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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을의 기도

아름다운 인생

by Bliss Yeo 2012. 11. 1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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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은 푸른 열기들을 죽이고
잎들마다 그 고유의 빛깔로 채색되며
최후의 시간을 준비하기 위하여
조금씩 겸손해지고
조금씩 너그러워지고 있습니다
 
떠나야 할 것은 떠나게 하고
익을 것을 익게하는 가을
오후의 잔잔한  하늘 밑에서
내게 하나의 의미와 영원까지  함께 할
당신을 생각하며 나는 서성이고 있습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홀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
 
삶에 대한 외경과 충일
그리고 고독의 세계로 돌아가는 엄숙함과
높은 곳으로 영혼이 승화 되는 것을 체험하게 하는
이 詩를 읽으면 나는 내 생애에 유일한 
가장 아름다운 열매로 영글어 가고 있는 당신을 생각합니다
 
가을은 소멸의 계절임에 틀림없으나 그 소멸은
위대한 결실을 위하여 필연적으로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의 길임에도 틀림이 없습니다
 
가을
나는 나 홀로 앉아서 자연에 귀기울이고
그 팔 안에 나의 존재를 의탁하며
당신의 뜻대로 쓸모없는 작은 가지들은 잘라내고
오직 마지막으로 춥고 어두운 겨울을
무사히 견디어 나갈 깊은 뿌리 하나
질기게 땅속으로 뿌리 내리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의 말에 순응하려합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행복과
언어로 나열 할 수 있는 나의 재능과
지금 존재하고 있는 존재와
죽음의 근원에 대하여 생각하고
그리고 오직 한 사람을 오래오래
사랑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가을날 모든 것이 떨어져 내리고
우주의 한 모퉁이가 서서히 붕괴되어 가는
자연의 순리 앞에 서면 처연하고 적나라 한
삶의 실체가 가슴 가득히 확대되어 옵니다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외로움과
고통의 뿌리가 우리들의 마음 저 밑바닥에서
고개를 들고 일어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하여 깊이 자기 속으로 침잠하여
자기의 진실한 얼굴을 보는 일 
사물의 참다운 모습을 관찰하는 일
모든 해답을 외부로 부터 구하지 않고
내 자신의 내부에서 찾는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높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더 넓은 세상을 보는 일
이해와 감사로 머리 숙이고
뜨겁게 우는 일을 배우게 됩니다
 
가을에 나는 여름날의 열정과
회오리처럼 나를 몰아치던 눈물과 원망과
고통을 잠재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사물이나 사상의 가장 근저에 있는
단순성으로 복귀해보겠습니다
 
오직 한 사람을 택한 나의 생애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고독하고 단절된 시간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내 속에 가장 비옥한 땅으로 남아 있는 당신과의
사랑이 더욱 더 높은 곳으로 승화하기를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가을의 익어가는 대지의 한부분으로 같이 익어가면서
함께하는 당신를 향한 나의 마음을
당신과 함께 배우면서 깨닫는 가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출처 : 흐르는 자연의 향기 속으로
글쓴이 : 바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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