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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표정

보배 항아리

by Bliss Yeo 2010. 7. 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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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미술관에서는 Speaking with Hands 라는 이름으로 헨리 M. 불의 사진과 조각 컬렉션전시회를 하고 있습니다(6월 현재 전시회는 종료 되었습니다). 이 컬렉션은 특이하게도 전부 손을 주인공으로 합니다. 손을 찍은 사진과 손을 테마로 한 조각과 미술품들이죠. 일단 유명인들의 손을 주제로 한 사진들이 있습니다. 알프레드 스타글리츠가 자기 부인이던 조지아 오키프의 손을 찍은 유명한 사진인 <골무를 낀 손>부터 시작해서, 베레니스 에벗이 찍은 장 콕토의 손, 리처드 이베든이 찍은 헨리 무어의 손, 재즈 음악가 마일즈 데이비스의 손, 테레사 수녀의 손, 유명한 권투선수 조 루이스의 손, 앤디 워홀의 손 등등이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운증후군 소녀의 손과 같은 소수자들의 손도 주인공이고, <장난감 수류탄을 든 아이> 처럼 전쟁에 희생되는 인간을 주제로한 손도 있습니다. 조각 부문에서는 오귀스트 로댕의 유명한 <손> 연작과, 파블로 피카소의 손을 주제로 한 작품, 실제 인물을 석고로 복제하는 작품들로 유명해진 극사실주의 조각가 조지 시걸의 손, 그 외에 브루스 나우먼, 아네트 메시저, 루이스 부르주이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작가인 서도호와 노상균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골무를 낀 손



도대체 헨리 불은 왜 손을 모으기 시작했을까요. 그거야 작품을 사 모은 불 본인이 가장 잘 알겠습니다만, 그의 설명이 없더라도 손 작품들의 가치는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제일 처음 자신을 그리기 시작할 때 사용하는 피사체도 손입니다. 저 역시 미술 시간에 제 왼손을 그리곤 했었죠. 게다가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면서 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 도구의 활용이나 의사소통 기술에 있어 극적인 진보를 이루게 됩니다. 게다가 손은 바로 그 예술작품들을 만들어낸 주역이기도 하지요. 앤디 워홀이 자기의 손 사진에다 <자화상>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당연한 일이죠. 손이 손을 찍었으니까요.

그러면 또 다른 질문, 과연 이 컬렉션을 볼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답하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야 합니다. 이 컬렉션에 모인 손들이 보통 우리가 접하는 손들과 크게 다를까요? 로댕이 묘사한 손이 보통 우리가 매일 접하는 각자의 손과 크게 다를까요? 손이 아무리 중요한 신체부위라고 해도 손 컬렉션이 어차피 보기 싫어도 보게 되는 우리들의 평범한 손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그걸 굳이 미술관까지 찾아가서 봐야 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어, 얼굴을 묘사한 조각이나 사진이나 그림은 많이 만들어져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감상거리가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얼굴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남의 얼굴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과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손도 얼굴만큼이나 다양할까요? 이 질문에 대해 답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뇌에서 손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굴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서 얼마나 될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이미 신경생리학자들이 자세한 대답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과학자들은 우리의 대뇌 피질의 부위가 어떤 신체부위를 담당하는지를 하나하나 조사해서 일종의 뇌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이 지도를 통해서 우리는 작은 인간을 하나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학자들은 ‘호문클루스’(정확히는 대뇌피질 호문클루스 Cortical Homunculus) 라고 부릅니다. 라틴어로 말 그대로 작은 사람이라는 뜻의 이 이름은 서양에서는 예전부터 어떤 현상의 배후에 존재하는 조작자 혹은 요정 같은 존재를 부를 때 사용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가 송과체 속에서 인간을 조종하는 또 다른 인간을 설명할 때도 이 이름을 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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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뇌피질 호문클루스의 모형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호문클루스는 둘입니다. 왼쪽은 감각을 담당하는 녀석, 오른쪽은 운동을 담당하는 녀석이죠. 어쨌든 이 호문클루스의 모양을 보면 우리 뇌에서 신체 각부위가 얼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부위가 크면 클수록 그 부위를 담당하는 뇌의 부분도 크다는 뜻이죠. 뇌에서 담당하는 부위가 크면 클수록 더 예민하다는 뜻이니, 입술이 큰 것을 보면 그만큼 손과 입의 감각에 우리가 예민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운동신경을 담당하는 오른쪽 녀석은 왼쪽 녀석보다 손과 입이 훨씬 더 크고 배가 나와 있음을 아실 수 있습니다(사진에는 잘 안보입니다만). 배가 나온 것은 심장과 위장의 움직임에도 뇌가 꽤 많은 신경을 투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손과 입이 큰 것은 손과 입의 움직임이야 말로 뇌에서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곳이고, 따라서 우리가 제일 섬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신체부위임을 뜻하지요. 이 호문클루스를 보면 손이 우리의 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쉽게 알 수 있는데, 두 손이 대뇌피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납니다. 한쪽 손만으로도 얼굴이 차지하는 면적의 거의 2배 이상을 차지하고 있죠.

간단히 말해서 뇌에 들어오는 촉감과 뇌에서 밖으로 나가는 운동신경의 절반 이상은 손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뇌는 손의 감각을 읽고 손을 조작하기 위한 존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다시 말해서 신경학적으로 봤을 때 눈이나 코나 귀나 입으로 느낄 수 있는 것보다 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많고, 얼굴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보다 손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풍부합니다. 눈이 마음의 창이라고 했던가요? 손은 마음이 오가는 현관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동안 손이 차지하는 그 거대한 비중을 인식하지 못했을까요? 아마도 손이 담당한 일들이 우리 눈에 띄지 않는 음지에서 묵묵히 수행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도 저는 이 글을 제 손에 의지해서 입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단지 화면을 보고 제가 쓰고 싶은 단어를 생각할 뿐인데 손이 알아서 그 단어들을 입력해주고 있죠.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손이라면 분명히 한 컬렉션의 주인공이 될 만한 자격이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실제로 이 컬렉션에 등장하는 손들은 각자의 개성과 각자의 감정, 그리고 각자의 마음을 조용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전시회를 보신 분들은 우리가 그 메시지를 들어줄 준비만 되어 있다면, 지금 당신이 만나는 수많은 손들도 역시 작게 소곤거리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겠지요.

- 월간 브레인, 2009. 여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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