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말라야 물을 찾고, 배가 고파야 먹을 것을 찾으며, 졸려야 자려고 하고, 불안해야 안전한 곳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외로워야 사람을 사귀려고 하고, 심심해야 이야기거리든 뭐든 놀 거리를 찾고, 자기가 남들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자각을 해야 노력을 하기 시작하는게 보통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인간에게 모든 것이 충족되면 그 인간은 동기를 상실하고 폐인으로 전락해버릴까?
인본주의 심리학자 Abraham Maslow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인간에게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생겨나는 호기심이라는 동기도 있고 자아실현을 해보려는 동기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욕구를 다음 5단계로 구분했다.
첫 번째 단계의 욕구는 생리적 욕구다. 물과 음식, 공기, 적절한 온도 같은 생명체로서 인간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에 대한 욕구다. 이게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으므로 이것을 추구하는 건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특성이다. 하지만 어떤 인간은 이 욕구가 충족이 되어도 이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집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의 부모세대는 일상적인 보릿고개(가을에 추수한 쌀은 다 떨어지고, 봄에 심은 보리는 아직 거두지 못해서 먹을 식량이 없는 시기)나 전쟁의 궁핍함을 뼈저리게 경험했기에,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경제가 성장한 지금에도 먹고사는 문제만을 최고로 치는 경우가 있다. 또 어떤 인간은 나중에는 보다 높은 단계의 욕구를 위해서 이런 기본 욕구마저도 무시하기도 한다. 간디처럼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구현하기 위해서 단식을 하는 사람이 그런 경우이다.
욕구의 두 번째 단계는 안전에 대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불안과 공포로부터 해방되고 편안하게 발뻗고 지내고 싶은 욕구이다. 인간 문명은 어떤 면에서는 바로 이 안전 욕구를 추구하기 위해 시작되었을 것이다. 한명이 있는 것 보다는 10명이, 10명 보다는 100명이 함께 있을 때 인간의 힘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더 강력해지니까 말이다. 그 결과 이제 인간의 가장 큰 적은 인간 뿐인 상황이다. 이것 역시 생존에 필수적인 욕구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욕구를 충족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역시 이 단계에 집착한다. 6.25 전쟁을 경험한 우리 부모세대의 안보공포증은 레드컴플렉스는 어떤 면에서는 이런 집착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안전을 포기하면서 까지 다른 욕구를 추구하기도 한다.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불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들이나, 과학연구를 위해서 극지나 우주탐험까지 자원하는 과학자 등, 그런 경우는 주변에 아주 많다. 불안을 피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는 강박신경증은 바로 이 단계에 집착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까지 충족되면 사람들은 세 번째 욕구인 소속감과 사랑에 대한 욕구로 넘어간다. 이것은 외롭게 살기 보다는 누군가와 동료가 되거나 연결되고 싶어하는 욕구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구이기도 하다. 물론 이 욕구에만 집착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남에게 거절당하거나 배척당할까봐 심하게 불안해하는 의존성 성격장애도 그렇고, 경계선 성격장애도 그와 비슷한 증상이다.
네 번째 단계는 자존감의 욕구이다. 먹고 살 걱정도 없고 위험도 별로 없고 친구도 있다면, 이제는 나 자신의 존재가치를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고개를 든다. 내가 얼마나 유능한 존재인지, 내가 얼마나 안정되어 있고 의지할만한 사람인지를 남들에게 승인받으려는 욕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다. 이것은 자신의 존재의미와 자기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이 대답은 남들의 승인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기준에 의한 승인이고, 거기에는 자기가 속한 사회와 인류와 자기의 관계에 대한 성찰도 포함되어 있다. 위인들은 대부분 이 단계까지 진행한 사람들이다.
이 욕구의 단계는 피라미드 형태로 나타난다. 맨 하위단계는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고, 그 다음 단계는 하위단계를 극복한 인간들만이 추구한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욕구추구의 탈락자들이 나오면서 맨 윗단계인 자아실현 욕구를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극 소수에 불과하게 된다. 당신은 어디까지 갔나?
참고: Maslow의 다른 욕구모형에서는 자존감 욕구와 자아실현 욕구 사이에 인지적 욕구(세상에 대한 지식을 쌓고 이해를 넓히려는 욕구), 심미적 욕구(대칭이나 질서, 아름다움을 경험하려는 욕구)를 집어넣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