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고민하는 마음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마26:38) 예수님의 생애에서 이 불가사의한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에는 지금도 오래되고 마디가 많은 여덟 그루의 감람나무가 서서 그곳을 지키고 있다. 바로 이 나무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그러한 심적 고통을 말 없이 지켜 보았을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다. 크루머쳐(F.W. Krummacher)는 예수님의 이 성스럽고 신비한 수난 사건에 대하여 말하면서, 이 사건 당시 동산 입구에 천사가 서서 비록 화염검을 들지는 않았더라도 예수께서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막고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이제 정말로 거룩한 장소에 와 있다. 그러나 기록된 것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므로, 이 문제에 대하여 경건하게 연구해 보기로 하자. 예수께서는 동산에 들어가시기 바로 몇 분 전에 대제사장으로서의 기도를 드리셨다(요 17장). 그러나 그때의 기도와 지금 드리려는 기도는 아주 현저하게 다르다. 대제사장으로서 드리시던 기도에 나타나는 평온함과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 나타나는 고통스러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대제사장으로서의 기도는 중보기도였고, 지금 하시려는 기도는 갈보리로 가시는 길의 전주곡과도 같은 개인적인 기도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고는 "할렐"이라고 불리우는 시편 115편에서 118편의 찬양을 드리셨다. 이에 제자들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졌고, 예수께서도 훤히 내다 보이는 십자가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편치는 못하셨다. 예수께서는 그 밤에 같이 철야기도를 드리려는 마음으로 특별히 사랑하시는 세 제자를 데리고 가셨다. 오호라 ! 그러나 깨어 있어서 예수님을 지켜 주어야 했던 제자들은 있던 곳에서 잠들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누가는 제자들이 "슬픔을 인하여" 잠이 들었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그리 심하게 나무라지는 않으셨으므로, 우리도 제자들이 잠든 것에 대해서 너무 나쁘게 판단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위기가 임박한 시간에 제자들이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이상히 여기셨지만, 마음에는 원함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칭찬을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전에 어부였던 그 제자들에게 있어서 이 시간은 일을 끝냈을 시간이 훨씬 지났다는 것과 지난 수일간 그들은 감정적으로 아주 심한 긴장을 느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께서 기도하신 장소는 이 사건에 걸맞게도 "겟세마네" 즉 "기름짜는 틀"로 불리는 곳이었다. 예수께서 그곳에서 그렇게 큰 고통의 압력에 짓눌리시면서 많은 상한 심령들을 치료하는 귀한 향유를 내지 않으셨겠는가? 겟세마네 동산은, 마지막으로 비겁한 일을 저지르기 위해 이미 그들을 떠났던 배신자 가룟 유다도 잘 알고 있던 곳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놔두시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셨다.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눅 22:41). "떠나"(withdrew)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떨어져"(tore himself away)라는 뜻으로 제자들을 그냥 놔두고 그 끔찍한 싸움을 혼자서 감당하시겠다는 각오를 의미한다. "고민하고 슬퍼하사"(마 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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