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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능력은 죄 용서받는 능력입니다.

십자가 자랑

by Bliss Yeo 2015. 4. 6.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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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과 십자가의 능력은 용서받는 능력입니다.

만약 십자가가 우리의 죄만 깨닫게 한다면, 우리는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죄가 너무 많고,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더욱 분명히 깨닫게 하지만, 놀라웁게도 우리의 죄짐이 십자가에서 완전히 벗겨졌다는 은혜를 깨닫게 합니다.

<질문> [은혜]가 무엇인지 지금 당신이 알고 있는 대로 정의해 보십시오.

받을 자격이 없는 자가 과분한 처분과 사랑을 받은 것

만약 어떤 학생이 형편없는 성적표를 가져 왔다고 합시다. 어머니의 반응이 세 가지로 나올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적표를 보시더니, 얼굴 근육이 씰룩거리시더니, 갑자기 성적표를 내 동뎅이 치시면서, 높은 톤의 목소리로 "이것도 성적이라고 받았니? 당장 가서 회초리 가져와"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인과응보하고 합니다. 둘째는 어머니께서 깊은 한숨을 내 쉬시더니, "어쩌겠니, 다음에는 더 잘하도록 하거라"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정도에도 은혜라는 말을 씁니다만, 정확히 말하면 온정입니다. 세째는 성적표를 보고, 생각에 잠기시더니, 고개를 푹 수그린 아이를 꼭 껴안아 주시면서 "사랑한다! 시험보느라고 수고했지, 그래도 너는 나의 자랑스런 아들이야. 오늘 아빠에게 전화해서 외식이라도 할까? 네가 좋아하는 피자 먹으러 가자" 이것이 왠일입니까? 피자는 무슨 피자입니까? 피가 나게 맞아도 할 말이 없는 데, 도무지 받을 자격이 없는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용서의 은혜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요 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사 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① 존 웨슬리, 그의 아버지는 목사였습니다. 그는 옥스포드 대학에서 홀리클럽이라는 경건단체를 만들고, 성경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는 미국 선교사로 자원하여 간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가 예수님을 몰랐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경건과 믿음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미국으로 가는 배에서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 때, 웨슬리는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 동승했던 모라비안 교도들은 어린아이까지 평안하게 찬송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황했습니다. 웨슬리에게는 죽음의 권세를 이길 구원이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독일에서 온 모라비안교도의 영적지도자 스팡겐버그가 웨슬리에게 물었습니다."하나님의 영이 그대의 영혼 속에 그대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를 주십니까?" 그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사실상 성령에 대하여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그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할 때, 웨슬리는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그가 온 세상의 구세주이심을 압니다" 그 때 스팡겐버그는 물었습니다. "그가 바로 당신을 구하셨다는 것을 믿습니까?" 그때 웨슬리는 너무나 확신없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가 나를 위하여 죽으셨기를 바랍니다" 웨슬리는 사실상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이 무슨 뜻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그의 미국 선교 여행이 실패로 끝났습니다. 사실상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에 열매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귀국하면서 "나는 인디언을 회개시키러 갔었다. 그러나 나를 회개시킬 사람은 누군가? 나는 믿음이 부족함을 느낀다" 눈물로 "나는 설교할 자격이 없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여전히 죄의 권세에 눌려 눌려 있었습니다.

그러던 웨슬리가 1738년 5월 24일 올더스케잇 거리의 한 기도회에 참석했다가, 루터가 쓴 로마서 서문을 사회자가 읽는 것을 듣고 있었는데,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이 그 마음에 부딪혀 오면서, "그렇구나! 구원을 위하여 나는 다만 그리스도만 믿으면 되는구나. 주께서 나의 죄, 나의 모든 죄까지 다 거두어 가셨구나.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주셨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은혜]를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감격에 차서 말했습니다. "이제 나는 믿는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을!" 그렇습니다. 그때 웨슬리 목사님에게서 죄짐이 사라진 것입니다.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졌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② 마틴 루터, 그는 천주교 신부였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그 때까지도 구원받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속죄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죄짐에 눌려 살았던 것입니다. 그의 신앙생활에는 기쁨과 감격이 없었습니다. 그는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앞으로 구원받으려고 선한 행위를 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 가는 중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은혜의 진리"가 깨달아졌습니다. 그 말씀을 붙잡는 순간에 정말 자신의 모든 고민과 죄의 무거운 짐이 다 사라졌습니다. 이 때, 그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를 믿지만, 은혜를 알지 못한 채, 여전히 죄짐에 눌려 사는 교인이 많습니다.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그의 전도 사역을 마무리할 즈음에 어떤 기자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지금까지 수많은 나라들과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지금까지의 사역 중에서 혹시 아쉬운 것이 있었습니까?"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복음이 교회 밖에만 필요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새삼스럽게 깨닫는 것은 교회 안에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질문> 눅 15:11-24에 나오는 아버지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아버지는 둘째가 유산을 달라고 할 때, "이놈아!" 하면서, 몽둥이들고, 내 쫓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아들을 영원히 잃어 버리게 될 것을 아신 아버지는 아들이 스스로 회개하고 돌아 올 날이 있음을 바라보며, 재산을 포기하고서라도, 떠나는 아들을 받아 주었습니다. 이것이 오래 기다려주시는 사랑, 죄인일 때부터, 이미 사랑해 주신 사랑입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방탕한 아들을 둔 목사님,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도 정신을 못 차린 아들, 하루는 술이 취해서 밤 늦게 집에 들어와 자는데, 뜨거운 것이 손등에 떨어져, 눈을 떠 보니, 아버지가 기도하고 계셨답니다. "이 아들의 생명을 구원하여 주옵소서. 차라리 나의 생명을 거두어서라도 이 아들은 구하여 주옵소서" '나를 저토록 사랑하시는 아버지를 언제까지 눈물 흘리게 할 것인가?' 자신의 눈에도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 아들은 시카고 대학을 졸업하고 게렛신학교를 마치고, 시카고대학으로 돌아와 학원 선교를 하는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대로 갚으시지 않고, 오랫동안 기다려 주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중에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아 와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은혜를 깨달을 때, 진정으로 회개하게 됩니다. 매 맞는 것이 두려워서 하는 회개는 아직도 온전한 회개가 아닙니다. 사랑 앞에서 자기 죄를 깨닫고, 돌아 오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아버지는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 왔을 때, 돼지 오물로 엉망인 그대로 끌어 안고, 더러운 얼굴에 입 맞추었습니다. 그 순간 탕자의 죄짐은 벗겨진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입맞춤으로 죄인이지만, 아들의 지위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십자가를 바라 보십시오. "가서 씻고 오라!" 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안아 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로 알지 못합니다.

98/8/ 부산부녀복지관 부흥회, 불행의 길에 빠졌던 10대 소녀들 100여명이 열심히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소녀들에게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나를 사랑하실까?] 믿고 싶지만, 믿어지지 않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열심히 찬송을 부르던 대부분 소녀들이 손들었습니다. 구겨진 인생, 불행한 가정, 무엇 하나,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거나, 받을 만 하다고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한 권사님은 어릴 때, 학교 운동자에서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를 하다가, 친구가 떨어 뜨린 1원 동전을 무의식 중에 발로 밟았답니다. 친구들이 둘러서서 자기 발을 들라고 하면서, "얘가 내 돈 훔쳤다" "너는 도둑이라!" 손가락질 하였는데, 이것이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 평생을 원인을 알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1 훔친 죄짐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을 경험할 때 해결되었습니다.

할머니 권사님 한 분은 17살에 시집을 갔다가, 남편은 바로 만주에 징용을 가고, 임신을 한 채 친정으로 돌아 왔는데, 당시 먹을 것이 없어서, 산에 나무 껍질도 벗겨 먹던 시절이라, 9 식구였던 친정 식구들의 눈이 차가왔답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쌍둥이였습니다. 그래서 한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젖을 주지 않아, 죽였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이 죄짐을 평생 지고 살았습니다. 교회 권사가 되고서도, "하나님 앞에 가면 이 죄를 어떻게 하나?" 그래서 기쁨없이 예수를 믿었답니다. 이 권사님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가 용서받았고, 하나님은 기억도 하지 않으심을 선포하노라" 하는 십자가의 속죄의 복음을 듣고, 그제서야 기쁨을 회복하였습니다.

IVF 회보에 군에 입대한 한 형제가 [하나님은 사오정이더라]는 글을 썼습니다. "난 군대에 와서 하나님의 또 하나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난 이제 하나님은 싫어, 아니 지겨워, 미워" 했더니, 하나님께 말씀하시기를 "그래, 나도 너를 사랑한단다" 하시는 것 아닙니까! 내가 "난 더 이상 하나님을 못 믿겠어. 정말이야" 했더니, 하나님은 "그래 나도 너를 믿어. 앞으로도 영원히 너를 믿을거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하나님 저는 구제불능의 죄인이에요. 나는 왜 이 모양이죠, 제가 미워요" 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래 그렇지 넌 정말 사랑스러워, 너는 의로운 내 아들이야" 하시지 않겠습니까? 난 처음에는 이런 사오정 하나님이 참 답답했으나, 이제는 정말 좋습니다.

저는 이 형제의 고백을 읽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지, 하나님은 정말 그렇지! 누구나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눈이 열립니다. 진정한 회개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한마디 하시지 않으셨는데도, 불평했던 것도 죄요, 원망했던 것도 죄요, 낙심도 죄요, 열심없이 신앙생활했던 것도 죄요, 헌신하지 못했던 것도 죄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한 권사님, 늘 너무 무거운 십자가를 주셨다고 원망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수련회에서 촛불 행진을 하던 중, 십자가 지고 앞서 가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엄청나게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야 말로 자기가 져야 할 죄값과 저주의 십자가더랍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져야 할 십자가와 주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의 십자가, 비교가 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제서야, 사명의 십자가에 대한 불평이 사리지고, 눈물의 감사와 감사가 나오더랍니다.

 

십자가 외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놀라운 은혜를 완전히 깨닫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를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깨달을 때, 우리는 회심하게 됩니다.

<질문> 당신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누리고 있는 은혜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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