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식에 관한 연구를 통해 진정으로 성찬식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물임을 발견하고 믿음의 신비가 있는 예식임을 분명히 알고 참여하기를 거듭 부탁드립니다. 코너스톤교회 여목사 드림.
모든 종교는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나름의 신비 체계를 가지고 있다.
어떤 초자연적 대상이 있고 그 대상과 나와의 관계가 설정되고 그 관계를 가능케 한ㄴ 통로가 그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그 종교는 결국 하나의 종교 철학, 사상체계에 불과하게 된다. 인간과 초월자, 영원자와 유한자, 완전자와 불완전한 자, 절대 주체자와 상대적 존재와의 관계정립에 대한 교의야말로 종교와 철학의 가장 큰 차이가 되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나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는 믿음의 문제요 자연과 초자연이, 시간과 영원이, 합리와 비합리가 만나는 접촉점의 신비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역사적 인물에서 찾아진다. 그는 참 하나님인 동시에 참 인간, vere Deus vere homo 이시다. 신화적인 존재가 아니라 역사적인 존재로 그는 십자가에서 죽어 부활하여 偏在, omnipresence 하면서 구체적으로 존재한다. 바울에 의하면 그는 화해자요 중보자로 (엡 2:16, 고후 5:18,19) 그 안에서 영원과 시간이 만난다. 그는 절대자에 대한 계시자인 동시에 절대자 자신이다. 그가 이룩한 십자가에서의 구원 사역으로 오늘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분여받게 된다.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은총의 보이는 수단』이 성찬이다.
이 성찬론이야말로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중심적인 논제이다.
Vatican II의 Lumen Gentium에서는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례전적이다. 즉, 하나님과의 내적인 연합 뿐 아니라 온 인류의 통일을 위한 표지요 도구이다. 라고 말한다. 칼 라너는 이를 原 聖禮典이라고 말하는데1) 그런 의미에서 타종교에 비하여 우리 기독교의 신학과 예전에서 가장 크게 다른 것은 성찬론일 것이다. 우선 그 구원론이 다른 종교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창시자의 犧牲的인 죽음에 기초한다는 것이고 그 죽음을 모일 때마다 기념하면서 회상한다는 점이다.2)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나를 기념하라. (눅22:19)고 하셨고 이 말씀을 따라 처음 교회는 모일 때마다 떡을 떼며(행 2:42)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 회상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 기독교의 구원이 바로 그의 犧牲的인 죽음에 터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성례는 고대 교회에서는 어떤 비밀스러운 것을 그리스도교적 내용과 결합시키는 모든 행위들, 표지들과 의식들 이라고 칭해지면서 성찬은 사죄를 선사하고(마 26:28), 떡과 포도주로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주어(고후 11:24-25, 막 14:22)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제정된 계약을 확고히 하고(고후 11:25) 종말을 선취하며(고전 11:26, 막 14:25) 이미 『지금 여기에서, hic et nunc』 영생을 주게 된다(요 6:54)고 믿고 고백하였던 것이다.3)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7 가지의 성례가 있으나 그 성례도 계층질서가 있어서 성찬은 으뜸가는 것이다. 성만은 주께서 친히 성별하시고 제정 하셨기 때문이며 주의 만찬에는 그리스도 자신이 현존 하기 때문이다.4)
지극히 적은 수의 소종파를 제외하고는 비록 이단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기독교라는 범주에 드는 어느 교파도 성찬을 무시하거나 폐기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도 역설적이긴 하지만 성찬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예가 된다.
그러나 이 구원의 수단, 은총의 통로로서의 예전은 너무 중요시된 나머지, 가령,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化體說로 그 전통의 권위로 삼고 있고 이에 대하여 개혁자들은 이 전통과 권위에 대하여 개혁의 기치를 내걸었던 것이다.
개혁자들 사이에서 가장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개혁자들간의 차이가 확연하게 구별되었던 것도 바로 성찬론이다. 오늘 보게 되는 교회의 분열과 다양한 교파도 그 근원은 이 성찬의 해석의 차이에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주장인가.
이에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그 전통과 권위로 삼는 화체설의 내용과 그 교설이 어떠한 경로로 발전되고 형성되었는가 하는 것을 역사적 과정을 따라 연구하고 또 우리 개혁자들의 성찬에 대한 여러 주장을 살펴 보면서 이 가르침들이 어떤 점에서 포로되어 있는 교회를 해방시켰는지를 연구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로 여겨진다. 그리고 개혁자들의 주장들이 어떤 점에서 같고 또 어떤 면에서 다른지를 대별해보면서 이러한 주장들이 1982년의 Lima Text에서 어떻게 종합되고 있는지를 연구하고자 한다.
죽음의 역할- 청교도 신앙과 삶 (0) | 2018.09.29 |
---|---|
좁은길을 함께 걸으십시다! 와보라 (0) | 2018.09.17 |
사랑이 표지입니다. 새계명을 중시하는 가정목회! (0) | 2015.08.19 |
약한자를 들어 강한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주님의 의도대로 목회하는교회- 양재충현교회 (0) | 2015.08.07 |
양재충현교회의 주일, 주간예배및 집회 (0) | 2015.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