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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삶- 어린아이에게 배우라!

오늘의 메시지

by Bliss Yeo 2012. 4. 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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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다섯 가지 덕

① 자기의 죄를 알아 비천에 거하라.
② 내 죄를 통회하고 사실대로 고백하라.
③ 남이 내 결점을 알고 업신여김을 달게 받으라.
④ 사람의 모욕을 참을 뿐 아니라 달게 받으라.
⑤ 모든 전쟁과 공포를 하나님께 돌리고 내게 돌리지 말라(성 벨나드).

 

나이팅게일의 겸손

 

크리미아 전쟁에 종군하여 많은 호열자 환자를 치료해준 영국의 간호부 나이팅게일은 군인으로부터 광명의 부인이란 이름을 얻었다. 영국이 러시아를 이긴 후 영국 국민은 나이팅게일의 귀환을 고대하며 그 환영 준비에 바빴다. 그러나 나이팅게일은 명예를 즐거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 공로를 자랑하지 않는 겸손한 그녀는 1856년 8월 15일 프랑스 기선을 타고 남 몰래 허스트에 도착했었다.
한 때 국민들은 크게 실망했으나 그의 겸손은 그로 하여금 크게 존경받게 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그녀에게 금강석을 박은 보석 훈장을 수여하고 터키 황제는 값비싼 팔 장식을 보냈다.
영국정부는 성 토마스 병원을 설립하고 25만 불을 주어 그 위대한 공로를 표창했으며 1907년 영국 황제 에드워드는 최고 훈장을 수여하여 그 평생의 공로를 표창했다. 그녀의 영광과 축복은 겸손과 봉사에서 이루어졌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자

 

어떤 청년이 신학자 풀리처에게 묻기를 어떻게 하면 가장 유력한 전도사가 되겠느냐? 하니 그는 만일 그대가 영국에서 제일 보잘것없는 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대를 들어 큰 일을 시키실 것이라 했다.

 

윌리암 케리의 비문

 

인도에 전도한 영국 선교사 케리의 임종 때 곁에 있는 사람이 조용히 묻기를 "당신의 장례식 설교에 성경 어디를 택하는 것이 좋겠느냐" 하니 그는 말하기를 "나 같은 죄 많은 인간에게 무어라 말해 준다는 것부터 과분하게 생각되지만 꼭 말한다고 하면 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을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주의 많으신 자비를 좇아 내 죄를 도말하소서."
한 구절을 보아 달라 하였다. 그의 유언을 따라 쓴 비문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월리암 캐리 1761년생 죄 많고 약하고 능력 없는 벌레인 나는 당신의 긍휼 하신 성수에 기대하고 잠드나이다."

 

스윗든의 겸손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앙의 가정에서 자라고 독신생활로 오직 진리 탐구에만 전념한 스윗든  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는 1774년 3월부터 10월까지의 일기에 신생 경험을 이렇게 썼다.  4월 7∼8일 "나는 남보다 특출한 증거를 가졌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성령이 내 마음을 바칠 때 이 교만이 누구보다 큰 죄임을 깨달았다."

 

프랜시스의 겸손

 

프랜시스 회중 가운데 한 경건한 수도사가 영 안이 열려 천국 보좌 가운데 빛난 좌석이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저 보좌를 차지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천사가 대답하기를 천사가 타락하여 마귀가 되어 쫓겨났는데 하나님께서 겸손한 프랜시스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너무나 신기하여 프랜시스를 시험하려고 하였다. 하루는 선생과 같이 길을 걷게 되었다. "당신은 스스로 어떤 사람으로 생각합니까?"
"나는 세상 사람 중에 제일 악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말이 진실치 못합니다. 세상에 악한이 많은데 어찌 그런 자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악한이 적지 않지만 내가 받은 은혜를 저들이 받았다면 나보다 만 배나 주를 사랑하고 봉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어찌 그들에게 비교할 수 있습니까? 이 말을 들은 제자는 프랜시스의 겸손에 감탄하였다.

 

육영수 여사의 겸손

 

1974. 8. 15 대통령 영부인 고 육 여사를 잃고 온 국민이 슬퍼했다.
붉은 마수 김일성의 지령으로 일본인 문세광의 흉탄에 맞아 쓰러지셨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그의 빈소를 찾아 애도의 머리를 숙이고 영부인의 존귀한 자리이지만 그가 남긴 업적이 더욱 애석하게 하였다.
그 분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고생하는 백성들을 돌봐주고 사랑하여 주었다. 한번은 문둥병자의 손을 만져 주시며 위로하여 주었고 정신박약아와 저능아들을 돌봐주기도 하였다.
또 신체장애자와 양로원에서 외로운 여생을 보내는 노인들을 찾아가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사치스러운 옷을 금하고 혼분식을 장려하시며 친히 밀가루 음식을 잡수시며 서민과 같이 살았다.

 

겸손에 숨은 은혜

 

나의 아들이여, 경건의 은혜를 감추는 것이 그대를 위해서는 더 안전하고 나은 것이다. 그대의 경건을 자랑하지 말라. 그것을 항상 말하는 자가 되지 말라. 그 자랑 속에 그대가 영주하지 말라. 그대 자신을 겸손하게 가지는 것이 언제나 그대에게는 좋은 일이다. 그대와 같이 불완전한 자에게 이 은혜가 임했다는 사실에 자랑보다 오히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자기가 경건하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지 말라. 이는 그 경건이 바로 다음 순간에는 변하여 딴 것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이런 경건의 은혜를 즐겨하거든 은혜가 이를 가지지 못했을 때가 얼마나 슬프고 곤궁했던가를 생각하라! 위로의 은혜를 즐기는 일에 그렇게 의존해 있지 아니하는 영적 생활의 진보를 도모할지어다. 경건의 은혜는 오히려 겸손에서 자라고 겸양과 인내에서 자라며, 기도에 피곤치 아니하며 경건을 위하여 열심을 내는 다른 일에서 자란다.

 

겸손으로 올라가 기쁨으로 내려올 강단

 

어느 젊은 목사가 큰 예배당에서 설교할 기회를 얻어 기쁘고 장한 마음과 교만한 태도를 갖고 강단에 올라가서 설교를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별안간 겁이 나며 말이 어눌하여져서 부득이 중지한 채 올라설 때와는 정반대로 부끄러운 모양과 겸손한 태도로 내려오고 말았다.
 그러자 연로한 장로 한 사람이 목사를 찾아와 위로하며 이렇게 일러주었다.
 "목사님께서 겸손한 마음으로 강단에 올라 가셨더라면 내려오실 때 기쁨으로 내려올 뻔하셨소."

 

겸손은 은총의 보금자리

 

 "겸손이란 마음의 고요함이다. 그것은 탐욕이 없는 상태이며 자신에게 일어난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는 것이다. 또한 해로운 일에 과민 반응하기 않는 것이며 칭찬을 받거나 멸시를 받아도 동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 살아가는 일이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 조용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함으로 써 침묵의 바다와도 같은 평화를 얻을 수 있는 마음이다. 사람이 겸손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은총의 보금자리에 있다는 뜻이다."  /앤드루 머레이

 

겸손을 통한 평화

 

 어느 나라에 정원을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은 정원에 있는 모든 나무, 풀, 꽃 하나 하나를 정성으로 가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이 아침에 정원을 나가 보니 모든 나무들이 시들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문 옆에 서 있는 떡갈나무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떡갈나무야, 무슨 일이 있었니? 도대체 왜 다들 시들어 있지?"
 "나무들이 서로 자기가 다른 나무보다 못하다고 실망하고 있어요. 소나무는 자신이 포도나무처럼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포도나무는 복숭아나무처럼 똑바로 서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낙담하고 있습니다. 또 제라니움은 라일락처럼 날씬하지도 못하고, 향기도 없다고 불평입니다."
 그런데 모두 시들어 있는 중에도 유독 생기 있고 아름다운 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꽃은 바로 팬지(Heart-peace)였습니다. 왕은 그 꽃에게 물었습니다. "팬지(마음의 평화)야, 다들 슬픔 속에서 시들어 가고 있는데 너는 작은 꽃이지만 꿋꿋하게 자라는 것을 보니 짐의 마음이 매우 기쁘구나!"
 "네, 고맙습니다. 저는 원래 볼품이 없는 꽃이잖아요, 하지만 왕께서 떡갈나무나 소나무나 복숭아나무 혹은 라일락을 원하셨다면 저를 뽑아 버리고 그들을 심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요. 왕께서 저를 심으신 것은 저를 보시면서 마음에 평화를 느끼기 위함이란 것도 알지요. 그래서 저는 왕께서 저를 보시면서 마음의 평화를 느끼시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왕은 이후로 더욱 팬지꽃을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이 우화의 교훈처럼 겸손한 사람은 어떤 외부적인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지켜갑니다. 또 이웃에게 평화의 마음을 전해주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겸손의 덕

 

성 어거스틴에게 기독교의 제일 되는 덕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겸손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그러면 두 번째로 큰 덕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다시 겸손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다시 세 번째로 기독교의 큰 덕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세 번째도 역시 겸손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겸손에 반대되는 것은 교만입니다. 교만은 악덕 가운데 제일 근본되는 덕목입니다. 교만은 악덕의 어미입니다. 겸손은 모든 덕의 근원이 됩니다. 기독교의 겸손이라고 하는 것은 비굴하거나 굽실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한 사람은 오히려 이 우주에서 가장 자유인의 사람이며 왕자이며 공주 같은 사람입니다. 진정한 신사도와 숙녀도는 기독교 신앙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은 특별한 영적인 왕족이고 귀족입니다. 참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지어 주신대로의 자기 자신을 알고 하나님이 지어 주신대로의 자기 자신에 머무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정가 그대로 하나님의 저울에 자기를 달아보고 하나님의 평가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그것이 겸손입니다.

 

겸손의 미덕

 

 인도선교사로 유명한 윌리엄 캐리는 본래 구두수선공이었다. 그가 선교사로 헌신하고 있었을 때 일부 사람들이 "당신은 옛날에 구두짓는 사람이었다" 고 하면서 평가절하하려고 했으나 그는 "아닙니다. 저는 구두를 짓지 못하고 겨우 수선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철저히 주의 은혜를 의지해 살던 사람이었다. 그가 숨을 거둘 때 시편 51편1절을 읽어달라고 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겸손의 종교

 

 어거스틴은 기독교의 종지(종지)를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다고 했습니다. 일본의 내촌감삼 선생은 말하기를 "구원은 회개에서 시작되고, 회개는 겸손에서 시작된다." 라고 했습니다.

 

겸손이 그린 '모나리자 미소'

 

 1500년경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있었던 일.
 어느 날 매우 신비스러운 미소를 띤 아름다운 여인이 도시에서 꽤 이름난 화가를 어렵게 만났다. "그림 값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제 초상화를 그려주시겠습니까?"
 여인을 본 화가는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나는 너무 바빠 그림을 그릴 수 없습니다. 저기 길 건너 초라한 곳에 가면 일거리가 필요한 화가가 있소. 그 사람에게 가보시오."
 '일거리가 필요한 화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였고, 여인은 모나리자였다.

 

 겸손이 낳은 상대성 이론

 

 아인슈타인은 겸손한 사람이었다. 상대성이론 발견으로 크게 성공한 다음에도 대자연 앞에서 자신은 미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아인슈타인에게 "선생님, 선생님의 그 많은 학문과 전문적인 지식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라고 물었다.
 아인슈타인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실험기구에 있던 물에 손가락을 적신 뒤 한 방울의 물을 툭 떨어뜨리며 말했다.
 "나의 학문은 바다에 비유한다면 이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겸손이란

 

빌립 네리는 16세기의 아주 훌륭하고도 지혜로웠던 그리스도인이었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교황은 로마 부근 수도원에 있던 어느 수련 수녀가 갈수록 명성을 얻게 되자 네리를 시켜 그 이유를 조사하도록 했다. 그녀는 성녀로서 평판이 나 있었다. 네리는 노새를 타고 한겨울 진흙과 수렁 속 길을 달려 수도원에 다다랐다. 그는 사람을 시켜 그 수련 수녀를 오도록 하였다. 그녀가 방에 들어왔을 때, 그는 그녀에게 오랜 여행 때문에 진흙범벅이 된 그의 신발을 벗기라고 말했다. 그녀는 화가 나서 뒤로 물러나서는 그런 천한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토록 명성을 얻고 있는 자신이 그런 일을 요구받다니, 그녀는 생각만 해도 화가 났다. 네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 수도원을 떠나 로마로 돌아왔다.
그는 교황에게 말했다. "이젠 놀라실 것 없습니다. 거기는 성녀가 없어요. 왜냐하면 겸손이 없기 때문입니다." 뜻밖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겸손을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 바라지도 않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은 겸손을 연약한 것으로 간주한다. 사람들은 그들의 실수를 인정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겸손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그러나 주위의 사람들이 주님과 같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겸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온전히 전적으로 의탁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겸손의 의는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에서 얻어진다. 그것은 친구로서, 용서와 자비의 유일한 공급처로서 그리고 인생의 모든 중요한 결정의 때마다 상담과 안내를 하시는 분으로서 날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겸손하게 십자가를 지라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즉,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기다리며, 또 새날이 시작되면 또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낙타는 당신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짊어질 수 있을 만큼 당신에게 짐을 얹어 주십니다. 이 때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짐을 받으십니까? 낙타와 같은 겸손한 모습입니까?
 새에게 날개는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날 수 있고, 배는 그 돛이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항해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짐이 되나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천국으로 향하게 만든다.

 

겸손한 삶

 

 저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장소에 가 본 일이 있습니다. 케네디가 죽고 나서 기독교의 어느 잡지에 이런 기사가 실렸었습니다. '그렇게도 젊고 그렇게도 멋있고 그렇게도 용기 있는 뉴 프론티어의 기수가 그렇게 갑자기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다니' 그리고는 그 잡지에 계속해서 하는 말이 'You may be the next (당신이 바로 그렇게 될지 모른다.)'라고 경고를 했습니다.
돈이 많아서 세계 지상에서 제일 영화를 누렸던 팔레비 왕도 이 지구상에서 몸둘 곳이 없었고, 페론이라든가 포카사라든가 아민이라든가 소머사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우리 눈앞에서 하나 둘씩 갑자기 사라져 갔고, 인류의 거성들과 한 때는 세계를 주름 잡던 사람들이, 그 중심에 전혀 하나님을 모르던 그 많은 사람들이 낮게 누워서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히틀러의 무덤에도 가 보았습니다. 또 스탈린의 딸은 미국에 망명해서 스탈린이 죽는 최후의 모습에 대해서 증언하기를 '무엇을 본 것처럼 무섭게 눈을 부릅뜨고 무엇을 잡아당기려고 하는 그런 모습으로 소리를 지르고 분노하며 미친 사람처럼 행동과 표정을 하고 죽어 갔다.'고 했습니다. 스탈린도 그렇게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권세에 대해서 겸손해야 하고 자기의 학문에 대해서 겸손해야 하고 자기의 부에 대해서 겸손해야 하고 젊음에 대해서 겸손해야 하고 미모에 대해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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