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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의 대적과 그의 승리.경고 (시편 2:1-12)

놀라운 이야기

by Bliss Yeo 2009. 10. 22.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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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의 대적과 그의 승리 (시편 2:1-6)

우리는 여기에서 그리스도 왕국을 들러싼 매우 큰

투쟁, 그것을 얻기 위한 지욱과 천국의 투쟁을 볼 수 있다. 그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곳은 이 땅이다. 이 곳에서 사탄은 오랫동안 왕국을 찬탈해 왔으며, 그는 우리가 호흡하는 그"공중의 권세 잡은 자,"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신"이라 불리울 정도로 이 땅을 강하게 지배해 왔다. 그 사탄도 메시야의 왕국이 일어나 자리잡을 때는 그가 몰락하고 땅을 잃게 된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분명히 세워질 것이며, 절대로 나약하게 세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을 살펴보자.

Ⅰ. 메시야와 그의 나라에, 그의 거룩한 믿음과 그 모든 유익에 대한 강한 도전이 있을 것이다(1-3절).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 부여되는 그처럼 큰 축복이 보편적으로 환영받고 받아들여질 것이며, 각 단마다 그 메시야의 축복에 즉시 고개를 숙이고 땅 위의 모든 면류관과 왕홀은 그의 발 아래 바쳐질 것을 기대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반대로 나타난다. 어떤 부류에 속한 철학자들의 견해가 아무리 어리석은 것이라 할지라도 또한 어떤 왕이나 국가의 권력이 아무리 포악하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교리와 그 통치권처럼 강력히 도전당한 적은 결코 없었다. 이것은 바로 그것이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는 신호이다. 왜냐하면 그 도전은 근본적으로 지옥으로부터 온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1. 우리는 여기에서 누가 그리스도의 적대자로 나타날 것이며 누가 마귀의 도구가 되어 그이 나라에 도전할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왕과 백성들, 궁궐과 나라가 때로 각자의 이익을 위해 분리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대적하기 위해 다시 연합한다. 강대한 자들만이 아니라 군중들, "열방," "민족들"의 무리들과 단체들도 연합한다. 그들이 일반적으로 자유를 좋아할지라도 그들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선포하고 마련하신 자유를 싫어한다. 군중들 뿐만 아니라 유력한 자들(우리는 이들 중 어느 누가 좀더 신중히 생각하고 잘 판단해 주기를 바랄지도 모른다)까지도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폭동을 일으킨다. 그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며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킬 의도가 조금도 없고 만일 그들이 원한다면 매우 원만하게 그것을 강화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은 즉시 무장을 하고 일어선다. 여자의 후손에 대해 뱀의 후손이 지니고 있는 옛 적대감의 결과를 보고, 인류의 타락이 얼마나 보편적이며 해로운 것인가를 보라. 그들은 무수하고 그들은 유력하다. 여기에서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열방"이라 칭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들 조상의 믿음과 거룩함을 버리고 매우 비참하게 타락해 버렸다. 그들은 크리스찬들을 박해하도록 열방, 즉 이방인들을 선동한다. 블레셋 사람들과 그 방백들, 사울과 그 신하들, 그리고 불만을 품고 있는 무리들과 그 주동자들이 면류관을 향해 오는 다윗에게 도전한 것과 같이, 해롯과 릴라도,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사람들 속에 자리잡은 그의 세력을 대적하기 위해 그들의 온갖 힘을 기울였다.(행 4:27).

2. 그들은 누구와 싸우기 위해 온 힘을 모으는가? 그것은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려는 즉 일반적인 모든 믿음과 특별한 크리스챤의 믿음을 대적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은 모두 그들이 아무리 가장할지라도 하나님 자신을 대적하는 자임이 확실하다. 그들이"나와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리라"(요 15:24). 다윗에게 기름부어 왕이 되게 한 우리이 거룩한 믿음의 주인공을 가리켜 여기에서 "여호와의 기름받은 자," "메시야" 또는 "그리스도"라고 일컫고 있다. 그는 교회의 우두머리와 왕이 될 권한과 자격을 모두 갖추셨고, 모든 면에서 합당한 능력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그를 대적하는 자들이 있다. 아니, "그러므로"해서 그들은 그를 대적하고 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참지 못하며 그리스도의 승진을 시기하고 있고 거룩한 성령에 대해 깊이 뿌리 박고 있는 적대감을 갖고 있다.

3. 그들이 행한 도전이 여기에 묘사되어 있다.

(1) 그것은 매우 악의에 찬 해로운 도전이다. 그들은 "분노"하며 불평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워지는 것에 노하며 이를 간다. 그것은 그들에게 말할 수 없는 불만을 안겨다 주며 그들을 온통 분노로 가득 채운다. 그럼므로 그들은 스스로 즐거움을 갖지 못한다(눅 13:14; 요 11:47; 행 5:17, 33; 19:28  참조). 우상 숭배자들은 그들 자신의 어리석음을 발견하고는 분노했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영광이 소멸되고 그들이 빼앗은 통치권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는 분노했다. 악을 행한 자들은 빛에 분노한 것이다.

(2) 그것은 고의적이고 정책적인 도전이다. 그들은 "꾀하고"계획한다. 즉 그들은 그리스도 왕국의 세력이 일어나는 것을 억압할 방법을 고안해 내며, 그들의 계략이 성공하리라고 크게 확신한다. 그들은 믿음을 전멸시키고 낮을 정복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들 자신에게 약속한다.

(3) 그것은 단호하고 완전한 도전이다. 그들은 이성과 양심, 그리고 주님의 모든 두려움에 도전하여 "나서며," 안색을 돌같이 굳히고 마음을 금강석처럼 단단하게 한다. 그들은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처럼 교만하고 대담하며, 무엇이 다가오든 그것에 단호하게 저항할 것이다.

(4) 그것은 연합되고 공모된 도전이다. 그들은 이 도전을 하도록 "서로 꾀하며," 서로 돕고 격려한다. 그들은 온 힘을 기울여 메시야를 대적하는 거룩하지 못한 전쟁을 밀고 나갈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서로 꾀하고 음모를 꾸미며, 그리스도 왕국이 세워지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발견하기 위해 그들의 모든 기지를 동원해 낸다(83:5).

4. 우리는 여기에서 그들이 화내는 것은 무엇이며 이 도전 속에서 노리는 목표는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3절). "우리가 그 맨 것을 끊자." 그들은 어떤 지배 하에 있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벨리알의 자손으로서 속박을 견디지 못하며, 여호와와 그의 기름받은 자의 속박마저도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메시야 왕국이 그들의 논쟁거리가 되어 줄 것이며, 그것이 그들 자신의 통치권을 지지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할 것이다. 그들은 만일 여호와와 그의 기름받은 자가 자기들을 이 세상에서 부유하고 위대하게 만들어 준다면 그들을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와 그 기름받은 자가 그들의 타락한 욕구와 감정을 제거하고 그들이 마음과 생활을 단속하고 개혁하려 한다면, 진실로 "그들은 이 세상이 그들의 왕됨을 원치 아니할 것이다"(눅 19:14).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맨 것과 결박"을 갖고 계신다. 그에 의해 구원받으려는 자들은 그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올바른 이성에 합당한 "인간의 결박"이며 우리의 참된 유익을 위한 "사랑의 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에 대적하는 싸움이 있다. 왜 사람들은 단지 그들이 그 제제와 의무를 견뎌내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믿음에 도전하는가? 그들은 그들을 제어하고 있는 양심의 줄을 끊을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모든 죄에서 떠나 모든 의무 그러나  행하도록 그들을 약속시킨 하나님의 계명의 결박을 끊을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멀리 벗어버리려 한다.

5. 그들은 그것에 관해 여기에서 논박당하고 있다.(1절) 어찌하여 그들이 이렇게 행하는가?

(1) 그들은 이처럼 의롭고 거룩하며 은혜로운 다스림에 도전하는 데에 대해서 정당한 이유를 댈 수도 없다. 그것은 세속적인 권세를 방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왕이나 그 나라에 해가 되는 어떤 위험한 훈계도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그것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땅 위에는 천국이 이루어질 것이다.

(2) 그들은 이처럼 강대한 왕국에 도전하여 성공을 거둘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없다. 그들은 그 왕국과 겨루기에는 아주 무능력한 것이다. 그러한 도전은 "헛된 일"이다. 그들이 최악의 일을 행했을 때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교회를 갖게 될 것이며, 그 교회는 영광스럽게 되고 개가를 올릴 것이다. 그것은 "반석 위에 세워지며 그 곳에는 지옥의 권세가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 달은 개가 그것을 향해 짖을지라도 찬란히 빛나는 것이다.

Ⅱ. 그 강력한 정족바는 이 위협하는 모든 도전을 이기신다. 만일 하늘과 땅이 격투한다면 어느 것이 승자가 될 것인가를 예언하기는 쉽다. 이 강한 투쟁을 벌이는 자들은 땅의 백성들이며 세상의 군왕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땅에서 났으므로 세속적이다. 그러나 그들이 겨루고 있는 분은"하늘에 계신 자"이다(4절). 그는 하늘에 계시며 그 곳은 매우 광대한 전망을 가진 곳이기 때문에 그는 그들 모두와 그들의 모든 계획을 내려다 보실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능력으로 그들과 그들의 모든 공격을 누르실 수 있다. 그는 그들의 모든 무력한 위협과 공격이 미치지 않는 곳에 앉아 편히 쉬고 계신다. 그는 사람의 자손들의 모든 일들을 판단하시는 재판장으로서 그 곳에 앉아 계시며, 모든 대적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든 계획과 목표를 안전한 가운데서 완전하게 이행하신다(29:10). 영원한 심령(Eternal Mind)의 온전한 휴식은 우리 마음의 불안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땅에서 그리고 바다에서 시달림을 당한다. 그러나 그는 하늘에 앉아 계시며 그 곳에 심판을 위한 그의 보좌를 마련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일이 가능한 것이다.

1. 그리스도의 대적들의 공격은 쉽사리 조롱당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어리석은 무리로 여기시어 "웃으신다."그는 그들과 그 모든 사도들을 "비웃으신다." 그러므로 "처녀 딸 시몬이 그들을 멸시하였다"(사 37:22). 죄인들의 어리석움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능력에 비해 하나의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사단의 왕국의 이러한 계략들이 우리의 눈에는 매우 거대하게 보이나 하나님의 눈에는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보인다. 때때로 하나님은 당신의 대적들을 소멸하시기 위해 "깨어나시고 일어나시며 스스로 격동하신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가 "가만히 계시어"그들을 격파하신다고 되어 있다. 하나님의 전능에서 나온 큰 힘에는 전혀 어려운 문제가 야기되지 않으며, 그의 영원한 휴식은 조금도 방해받지 않는 것이다.

2. 그들은 마땅히 처형당한다(5절). 비록 하나님은 그들을 무력한 자로 비웃으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죄를 간과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무례함과 불경건함으로 인해 당연히 그들을 불쾌히 여기시고 그는 가장 무엄한 죄인들로 하여금 그의 진노를 알게 하고 그 앞에서 떨도록 만드실 것이다.

(1) 그들의 죄는 그를 격토케 한다. 그는 노하시며 그것을 매우 불쾌하게 여기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직접 우리와 화해하시고 우리를 기뻐하시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그것은 그 기름받은 자안에서, 그 자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를 모욕하고 거절하면 우리는 구원을 대적하는 죄를 범하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중재에서 오는 유익을 박탈당하게 된다.

(2) 하나님의 분노는 그들을 괴롭힐 것이다. 만일 그들에게 그의 진노를 말하시기만 한다면 그 입술의 기운만으로라도 그들을 혼비백상시키며 죽일 수 있을 것이다(사 11:4; 살후 2:8). 그가 말씀하시면 그것은 이루어진다. 그가 진노를 발하시면 죄인들은 파멸한다. 한 마디의 말씀이 우리를 만드신 것처럼 한 마디의 말씀이 우리를 다시 멸망시킬 수도 있다. "누가 그의 진노이 힘을 알리오?" 대적들은 분노하나 하나님을 괴롭힐 수는 없다. 하나님은 가만히 앉아 계실지라도 그들을 괴롭히고 놀라게 하시며(글자 그대로) 그들의 기지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실 수 있다. 그들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의 아들의 왕국을 세우시는 것은 그들에게 가장 큰 괴로움이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선한 종들을 괴롭힌다. 그러나 그들이 괴로움으로 보상받을 날은 오고 있는 것이다.

3. 그들은 분명 패하며 그들이 모든 계략은 허사가 된다(6절).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다윗은 그의 왕국을 방해하는 반항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그들의 소경과 절뚝발이 그리고 불구인 병사들의 이야기로 그를 조롱한 시온의 주둔병들로부터 모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삼하 5:6). 그는 보좌를 획득했고 시온 요새의 주인이 되었다. 주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으로 높이 들리우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갖고 계신다. 그리고 그의 대적들이 그의 진보를 방해하려는 끊임없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모든 일을 지휘하신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시며, 섭리와 은총의 왕국을 다스리시는 권세와 위엄을 갖고 계시고 능력의 근원이신 자로부터 감독을 받는다.

(2) 하나님은 그를 "나의 왕"이라고 부르기를 기뻐하신다. 그는 하나님에 의해 임명되셨고 최고의 통치와 심판을 위임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왕이시다. 그는 성부(聖父)의 사랑받는 자이며, 그가 기뻐하시는 자이기 때문이다.

(3) 그리스도는 이 영광을 그 자신이 취하지 않으시고 그를 부르신 자에게 돌려드렸다. "내가 그를 세웠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그의 계명, 그의 명령을 받은 것이다.

(4) 이러한 영광의 자리에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자리는 확고했다. 높은 지위는 미끌어지기 쉬운 자리이다(라고 우리는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들어 올림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 자리가 확고하라. "내가 그를 세웠다. 내가 그를 견고케 하였다."

(5) 그는 "시온" 즉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세우셨다. 이것은 복음 교회의 한 모형이다. 온 산이 "거룩한 산"으로 불리우기 위해, 그 위에 성전이 세워졌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보좌는 그의 교회에, 즉 모든 믿는 자의 마음과 그들이 형성한 사회 속에 세워진다. 그리스도의 복음적인 율법은 "시온 산에 오르는"(사 2:3; 미 4:2) 것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곳은 이 총회의 집결지 곧 사람의 자녀들이 즐거워할 왕실로 일컬어진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왕국의 모든 대적들에 대해 승전가를 부르고(그들은 모두가 곧 그의 단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치 않고). 능력의 위대한 보관인인 그리스도 안에서 개가를 울리면서 거룩한 환회를 품고 이 구절들을 노래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주의 나라에 임하옵시며 아들의 왕국이 오게 하소서"라고 굳은 확신 속에서 기도해야 한다.


메시야의 대적에 대한 경고 (시편 2:7-9)

우리는 세상의 군왕들이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적하여 말하는 것을 들었고, 하늘에 계신 자에 의해 그것이 반박당하는 것도 들었다. 이제 우리는 메시야 자신이 그의 왕국을 위해 말해야 하고 선포해야 할 것을 들어 보기로 하자. 그것은 땅 위의 어떤 권능도 반박할 수 없는 것이다.

Ⅰ. 메시야의 왕국은 하나님 아버지의 계율, 영원한 계율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것은 갑자기 결정된 것이 아니고 시험적인 것도 아니며 모든 세상에 대한, 거룩한 지혜에 의한 계획과 거룩한 뜻에 의한 결정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그 어느 것도 변경될 수 없다. 즉 그것은(어떤 사람의 풀이대로) "계율"이나 "법령"(또 다른 사람들의 풀이대로) "언약"이나 "계약," 그리고 인간의 구속에 관한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사이의 연합적인 계약인데, 이것은 다윗과 그의 후손에게 주어진 왕실에 관한 언약으로써 제시되어 있다(89:3). 우리 주 예수도 그의 모든 행함속에서 그가 그 언약에 지배되고 있다는 것을 자주 언급하셨다. "이것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이라"(요 6:40). "이 경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요 10:18; 14:31).

Ⅱ. 될 수 있는 한, 이 왕에게 스스로 복종하도록 부름받고 명령받은 자들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그리고 그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려는 자들에게 변명할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이 계율이 선포되었다. 그 계율은 은밀했다. 그것은 아버지가 태초에 일하시기 전, 아들을 가지셨을 때에 그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 충성된 증인에 의해 선포되었다. 그는 영원으로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품 속에 있었고, 그를 나타내기 위해 교회의 선지자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요 1:18). 모든 존재의 근원은 의심할 것 없이 모든 힘의 근원이다. 그리고 메시야가 주장하는 것은 그에 의한 것이며 그로부터 나온 것이고 그의 아래 있는 것이다. 그는 여호와가 그에게 말씀하셨던 것에 의해 다스릴 권리를 가지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에 의해 만든 것들이 만들어 바졌고 다스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여기에서 그의 나라에게 이중적인 직위를 부여하고 있다.

1. 기업(基業)에 의한 직위(7절).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히브리서 1장 5절에서 한 사도는 그리스도가 천사들보다 더 뛰어난 이름을 갖고 있으며 그가 그것을 "기업으로 얻으셨다"(4절)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아르이다. 양아들이 아니라 그의 낳은 아들이요, 아버지의 유일한 독생자이다(요 1:14). 그리고 아버지는 그를 소유하고 계시며 이 사실은 그가 왜 거룩한 시온 산에 왕을 세우셨는가 하는 이유로서 세상에 나타나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그 위대한 위탁을 부여받았고 또 그것에 대한 완전한 자격을 얻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아버지와 동등한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자신 안에 충만한 신성과 무한한 지혜, 능력과 거룩함을 갖고 계신다. 교회의 절대적 통치는 단순한 피조물에게는 너무 높은 영광이며 힘에 겨운 일이다. "아버지와 함께" 있으며 "영원부터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었고(잠 8:30). 또 완전히 그의 뜻을 알고 있는 자 이외에는 그 누구도 그것에 합당할 수가 없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하나님의 귀하고도 사랑하는 아들이며 그가 기뻐하시는 자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를 왕으로 모셔들여야 한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기" 때문이다(요 3:35; 5:20).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의 상속자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를 통해서 세상을 만드셨으므로 아버지가 또한 그를 통해서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추론하기는 쉽다. 그는 영원한 지혜이며 영원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우리 각자도 그에게"당신은 나의 주님이며 통치자이십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마땅하다. 더 나아가서 우리로 하여금 그의 나라가 부자 관계위에 잘 세워져 있다는 사실에 만족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의 부자 관계는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가가 나타나 있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것은 그의 영원한 출생자체를 언급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그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의 본체의 형상이시라"(히 1:3)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인용되어 있기 때문이다(5절). 또한 그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사실을 나타내고 확증하기 위해 언급되고 있다. 한 사도는 그것을 사도행전 13장 33절에서 특별히 적용시키고 있다.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다.' 선지자 요나의 표적이 모든 것 가운데서 가장 확실한 것이 된 것. 즉 그가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신" 것은(롬 1:4).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일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라고 일컬어지고 있다(계 1:5; 골 1:18). 그는 부활하신 즉시 그의 중재적인 나라를 통치하기 시작하셨다. 그 때에 그는 "모든 권능이 내게 주어졌도다"라고 말씀하셨고, 그의 제자들에게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기도드리도록 가르쳤을 때도 그는 특별히 이 말씀에 주목했다.

2. 계약에 의한 직위(8,9절). 그 계약은 간단히 말해서 이러한 것이다. 아들은 중재자의 직책을 맡아 그 조건으로 그는 온 우주적인 왕권의 영광과 권능을 갖게 될 것이다. 이사야 53장 12절을 보라. "그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리니 이는 그가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니라." "그가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눅 6:13).

(1) 아들은 물어봐야만 한다. 이것은 하나님과 같은 그가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아버지와 동등하여 아무 것도 물을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인간의 본성을 취하시어 아버지보다 못한 상태를 자발적으로 취하셨다는 사실을 가정케 한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중재의 힘에 의해서만이 만족을 얻을 수 있고, 이 거대한 요청이 근거해야 할 값비싼 지불을 가정한다(요 17:4, 5  참조). 아들은 열방을 자기의 기업으로 요구함에 있어서 그 자신의 영예뿐만 아니라 자기 안에서 가질 그들의 행복도 목표로 삼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을 위해 중재하시며 언제나 그렇게 행하신다. 따라서 그는 최대한으로 구원하실 수 있는 것이다.

(2) 하나님 아버지는 그 왕국의 절반 이상을 심지어 왕국 자체까지도 양도하실 것이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것들이 약속되어 있다.

[1] 그는 만인을 다스릴 것이다. 그는 "열방"을 그의 유업으로 얻을 것이다. 즉 교회가 오랫동안 감금되어 있었던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그의 유업으로 얻을 것이다. "땅 끝"에 있는 자들까지(우리의 이 민족과 마찬가지로) 그의 "소유"가 된 것이며, 그는 그들 가운데에서 기꺼이 충성된 종이 되거자 하는 수 많은 사람들을 얻을 것이다. 세례받은 크리스챤들은 주 예수의 소유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에게 명예와 찬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들을 아들에게 주시며, 그것은 그의 성령과 은혜로서 그들의 목이 주 예수의 굴레에 순종하도록 역사하실 때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이행되었다. 이방인 세계의 많은 무리가 복음이 처음 전파되었을 때 그것을 받아들였고, 사단의 자리가 오랫동안 있었던 곳에 그리스도의 보좌가 세워바졌다. 그러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려면(계 11:15) 아직 더 행해져야 한다. "하나님이 이것을 행하실 때에 누가 살겠는가?"

[2] 그 왕국은 승리를 거둘 것이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그들 가운데 네 나라를 대적하는 자들을) 깨뜨리로다"(9절). 이것은 유대 민족 중 그리스도의 복음을 완강히 불신하고 대적한 자들이 로마사람의 힘에 의해 멸망당했을 때 어느 정도 수행되었는데 로마사람의 힘이 여기에서는 철장으로 나타나 있으나 다니엘에서는 철의 발로(단 2:40)되어 있다. 이 말씀은 크리스챤의 믿음이 이룩되어 우상 숭배자들의 힘이 파괴되였을 때 더 이룩되었다. 그러나 대적하는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이 최종적으로 전멸되기 전에는 그것이 완전히 수행되지는 않을 것이다(고전 15:24; 시편 110:5, 6  참조) 그리스도는 얼마나 강하시며 그 앞에 있는 그의 나라의 대적들은 얼마나 약한가를 보라. 그는 철장을 갖고 계시며 그것으로 그의 황금홀에 복종하려 하지 않는 자들을 짓이기실 것이다. 그들은 그 앞에서는 옹기장이에 의해 갑자기 쉽게 그리고 돌이킬 수 없도록 산산조각이 나는  질그릇에 불과하다(계 2:27  참조). "네가 그것을 행하도록 하리라. 즉 네가 그것을 행하도록 허락하리라. "복음 교회가 세워지지 못하게 되느니 보다는 차라리 백성들이 멸하게 되는 것이 낫다.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 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로 바꾸리라"(사 43:4). "네게 그것을 행할 능력을 주리라. 아무도 네 앞에 서서 못하게 할 것이고, 너로 그것을 훌륭히 행하게 하리라." 급히지 않으려는 자들은 부러질 것이다.

이 구절을 노래하고 그것을 거듭 간구함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며 우리의 합당한 주인인 그리스도께 영광 돌려야하며 이 약속에서 위로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왕국이 확대되고 견고해져서 모든 대적자들을 물리쳐 이기게 되도록 하나님께 탄원해야 한다.


메시야의 대적들에게 주는 경고 (시편 2:10-12)

메시야 왕국에 관한 복음의 교훈이 여기에서 세상의 왕들과 재판장들에게 주는 권고의 방식으로 적용되어 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통치를 대적하는 것은 헛된 일임이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현명하게 그것에 복종하여야 한다. 그들을 멸할 능력을 가지신 그는 그들의 멸망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을 행복한 길로 이끌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10절). 지혜로와지고자 하는 자는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교훈을 받는 자들은 진실로 지혜롭다.

왕과 재판관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른 평민과 같은 위치에 서야한다. 또한 그들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법도를 알리고 판단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법을 받아야 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지혜가 될 것이다. 그들에게 알리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되며 그것을 우리 각자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단지 왕들과 관원들에게만 명해진 것은 그들의 본보기가 아랫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며,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 왕국의 건설을 대적하는 능력과 지위를 갖추고 있던 자들이었기 때문이다(2절). 이것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훈계한다.

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두려워해야 한다(11절). 이것은 자연종교의 큰 의무이다. 하나님은 위대하시며 우리보다 무한히 위해 계시다. 그리고 의롭고 거룩하시며 우리에게 진노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 두려워하고 그 앞에서 떨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우리 주님이시며 주인이시므로 우리는 그를 우리의 친구이며 은인으로서 섬기고 그의 안에서 즐거워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서로 매우 잘 연관되어 있다.

1. 우리는 모든 예배 의식에서 그리고 경건한 대화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되 거룩한 두려움과 우리 자신에 대한 경계심. 그리고 그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섬겨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 섬김을 받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왕들 자신까지도 하나님을 섬기고 두려워 해야 한다. 왕들과 가장 천한 종들 사이에 있는 것과 같은 무한한 간격이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있는 것이다.

2.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해야 하며 그에게 복종하여 다른 것들 안에서도 즐거워해야 한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질투심이 강한 하나님인가를 아는 자로서, 또한 그의 눈이 항상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을 아는 자로서, 그 즐거움과 함께 계속 거룩한 떨림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두려움과 떨림으로"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빌 2:12). 우리는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룩되는 것을 즐거워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거룩한 두려움이 모자라지 않도록 그에 대한 거룩한 경외감을 갖고, 또 그의 복음과 왕국에서 재생을 얻는 많은 귀한 영혼들에 대한 자상한 관심을 갖고 "떨며  즐거워" 해야 한다. 우리가 즐거워하는 것들로 인해 교만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수 많은 사건으로 인해 우리의 즐거움이 사라지게 되는 불확실하고 생기 없는 일에 몰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떨며 즐거워하는 것은 우리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는 것이다"(고전 7:30).

Ⅱ.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하고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12절). 이것은 크리스챤의 신앙의 큰 의무이다. 즉 그것은 모두에게 심지어 왕이나 관리들에게 까지 요구되는 일이며 그것을 행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고 지혜로운 일이다. 여기에서 다음 사실들을 살펴보자.

1. 이 목적에 의하여 주어진 명령."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리스도는 "너는 내 아들이라"고(7절) 선포된 분이므로 "아들"이라 불리우고 있다. 그는 영원한 세대까지 하나님의 아들이고 이 때문에 우리로부터 숭배 받아야 한다. 또한 그는 "인자"(즉 중재자, 요 5:27)이므로 우리는 그를 영접하고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가 "아들"이라고 불리우는 것은 다음 두가지 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즉 하나님은 흔히 "아버지"라고 강조되듯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며, 또한 그의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이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두가지 면에서 그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여기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 입맞춤은 유다가 키스한 것처럼, 그리고 그를 영예롭게 하는 척 했으나 실재로는 그는 모욕한 위선자들처럼 배반의 입맞춤이 아닌 믿음의 입맞춤이어야 한다.

(1) 허락과 화해의 입맞춤으로써 야곱과 에서처럼 입맞춤으로 친구가 되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다툼을 종결시키고 거만한 행위를 그치고 우리의 화평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여야 한다.

(2) 숭배와 경건한 경배의 입맞춤으로써. 우상을 숭배한 자들은 우상에 입맞춤었다(왕상 19:18; 호 13:2). 그러나 우리는 주예수를 영화롭게 하고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드리는 방법을 연구하도록 해야 한다. "저는 너의 주시니 너는 저를 경배할지어다"(45:11).  우리는 보좌에 앉으신 그는 물론 "어린 양"도 경배해야 한다(5:9-13).

(3) 호의와 진실된 사랑의 입맞춤으로써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와 함께 우정의 언약을 맺고, 그로 하여금 너의 사랑하는 귀하신 분이 되게 하라. 무엇보다도 그를 사랑하라. 많은 죄를 사함받은 증거로 그의 발에 입맞춤 그 여자처럼(눅 7:38)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많이 사랑하라."

(4) 충성과 성실의 입맞춤으로써 사무엘이 사울에게 했던 것처럼(삼상 10:1) 그에게 충성과 경의를 맹세하고 그의 다스리심에 복종해야 한다. 그의 굴레를 네게 씌우고, 네 자신을 그의 법의 다스림을 받도록 하고 그의 섭리에 맡기어 그의 유익을 위해 완전히 전념해야 한다.

2. 이 명을 강력히 주장하는 이유. 그것은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은 그의 복음에서 이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계시다. 이제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배격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파멸하고 있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않으면 네게 화가 돌아올 것이다."

[1] 그것은 그리스도를 크게 노하게 할 것이다. "그것을 행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시리라." 그 아버지는 이미 노하셨고, 그 아들은 화해를 시도하기 위한 중재자이다. 만일 우리가 그 아들을 경시한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 위에 머물리라"(요 3:36). 뿐만 아니라 거기엔 그 아들의 진노가 또한 가중된다. 그의 은총을 받는 자가 멸시를 당하고 그 계획이 좌절되는 것보다 더 그를 화내게 하는 것은 없다. 그 아들은 어린 양일지라도 노하실 수 있다. 그는 유다지파의 사자이다. 왕들 중의 왕이신 이 왕의 진노는 포효하는 사자와도 같은 것이며, 강한 자나 장교들까지도 바위나 산 속에 있는 피난처를 헛되게 찾도록 만드실 것이다(계 6:16). 그 아들마저 진노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위해 중재하겠는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제물은, 그 이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불신앙은 치료를 거역하는 죄이다.

[2] 그것은 너희 스스로에게 완전한 멸망이 될 것이다. "너희가 길로부터 또는 너의 죄악의 길에서, 그리고 너희 헛된 소망의 길로부터 망하지 않도록 하라."(1편 6절에서와 같이) "너희 길이 망하지 않도록." 그 길이 행복에서 빗나간 길임이 증명되지 않도록 하라. 그리스도는 길이다. 너희가 하나님께로 이르는 길인 그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그들이 그 길에 있었거나 적어도 그들 스스로 그 곳에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를 무시함으로써 그 길로부터 탈락되고 자신의 파멸을 재촉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늘 가는 길 도중에서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고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는 않은 곳에 있을지라도 결코 그 곳에 도달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2)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굴복시킨다면 그때에는 틀림 없이 행복할 것이다. 그의 진노가 "급하시므로"(비록 적은 것이라 할지라도)그 진노의 가장 작은 불꽃이라도 교만한 죄인의 양심에 당겨지기만 한다면 그것은 그 죄인을 비참하게 만들 것이다. 그것은 가장 낮은 지옥까지도 태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진노가 불붙여졌을 때에, 그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그러한 생각에 놀라며 그 무서운 저주를 면하기를 바라고 그것을 피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를 의지하고 따라서 그에게 입맞추는 자들은 진실로 행복하다. 그리고 그들의 이러한 태도는 그리스도의 진노가 다른 사람들에게 불붙여졌을 때 더욱 뚜렷이 부각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써 그를 그들의 피난처와 보호자로 삼는 자들은 진노의 날에 복이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낙심하고 있을 때 그들은 기쁨으로 그들의 머리를 치켜들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을 멸시하는 자들은 그 때에는 매우 당황하면서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를 의지하는 자, 그들만이, 다 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을 노래하고 간구함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과 동시에, 그리스도에 대한 즐거운 확신으로 우리 가슴을 채워야 한다. 그의 중재 가운데서 우리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며, 우리 스스로와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기쁨을 얻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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