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부랑아 루이 14세
루이 14세가 잠자리에 들기 전, 그는 침대 발치에 서서 모든 귀족 부인들로부터 인사를 받는다. 그리고 나면 아침에 치렀던 예식이 반대로 거행되고, 침실 담당 최고참 시종이 침실의 커튼을 내리면 황제는 잠이 든다. 그러나 루이 14세와 그의 귀족들은 겨울이 오면 금으로 만든 광대한 궁전안에서 얼어붙어야 했다고 한다. 커다른 화로도 그들을 따뜻하게 할 수 없어 황제가 가발을 바꿔 쓸 때 감기가 걸렸다는 이야기를 종종종 드는다. 사실 루이 14세는 구제될 수 없는 유럽의 부랑아 였다. 그는 군대를 가지고 수시로 영국과 폴란드 그리고 스페인을 숭배하였다. 그는 르브런과 같은 화가, 망사르와 같은 조각가 , 리씨네와 몰리에르 같은 작가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작품을 찬양하였다. 그는 완전한 전제 군주인 동시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왕이었다.
조각가들에 의해, 가발을 쓴 줄리어스 시저로 표현되었을 만큼 조각에 조예가 깊었던 시인들은 그를 위해 소네트를 지었고, 그를 태양의 신 아폴로의 후예라고 지칭하였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그를 찬양하는 이런 무리가 있었던 반면 프랑스의 다른 계층, 즉 하층민들은 그가 일흔 다섯의 나이로 죽었을 때, 그날을 휴일로 선언하였다. 루이 14세의 방탕생활과 사치, 전쟁을 위한 과도한 세금 징수 때문에 고통을 겪어야 했던 국민들은 탈진해 있었기에 그의 죽음은 곧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 었다.
그리하여 그의 시체가 매장될 때 농부들은 그의 관에 돌을 던지고 야유를 퍼부으며 루이 14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했던 긴 세월을 원망하였다. 근대 유럽을 풍미한 대 전제군주의 종말은 그러했다. 프랑스 주교는 그저 다음과 같은 간단한 말로 장례사를 마쳤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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