 신음하듯 말했다. 그것은 의지의 철학자답지 않은 나약한 모습이었다.
디오게네다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갑자기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빼어들고 친구의 가슴을 겨누었다.
뜻 밖의 사태에 놀란 안티스테네스는 "이 사람아, 벗어나고 싶은건 고통이지 목숨이 아니네."라고 소리치며 병상에서 일어섰다. 디오게네스는 말했다. "그 정신으로 살면 해방되네."
16.고통을 당할 때
수잔이 태어난 지 18개월 되었을 때였습니다. 의사가 심하게 튼 입술을 마취도 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꿰매는 동안 나는 진찰대 위에서 수잔을 붙들고 있어야 했습니다. 국소 마취약을 주사하는 것이 마취약 없이 꿰매는 것만큼이나 아플 뿐 아니라 조직이 뒤틀려 흉터가 남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 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설명해 주려고 해봤자 18개월 밖에 안된 아이가 뭘 알겠습니까? 과연 이 애가 고통과 공포 속에서 얼마나 많은 걸 이해했을까요? 내 딸이 백혈병에 걸리기 이전에 누군가 내 딸에게 방사선과 독한 화학 요법을 사용했더라면 나는 분명 화를 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날이 왔을 때 나는 그것을 기꺼이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더 큰 것을 위해 그것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까닭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하는 고통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당할 때 종종 그 이유들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C.S.루이스는 그의 아내가 죽은 후에 이렇게 썼습니다. "당신의 눈이 눈물로 얼룩져 있는 한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17.고통 중에 감사
성가 작곡가인 웬델 라브레스는 64세 된 할머니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16년 동안 온 몸에 통증이 있고, 사지를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누구보다도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할머니는 신체의 모든 부분이 마비되었어도, 오른쪽 엄지 손가락만은 아직 쓸 수 있다는 엄청난 복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쪽 손은 완전히 굳어 움직일 수 없었지만 오른쪽 엄지 손가락으로는 막대기에 매어 놓은 끝이 두 갈래 난 포크를 사용해 안경을 쓸 수 있었고, 음식을 스스로 먹을 수 있었으며, 빨대를 사용해 차를 마실 수 있었고, 성경 책장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실로 엄청난 노력을 들여 이 엄지 손가락 하나만을 사용함으로써 할머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을 위로하러 온 한 방문자에게 할머니는 말했습니다. "나는 감사할 일이 너무 많아요. 나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았으니 이제는 나의 구주 예수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거할 수 있으며, 그 사랑을 마음껏 느낄 수가 있거든요." 그러자 그 방문자는 의아해 하면서 "때로는 낙심되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주저하지 않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주님이 저를 이 세상에서 지켜주시는 한, 이곳에 누워 만족할 뿐입니다. 또 언제든지 주께서 부르시면 이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18.고통스러운 기도
화가 알베르트와 그의 친구와의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화가 지망생들이었지만 너무나 가난하여서 그림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알베르트와 그의 친구는 오랫동안 궁리한 끝에 한 방법을 찾았습니다. 한 사람이 먼저 그림 공부를 하고, 그동안 다른 한 사람은 돈을 벌어서 그림 공부를 하는 친구를 돕자는 것이었습니다.
알베르트가 먼저 그림 공부를 하기로 하고, 친구는 잠시 그림을 뒤로 하고 일터로 나갔습니다. 한 친구는 열심히 일을 해서 알베르트의 학비를 도왔고,알베르트는 열심히 그림 공부를 했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드디어 알베르트는 이름있는 화가로 성장했습니다. 이제 알베르트의 친구가 공부해야 할 차례입니다. "이제 자네 차례야, 그동안 고생이 많았네. 내 그림이 이제는 꽤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으니 돈 걱정은 말고 그림 공부에 전념하게."
친구는 기쁜 마음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새로운 실망과 좌절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너무나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고 일만 해왔기 때문에 손이 굳어져 세밀한 그림을 그리는 데는 이제 쓸모없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는 실망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친구도 원망하였지만, 결국 그는 신앙으로 슬픔을 이기고 하나님께 오히려 그의 친구를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알베르트는 그림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친구의 화실에 들어가려 할 때, 화실 안에서 들려오는 친구의 기도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흐느끼면서 자신의 현실을 안타깝게 하나님께 호소하며,그러나 알베르트를 용서하고 오히려 알베르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친구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알베르트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문 틈으로 보이던 친구의 거친 손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이 유명한 '기도하는 손'이라는 알베르트의 대표작입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이 기도하는 손의 주인공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19.인간이 겪는 4가지 고통과 해결책
본문: 시편 107편 1-32절
1. 방황과 불안과 목마름의 고통(4-5절)
사람이 방황하고, 불안해하고, 주리고, 목말라하고, 피곤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이유를 대겠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돈을 추구하는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평안하게 살려면 '돈을 추구하는 삶'이 아닌 '돈이 따라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면서 땀을 흘리면 행복이 따라오고, 곧 축복도 따라옵니다.
2. 나쁜 습관에 매인 삶의 고통(10-12절)
내가 즐겨하는 일이 내 가치관을 증명하고, 내가 즐겨 찾는 친구가 내 사람됨을 증명합니다. 자신이 즐겨하는 습관이 나쁘고, 자신이 즐겨 찾는 친구가 나쁘면 과감히 정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습관화를 조심해야 합니다. '좋은 습관을 기르는 것'과 '습관화하는 것'은 다릅니다. 나쁜 습관은 행복을 빼앗아 가지만 좋은 것을 습관적으로 하는 것도 행복을 빼앗아 갑니다.
3. 삶에 대한 의욕 상실의 고통(17-18절)
왜 사람이 의욕을 상실하게 될까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에 대한 지나친 기대' 때문입니다. 목표는 필요하지만 지나친 목표는 금물이고, 기대는 필요하지만 지나친 기대는 금물입니다. 주님께 인정받으려는 것은 기대이지만 사람에게까지 인정받으려는 것은 지나친 기대입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욕망이 크면 주름살은 늘어나고 조만간 의욕상실에 빠지게 됩니다.
4.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고통(26-27절)
평소에는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고난 중에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분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사랑이 많은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의 성공을 보고 시기가 생기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 삶은 내가 나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나를 통제하게 하는 불신적인 삶입니다.
참 믿음이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사는 능력입니다.
위 4가지 고통의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각 고통을 설명한 다음 구절에 해답이 있습니다. "이제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6절)
"이제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13절)
"이제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19절)
"이제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28절)
사람마다 사는 모습이 다르고, 사는 환경과 성격이 달라도 고통이 있다는 점은 똑같고, 사람마다 겪는 고통의 모습은 달라도 해결책이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라는 점은 똑같습니다. 내게 주어지는 고통은 두려워하고 떨어지는 기회가 아니라 기도하고 올라서는 기회입니다.
20.고통이 주는 선물
도스토예스프스키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간질병과 사형수의 고통이었다.
로트레크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를 경멸 덩어리로 만들었던 난장이라는 고통이었다.
생텍쥐페리를 위대하게 만든 것도 그를 일생 동안 대기 발령자로 살아가게 한 평가 절하의 고통이었다.
베토벤을 위대하게 만든 것도 끊임없는 여인들과의 실연과 청신경 마비라는 음악가 최대의 고통이었던 것이다.
고통은 불행이나 불운이 결코 아니다.
고통이란 도리어 행복과 은총을 위한 가장 아름다운 번제물인 것이다.
당신이 지금 지나치게 행복하다면 그것은 곧 불행이다.
당신이 지금 지나치게 불행하다면 그것은 곧 행복이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 비로소 자아를 불사를 용광로 속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며, 용광로 속에서 신의 손에 의해 아름다운 은으로 새롭게 빚어지는 것이다.
- 강유일 <아아, 날이 새면 집 지으리라> 중에서 -
현재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포기하기 보다 행복의 밑거름으로 생각하며 고통을 극복한다면 더 아름다운 행복이 미래를 밝혀 주겠지요.
날이 쌀쌀해지면서 고통 받고 있는 이웃을 생각하게 합니다. 행복한 시간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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