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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의 임명 (여호수아 1:1-9)

명설교

by Bliss Yeo 2011. 1. 6. 22:00

본문

여호수아의 임명 (여호수아 1:1-9)

이제 여호수아가 존귀하게 되고 위대한 능력이 그의 손에 주어진다. 그것은 존귀와 능력의 근원이시며 열왕을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무한의 지혜자가 그에게 지시하시며, 모든 위로의 하나님께서 그를 격려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대해서 모세에게 이미 말씀하실 일이 있었지만(민 27:18), 모세에게 대하시듯이(레 1:1) 직접 "회막에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회막이란 여호수아가 모세와 같이 일하면서 자신을 하나님께 현신(現身)하는 법을 배우던 곳이다(신 31:14). 비록 엘르아살이 판결의 흉패를 가지고 있어, 일이 있을 때마다 거기에서 묻고 대답을 얻도록 되어 있었지만(민 27:21),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더욱 격려하시기 위해서, 어떤 사람에게는 환상이나 꿈으로 말씀해 주시는 것을 그에게는 직접 말씀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세워진 규례를 따르도록 하시며 그것을 통해서 자기를 섬기기를 원하시기는 하지만, 하나님 자신은 그것에 매여 있지 않으시며, 이런 것들이 없이도 백성에게 자신을 알게 하시며, 사람의 귀가 아니라 마음에다 말씀하시기도 하신다.

여호수아의 정치적 소명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Ⅰ. 때: "모세가 죽은 뒤" 다. 모세가 죽자 여호수아는 모세의 생전에 위임을 받은 대로 곧 통치직을 맡았다. 비록 며칠이라고 해도 통치의 공백 기간은 결과적으로 좋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위한 30일 간의 애도 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가나안을 향해서 진군하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는데, 그것은 유대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 기간 동안은 여호수아가 슬픔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교제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그는 물론 소망이 없는 자들처럼 그렇게 슬퍼하지는 않았겠지만). 비록 금싸라기 같은 시기라고 해도 이 엄숙한 중단과 일개월 여간의 전 회중의 휴식기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모세를 추모하면서 그의 죽음을 슬퍼할 뿐만이 아니라, 그의 통치 40여년 간에 모세에게 대해서 잘못했던 그들의 행동들을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었다.

Ⅱ. 여호수아가 등귀하기 전에 차지하고 있었던 위치. 그는 모세의 심부름꾼(minister), 즉 모세의 개인적 시종으로서 모세가 하는 일을 도와주는 자였다. 70인 역에서는 이 말을 u`pou/rgoj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 말은 모세 아래에서 그의 지시와 명령을 받는 일꾼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여호수아는 존귀를 얻기 전에 오래도록 그 일에 대한 훈련을 받았다. 우리 주 예수님도 스스로 종의 형체를 취하셨으며,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이 들어 올리셨다.

2. 여호수아는 순종과 명령을 따르는 훈련을 받았다. 순종하는 법을 배운 사람이 가장 적합한 지도자이다.

3. 모세를 계승할 사람은 모세를 깊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야 했다. 즉 "그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오래 참음" (딤후 3:10)을 충분히 알고, 그와 같은 태도로 살아가며, 같은 정신으로, 그리고 같은 보조로 행동할 수 있어야 같은 일을 떠맡을 수 있는 것이다.

4. 여기서의 여호수아는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도 모세의 종이 되었으니, 그는 율법 아래에서 율법의 모든 의를 이루셨기 때문이다.

Ⅲ.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주신 소명. 그것은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

1. 그를 통치자로 부름에 대한 신중한 배려가 있었다. "내 종 모세가 죽었다" (2절). 모든 선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들이다. 그것은 기분 나쁜 일이 아니라 명예스러운 일이다. 아무리 위대한 인간이라도 마찬가지다. 천사들도 하나님의 심부름꾼들이다. 모세는 이 위대한 일을 위해 부름을 받았고, 하나님의 집의 청지기였으며 그에게 부가되는 책임 수행에 있어서 그는 자기를 위해서 봉사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고용한 하나님을 섬겼다. 그는 종으로서 충실했으니, 아들을 염두에 두고 일했다. 히브리 3장 5절에서는 그가 한 바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 하기 위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자기의 종들을 택하시며, 그 큰 날(심판날)에 그들을 인정하실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종이며 아까운 사람이었지만 그도 죽었다. 하나님은 자기가 사용하시는 도구가 어떤 것이든 그것에 구애받지 않으신다고 하는 것을 보이시기 위해서 자기 일꾼을 바꾸신다. 종으로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다 했을 때 모세는 "그의 일을 쉬며, 그의 주인의 기쁨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의 죽음에 유의하셨다는 점을 주목하자.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귀한 것이다(시 116:15).

2. 소명의 내용: 그러므로 이제 "일어나라."

(1) 모세는 죽었지만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일어나서 가라" 는 뜻이다. 슬픔 때문에 씨 뿌리는 일을 방해받을 수는 없으며, 가장 큰 도움의 손길이 없어졌다고 우리가 약해져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자기가 해야 될 일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그 일을 감당할 적당한 도구를 찾아내시거나 만들어 내시기 때문이다. "종" 모세는 죽었다. 그러나 "주인" 되신 하나님은 죽지 않으신다. 그는 영원히 살아 계신다.

(2) "모세가 죽었기 때문에 그 일은 모세의 후계자로서 너에게 맡겨진다. 따라서 너는 위임받은 자이다. 그러므로 모세의 자리를 너는 대신해야 된다. 일어나 그 일을 하도록 하라" 는 뜻이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유익한 사람들이 없어짐은 남은 자들로 하여금 선한 일을 더욱 부지런히 하도록 일깨워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런 저런 사람 모두 죽었으니, 우리도 곧 죽는다. 그러므로 때가 아직 낮일 동안에 더 열심히 일하도록 하자.

[2] 유익한 일꾼들이 그 위치에서 죽어갈 때 또 다른 사람들이 이들을 대신해서 일어나 중단되었던 일을 계속해 나가게 된다는 것은 큰 위로가 된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시작했던 일을 끝내기 위해서 일어나야 했다. 이렇게 해서 후세대는 이전 세대의 노력에 참여하게 된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여호수아되신 그리스도도 우리들을 위해서 모세의 율법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 즉 의롭게 하시며(행 13:34) 거룩하게 하시는(롬 8:3) 일을 이룩하신 것이다. 모세의 생애는 여호수아를 위해서 길을 닦아 놓는 것이며, 그가 해야될 일을 위해서 백성을 준비시켜 놓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율법도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 가는 몽학선생 노릇을 한 것이며, 모세의 죽음은 여호수아를 위한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우리가 첫 남편 율법에 대해 죽은 것은 "그리스도와 결혼할" 수 있기 위해서이다(롬 7:4).

3. 그가 소명받는 구체적 일,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라, 네가 보는 이 강, 너희들이 진을 치고 누운 이 강의 언덕을 넘으라." 이것은 여호수아의 신앙에 하나의 시련이었다. 이 강을 건널 만한 길을 눈으로는 전연 볼 수 없는 때에, 또 적어도 이 장소 그리고 이 시간으로서는 강 언덕 전부가 물이 차고 넘칠 때(3:15), 그가 백성들에게 강을 건너갈 준비를 하라고 하는 명령을 내릴 것인가 아닌가, 이 문제는 그의 신앙에 대한 시련이었다. 강을 건네줄 나룻배가 있는 것도 아니며, 다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건너라고 명령하신 그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서 길을 열어 주실 것이라고 믿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요단을 건너는 것은 가나안으로 가는 것이다. 그것은 모세도 하지 못한 일이 아닌가!(신 31:2) 이와 같이 많은 자녀들을 영광에로 이끌어 가는 명예는 우리 구원의 대장이신 그리스도에게 남겨져 있었다(히 2:10).

4.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는 약속이 여기서 되풀이된다(2-4). "내가 그 땅을 그들에게 주노라. "족장들에게는 "내가 그것을 주겠다" 고 약속되었다. 그런데 지금 제 4 세대가 끝나고,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차고 넘쳐 약속의 이행 시기가 오게 되었으므로, 그것은 실제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준다. 그리로 들어가라. 그것은 모두 너희 것이다" (3절). 즉 "내가 그것을 이미 너희에게 주었도다. 비록 아직 점령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너희 손에 있는 것처럼 확실하다. "그들은 오랫동안 그런 기대 속에서 살아왔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그 땅을 전수할 사람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들 에게니라" (2절). 그들은 이 약속이 주어졌을 그때에 "이스라엘" 이라고 불리워진 야곱의 후손들인 것이다(창 35:10, 12). 이스라엘 자손들이 비록 광야에서 분노를 일으키긴 했지만, 그러나 이들의 조상들 덕분에 남겨져 왔었다. 가나안에 들어가도록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들은 불평 분자들의 자손이었다(민 14:31)

(2) 전수 받을 땅. 동편 유브라데에서부터 서편 대해까지이다(4절). 이들의 죄악이 이 넓은 소유지를 모두 점령하지 못하게 했고, 여기에 언급된 나라들을 모두 소유하지는 못하게 했으나, 이들이 순종만 했었더라면 하나님은 이들에게 이 모든 것을 주셨을 것이며 더 많이 주셨을 것이다. 그 나라들이나 다른 여러 나라들 중에서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대로(행 2:5 이하) 유대 종교에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비록 이스라엘의 나라가 확장되지는 못했다고 해도, 그들의 교회만이라도 확장되었다면 이 약속은 무효화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이 약속이 문자적으로 완전히 성취되지 않았다면, 신자들은 여기에 더 깊은 의미가 있으며, 은혜와 영광의 왕국인 메시야 왕국에서 성취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 그 땅이 허락될 조건.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곧 모세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한 바와 같이 "만일 너희가 내 율례를 지키면," 너희가 복을 땅에 들어가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조건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단서와 제한 아래서만 그것을 취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전제와 약속은 분리되어져서는 안 된다.

(4) "너희가 발로 밟는 모든 땅은 너희의 것이 되리라. "이 말에는 이들의 죄악만 아니라면 이 땅을 소유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 하는 것을 암시해 준다. "너희 발을 내어 딛으라. 그러면 그것은 너희 것이 되리라. "

5. 여호수아를 격려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신 약속.

(1) 그가 부름을 받은 이 위대한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실 것을 확신시키심(5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어 그를 지지하여 강하게 하고 그를 지키며 형통하게 하고 그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를 통과하는 일에 성공시킨 것처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이들을 가나안에 정착시키도록 해 줄 것이다. "

여호수아는 자기가 모세에 비해서 얼마나 지혜와 품위가 모자라는 인간인가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세가 한 것은 그와 함께 하는 하나님의 임재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비록 여호수아가 모세가 가졌던 것과 똑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해도 언제나 동일한 하나님의 임재를 마음속에 가진다면 그는 충분히 잘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세대로 등장하는 목사나 신도들은, 과거의 성도들에게 충족했던 그 은혜를 열심히 사모하기만 한다면 자기들에게도 결코 부족함이 없이 채워질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면 굉장히 큰 위로가 된다. 이 말은 다시(9절) 반복된다. "주 너희 하나님이, 곧 능력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며, 네가 어디로 가든지 그 능력이 함께 하리라."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으로 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어디에 가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며, 따라서 평안과 형통의 길을 구태여 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2) 하나님의 임재가 결코 그에게서 떠나지 않을 것을 약속함. "내가 너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아니 하리라" (5절).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이것을 확신시켜 주었다(신 31:8). 비록 모세는 그를 떠나야 했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하나니 자신이 그의 종 모세가 한 말을 확증하며(사 44:26), 절대로 여호수아를 떠나지 않을 것을 약속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한 때만이 아니라 계속적인 도움을 위해서 일이 더욱더 진행되어 나갈수록 더욱 필요하다. 어느때 건 그가 우리를 버리시면 우리는 끝장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와 함께 하는 한, 우리와 함께해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자.

여호수아에게 이루어진 이 약속은 모든 신자들에게도 적용되며, 탐욕을 막는 근거로도 선용되어야 한다. "네게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히 13:5).

(3) 이스라엘이 모든 원수들을 이기고 승리할 것을 약속함(5절). "너희 평생에 너희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당할 자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가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으랴. "하나님은 그에게 분명한 성공을 약속하신다. 원수들은 그를 대항해서 절대로 머리를 들 수 없을 것이며 끊임없는 성공만이 그의 일생에 따라 올 것이다. 그의 일생의 통치는 승리로 장식되어지게 된다. 여호수아가 오래 전에 백성을 격려했듯이(민 14:9), 여기서는 하나님이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으신다.

(4) 그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 땅을 분배해 주어야 할 것을 말하심(6절). 일을 시작할 즈음에 그 일이 완성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며, 자기가 하는 일이 헛되지 않았음을 목도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은 큰 격려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왜 그가 결단으로 무장하며 담대하게 나서야 했던가 하는 것도, 바로 이 땅을 소유해야 될 이 백성들의 못된 성질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는 이 불만투성이의 백성들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의 전임자의 기간동안에 보아온 대로 이들이 얼마나 다루기 힘든 백성들인가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못된 백성들의 원성을 이기기 위해서도 용기를 내어야 했다.

6.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내리신 책임 혹은 명령.

(1)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지키며, 이 율법을 그의 법도로 삼으라는 것이다(7,8절). 하나님은 율법서를 여호수아의 손에 주신다. 그것은 요아스 왕의 대관식 때 율법책을 준 것과 같다(왕하 11:12). 이 책에 관해서 그는 아래의 책임을 부과받게 된다.

[1] 율법책의 내용을 "주야로 묵상" 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깨닫고 모든 경우에 그것을 적용시켜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의 사업 때문에 말씀의 명상이나 예배를 빼먹게 된다면, 그는 이 당시의 여호수아의 전심전력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율법서가 그의 손안에 놓여져 있다고 하는 것은 굉장한 자신감을 주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아무리 관심할 바가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묵상하기 위한 시간과 여유를 찾아내야 했다. 이 세상의 어떤 일이 우리의 마음을 끈다고 해도 우리는 오직 이 한 가지 필요한 일만은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2] 율법을 그의 입에서 떠나게 하지 말 것이다. 그가 백성에게 내리는 모든 명령과 그에게 상소되어 오는 모든 재판은 하나님의 율법과 부합되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그는" 이 율법에 따라서" 말해야 한다(사 8:20).

여호수아는 모세가 시작한 일을 계속해서 수행해 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그는 모세가 이 백성들을 위해서 해 놓은 구원을 완성시킬 뿐만 아니라 그가 백성들 가운데 수립한 거룩한 신앙도 바로 세워야 한다. 새로운 율법을 만들 필요는 없다. 그에게 위탁된 것을 충실하고 주의 깊게 지켜 나가면 된다(딤후 1:14).

[3] 그는 "이 모든 율법을 준행해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해서 그는 율법을 명상해야 하는 것이다. 단순한 영상이나 혹은 머릿속에 기억하는 것, 혹은 제사장들이 잘 모르는 것을 기억하여 두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한 사람으로 그리고 통치자로서 율법 책에 기록되어 있는 바에 따라 주의 깊게 행동해야 한다. 이제 자기 앞에 놓여진 이 과업을 수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세부 조항의 내용들 즉 전쟁에 관한 율법과 가나안 족들을 멸망시켜야 하는 일과 그 땅을 나누는 일 등등에 대하여 씌어진 바를 주의 깊게 따르며 행동해야 한다. 그는 이것들을 경건하게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여호수아는 위대한 능력과 권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도 누구의 명령 아래 위치하며 그 명령되어진 바대로 행동해야만 한다. 인간의 권위와 주권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하나님의 율법 위에 놓일 수는 없다. 여호수아도 율법에 따라 통치할 뿐만 아니라 그도 그 율법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본을 보임으로써 율법의 존귀와 힘을 보존시켜 나가야 한다.

첫째로 그는 기록된 바를 행해야 한다. 말씀을 듣고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그것을 행해야 한다.

둘째로 그는 기록된 바에 따라서 행동해야 한다. 정확하게 자기가 지닌 율법을 관찰하고, 행동하며 율법이 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그 율법에 일치되게 해야 한다.

셋째로 그는 예외나 보류가 없이 기록된 바에 따라서 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존귀하게 받들어 혈과 육이 기뻐하지 않는 경우에라도 지켜 행해야 한다.

넷째로 이렇게 행동하는 일을 관찰하여 양심을 살피고, 또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모든 기회들을 찾아내야 한다. 모든 복종에는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한 법이다.

다섯째로 그는 자기 자신의 행위에서나 통치 중에 좌로나 우로나 율법에서 치우쳐서는 안 된다. 어느 쪽으로든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미덕은 중용에 있다.

여섯째로 그는 율법에 따라 행하는 일에 강하고 용감해야 한다. 의무를 감당해 나가는 일에는 실망시키는 것들이 너무 많이 있다. 견인불발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끝으로 율법에 대한 순종을 격려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혜롭게 행할 것과 그의 길을 형통하게 해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7,8절).

하나님의 말씀을 규례로 삼고 양심적으로 그 율법을 지켜 행하는 사람에게는 만사가 보다 잘 형통된다. 그들은 가장 좋은 처세술을 가지게 되며(시 111:10) 또한 하나님은 가장 좋은 축복으로 이들에게 베풀어주실 것이다.

(2) 하나님의 약속과 임재로 용기를 얻어, 계속 거기에 머무를 것(6절). "강하고 담대하라. "그리고 다시(7절) "강하고 극히 담대하라" 고 하신다. 또한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고(9절)하는 말로 끝맺는다.

여호수아는 이미 오래 전에 아말렉과의 전쟁에서나 못된 정탐꾼들과 맞서서 가나안의 보고를 할 때 그의 용기를 잘 보여 주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말을 계속적으로 되풀이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신 것이다. 은혜를 입은 자는 거듭거듭 그 은혜를 실천하도록, 그리고 그것을 개발시켜 나가도록 부름을 받을 필요가 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 보시기에 믿음이 없거나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믿지 않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수줍고 자기 자신의 지혜와 힘과 특별히 모세와 같은 위한 사람의 후계자로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 자기는 능력이 없다고 하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자주 "강하고 담대하라. 너의 약점을 의식하고 상심하지 말라. 하나님은 완전한 능력자이시다. 내가 너에게 명한 것이 아니냐?" 라고 반복하신다.

[1] "내가 해야 될 일을 명령했다. 그러므로 아무리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 들이 가로 놓여 있을지라도 그것은 이루어지고 말 것이다. "

[2] 아니 도리어, "내가 너에게 그것을 하도록 명령하고 불렀고 위탁했다. 그러므로 너로 하여금 자신을 가지고 힘을 내어 그 일을 틀림없이 수행해 나가도록 하겠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의무를 수행해 나갈 때 강하고 극히 담대해야 함을 명심하자. 만일 우리가 우리의 눈을 들어 하나님의 약속인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나는 너를 도와 성공하게 하며, 너를 받아 주고 너에게 상을 베풀겠다" 고 하는 말을 듣기만 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용기와 힘을 한없이 줄 것이다. 여호수아되신 우리 주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뜻과 "아버지께로 받은 계명에 순종하여" 고난을 겪으셨다(요 10:18).


여호수아의 통치 시작 (여호수아 1:10-15)

통치를 맡은 여호수아는 즉시 일에 착수한다. 지위를 굳히거나 기쁨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겨주신 직분을 백성들 사이에서 해 나가기 위해서다. 감독의 직분을 원하는 사람과 같이(딤전 3:1) 그는 통치자의 직분을 원하는 자답게 선한 일을 사모해야 하며, 결코 게으름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

Ⅰ. 그는 백성들이 행진할 준비를 갖추도록 명령을 내린다. 그들은 이미 오래도록 현 위치에 진을 치고 있었으므로 진을 옮긴다고 하는 것은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백성의 관리(유사)들은 여호수아의 명령을 받기 위해서 모여들어야 하고 또 나가서 각자의 지파와 가족들에게 명령을 전달해야 했다. 하급 관리들도 최고의 통치자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위치에서 공공의 복리를 위해서 필요하고 봉사적인 인물들이어야 한다. 만일 이러한 관리들이 없었다면 여호수아인들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므로 우리들은 최고자로서의 왕에게 뿐만 아니라, 그에게서 보냄을 받은 관리들에게도 순종해야 할 필요가 있다(벧전 2:13, 14). 이 관리들을 통해서

1. 여호수아는 "삼일 안에 요단을 건너야" 한다고 공포한다. 이러한 명령들은 2장에 나오는 여리고의 사정을 알려고 밀파한 정탐꾼들이 귀환한 후에야 내려졌다고 본다. 확실히 여호수아에게는 "강하라. 담대하라" 고 하는 명령이 그토록 계속 주어질 정도로 세심한 배려와 지나친 주의심의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고로, 그가 매우 담대하게 "너희는 요단을 건너가서 땅을 차지하라" 고 백성들에게 명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을 때,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신실성에 존귀를 돌리는 것이 된다.

2. 그는 백성들에게 수송선을 분비하라고 하지 않고 양식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독수리의 날개로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출 19:4). 그분이 똑 같은 방법으로 그들을 가나안으로 이끌어 들일 것이다. 만나 이외에 다른 음식물들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했던 이들은 정해진 시간 내에 그것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비록 그때까지도 만나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지만(5:12), 그러나 이미 그들은 "사람 사는 땅에 들어 왔기" 때문에(출 16:35) 다른 양식들이 다소간 마련될 수 있었고, 따라서 만나가 풍부하게 내리지 않았으며 또한 광야에서 처음 내릴 때처럼 많이 긁어모으지도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만나는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행진에 필요한 여타 물건들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만나가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음식물들을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어떤 유대인 학자들은 이 말을 상징적으로 이해해서 그들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화해하며 새로운 생활을 살도록 결단하며, 그래서 이 위대한 가나안의 은총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출 19:10, 11 참조).

Ⅱ. 여호수아는 두 지파 반에게 비록 그들의 소유와 가족은 강동편에 두더라도, 형제들과 함께 요단을 건너가야 될 책임이 있음을 환기시킨다. 다른 지파들은 요단을 건너가는 일에 흥미를 느낄지 모르지만, 이들에게 있어서는 이 일은 자기부정(自己否定)의 행동이며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모세가 이들에게 다른 형제들보다 먼저 소유지를 분배해 줄 때 그들과 협약을 체결해 줄 필요가 있었다.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말을 기억하라" (13절). 이들 중 어떤 이들은 이미 모세가 죽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 귀찮은 일을 하지 않으려고 변명이나 발뺌을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이것을 확실히 하고, 비록 모세는 죽었지만 모세의 명령과 그들이 한 약속은 그대로 효력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여호수아는 다음 사실들을 상기시켜 주었다.

1. 그들이 먼저 정착하도록 분배받은 특전.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안식을 주셨다. 그는 너희들의 마음에 안식을 주셨다. 너희들은 먼저 전쟁을 하고 그리고 땅을 분배받도록 기다리는 여타 지파들과는 다르다. 하나님은 또한 너희 가족들, 너희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안식을 주셨다. 이들의 안정은 너희들의 만족이다. 하나님은 이 땅, 이 좋은 땅을 너희들에게 주심으로 안식을 주셨고, 너희들은 만족하고 소유가 풍족하도다. "하나님이 섭리로써 우리들에게 안식을 주셨을 때, 우리는 태만해지거나 교만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된다.

2. 여호수아는 이들에게 자기의 형제들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안식을 얻을 때까지 가나안 전쟁에서 도와주기로 한 약속을 환기시킨다(14,15절).

(1) 이것은 그 자체로 합당한 것이었다. 모든 지파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들은 서로 서로를 하나의 구성원으로 돌봐주는 것이 필요했다.

(2) 이것은 하나님의 종 모세가 이들에게 분부한 것이었다. 그는 이들에게 이 일을 하도록 명령했었고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는 이 명령이 지켜지는지의 여부를 지켜 볼 것이다.

(3) 이 일은 강 동편에 정착지를 정한 큰 죄에 대한 죄책에서 자신들을 구원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민 32:23). 그렇지 않으면 그 죄가 그들을 찾아내고 말 것이다.

(4) 이 일은 모세가 이들에게 소유할 땅을 나누어 준 데 대한 조건이었다. 그러므로 이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그들은 "자기들이 소유한 땅" 에 대해서 자격도 없으며 편안한 기쁨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것이다(15절).

(5) 그들은 스스로 계약을 세웠고 동의했다(민 32:25). "우리 주의 명대로 종들이 행할 것이니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서로서로를 강하게 할 중복된 책임을 지고 있으므로 우리 자신의 안녕 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도 추구해야 한다.


백성들의 성실한 각오 (여호수아 1:16-18)

이 대답은 단지 두 지파 반만이 한 것이 아니라 전체 백성의 관리들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다(10절). 이들은 바로 하나님의 임명을 받아 대표자들이 된 사람들이었고, 여호수아는 이들을 다스리도록 임명된 것이다. 그들은 기꺼이 이 대답을 했고, 기쁨과 결단으로 이 일을 했다.

Ⅰ. 그들은 여호수아에게 순종을 약속한다(16절). 주권자에 대한 복종만이 아니라, 장군에 대한 사명으로서의 순종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 장군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자기 아래에 군인을 둔 사람은 "이들에게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온다" (마 8:9).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도 여기에서 여호수아에게 약속한다.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불평이나 이의 없이 우리가 다행 할 것이오. 당신이 우리를 어디로 보내시든, 그곳이 가장 어렵고 가장 위험한 곳이라고 해도 우리는 가겠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주님 예수께 이러한 충성을 약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우리 구원의 대장이시므로 그가 말씀으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바를 해야 하고, 그의 뜻을 따라 그가 우리를 보내는 곳에 우리는 가야 한다. 여호수아는 자기가 모세에 비해서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가 하는 것을 겸허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모세가 지녔던 그러한 영향력을 주지 못하게 되고, 백성들이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 주지 않을까봐 두려워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여기서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호수아에게도 순종할 것을 약속한다(17절). 사실 이들은 모세에게 순종했다고 자랑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모세는 이들이 목이 곧은 백성으로 알고 있었다(신 9:24). 그러나 이들이 의미하는 바는 자기네들이 모세에게 당연히 했어야 했을 그 순종을 여호수아에게 바치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들 중 얼마는 실제로 모세에게 진심으로 순종했었다. 우리는 죽은 자들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그들을 너무 존경하는 나머지 그들을 계승해서 일하는 산 자들이 이전의 지도자들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존경을 결하거나 해야 될 의무를 빼먹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섭리로써 통치자를 바꾸실 때라도, 양심을 인해서 우리는 계속 순종해야 할 것이다.

Ⅱ. 그들은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함께 계실 것을 기원한다(17절).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가 당신과 함께 계시어 축복하고 형통하게 하며,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같이 당신에게 성공을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권좌에 있는 모든 자를 위해 기도와 간구를 드려야 한다(딤전 2:1, 2). 그리고 우리가 통치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셔 주실 것을 비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을 통해서 우리가 복 받게 되며, 우리의 유익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백성들이 모세에게 순종했던 것과 같이 여호수아에게도 순종하겠다고 하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계셨던 것과 같이 여호수아와도 함께 계실 것이라고 하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은총을 받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존귀와 명예를 돌려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이 일에 조건을 붙인 말로 이해하기도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인지할 때에만 순종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못하겠습니다. 당신이 하나님과 가까이 지낼 동안만 우리도 당신과 가까이 하겠습니다. 우리의 순종이 그 이상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라고 본다. 그러나 이 백성들은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법도에서 조금이라도 이탈하리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았던 고로, 그러한 단서는 필요치 않았다.

Ⅲ. 그들은 여호수아의 명령을 순종치 않거나 혹은 그의 "명령을 거역하는" 사람은 사형에 처한다는 법을 통과시킨다(18절). 이러한 법이 모세 당시에 만들어졌다면 모세를 대항해서 일어났던 모든 반역의 무리들을 예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정의보다는 통치자의 칼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법을 만들어야 하는 데에는 지금 그들이 가나안과의 전쟁에로 들어가게 된다는 특수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전쟁시에는 평상시보다 더 엄격한 군기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선언 속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킬 것이라는 예언을 백성들이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예언은 물론 그리스도에게 관한 것이긴 하지만, 백성들은 여호수아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러므로 여호수아에게 듣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백성 중에서 끊쳐져야" 한다. "그런 자는 내가 벌을 주리라" (신 18:19).

Ⅳ. 그들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맡기신 일을 담대하게 해 나가라고 격려한다. 여호수아가 강하고 담대해야 될 것이라는 마음에서, 백성들은 사실상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서 정확하고, 담대하게, 그리고 기쁘게 그의 명령에 순종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그의 용기를 북돋아 준 것이다. 선한 일을 앞장서서 해 나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따르는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자기의 뒤를 따라 오는 것을 보면, 큰 격려가 된다. 여호수아는 비록 그의 용기가 인정된 바이었지만, 백성들이 그에게 강하라든가 담대하라고 격려할 때 그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커다란 친절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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