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種의 여자, 메타우먼
“여성들이여, 메타우먼이 되라”
목소리 큰 건축가 김진애씨,
이 시대의 커리어 우먼 전략을 제시한다.
Peter McGrath 기자
-------------------------------------------------------
근대 여성사의 큰 이름인 신여성 나혜석(1896∼1949)과 섹스 비디오 파문의 주인공인 대중가수 백지영. 두 사람을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功과 過를 둘러싼 인물평을 한다고 치자. 그런 작업이 과연 온당하기나 할까 하고 사람들은 뜨악한 표정을 지을 것 같다. 근대 첫 여성화가이자 문인으로 우뚝 선 선구자였으나 최린(1878∼?) 등 당대의 거물들과의 연애소동 끝에 철저하게 사회로부터 버려졌던 나혜석과, 요즘의 애송이 연예인을 평면 비교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손쳐도…” 하며 점잖게 나무랄 분도 있겠지만, 신간 ‘새로운 種의 여자, 메타우먼’의 저자는 태연자약하다. 두명의 사회적 스캔들과 둘러싼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보인 뒤 저자는 뜻밖에도 백지영의 손을 번쩍 들어준다. 그에게 “갈채를 보낸다”는 발언으로 책 읽는 이를 놀라게 하는 것도 그 어름이다. 나혜석? 저자인 김진애가 보기에 그는 ‘바보’에 불과하다.
“나혜석은 여자에게 훨씬 더 가혹하게 가해지는 사회적 잣대를 알고 있었을까. 자신처럼 뛰어난 여성이라면 그런 것을 다 넘을 수 있다고 자만한 것은 아니었을까. 즉 나혜석은 이기려는 싸움을 했을까. 나혜석은 너무 개인적이고 감정적이었다. 그가 바보 같았다면 자기방어 능력이 없는 채로 사회에 공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불나방 같았다고나 할까.”(36∼38쪽)
“백지영은 도대체 눈물을 펑펑 흘리는 외에는 대책이 없었을 것이다. 그가 예컨대 ‘나의 사생활은 어디까지나 나의 프라이버시이며, 그것을 유통시킨 사람들이 잘못이다’하고 말했다면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동정표조차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만일)그가 새로운 전략으로 다시 연예계에 등장한다면 이 시대 여자의 다른 (성장의) 단계를 목격하는 것일 게다. 스캔들을 이기고 살아남는다는 사실 자체에 갈채를 보낼 일이다.” (40∼41쪽)
말하자면 이런 얘기다. 김진애(48)에 따르면 성적 스캔들 방어를 포함한 ‘영악한 자기관리’ 문제가 이 시대 커리어 우먼들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와중에 여자의 자기관리 능력은 점점 더 신장되고 있으니 그것은 ‘반가운 조짐’이고, 시대변화의 조짐으로 적극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말이 된다 싶은데, 이런 지론 아래 한 여성건축가가 쓴 페미니즘 전략서가 앞의 신간이다. 이 책은 이토록 엉뚱할 정도로 영악한 전략으로 채워져 있다. 책 보는 사람의 마음 한구석 마음이 짠한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여성들이 살아나가기에 이토록 험난한 정글이자, 불교 식으로 말하자면 지옥도(地獄圖)에 다름 아니었던가 싶은 반성 때문이다.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악어의 눈물’로 비춰질까 두려우니 괜한 눈물일랑은 거두고 책 내용부터 들여다볼 일이다.
책은 한마디로 메타우먼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種의 탄생, 그리고 진화를 요구하는 강력한 대망(待望)의 메시지다. “다가오고 있는 여성의 세기에 종래 여성상과 결별한 새로운 컨셉트의 여성이 요구된다. 그 이름이 슈퍼우먼이자 메타우먼이다”라는 선언이다. 이 시대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텍스트인 이 책은 이제는 전의(戰意)만으론 안된다는 것, 따라서 여성적 특장(特長)까지 동시에 충족시키는 유연한 새 전략이 요구된다는 것을 내세운다. ‘메타우먼으로 자라기’내지는 ‘메타우먼으로 진화하기’의 구체적인 전략은 김진애 식의 몇가지 구호에 잘 나타나 있다.
우선 남자를 적이자 동지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구호의 악센트는 ‘동지’에 걸려 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분명 ‘괘씸하기 짝이 없기도 하지만 또 한없이 사랑스러운’ 것이 남자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또 다른 구호를 빌리자면 앞으로 여성들은 ‘남자보다 더 남자 같이, 여자보다 더 여자 같이’ 행동할 필요가 있기도 하다. 여성으로 산다는 일의 어려움을 충분히 감지하면서도 그것을 ‘여성으로 산다는 좋은 점’으로 발상의 전환을 하자는 제안이다. 이를테면 사회통념상 여성이 사회경력을 쌓기 어렵다고 하지만, 그것을 ‘견제를 덜 받으니 출세에 용이할 수 있다’는 식으로 판단하자는 말이다.
저자는 여성이 참정권을 얻은 것은 채 한세기가 안되며, 이 기간에 놀라운 사회적 권익확장을 했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따라서 “여성은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에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 메타우먼들의 다양한 각개약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지난해 베스트셀러가 된 CNN 부사장 게일 에반스의 ‘남자처럼 일하고 여자처럼 승리하라’를 연상시킨다.<박스기사 참조> 저자 중 한사람은 미국 언론사 부사장이고 다른 한사람은 한국의 건축가로 성공한 여성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요체는 남성중심 사회구조의 냉혹성을 충분히 감지한 여성들이 전략적 사고를 하자는 점에서 두책은 메시지와 뉘앙스 면에서도 상당 부분 닮았다. 변화하는 시대의 당찬 여성들이 쓰는 페미니즘서들은 초창기 전투적 목소리를 접고 이제 외유내강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일까?
김진애는 서울대 건축학과 출신으로 미국 MIT에서 학위를 받았다. 산본 신도시와 함께 최근 서울 인사동 길의 도시설계를 맡은 바 있는 그는 이 시대 남녀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지난해 ‘남자, 당신은 흥미롭다’ ‘여자, 우리는 쿨하다’(이상 한길사)를 펴냈다.
(중앙일보 문화부 출판팀장·for NWK)
방어기제 (정신분석학) [防禦機制, defense mechanism] (0) | 2011.04.17 |
---|---|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0) | 2010.04.30 |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0) | 2010.04.30 |
타이타닉호의 신사도, 서서히 침몰한 덕분 (0) | 2010.04.30 |
다시 투쟁하기 위하여, 영원히 투쟁하기 위하여-당통 (0) | 2010.04.17 |