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과 십자가의 능력은 죄를 씻는 능력입니다.
눅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 또 하나의 아버지 사랑이 있습니다. 그것은 씻겨 주시는 사랑입니다. 아버지는 사랑으로 돼지 오물로 엉망인 아들도 끌어 안아 주시지만, 아버지는 한걸음 더 나아가 회개하고 돌아 온 아들을 씻기십니다. 왜냐하면 잔치자리에 앉히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죄도 다 용서하십니다. 어떤 죄도 아버지와 우리를 갈라 놓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를 용납하시는 것은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죄는 자녀가 받은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양아버지 댁인 시골에 갔다가 헬리콥터가 논바닥에 내려 동생과 구경을 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밀치고 달려 가는 바람에 동생이 인분더미에 넘어졌습니다.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친척들이 다 얼굴을 외면하여, 그대로는 집으로 들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동생의 처지가 걱정이 될 뿐, 전혀 더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동생을 데리고 개울가로 가서 옷을 벗기고, 빨고, 목욕시키고, 같이 집으로 들어 갔습니다. 이것이 씻기는 사랑입니다.
얼마전 제가 아는 한 장로님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장로님은 솔직히 [경건한 신앙인]이셨다고는 말할 수는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은 참으로 신실했습니다. 그 장로님의 죽음이 임박하였을 때, 장로님의 딸 중의 한 분에게, 장로님이 회개해야 할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대단히 노여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이 일을 위해 자신들이 회개하며 전심으로 기도 하였습니다. "아버님께서 이대로 하나님 앞에 가게 할 수는 없다"고 울면서 기도하였습니다. 드디어 이 장로님께서 딸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부인 권사님이 무릅을 꿇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꼭 무릅을 꿇어야 들으시느냐?"고 핀잔하곤 했던 그 분이, 발을 건드리기만 해도, 통증을 견딜 수 없어 하시면서도, 무릅을 꿇게 해 달라고 부탁하셔서, 매일 무릅을 꿇고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그 장로님은 참으로 은혜롭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질문> 다음 성경을 읽고 답을 써 보십시오.
① 행 2:38에서 베드로는 누구에게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으라고 했습니까?
[행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 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② 요일 1:9에서는 요한 사도는 누구에게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으라고 했습니까?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우리는 여기서 두가지 차원의 속죄의 역사가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는 불신자가 영생을 얻게 되는 속죄의 역사입니다. 이것은 죄와 저주 아래 있던 자가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던 지난 날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 구원받을 때, 그의 원죄가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여기까지만 알고 있습니다. "믿으면 구원받지 뭐,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이라도 용서하시고 사랑하신다고 했지, 예수 믿으면 다시는 정죄함이 없다고 했잖아" 이것은 구원의 다음 단계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자녀가 은혜와 능력을 회복하는 속죄의 역사입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이 삶 속에서 다시 죄에 넘어져서 은혜와 능력을 상실하였을 때,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 죄를 회개하여, 십자가의 능력으로 씻음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은혜와 능력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가장 무서운 사람은 장로님, 권사님이셨습니다. 싸우시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동생들과 밥을 먹다가 장로님, 권사님께서 "목사님, 계십니까?" 하고 사택에 들어오시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고, 동생들과 밥먹다가 말고 건너 방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서, 다들 가시기를 기다려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교회 중직자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을 믿고 세월은 오래 흘러, 교회의 중책을 맡았지만, 십자가의 능력으로 날마다 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도가 신앙생활 하면 할수록 오히려 은혜와 감격을 잃어 버립니다. 왜 많은 성도들에게 십자가의 감격이 없을까요?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회개의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죄를 그냥 넘겨 버립니다. 죄 보다 무서운 것이 회개하지 않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다. 진정한 회개가 없으니, 죄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장애물이 된채, 십자가 능력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질문> 당신은 매일 매일 십자가를 붙잡고 사십니까?
이 말은 십자가를 꼭 쥐고 살라는 말도 아니고, 십자가를 옷에 붙이고 살라는 말도 아닙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붙잡고 산다는 것은, 계속하여 회개의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십자가를 붙잡으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성도는 회개하면 십자가의 능력으로 씻음을 받기 때문입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우리는 여기서 '죄를 회개한다고 누구나 죄를 씻음받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과 불신자의 회개는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의 구원 안에 있기에, 회개하면 씻김을 받습니다. 그러나 불신자는 회개해도 십자가가 없기에 씻김을 받지 못합니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사함을 받았지만, 가룟 유다는 회개했지만 사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죄씻음을 받는 은혜는 십자가를 붙잡은 사람만이 누리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정리해 봅시다. 성도의 죄는 어떻게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까? 반드시 ①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합니다 그리고 ② 죄를 씻겨 주시는 십자가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십자가의 보혈이 있기 때문에, 죄가 우리에게 여전히 있으나,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성도에게도 죄는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가 우리 안에 있으나,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롬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음란, 거짓말, 도둑질 등 죄 지은 후 겪게 되는 가장 큰 고통은 두 번째 유혹이 올 때, 이기기가 너무나 힘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이미 자신 안에 견고한 진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이기기 더욱 어려워집니다. 이처럼 한 번 죄 짓는 것이 작은 것 같아도, 엄청난 일입니다. 죄 뒤에는 마귀가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죄 짓는 자는 죄의 종이니" 했습니다. 이 때 이 진을 깨뜨리는 길은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는 믿음 뿐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한 번의 죄로 죄에 사로잡히듯이,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임을 알아야 합니다. 처음이 대단히 어렵지만, 한 번 회개하고 죄를 이기면 다음은 이기기가 점점 더 쉬워짐을 느끼게 됩니다. 성령께서 자신 안에 더 강한 진을 가지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끊임없이 보혈이 흘러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승리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필수조건이 있는데, 회개입니다.
죄가 우리에게서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회개하고 십자가의 죄씻음의 은혜를 믿어야 합니다. 죄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회개가 없는 것이 무서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질문> "죄인"과 "회개하지 않는 자", 어떤 단어가 더 문제입니까?
1999년 5월 20일 신문마다 실린 기사, 13년 동안 미국 하버드대학 신학대학장이었던 로널드 티먼교수, 학장 관사의 컴퓨터 화일 속에 수천장의 포르노 사진이 들어 있는 것이 밝혀져서 학장직에서 사임했다는 기사입니다, 예일대학 출신이며, 평소 종교와 도덕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해 왔던 존경받던 신학자이자 목사인 그가 사실은 포르노광이더라! 포르노에 유혹을 받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회개가 없었던 삶을 살면, 누구나 이렇게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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