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구약 연구에는 구약 개론, 정경론, 사본학 등 비판적 연구와, 구약사, 신구약 중간사 등 역사적 연구와, 구약 본문을 해석하는 주석적 연구와, 구약신학 등 신학적 연구가 있다.
구약 총론 혹은 구약 개론(Old Testament Introduction)은, 예전에 구약의 언어(히브리어, 아람어), 고고학, 지리, 역사, 문화와 풍습 등을 포함하여 구약 이해에 필요한 모든 기본적인 내용을 연구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 주로 구약의 영감, 정경성, 본문(text) 등에 대해 논하는 일반적 개론(General Introduction, 총론)과, 구약 각 책의 저자, 목적, 특징적 주제와 각 장의 주요 내용 등에 대해 논하는 개별적 개론(Special Introduction, 각론)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초대교회에도 성경의 영감이나 정경성을 부정하는 이단이 있었다. 주후 2세기 발렌티누스는 모세 오경과 선지서의 어떤 부분을 가짜라고 주장했고, 3세기의 포피리는 다니엘서가 다니엘이 쓴 것이 아니고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 때에 쓰여졌다고 주장했다. 종교개혁시대 이후 성경에 대한 비평적 연구는 더욱 많아졌다.
근세에 최초의 비평적 구약 개론을 쓴 사람은 18세기 말 아이히혼(J. G. Eichhorn)이다. 그는 ‘현대 구약 개론의 아버지’라고 불리운다. 그는 구약 정경, 본문, 및 각 책의 기원과 발전 등을 다루었다. 19세기 이후, 그라프-퀜넨-벨하우젠(Graf-Kuenen-Wellhausen)으로 이어진 소위 ‘문서설’ 이론은 구약학계를 지배하였다. 벨하우젠은 모세 오경이 주전 9세기의 여호와 문서(J)와 주전 8세기의 엘로힘 문서(E)와 주전 7세기의 신명기 문서(D)와 주전 5세기의 제사장 문서(P)가 혼합하여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 후 시대에 편찬되었다고 주장하였다.
20세기에는 궁켈(Gunkel)이 주창한 양식비평(Form Criticism)이 새로운 연구 방법으로 등장하였다. 궁켈은 구전(口傳)의 역사와 그것이 자료화된 때의 삶의 정황(Sitz im Leben)과 그것들의 문학적 양식(장르)들을 연구함으로써 구약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하였다. 1965년 아이스펠트(O. Eissfeldt)는 벨하우젠의 문서설과 궁켈의 양식비평을 사용하여 구약개론을 썼다.
이런 자유주의적 구약 연구에 대항하여, 19세기에 헹스텐베르크(E. W. Hengstenberg), 헤베르닉(H. A. C. Haevernick), 카일(F. Keil), 알렉산더(J. A. Alexander), 그린(W. H. Green) 등은 보수적 입장에 서서 성경의 진리를 옹호하였고, 20세기에는 영(E. J. Young), 엉거(M. F. Unger), 아처(G. L. Archer, Jr.), 해리슨(R. K. Harrison) 등이 보수적 입장에서 구약 개론을 썼다.
구약의 영감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다. 영감(靈感, inspiration)이란, 성경의 인간 저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내용들을 잘 이해하고 오류 없이 기록하게 하신 성령의 독특한 감동과 간섭을 가리킨다.
영감의 증거
구약의 영감은, 첫째로, 구약을 기록한 모세와 선지자들의 권위와 역할에서 증거된다. 모세와 선지자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민수기 12:6-8,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열왕기상 22:14, “미가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경을 기록하라고 명령하셨거나 성경을 기록하도록 섭리하셨다. 출애굽기 34: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신명기 31:24,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예레미야 30: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네게 이른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성경을 기록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나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그의 섭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기록되도록 성령으로 감동하시고 지도하실 것을 당연히 포함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의 기록을 실수투성이의 인간에게 맡겨두셨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다. 그가 특별계시를 주실 때와 같이 그 내용을 기록하게 하실 때도 성령의 비상한 감동과 지도하심을 주셨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둘째로, 예수께서는 친히 구약의 영감성을 증거하셨다. 그는, 당시의 정통 유대인들과 같이, 구약이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를 가진 영감된 책으로 확신하셨다. 마태복음 4:4, “기록되었으되.” 요한복음 10: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마태복음 22:43,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셋째로, 주의 사도들도 구약의 영감성을 증거하였다.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데오프뉴스토스 θεόπνευστος)이라는 원어는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이라는 뜻으로 성경의 영감, 신적 기원 및 신적 권위를 보인다. 베드로후서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마태는 시편 78:2을 인용하면서 선지자의 말씀이라고 증거하였다. 마태복음 13:35,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베드로는 시편을 인용하면서 성령의 말씀이라고 증거했다. 사도행전 1:16,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영감의 범위
성경 영감의 범위는 성경 전체, 즉 성경의 모든 책들, 또 각 책의 모든 부분, 심지어 글자들까지도 포함한다. 이것을 ‘완전 영감’ 혹은 ‘축자(逐字=글자) 영감’(verbal inspiration)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책이 영감되었고, 성경의 교리적, 윤리적 내용뿐 아니라 역사적, 지리적, 혹은 과학적 사실까지도 영감되었다. 또 성경의 단어까지도 영감되었다. 사상은 단어를 통해 표현되고 전달되기 때문에, 성경의 영감은 글자 영감이어야 한다. 단어의 오류는 사상의 오류를 초래할 것이다. 성경에서 글자의 오류를 허용하면 결국 성경의 신적 권위성이 파괴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다(마 5:18). ‘일점일획’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י나 ו 같은 글자를 가리킨다. 비록 이 말씀이 과장적 표현이라 할지라도, 주께서 하신 말씀의 뜻은 성경의 지극히 작은 부분도 하나님의 섭리와 영감 가운데 주어졌다는 것이다.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말했다(딤후 3:16). 모든 성경은 성경의 모든 책과 각 책의 모든 부분을 포함한다. 또 그는 갈라디아서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네 자손들’이라고 표현하지 않으시고 ‘네 자손’이라고 표현하셨음을 언급했다(갈 3:16). 이것은 성경의 단어가 단수명사냐 복수명사냐 하는 문제까지도 중요함을 보인다. 이것은 성경의 영감이 글자에까지 미침을 증거한다.
영감의 방식
성경 영감의 방식은 우리가 다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이다. 그러나 그것은 때때로 ‘유기적(有機的) 영감’(organic inspiration)이라고 표현된다. 유기적 영감이란, 하나님께서 성경 저자들을 사용하실 때 단순히 받아쓰는 도구가 아니고 인격체로 사용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때로는 성경 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썼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경우들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문학적 활동들을 사용하시면서 그들을 인격적으로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이 기록한 책은 그들의 독특한 문체, 성격, 타고난 재능, 교육 정도 등을 반영한다. 그러나 그러할지라도 그들이 기록한 내용은 하나님의 생각을 반영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 자체가 유기적 영감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말과 지식에 능한 모세를 사용하셨고, 시적 재능과 지혜를 가진 다윗과 솔로몬을 사용하셨다. 구약의 성문서들은 인간 저자들의 참된 시들이요 기도들이요 찬양들이었다.
또 성경 저자들은 때때로 다른 기록을 하나님의 진리를 확증하는 보조 자료로 참조하거나 인용하였다. 민수기는 “여호와의 전쟁기”와 어떤 시인의 시를 인용했고(민 21:14, 27-30) 여호수아와 사무엘하는 ‘야살의 책’을 인용했다(수 10:13; 삼하 1:18). 역대기는 “옛기록”(대상 4:22),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갓의 글”(대상 29:29), “선지자 나단의 글과 아히야의 예언과 선견자 잇도의 묵시책”(대하 9:29), “선지자 스마야와 선지자 잇도의 족보책”(대하 12:15), “선지자 잇도의 주석책”(대하 13:22), “예후의 글”(대하 20:34), “열왕기 주석”(대하 24:27), “이스라엘 열왕의 행장(行狀)”(대하 33: 18), “호새의 사기(史記)”(대하 33:19) 등을 언급한다.
그러나 모세오경과 이방 법전들(함무라비 법전 등)의 내용적 유사성을 모세가 이방 법전을 참고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성경의 신적 권위와 영감을 모독하는 생각이다. 모세의 법들과 이방 법들의 유사성은 모세 시대 이전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 공통적 법들에 기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영감의 결과--성경의 무오성(無誤性, inerrancy)
성경 영감의 결과는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이다. 성경 무오의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로, 그것은 성경 원본에 오류가 없음을 의미한다. 성경 사본이나 역본에는 상이점과 오류가 있지만, 성경 원본은 무오하고 그 본문은 하나님의 섭리로 순수하게 보존되었다고 본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8, “옛 하나님의 백성의 모국어였던 히브리어로 된 구약과, 기록 당시 여러 나라에 매우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던 헬라어로 된 신약은 직접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으며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으므로 믿을 만하다. 따라서 종교상 모든 논쟁에서 교회는 최종적으로 그 성경에 호소한다.”
둘째로, 성경 무오는 성경의 모든 역사적, 교리적, 윤리적 진술에 오류가 없음을 의미한다. 성경의 역사적 사실들은 성경계시의 기본적 내용이므로, 만일 그것들의 정확성과 신빙성이 부정된다면, 그것들에 근거한 성경 교리들도 손상되고 말 것이다. 성경이 증거하는 역사적 내용들과 성경이 계시하는 교리들과 윤리들에는 오류가 없다. 바울은 ‘나는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는다’고 말하였다(행 24:14).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다 믿고 다 지켜야 한다.
셋째로, 성경 무오는 성경에 오류처럼 보이는 난해 구절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성경에는 서로 다르게 보이는 구절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난제(難題)이고 오류는 아니다. 오류는 오류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고, 명확히 잘못이라고 확인되고 증명된 것이어야 한다. 성경의 모든 난제에는 어떤 가능한 설명이 있다. 성경에 증명된 오류는 없다.
성경 무오의 증거는 무엇인가? 첫째로, 성경의 신적 권위는 성경의 무오성을 증거한다. 예수께서는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라고 선언하셨다(요 10:35). 성경의 이런 신적 권위는 성경의 무오를 증거한다. 만일 성경에 오류가 있다면, 성경은 신적 권위를 가질 수 없다. 아무리 작은 부분의 오류를 말한다 할지라도, 성경의 오류를 말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성경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성경의 신적 권위성은 여지 없이 파괴되고 만다. 자유주의 신학이 바로 그런 일을 했다. 성경의 오류를 말하며 출발한 자유주의 신학은, 단순히 성경의 지엽적 사실이 아니라 성경의 근본적 사실들과 교리들을 파괴하였다.
둘째로, 성경의 축자적(逐字的) 영감은 성경의 무오성을 증거한다. 성경은 글자까지 영감된 책이다(마 5:18; 딤후 3:16; 갈 3:16). 성경의 영감이 과연 성경의 모든 책에, 각 책의 모든 부분들에, 심지어 단어와 글자에까지 미친다면, 성경에서 오류의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되고 만다. 축자적 영감과 배려가 있는 곳에 어찌 인간의 어떤 오류가 허용될 수 있겠는가?
셋째로, 성경의 독특한 목적은 성경의 무오성을 증거한다. 성경의 목적은 한마디로 죄인의 구원이다. 구원은 칭의와 성화를 포함한다. 구원은 진리와 비진리, 의와 불의, 생명과 죽음,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일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고 중대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목적을 위해 성경을 주셨다. 시편 19:7-8,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바울은 성경이 죄인으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며,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증거했다(딤후 3:15-16). 만일 성경에 오류가 있다면, 성경의 이러한 독특한 목적은 실패하고 말 것이다.
성경에 실제적으로 오류가 있는가?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에 자연 현상에 대한 어떤 서술을 과학적 오류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욥기의 ‘부은 거울 같은 견고한 궁창’(욥 37:18)이라는 표현을 오류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과학적 서술이 아니고 통속적, 시적 서술이다.
또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에 많은 역사적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그것들 중 다수는 고고학적 발견들로 반증(反證)되고 오히려 성경의 역사성이 증거되었다. 그러므로 현재의 매우 제한적인 역사 지식으로 성경을 비판하는 일은 옳지 않다.
또 어떤 이들은 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일부다처의 생애, 노예 제도, 가나안 족속을 진멸함, 시편의 저주시들 등을 도덕적 오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옛시대의 도덕적 정도를 보고 임시로 허용하신 것과 그가 도덕적 선으로 인정하신 것과는 다르다. 또한 인간의 개인적 보복과 하나님의 공의의 선언과 시행도 다르다.
또 어떤 이들은 신약 저자들이 구약을 자유롭게 인용하거나 해석한 것을 오류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인용과 해석이 원문의 참된 의미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오류라고 볼 수 없다.
또 어떤 이들은 성경의 역사적 보도들의 불일치를 오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일 그러한 것이 전체적 서술과 부분적 서술의 차이, 자세한 서술과 간략한 서술의 차이, 혹은 강조점의 차이 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면, 그것들은 오류라고 볼 수 없다.
성경 무오의 교리는 교회의 역사적 교리이다. 어거스틴은 제롬에게 쓴 편지에서 “나는 [성경]의 저자들의 어느 누구도 어떤 점에서나 기록상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고 매우 확신합니다”라고 썼다. 루터와 칼빈도 성경의 신적 권위와 무오를 믿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성경의] 모든 책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믿음과 생활의 규칙이다”(1:2), “[성경의] 무오한 진리와 신적 권위에 대한 우리의 완전한 납득과 확신은 우리 마음에 그 말씀으로 또 그 말씀과 함께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면적 활동으로부터 온다”라고 진술하였다(1:5).
오늘날 성경 무오의 교리는 기독교와 자유주의 신학을 구별하는 잣대가 되는 중요한 교리이다.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자유주의 신학사상은 기독교의 근본을 파괴하는 이단이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생활에 정확무오한 규칙임을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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